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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9화 (11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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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자전이라는 대형 행사가 종료된 이후, 아카데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교정을 물들였던 단풍이 하나둘 떨어지며,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 아카데미의 스케줄은 끝나지 않았다.

“2학기 등급 테스트 참가자 있냐?”

스페셜 하우스 S등급 클래스.

안칠성의 물음에 아이들은 반응이 없었다.

“그래. 당연히 없겠지.”

이미 아카데미의 최고에 도달한 이들. 고난을 즐기는 자가 아니라면, 제 발로 고생길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다음 전달사항은 세계 아카데미 경연 대회 대표 선발전이다.”

세계 아카데미 경연 대회.

대중 사이에서는 아카데미 세계 선수권이라고도 불린다.

“남은 티켓은 두 장.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는 사람이 티켓 한 장을 가져간다. 전교에서 참가자를 모집할 거고, 최강자전과 마찬가지로 예선과 본선으로 이루어진다. 할 사람?”

아이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안칠성이 아이들을 체크하며 이름을 적었다.

“신가온 손 내리고, 한서희도 손 내리고, 유현도 손…. 너는 왜 드는데?”

“티켓 안 받을 테니까 참가하면 안 돼요?”

“되겠냐 그게?”

유현이 혀를 차며 손을 내렸다.

최강자전에서 싸워보지 않았던 애들과도 싸우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메이블. 너도 이 성적이면 성적 우수자로 한 장 받을 테니 참가할 필요 없다.”

마지막 티켓은 S등급 성적 우수자에게 주어진다.

다른 조건과 달리 유일하게 등급제한이 있는 항목이었다.

“앗, 그럼 전 빼주세요.”

“그래, 알겠다.”

안칠성이 아이들에게 신청서를 건넸다.

“작성해서 내일까지 제출하도록 하고. 마지막 전달사항이 있다.”

안칠성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뉴스 보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최근 빌런 집단의 활동이 늘고 있다. 다들 외출이나 외박할 때 빌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내용을 항상 상기하고 있도록.”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 모든 이가 헌터가 되진 않는다.

누군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군인이 되거나 특수 경찰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능력을 범죄에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세상은 그들을 빌런이라고 불렀다. 악당이라는 뜻의 영어단어지만, 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식 명칭이었다.

“혹시 모르니 물어보지. 이케가미. 빌런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따분한 얼굴로 앉아 있던 이케가미가 움찔했다.

“비, 빌런이요?”

“그래. 설마 수업 시간에 잔 건 아니겠지?”

“그건 절대 아닙니다.”

안도경의 시끄러운 수업에서 자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한 번 설명해 봐. 빌런과 조우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 일단 신고부터 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으면 버팁니다.”

아카데미의 학생 역시 능력자들.

의무는 아니지만, 학생들 역시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다.

“알고는 있군. 하지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적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면, 섣불리 대치하지 마라.”

헌터들처럼 빌런에도 급이 있는 법. 공개적으로 수배된 빌런이라면 그 힘은 대강 알겠지만, 정보가 없는 언노운 상태의 빌런이라면 조심하는 게 현명하다.

“너희는 S급이라 특히 더 조심해야 해. 자기 힘을 믿고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애송이 다운 환상에 빠지기 쉽거든.”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은 법.

S등급이라도 안심해선 안 되는 상대가 바로 빌런이었다.

“자만하지 마라. 자신감을 버려라. 피할 수 있는 위기는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아. 시민들의 보호는 말 그대로 도의적인 책임일 뿐.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너희의 책임은 끝이다. 막말로 너희가 살아남는 게 세상에 더 도움이 돼.”

잔혹하고 냉철한 말이었지만,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S등급 클래스.

S등급 헌터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이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라도 죽는다면, 국가적으로도 무척 큰 손실이었다.

“그럼 오늘 종례는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다.”

조금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종례가 끝났다.

안칠성이 먼저 교실을 나가고, 아이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이해는 하는데 좀 거북하네.”

“그게 현실인데 어쩌겠어.”

몇몇 학생은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학생들의 목적지는 대부분 훈련장.

내년부터 길드 실습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하여 다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빌런이라.”

어느새 텅 빈 교실.

유현이 홀로 앉아 중얼거렸다.

빌런.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이야기만 들어왔던 존재.

한 번쯤은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옛날부터 생각했었고, 언젠가는 그들에게 죽는 것을 소원하기도 했다.

“빌런한테 죽으면 보상금 두둑하게 챙겨준대서 그랬지.”

그 돈이 있다면 집안의 사정도 나아질 것이라는 마음에 빌런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뭐, 결과는 허탕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싸웠던 놈이 범죄 조직 소속이라고 했었는데.”

동생을 원상태로 되돌려 달라며 자신을 찾아온 놈. 이름이 특이하여 아직도 기억났다.

‘황사경.’

바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 같은 이름.

땅에 잘 묻어두었으니 어쩌면 지금은 먼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직 이름이 뭐랬지?”

유현은 기억을 되살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케이 뭐시기였는데.”

케이까지 검색 창에 입력하니 연관 검색어가 나타났다.

“아, 이거다. 케이디.”

케이디와 관련된 정보들이 검색 결과에 나타났다.

국제 범죄 조직인 것 치고는 생각보다 정보가 많았다.

그들이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현장에 남긴 심볼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

“창립자도 따로 있어?”

이름은 진 로네드 라엘 틸칸.

백 년도 더 전의 사람으로 그가 케이디의 창립자였다.

관련 문서를 조금 읽어보니 케이디가 처음부터 범죄 조직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틸칸은 작가였으며, 본래 케이디의 설립 목적은 작품 연구회였다.”

이게 어떻게 범죄 조직까지 이어졌는지는 문서에 나와 있지 않았다.

“워낙 도망을 잘 다녀서 뒤를 잡기가 어렵구나. 본부가 어딘지 확인도 안 되고.”

국내에서도 활동이 몇 차례 포착되기는 했지만, 아직 뚜렷한 정황은 없는 듯했다.

“생각보다 치밀한 놈들이었네?”

그런 것치고는 되게 쉽게 붙잡히던데. 마법이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그들을 놓쳤을까?

아니면, 그들이 단순히 황사경이 부리던 개인적인 부하들일 수도 있다.

유현은 몇 줄을 더 읽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기숙사로 돌아가 게임을 즐길 생각이다.

“오늘 드디어 새로운 뽑기가 업데이트됐지.”

그동안 통장에 남겨둔 현금을 드디어 쓸 때가 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유현은 스페셜 하우스를 나왔다.

휴대전화의 알림이 울린 건 그가 기숙사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긴급 경보 문자]

-현재 경기 동물원. 빌런의 습격으로 맹수 비롯 동물 다수 탈출. 수도권 시민 여러분은 주의 바람.

문자를 확인한 유현은 거실로 가서 TV를 켰다.

지상파로 채널을 돌리자 긴급 뉴스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경기도의 한 동물원에서 일어난 빌런 습격 사건으로 동물들이 우리를 탈출한 상태입니다.

경찰 측에서는 아직 자세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며 맹수가 포함되어 있으니 외출을 삼가라고 전했습니다.

빌런의 습격으로 생긴 대대적인 동물의 탈출. 자칫하면 사망자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흠.”

굳이 나설 일은 아니지만, 인명 피해를 줄이고 싶었다.

만약 빠르게 포획하지 못한다면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 현재 맹수 무리의 위치가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위치는 헌터 아카데미 인근의 논밭이며….

유현은 통창으로 다가갔다.

만약 맹수가 가까이에 있다면 어디선가 비명이 들리지 않을까.

“나가서 찾아보는 게 빠르려나.”

그때, 맞은편 A동 기숙사에서 초록색 머리가 뛰쳐나왔다.

여전히 이름은 모르는 같은 학급의 학생.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곧장 한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유현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무언가를 쫓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가 볼까.’

유현은 신발을 신고 기숙사를 나와 초록 머리의 뒤를 쫓았다.

초록 머리는 계속해서 달렸다.

왼쪽으로 꺾었다가, 오른쪽으로 틀었다가. 단순히 뛰기 위해 나온 게 아닌 건 확실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소녀를 따라 느리게 뛰어가던 유현은 곧장 도약했다.

발아래로 펼쳐진 아카데미의 전경. 맹수들이 사람 하나를 둘러싼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 도와주세요!”

유현은 마법을 활용해 허공에서 발을 튕겨 맹수의 바로 위까지 이동했다.

쿵!

이어진 착지에 땅이 울렸다.

곧장 여자를 덮치려던 맹수들이 유현의 등장에 으르렁거리며 경계를 이어갔다.

“유, 유현 학생!”

유현은 슬쩍 뒤를 돌아 상대를 확인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목에 걸린 방문자 목걸이를 보니 외부인 같았다.

“사인은 나중에 해줄 테니까 일단 피해요.”

“아, 네!”

“천천히 뒷걸음질 쳐요. 뛰어서 자극하지 말고.”

유현이 뒷걸음질 치자 여자도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맹수들은 유현의 기세에 짓눌려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요.”

“고, 고맙습니다!”

여자가 큰 소리를 내자 호랑이 한 마리가 포효했다.

그 소리에 놀라 등을 보이며 건물로 뛰어 들어가는 여자.

그게 기폭제가 되었는지 호랑이들이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딜!”

유현이 나서려던 그 순간.

“멈춰!!!”

호랑이의 뒤쪽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초록색 머리의 소녀가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무슨...”

유현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호랑이들을 돌아보았다.

소녀의 외침에 온순한 고양이가 된 것 마냥 움직임을 멈춘 호랑이들.

‘이거 설마….’

조금 전 외침과 함께 느껴졌던 마나의 흐름.

유현이 다시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태연하게 호랑이들 사이를 걸어 유현의 앞에 섰다.

“얘네 죽이려고 했지!”

어딘가 졸려 보이는 눈매.

입 모양이 꼭 사람을 뜻하는 한자처럼 되어있어 꽤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다들 착한 애들이야. 죽이면 안 돼. 그냥 놀라서 달려든 거야.”

“그게 네 능력이야?”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난 짐승을 조종하고 대화할 수 있어.”

“너 그럼 혹시 마트에서 계란 보며 중얼거리던 것도...”

소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아? 날 스토킹 한거야? 우린 서로 한마디도 한 적 없는데?”

“그냥 지나가다 봤어.”

“아, 그렇군.”

소녀의 표정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난 김풀잎이야. 너 이름은 말해 줄 필요 없어. 이미 아니까.”

김풀잎은 호랑이의 털을 쓰다듬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동물원 같았다.

“다들 동물원 차오면 말썽부리지 말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 알겠지? 혹시 마취 총 맞을지도 모르니까 다들 누워있어.”

호랑이들이 얌전히 땅바닥에 몸을 뉘였다. 말 잘듣는 강아지도 이렇게 고분고분하지는 않을 텐데.

너무나 신비한 광경에 유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유현. 나 좀 도와줘.”

“혼자서도 잘하는 구만.”

“지금도 다른 곳에서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빨리 잡지 않으면 사람을 죽여서 안락사당할지도 몰라.”

“...쉽게 말하면 태워달라는 뜻이지?”

“맞아.”

유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술을 뗐다.

“공짜로는 안 되겠는데.”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지만, 유현은 김풀잎과 거래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풀잎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뭘 원해? 돈? 아니면 나를 가지겠다는….”

“헛소리하지 말고. 네 능력 몬스터한테도 쓸 수 있냐?”

“당연하지! 내가 이걸 동물한테만 쓸 수 있었으면 사육사가 됐겠지!”

유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됐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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