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22화 (122/219)

122

어두운 지하 아지트.

검은 포탈이 열리며, 남자와 미우가 걸어 나왔다.

곧 포탈이 닫히고 남자는 바닥 위로 널브러졌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지트에 있던 그의 동료가 물어왔다.

“유현을 만났어.”

“유현? 아카데미 애새끼 말이야?”

“그냥 애새끼가 아니야.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어.”

“저번처럼 톤파 같은 이상한 무기라도 들고 싸웠나? 혹시 쌍절곤? LIKE 이소룡?”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자신의 몸을 붙잡았던 기이한 능력. 세상에 알려졌던 것처럼 단순히 몸뚱이만 강한 게 아니었다.

“미우. 너도 봤지? 그거 대체 뭐야? 날 어떻게 붙잡은 거지?”

“특성 아닐까?”

“그놈 특성은 보잘것없다며. 아카데미 관계자부터 길드 관계자들까지 똑같이 말하던데.”

“그럼 나도 몰라.”

남자는 몸을 일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하고 올게.”

“같이 가.”

“넌 정리하고 있어. 순간이동 주문서 사용처리도 하고.”

“알겠어.”

남자는 아지트의 로비를 가로질러 긴 복도로 진입했다.

여러 가지 문이 늘어선 복도.

문 앞에는 제각각 다른 명패가 붙어 있었다.

곧 남자가 멈춰선 곳은 복도 끝에 있는 문 앞이었다.

“무슨 일이냐.”

문지기가 남자를 가로막았다.

“복귀 신고. 대장한테 보고할 일도 있고.”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자 남자는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만큼이나 어두운 대장실.

사무실처럼 꾸며졌지만, 벽면에는 무기나 생물체들의 박제를 비롯한 살벌한 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동물원 습격 임무 복귀 완료.”

뒤를 향해 있던 커다란 의자가 빙글 돌아가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 앉아있는 건 갑옷을 입은 거대한 덩치의 사내였다.

“납치 요원들도 무사히 실험실에 도착했다고 한다.”

“다행이네.”

이국적인 외모와 달리 사내의 입에서는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헌터들의 수습이 빨랐다는데 관련해서 달리 보고할 사항은?”

“헌터가 아니라 아카데미 학생이었어. 한 놈은 유현이었고, 직접 만났지.”

사내의 눈썹 위에 새겨진 십자 흉터가 일그러졌다.

“설명해봐.”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먼저 덤비지 뭐야?”

남자는 유현과의 만남과 전투에 관해 설명했다.

“녀석에게 다른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 투명한 손이 내 몸을 붙잡은 것 같았어. 꼭 마법….”

남자가 말을 멈췄다.

대장의 비웃음이 조용한 공간을 메웠다.

“호야.”

“아, 씨바. 이놈의 주둥아리.”

“마법이라.”

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신장.

커다란 손이 호야의 목을 쥐었다.

“그놈들과 같은 주장을 할 거라면, 내 친히 보내주마.”

“케엑, 실수, 실수라니까.”

“목만 덜렁 가더라도 살릴 수 있겠지. 그게 마법이니까.”

호야가 꿀꺽 침을 삼켰다.

커다란 손 앞에서 자신의 목은 나무젓가락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아귀를 조이면 그대로 부러질 것이다.

“세상에 마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호야.”

“실수라고 몇 번을 말해.”

“그래, 실수 좋지. 하지만 본부 사람들 앞에서는 입조심 해라. 나야 널 오래 봤으니 그냥 넘어가지만, 그들은 널 죽일 거야. 변명할 기회도 없이 빠르게.”

대장이 호야의 목을 놓았다.

호야가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선명한 손자국이 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우, 존나게 아프네.”

“나가봐.”

호야가 밖으로 나오자 문지기가 그를 향해 소곤거렸다.

“쯧. 조심해라, 인마.”

한쪽 눈이 사라진 애꾸눈의 문지기. 호야는 그 문지기가 마법과 관련된 발언 때문에 한쪽 눈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야지. 누구처럼 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야.”

“자식이, 충고해주는데.”

“충고는 남은 눈알에 해라.”

호야가 문지기에게 손을 흔들고는 아지트의 구석으로 돌아갔다.

“호야.”

그를 기다리던 미우가 일어났다.

호야는 그녀의 손을 잡고 으슥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 다들 마법을 싫어할까.”

그 말에 미우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야,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돼.”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잖아.”

“그렇긴 하지만... 갑자기 마법은 왜?”

“너는 못 느꼈어? 유현이 사용한 능력 말이야.”

미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특성 아니야?”

“그럼 이중 특성이라는 소린데….”

“황사경 아저씨처럼 말이야?”

“아, 그놈도 이중 특성이었지.”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춘 국내 케이디 지부의 최대 전력.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수확도 없이 몇 달이 지났다.

“하지만 유현은 그 정도로 강한 것 같지 않았는걸.”

“다른 특성이 비루하니까 그러겠지. 그리고 나는 애초에 유현이 이중 특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 왜?”

“이유야 많아. 근데 하나만 꼽자면, 그놈의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돼.”

어떤 헌터라도 특성을 빼면 결국에는 일반인이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몸을 단련해봤자 인간의 상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유현은 어때? 신체 강화가 특성이 아니라는 놈이 그렇게 움직인다고? 지상에서 빌딩 높이까지 막 뛰어오를 수준으로?”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건 사람들이고. 내 생각은 달라. 너도 네 줏대대로 생각해, 멍청아.”

미우가 작게 구시렁거렸지만, 호야는 어느새 자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최강자전에서도 옷이 불탔는데 몸만 멀쩡했었어.’

아카데미의 전투복은 평범한 옷이 아니다. 그게 불탔을 정도의 화력인데,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예전이라면 그냥 넘겼을지 몰라도….’

직접 붙어보고 나니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좀 더 제대로 알고 싶은데….”

미우가 호야의 팔을 덥썩 붙잡았다.

“혹시 여길 떠날 거라면 나도 데려가.”

“그건 당연한 거고.”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호야! 미우! 전투 부대에서 호출이다! 유현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대!”

순간 움찔했던 호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간다!”

***

-금일 있었던 동물원 탈출 사건은 두 아카데미 생의 활약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뉴스를 통해 사건의 소식이 전해졌다.

-대부분의 동물이 무사히 돌아왔고, 아직 찾지 못한 동물들은 경찰과 헌터들이 함께 추적하고 있습니다. 또, 습격의 범인은 빌런 조직 케이디라고 하네요.

유현은 케이디에 관해 입 밖으로 내지 않았으나 그들이 동물원 구석구석에 남기고 간 흔적들 덕에 범인이 특정되었다.

“진짜 관종이네.”

유현은 기숙사에서 혼자 TV를 시청했다.

-동물원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보상안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도움을 준 두 사람에게도 보상을 제공할 거라는….

그 대목에서 유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비록 아카데미 무단 외출로 벌점을 먹었지만, 동물원 측에서 보상을 준다고 하니 나름 상쇄되는 부분이 있었다.

“동물원 자유 관람권 이런 것만 아니면 되는데.”

설마 그런 걸 주겠어?

유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그녀가 올 시간이었다.

딩동!

정각이 되자마자 울리는 벨소리.

유현은 인터폰으로 현관을 열어주고, 미리 문까지 열어두었다.

곧 발소리와 함께 김풀잎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물원의 구도자! 이 몸이 왔다! 하하하!”

사건을 끝마친 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영웅으로 추앙된 김풀잎은 콧대가 대단히 높아져 있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문 닫아. 찬 바람 들어온다.”

김풀잎이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막 샤워를 마치고 온 건지 머릿결에 물기가 잔뜩 남아있었다.

“머리 좀 말리고 오지.”

“두면 말라.”

“겨울에 그러면 머리 얼어,”

“아직 가을인데?”

김풀잎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이내 남의 집 냉장고를 아무렇지 않게 확 열어젖혔다.

“와,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너 밥 먹이려고 부른 줄 아냐?”

“저녁 안 먹어서 뭐 있으면 먹으려고 했지.”

김풀잎이 아쉬운 얼굴로 혀를 차며 부엌을 나왔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너 오늘 여기서 본 건 어디 가서 절대 이야기하면 안 돼.”

“불안하게 왜 그래? 설마 나한테 고백하려고...”

“따라와.”

부정하지 않는 유현의 말에 김풀잎이 순간 움찔했다.

‘설마... 진짜로...?’

김풀잎이 방으로 들어가는 유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듬직한 등과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얼굴. 저 정도면 사귀어줄 만 한데...

“야, 뭐해. 빨리 안 들어와?”

“가, 간다!”

방에 무엇이 있을까. 촛불? 꽃밭?

다양한 이벤트를 상상하며 방으로 들어간 김풀잎은 이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뭐야?”

커다란 방의 중앙. 그곳에 웬 타조 알처럼 생긴 게 덜렁 놓여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설마 또 이상한 상상 했냐?”

김풀잎이 말이 없자 유현은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다.

“미친년.”

“네가 나한테 고백한다는 상상 정도는 할 수 있지.”

“입 밖으로 꺼내지 말고 상상만 해.”

유현은 알 앞에 착석했다.

김풀잎도 그 옆에 앉았다.

“내가 궁금한 건 이 알이야.”

“정확히 뭐가 궁금해?”

“언제 부화하는지. 알의 정체가 뭔지.”

김풀잎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이 그걸 몰라?”

“빨리 알아보기나 해봐.”

“나도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대충 형태는 알 수 있는데, 그게 정답일지는 모르겠네.”

김풀잎은 알 위에 손을 올리고, 능력을 사용했다.

“윽!”

곧장 찾아오는 두통.

김풀잎이 알에서 손을 뗐다.

“왜 그래?”

“이거 뭐야? 뭔데 이렇게 울어대?”

김풀잎이 다시 알에 손을 올렸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심하게 울어대는 녀석.

평범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너 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화상을 입은 것 같은데? 안쪽 형태가 조금 딱딱하게 굳은 것 같기도 하고…. 너 혹시 이거 삶았어?”

유현은 입을 다물었고, 김풀잎은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내버려 둔 거야? 이거 잘못하면 안에서 죽겠는데?”

“꽤 됐어.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볼 수는 있냐?”

“기다려봐.”

김풀잎은 소음을 참으며 알의 안쪽으로 마나를 주입했다.

마나가 천천히 퍼지며 내부의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알 속 생명체의 실루엣.

하나 그럴수록 도리어 의문이 늘어났다.

“생긴 게 동물은 아닌데….”

“어떻게 생겼는데?”

“도마뱀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꼬리가 엄청 길고, 목도 되게 기네.”

“그게 다야?”

“아니. 등 쪽에 날개뼈가 도드라졌고, 머리에는 뿔 비슷한 게 달려 있는데 뿔인지 귀가 발달한 건지 파악이 안 돼.”

유현은 김풀잎이 말한 내용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도마뱀이랑 비슷하고, 목과 꼬리가 길고, 등에 날개가 있는 것 같고, 뿔이나 귀가 달려 있다?’

유현은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마족은 아니었다. 마족 중에 이렇게 생긴 놈은 없었으니까.

남은 선택지는 세 가지.

마물, 신수, 판대륙의 짐승.

“이거 근데 대체 뭐야? 엄청 특이하게 생겼는데.”

“몬스터.”

“아, 몬스... 뭐? 몬스터라고?”

태연한 유현의 말투에 깜빡 넘어갈 뻔했던 김풀잎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울음소리가 이상하더라니…. 너 이거 불법인 거 알지?”

“너만 입 다물면 돼.”

“아까 그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젠장. 벌써 입이 근질거리는데.”

김풀잎은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몬스터 알을 봤다!

유현이 가지고 있다!

“누구한테 말할 생각이면, 너도 그만한 대가를 내놓을 각오는 하는 게 좋을 거야.”

유현의 살벌한 말에 입의 근질거림이 단번에 사라졌다.

김풀잎은 어색하게 웃으며 순종적인 말투로 말했다.

“다음에 시킬 건 뭐야?”

“걔 그대로 두면 죽는댔지. 당장 부화시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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