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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
평화로웠던 도심은 몇 마리 사자의 출현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들은 도로 위에 멈췄고, 사람들은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동반된 비명은 이질적인 환경을 마주한 야생의 동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허억, 허억.”
횡단보도 위.
한 남자를 향해 다가가는 사자 무리. 남자는 뒷걸음질 치다가 제 발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르르-”
손으로 땅을 짚으며 다급히 물러나는 남자. 사자가 금방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제발, 누가...”
남자가 애타게 중얼거렸지만, 자신을 희생해가며 타인을 구할 사람은 없었다.
“......”
시간이 멈춘 듯 적막이 찾아온 도심. 사자의 아가리가 남자의 머리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누군가 경적을 울렸다.
빵ㅡ!
빠아아아앙ㅡ!
첫 경적을 시작으로 소음을 발생시키는 차들. 사자가 사납게 울며 차들을 돌아보았다.
효과가 있는 듯 보였지만, 그조차 얼마 가지 못했다.
다시금 남자를 향해 머리를 돌린 사자들. 한순간 찾아왔던 희망은 폭풍 앞의 불씨처럼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 경적이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크아아앙!”
사자 한 마리가 달려든 그 순간.
쿵!
누군가 허공에서 떨어지며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우욱, 토할 것 같아.”
유현의 등에 매달린 김풀잎이 속의 메슥거림을 다스렸다. 속도가 빨라서 좋긴 하지만, 너무 과격했다.
“누구야?”
“헌터?”
“유현 닮았는데?”
“구하러 왔나 봐!”
그의 등장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유현은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어나서 뒤로 빠져 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남자가 사자들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사자들의 관심은 모두 유현에게 쏠려 있었다.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분위기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내려줘.”
유현은 허리를 뒤로 젖혀 등을 흔들었다.
매달려 있던 김풀잎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땅에 착지했다.
“그냥 앉아서 내려주면 안 돼?”
“앉으면 다시 일어나야 하잖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는 김풀잎. 이내 시선을 사자들에게 돌렸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유현을 향해 으르렁거리던 사자들이 타겟을 바꿨다.
“이놈 자식들이 어디다 이빨을 들이밀어.”
마나가 담긴 김풀잎의 한 마디.
사자들이 곧장 깨갱거리며 몸을 바짝 낮췄다.
“야, 여기 앉지 마. 일어나서 저쪽으로 가.”
“크릉.”
“빨리 안 가? 한 대 맞아야 갈래?”
유현은 신기한 눈으로 이종(異種) 사이의 의사소통을 지켜보았다.
사자는 으르렁대고, 김풀잎은 자기 사람 말로 떠들어대는데 이게 어떻게 서로에게 전달되는지 보면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누가 없어졌다고?”
“크릉.”
“최대한 찾아서 돌려보낼게. 알겠지?”
사자들은 결국 김풀잎에게 설득 되어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인도 위로 물러났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사람들 공격하면 절대 안 돼.”
“크르릉.”
“그러면 너희 다 죽어. 진짜야.”
죽는다는 말에 사자들이 얌전히 바닥에 배를 붙였다.
“일단 여긴 이걸로 됐고, 다음으로 가자.”
인도의 통행이야 당분간 막히겠지만, 차도를 점거한 것보다는 나을 터.
김풀잎은 동물원에 사자들의 위치를 전달하고, 유현의 등에 업혔다.
“다시 출발!”
선장이 출항을 신호하듯 허공에 손을 뻗으며 소리치는 김풀잎.
유현은 다시 허공으로 도약했다.
“이번에는 이쪽이야!”
탈출한 동물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풀잎은 자신이 동물들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풀려 밖으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야생의 동물들에게는 이질적인 인간의 환경.
다들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 반응을 쫓으면 된다고 한다.
“별로 안 멀어!”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김풀잎의 말대로 가는 곳마다 동물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도심 외곽에 위치한 빌딩 내부.
사람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온 타조들이 로비를 어지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야!”
곳곳에 널브러진 화분과 깨진 설비들. 한 마디로 난장판을 피워놓은 타조들은 김풀잎의 일갈에 한자리에 모여 잔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어지럽혀 놓으면 어떡해!”
김풀잎이 타조들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씩 먹였다. 유치원에서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혼내는 선생님 같았다.
“너희 다 밖으로 나가서 앉아 있어!”
타조들이 김풀잎을 따라 일렬로 빌딩을 빠져나갔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의 눈에도 퍽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
“쯧. 생각보다 수습이 빨리 되는데.”
빌딩의 옥상.
어리숙한 외모의 남자가 난간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 위로 흘러나오는 뉴스에서는 실시간으로 동물의 포획 상황을 알려주었다.
“헌터가 가세한 모양이야.”
그의 뒤쪽에는 남자와 동년배처럼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헌터가? 이렇게 빨리?”
자경활동은 헌터들이 교대로 맡는 의무지만, 강제적으로 부여되는 일인 만큼 의욕을 가지고 나서는 이는 적었다.
“혹시 그놈들인가?”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스파르타 길드는 아니야.”
모든 헌터가 자경활동에 회의적인 건 아니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스파르타 길드가 유명했다.
“그럼 누군데?”
“본부에서는 두 사람이라고 했어.”
“그리고?”
“그게 다야.”
“잡으란 소리는 아니군.”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남자가 난간 밖으로 내밀고 있던 발을 걷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시선이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등진 채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얼굴이나 보러 갈까?”
“쓸데없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궁금하잖아. 정의감 넘치는 헌터님이 누구신지.”
등에 달린 망토처럼 생긴 무언가가 부르르 흔들렸다.
그 모습에 여자는 대답 대신 남자에게 다가갔다. 한 번 마음 먹었다면, 말려봤자 소용없을 테니까.
“한 번 가보자. 매달려.”
여자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펄럭!
망토처럼 보이던 무언가는 커다란 검은색 날개였다.
그 날개를 몇 번 퍼덕이자 남자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
사건이 생기고 고작 몇십분.
유현과 김풀잎의 활약으로 도시 곳곳으로 도망친 동물들은 빠르게 포획됐다.
하지만 그런 성과에도 김풀잎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애들이 아까부터 똑같은 소리를 해. 무리에서 몇 마리씩 없어졌대.”
“어디 사람 없는 데로 도망친 거 아니야?”
“몇 마리면 그렇다 치는데 다들 그러잖아. 특히 우두머리가 없어진 개체들도 있어. 보통은 우두머리를 따라서 도망치는데 말이야.”
김풀잎은 동물에서만큼은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적어도 그녀의 관점에서 동물들이 우두머리를 따르지 않는 건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
“따를 만한 우두머리가 아니라 그런 걸 수도 있잖아.”
“그건 아니야. 따를 만한 개체가 아니라면 애초에 우두머리가 될 수 없어. 설령 그 힘이 약해지더라도 다른 우두머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이상 모두 우두머리를 거부하지는 않아.”
확신에 차 말하는 김풀잎의 모습은 꼭 전문가처럼 느껴졌다.
“대체 이유가 뭘까? 없어진 아이들은 어딜 간 거지?”
“빌런들이 잡아갔을 것 같은데.”
애초에 빌런의 습격으로 발생한 사건. 김풀잎의 말대로 몇몇 개체가 단순히 길이 엇갈린 게 아니라면, 빌런들의 납치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일단 계속 찾아보자.”
“업혀.”
김풀잎이 다시 유현의 등에 업히려던 그때. 유현이 시선을 느끼고 단숨에 고개를 쳐들었다.
“까, 깜짝이야! 왜 그래?”
“......”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유현.
김풀잎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 시선의 끝을 좇았다.
“저, 저게 뭐야?”
석양에 물든 구름 아래 무언가가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새라고 하기에는 컸지만, 새가 아니라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람.”
“저게 사람이라고?”
“잘 봐. 누가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 있잖아.”
김풀잎이 눈가를 좁혔다.
조금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해졌다.
검은색 날개를 펄럭이는 가면을 착용한 사람.
그리고 유현의 말대로 또 다른 사람이 다리를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누구지? 헌턴가? 도와주려고 왔나?”
“아니.”
적의가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호의적인 시선도 아니었다. 좀 더 중간에 가까운 감정. 이를테면 호기심이랄까.
‘저놈들이군.’
이 타이밍에 괴상한 놈들의 등장. 굳이 말을 나누어보지 않아도 저들이 동물원을 습격한 빌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
“뭐? 어디 가려고?”
유현은 김풀잎을 다시 땅 위에 내려두고는 마나를 담아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다.
엄청난 속도의 도약력.
가면을 착용한 남자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손아귀를 피해 급히 몸을 비틀었다.
“윽!”
과격한 움직임에 다리를 붙잡고 있던 여자가 신음했다.
“갑자기 무슨...”
다시금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
남자가 본능적으로 크게 날개를 펄럭였다.
후웅!
고도를 높이지 않았으면 적중했을 일격.
남자가 빌딩 꼭대기로 착지한 유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호라.”
동물 포획을 돕는 불명의 이들을 쫓아온 두 사람.
그중 한 사람이 설마 헌터 업계에 파란을 몰고 온 유현일 줄이야.
“이봐. 너도 저놈 보이지?”
“응. 유현이네.”
유현은 빌런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했다.
최강자전에서 우승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빌런들의 이목을 끈 건 길드를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탐낼만한 길드들의 제의를 거절하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보.
혹시 그가 원하는 게 뒷 세계 조직의 제의가 아닐까 하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상상 이상인데. 저 아래에서 여기까지 뛰어오르다니.”
“하마터면 잡힐 뻔했어.”
남자는 유현을 마주 보았다.
힘이 담긴 눈빛은 그가 무엇을 확신하고 있는지 예상케 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누구라도 그럴 거야.”
누가 보기에도 수상한 모습.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확신할 건 없지 않나?”
유현이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 호전적인 모습에 가면 아래 남자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내려가 있어라.”
“싸우려고?”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어깨를 돌렸다.
“한 번 맛만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