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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21화 (121/219)

121

여자가 붙잡고 있던 다리를 놓았다. 순간 유현이 움찔했으나, 여자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없었다.

“날 구하려고 했어.”

남자의 다리 아래.

여자는 허공을 디딘 채 서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잘 봐둬. 어떤 놈인지 제대로 알아야 나중에 대처하기 쉬우니까.”

“응, 알겠어.”

남자의 날개를 형성하던 깃털들이 따로 떨어져 나와 그의 주변을 부양했다.

날개는 여전히 컸지만, 빠져나온 깃털의 숫자만큼 크기가 줄어들었다.

“어이!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

유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너도 나한테 궁금한 게 있을 것 같은데. 하나씩 주고받는 건 어때?”

남자의 말처럼 유현 역시 상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했고, 남은 동물들은 어디에 있는지 등.

질문할 거리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남자의 말에 응할 생각은 없었다.

“질문은 나만 한다.”

“아주 자신만만한데.”

남자가 피식 웃으며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그의 주변을 맴돌던 깃털들이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평범한 깃털이 아닌, 하나하나가 강철처럼 단단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무기들.

맞으면 꼼짝없이 즉사에 이를 만한 일격이었다.

“음?”

피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유현을 보며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윽고 벌어진 일은 그에게 남아있던 웃음기를 앗아갔다.

팅!

깃털들이 유현에게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부딪힌 듯 튕겨 나갔다.

당황할 새도 없이 코앞에 다가온 유현의 모습.

남자가 한쪽 날개를 휘둘러 유현의 접근을 막아냈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크윽!”

허공을 딛고 움직이듯 재차 공격을 가하는 유현.

남자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일격을 피하고 쳐낼 수밖에 없었다.

“너, 너 뭐야!”

빌딩 옥상에 착지한 유현을 향해 남자가 소리쳤다.

저 큰 날개 때문에 좀처럼 접근하기가 힘든 상황.

이럴 때는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크아악!”

남자가 고통을 질렀다.

무언가가 몸을 조이는 것처럼 온몸에 압박이 가해졌다.

“지금부터 물어보지.”

유현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난간에 가까이 섰다.

한결 가라앉은 통증.

여전히 몸의 통제권은 없었지만, 고통을 호소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물원을 공격한 건 동물을 납치하기 위해서?”

남자는 유현을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질문은 나만 한다고 했는데.”

“으아아악!”

유현이 손을 까딱이자 남자의 몸뚱이가 바짝 조여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이 잠시 찾아왔다가 사라졌다.

“하하하...!”

유현의 경고에도 남자는 도리어 웃었다.

“미우. 이놈 보통내기가 아닌데? 잘못하면 오늘 너 혼자 돌아갈 수도 있겠어.”

미우라고 불린 여자는 멀찍이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에 붙잡힌 듯 움츠러든 남자의 몸뚱이. 그녀 역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럼 혼나는데.”

“죽을 것 같으면 도와줘.”

“알겠어.”

미우가 남자에게서 좀 더 멀어졌다. 괜히 두 사람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버틸 만한가 봐?”

생각보다 태연한 남자의 모습.

유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무진장 아파.”

“아픈 놈이 그래?”

“아파도 안 아픈 척해야 멋있잖아.”

“미친놈인가.”

유현은 남자를 붙잡은 마법의 손을 조금씩 조였다.

가면 너머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프면 질문에 대답이나 해.”

이 상태로 오래 있을 수는 없다.

남자의 소리 없는 반항이 거세 생각보다 많은 양의 마나가 소모되고 있다.

당장은 괜찮지만, 이 상태로 몇 시간 가까이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도 모이고 있어.’

옥상 입구는 물론 빌딩 아래쪽까지.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마법의 정체를 알게 될지 몰라도,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다 대답할 테니까 너무 무섭게 몰아세우지는 마. 내 목숨은 소중하거든.”

유현이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남자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말한다고! 말한다고 했잖아!”

“말해봐.”

“뭐가 궁금하댔지? 동물을 납치한 이유였나?”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납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야? 그냥 동물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게 목적일 수도 있는데.”

“말이 길어질 때마다 네 명줄은 짧아질 거야.”

“음…. 실험에 사용하려고.”

“평범한 실험은 아니겠군.”

일반적인 실험이라면 그냥 실험용 동물을 이용하면 될 터.

이렇게 큰 소란을 일으켜 가면서까지 동물을 얻으려 했다면, 평범한 실험은 아닐 것이다.

“무슨 실험이지?”

“나도 몰라."

유현이 손을 움직이려고 하자 남자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진짜 몰라! 난 그냥 시키는 일만 한다니까?”

“그걸 누가 시키는데?”

“위에서 시키지.”

위라는 말은 곧 자신들에게 일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

단순한 빌런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조직이냐? 심부름센터는 아닐 테고.”

“어라. 혹시 우릴 모르는 건가?”

“내가 범죄자를 어떻게 알아.”

“이거 좀 서운하네. 나 좀 뒤집어서 허리 쪽을 봐.”

유현은 남자를 거꾸로 뒤집었다.

그리고 남자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뒤집힌 해골 가면. 아까 전 인터넷으로 봤었던 빌런 조직 케이디의 심볼과 비슷했다.

“케이디?”

“정답.”

그들이 저지른 범죄 사례를 보면 그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

헌터들을 습격하여 사상자를 낸 사건도 있었고, 보안이 철저한 연구소에서 중요한 기밀을 빼낸 일도 있었다.

그들이 동물들을 데려다가 어떤 실험을 할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여기서 놓치면 안 돼.’

이들이 말단이라고 해도, 여기서 놓치면 케이디를 쫓을 단서가 완전히 사라진다.

언젠가 생길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아지트로 안내해.”

“뭐? 하하!”

케이디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외국만큼 심하진 않아도 몇 번의 국내 활동 정황이 드러났었다.

그러니 당연히 국내에도 지부를 가지고 있을 터.

그곳에 찾아가면 이들의 계획이 무엇일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그런 이야기는 못 해.”

“그럼 저 여자한테 물어봐야겠군.”

“그건 안 되지.”

남자가 한순간 마나를 방출했다.

검은 날개가 투명한 손을 튕겨낼 기세로 거세게 저항했다.

조금씩 사라지는 압박감에 남자가 씩 웃었다.

“어울려 주는 건 여기까지. 이렇게 강할...”

줄 알았으면 그냥 가는 건데.

라는 뒷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혼신의 몸부림을 비웃듯 숨통을 끊을 기세로 조여오는 투명한 무언가. 남자는 이를 악물며 구속에 대항했다.

"이런 씨…."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거늘, 이전보다 더 강한 압박이 몰려왔다.

힘이 풀리면 그대로 몸이 으스러질 것이다.

“도와줄까?”

미우의 말에 남자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유현은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세상과 자신이 분리되는 듯한 기이한 느낌. 뒤이어 현기증이 일며 비틀거렸다.

눈앞의 사물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무지개색으로 물든 빌딩이 기울어지고, 새파란 태양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마약이라도 들이킨 듯한 환각 증상들.

'약물?'

유현은 끝까지 정신을 붙잡은 채 급히 마법을 사용했다.

[정화]

저주를 비롯한 몸에 깃든 일시적인 현상을 해소하는 마법.

마법이 발동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눈앞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

어느새 자신은 누워있었다.

유현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허공에 일어난 새까만 일렁거림.

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이 깨어난 유현을 발견했다.

“뭐야. 왜 이리 빨리 일어나?”

남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미우의 능력을 통해 호흡기로 전파한 마약.

제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몇 분은 누워 있어야 하는 강력한 약이었다.

“미우, 더 없어?”

“그게 다였어.”

효과가 뛰어난 만큼 귀한 약이었기에 그 양은 극히 적었다.

지금 유현에게 사용한 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약의 전부였다.

“빨리 가자 그럼.”

“아직 다 열리려면…. 열렸다.”

검은 일렁거림이 멈추고 곧 둥근 원형 포탈이 완성되었다.

“어디가 이 새끼들아!”

포탈을 통과하려는 두 사람.

유현이 둘을 향해 곧장 추적 마법을 날렸지만, 증표가 닿기도 전에 포탈이 사라졌다.

“젠장!”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두 사람. 땅에 떨어져 있던 깃털들도 모두 형태를 잃고 마나로 되돌아갔다.

“더러운 술수를 쓸 줄이야.”

조금이라도 예상했다면 곧장 반응하여 정화마법을 사용했을 텐데.

유현은 아쉬움에 옥상을 떠나지 못했다.

“야! 유현!”

그때 옥상 문이 열리며 김풀잎이 뛰어 들어 왔다.

그녀의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도 보였다.

“큰일났어! 우리 빨리 가야 해!”

“뭐? 왜?”

“침팬지들이 칼 들고 행패부리고 있대!”

유현은 한숨을 쉬며 김풀잎에게 등을 내어주었다.

조금 전 그들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아직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다.

“이쪽이야!”

유현은 김풀잎의 지시에 따라 빌딩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렇게 도착한 한 유치원.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유현에게는 상당히 낯익은 장소였다.

“도와주세요!”

“우끼끼끼끼!”

“우갸갸갹!”

침팬지들이 어디서 손에 넣었는지 모를 무기들을 들고 유치원생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책상을 엎어 방어막을 형성하여 간신히 침팬지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지만, 그게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저 못된 놈들이!”

유현은 황급히 들어가려던 김풀잎을 막아섰다.

“여긴 내가 할게.”

“뭐? 왜?”

“말로 타이르고 있을 시간 없어.”

유현은 곧장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우끼끼끼끼!”

“우꺄꺄꺆!”

침팬지 몇이 순식간에 침입자들을 향해 모여들었다.

오랑우탄처럼 커다란 덩치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무기를 든 모습은 무척 위협적이었다.

“으아아아아앙!”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침팬지들이 더 흥분하여 방어벽 위로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현의 이마에 선명한 핏줄이 돋아났다.

“이런 되먹지 못한 새끼들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센 살기. 가까이 있던 침팬지들이 곧장 무기를 내려놓고는 밖으로 도망쳤다.

그 영향은 곧 방어벽 안쪽으로 까지 이어졌다.

“야, 다 기어 나와, 이 새끼들아.”

침팬지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얌전히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풀잎은 곧장 그들을 타일렀다.

유현은 방어벽 안쪽에 있던 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의 기세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느껴졌기에 모두 겁을 집어 먹은 상태였다.

“오빠?”

그러나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구석에서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을 감싸고 있던 유하연이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하연아. 괜찮아?”

“오빠!”

그라는 걸 확인한 유하연은 곧장 유현에게 안겨들었다.

그제야 다른 아이들도 안심했고, 선생님들도 상황을 정리했다.

김풀잎은 침팬지들을 얌전히 집합시킨 뒤 유치원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전화 왔는데, 없어졌다고 한 애들 빼면 다 찾았대.”

“다행이네.”

“걔넨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유현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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