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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8화 (1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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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연과 김다정은 유현을 따라 시계점을 나왔다.

“오빠, 잠깐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걸어가는 유현. 유희연이 그를 붙잡아 작게 속삭였다.

“뭐야? 마법이야?”

“안 들키면서 엿 먹이려면 그것밖에 없지.”

유희연이 잘 됐다며 킥킥거렸다.

“근데 오빠는 여기 웬일이야?”

“결혼기념일 선물 사러.”

덧붙여 집안 비상식량 공급 목적까지.

“적어놓길 잘했네. 안 그러면 여기 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랬으면 바로 마트로 갔겠지. 넌 경찰서로 갔겠고.”

“에이, 경찰서는 좀~”

유희연은 유현의 눈치를 쓱 살폈다. 표정에서 석연찮은 감정이 묻어났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유현은 대답 대신 동생의 옷차림을 살폈다.

생활의 수준은 훨씬 나아졌지만, 동생이 입는 옷들은 과거와 다를 바 없었다.

관리한다고 관리하지만, 여기저기 헤져 있고, 바느질 되어 있었다.

“너 용돈 주면 다 어디다 쓰냐?”

“우씨, 그거 얼마나 준다고. 교통비 쓰고 식비 쓰면 남는 것도 없거든?”

“살 좀 빼라. 얼마나 많이 먹으면 옷 살 돈도 없어?”

“나 정도면 진짜 적게 먹는 수준인데. 오빠가 아직 여고생의 식탐을 모르는구나?”

그때, 유희연이 아차하며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서 김다정이 조용히 쫓아오고 있었다.

“미안, 다정아. 내가 신경이 팔려서….”

“아, 아니야! 괜찮아!”

김다정이 손사래를 치며 크게 말했다. 과격한 반응에 유희연이 당황하던 것도 잠시, 시계점의 일이 떠올랐다.

“혹시 다른 시계는 안 돼? 아까 그 매장 가기는 좀 그런데.”

“시계 말고 다른 거 사드려도 돼서 괜찮아~”

김다정이 슬쩍 유현의 등을 훑었다. 시선을 느낀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바짝 고개를 숙이는 김다정.

극진한 인사에 유현이 가볍게 웃었다.

“사인해줄까? 아까 해달라며.”

“아! 네!”

김다정이 가방을 뒤져 펜과 수첩을 꺼내 유현에게 건넸다.

“평소에 이런 걸 들고 다녀?”

“메모하는 게 습관인데, 핸드폰에 하는 건 좀 불편해서요.”

유현은 펜을 들고 사인을 고민했다. 그간 몇 번의 사인 요청을 받긴 했지만, 제대로 된 사인이 있진 않았다.

“아까 그 사람 소리 지르는 거 들었어?”

“응. 엄청 시원했어.”

유현이 우뚝 멈춰서 사인을 고민하는 사이, 김다정과 유희연은 조금 전의 일을 복기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진짜 나쁜 사람이라니까.”

“그냥 무시만 하면 약과지.”

유희연은 더한 꼴도 당했다.

무시를 넘어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도 세상에는 수두룩하다.

“만약 나 혼자였으면 그냥 당하고만 나왔을 텐데. 고마워, 희연아.”

살면서 처음 겪은 타인의 멸시.

당황한 자신과는 달리 친구인 유희연은 당당하게 불의에 대항했다.

유희연이 멋쩍게 웃으며 코를 쓱 닦았다.

“우리 오빠 없었으면 둘 다 경찰서 갔을걸?”

“하하, 그래도 고마워. 난 네가 그렇게 소릴 지를 줄은 몰랐어. 화내는 것도 처음 보고.”

김다정은 한껏 깊어진 유대감을 느끼며 유희연의 팔짱을 끼었다.

“우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당연하지~”

“그나저나 진짜 신기하다. 내 친구 오빠가 그 유현이라니.”

최근 헌터 업계를 달구는 화제의 인물 유현. 빼어난 외형과 엄청난 무력으로 더 많은 관심을 모았다.

김다정 역시 길드의 경영사무직을 목표로 하는 만큼,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길드의 제의를 거절하는 독보적인 행태. 소문으로는 아카데미 부원장의 비리를 까발리는 데 그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것 외에도 훈훈한 미담이 넘쳐나는 인물이었기에 김다정은 언제부턴가 그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설마 이런 곳에서 이루어질 줄이야.

“미리 말 안 해서 미안.”

“미안할 게 뭐 있어! 알게 된 것만 해도 어딘데.”

“다들 학교에서 궁금해했었잖아. 그때 나는 그냥 조용히 있었고.”

“에이, 나 같아도 그러지. 그거 말하면 또 얼마나 귀찮아지겠니?”

김다정은 순간 아까 전 오빠를 소개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달아오르는 얼굴의 열기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헛기침했다.

“아무튼, 좋겠다. 저런 오빠 있어서.”

마침 유현이 사인을 완성했는지 몸을 돌렸다.

“자, 사인했어.”

“고맙습니다!”

기쁜 미소와 함께 받아든 수첩에는 고뇌의 흔적이 엿보였다.

종이를 잔뜩 썼지만, 김다정은 웃으며 그 연습의 흔적들을 살폈다.

“넌 여기 왜 왔냐? 친구랑 놀러?”

유현의 물음에 유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랑 놀기도 하고, 겸사겸사 엄마 아빠 선물도 사고.”

“돈도 없다면서 선물은 무슨.”

“선물 살 돈은 있거든? 모았거든?”

“그 돈은 저금해. 여기서 만난 김에 같이 고르면 되겠네. 희연이 친구는 시간 많아?”

사인을 구경하던 김다정이 퍼뜩 고개를 들어 열렬히 끄덕였다.

“다른 애들도 있긴 한데, 걔네는 걔네 끼리 놀라고 하죠!”

“그럼 좀 도와줘. 나나 얘나 누구 선물 사는 건 처음이라서.”

“맡겨만 주세요!”

김다정은 가장 먼저 선물로 할 만한 상품들을 나열했다.

디퓨저, 화장품, 가구 등.

그 결과 남은 건 옷, 가방, 시계로 처음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유희연이 부모님의 사이즈를 알고 있어 옷도 리스트에 추가됐다.

“사실 가방이나 시계는 잘 모르는 분들은 선물해도 반응이 안 좋아서요.”

“그럼 옷이 가장 무난하겠는데?”

“맞아요. 근데 옷도 브랜드에 따라 선호하는 게 달라져서….”

김다정의 상세한 데이터 아래 일행은 의류 브랜드가 모인 층으로 이동했다.

“이쪽은 조금 젊은 층이 선호하고, 저기는 나이 드신 분들도 자주 입으세요.”

“그냥 적당히 보다가 어울릴만한 거 사드리자.”

“그래. 그게 좋겠어.”

남매는 의견을 일치시키고, 각자 떨어져 찬찬히 매장을 돌았다.

“혹시 뭐 찾으시는 상품 있으세요?”

“아, 아뇨. 잠깐 구경 좀 하려고요.”

직원의 물음에 당황하며 답하는 유희연. 아까 사건 탓에 괜히 위축됐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도, 그런 일을 막 당한 직후인 만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 싼 옷만 입었나?’

유희연은 어느덧 옷을 구경하는 목적이 바뀌었다.

이 옷을 입으면 어떨까.

저 옷을 입으면 어떨까.

하나하나 비교해 가며 자신의 몸에 맞춰 보았다.

“좀 찾았냐?”

유현의 목소리에 유희연이 화들짝 놀라며 옷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아, 아직 찾고 있어.”

“네 옷 보고 있었지?”

“아니? 아닌데?”

유현이 피식 웃었다.

“멀리서 보고 왔다, 인마. 고를 거면 골라. 오늘은 오빠가 쏜다.”

“됐어. 이런 거 안 사도 집에 옷 많아.”

“그건 좀 버리고. 대체 몇 년을 입어? 몸이 안 자라냐?”

퍽.

유희연이 유현의 팔뚝을 때렸다.

“그럼 진짜 고른다?”

“그냥 고르면 되지, 때리긴 왜 때려. 사고 싶은 거 다 사.”

“진짜? 몇 개까지?”

“다 사라니까. 개수 상관하지 말고.”

유희연은 한층 올라간 텐션으로 매장을 활보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유현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는 동안 여러 고생을 했던 동생이다. 소중한 가족인 만큼, 아까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 나 이것도 사도 돼?”

“사. 신발도 사고, 가방도 사고. 다 사도 돼.”

“...나한테 무슨 잘못한 거 아니지?”

“헛소리 하지 말고.”

유희연은 잠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더니 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그녀의 손에 늘어나는 옷걸이들. 어느새 김다정까지 가세하여 그녀의 쇼핑을 돕고 있었다.

“오빠가 진짜 이거 다 사도 된다고 하셨어?”

“응. 자기가 다 사주겠대.”

“와, 진짜 부럽다. 어떻게 오빠가 그래?”

아빠도 아니고 오빠가 동생을 위해 옷을 사주다니.

김다정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친구도 하나 사 줄까?”

유현이 뒤쪽에서 넌지시 말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사도 돼. 상관없어.”

“너도 하나 골라. 우리 오빠 짠돌이라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지 몰라.”

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정말 괜찮다며 사양했겠지만, 유현이기에 그녀의 선택은 사뭇 달랐다.

“아, 그럼 하나만….”

그간 줄곧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주는 선물. 민폐라며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값진 의미가 있었다.

“야, 유희연. 너 부모님 것도 빼먹지 말고 골라라.”

“예~ 알겠습니다~ 당연하죠~”

“하연이 것도 찾아보고. 전부 사면 전화해.”

막내를 빼먹으면 또 자기만 안 챙겨줬다며 서운해할 테니, 막내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유현은 동생에게 체크카드를 넘기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너희 오빠 진짜 멋있다. 사람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저렇게 쿨하기 쉽지 않은데.”

“그런가?”

“당연하지! 너희 오빠 같은 사람이 세상에 흔하지 않아. 다른 애들한테도 물어봐봐.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일걸?”

입이 마를 새가 없이 이어지는 유현을 향한 칭찬에 유희연은 당사자가 아닌데도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유현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지하 마트에서 카트에 차곡차곡 먹을 것들을 쌓았다.

시리얼이나 라면 같은 가공식품은 물론 반찬 같은 밑반찬 종류까지 가리지 않았다.

“반찬은 이 정도면 됐고.”

종류별로 가득 담아 당분간 냉장고가 빌 걱정은 없었다.

“계란도 사야지.”

여러 가지 음식을 할 수 있는 계란은 부엌의 필수 식품.

유현은 카트를 끌고 육류와 계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기를 빼먹을 뻔했군.”

유현은 남은 공간의 절반을 고기로 채운 뒤 계란이 있는 곳으로 카트를 끌고 갔다.

곧장 보인 건 계란이 아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위로 틀어 올린 초록색 머리칼.

시선이 끌린 건 쉽게 볼 수 없는 머리 색인 탓도 있었지만, 그 뒷모습이 낯익었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봤던 것 같은데.’

둥그런 뒤통수에 초록색 머리. 그리고 왜소한 체형. 같은 S학급에서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이름이 뭐였지?’

아는 척하기도 뭐한 상황.

그냥 계란만 챙기려던 그때, 느닷없이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부화하겠구나….”

유현이 흠칫하며 옆을 살폈다.

소녀는 판 안에 담긴 계란들을 살피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너도 곧 부화하겠고….”

너는 부화하고, 너는 곧 죽을 거고. 괴이한 말을 하며 계란을 카트에 잔뜩 담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가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괜히 이름을 모르는 게 아니었군.’

평소에 대화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말을 텄을 터.

그런데도 아직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으니, 범인(凡人)이 아님은 분명했다.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는 없겠지.’

유현은 계란을 카트에 담고는 소녀를 뒤로했다.

계산을 마친 물건을 남몰래 아공간에 담고는 동생의 전화를 받아 다시 위로 올라갔다.

“많이도 샀네.”

“헤헤.”

양손에 잔뜩 든 쇼핑백.

그 옆에도 잔뜩 늘어서 있다.

“저기…. 고맙습니다! 오빠!”

김다정이 손에 작은 쇼핑백을 쥔 채 유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희연이랑 잘 지내. 싸우지 말고.”

“절대 안 싸워요!”

유현은 유희연이 들고 있던 쇼핑백과 다른 쇼핑백들을 양손에 가득 들었다. 그 모습에 김다정이 감탄했다.

“와, 그걸 어떻게 한 번에 다 들어요?”

“너도 할래?”

“아, 아뇨! 괜찮아요.”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했기에 김다정은 사양했다.

“오빠, 그거 다 가져가게? 안 도와줘도 돼?”

“너 친구랑 놀러 나왔다며. 더 놀다 들어가.”

유희연이 배시시 웃었다.

“우리 오빠가 갑자기 왜 이렇게 멋있어 보일까~?”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받은 게 있으니 칭찬이라도 해주는 거지. 자, 이거 카드 가져가.”

유현은 손을 휘저었다.

“너 써 그거. 카드 하나 더 있어.”

“나 쓰라고 이걸?”

“너무 막 쓰지는 말고.”

유희연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마트에서 장봤으니까 집 가면 미리 저녁이라도 차려 놓고. 퇴근하시면 부모님 바로 드시게.”

“걱정하지 말고 가.”

유현은 두 사람을 뒤로하고 백화점을 나왔다.

몇 번의 도약과 착지.

얼마 안 가 집에 도착한 유현은 아공간을 열어 마트에서 사 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정리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반찬과 식자재들. 모두 정리하고 나니 웬만한 식당의 냉장고를 방불케 했다.

“이 정도면 됐고.”

유현은 가져온 쇼핑백 중 몇 개를 챙겨 부모님의 가게로 향했다.

카운터에 앉아 주문을 받던 어머니가 그가 온 걸 발견하고는 반겨주었다.

“아들! 웬일이야!”

“아버지는요?”

“여보 나와봐요!”

주방에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부름에 곧장 튀어나왔다.

피로가 묻어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유현을 발견하자 환히 밝아졌다.

“아들! 오랜만에 본다?”

“두 분 다 바쁘시잖아요.”

“앉아, 앉아. 아직 밥 안 먹었지?”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곧 아카데미 들어가야 해서 이것만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유현이 쇼핑백을 건네자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니?”

“선물이요. 오늘 결혼기념일이시잖아요.”

순간 말이 없어진 부모님.

유현은 두 분의 표정을 번갈아 보고는 작게 웃었다.

“왜 울고 그러세요~”

두 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현 역시 괜히 가슴이 아려와 입을 다물었다.

“아들, 고마워...”

“해준 것도 없는데 엄마 아빠가 자꾸 받기만 하네...”

유현은 말 대신 두 분을 꼭 끌어안았다.

매장을 따뜻하게 달구는 훈훈한 분위기.

멀찍이 서 있던 종업원들도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아들은 처음 보네. 맨날 딸만 봤는데.”

“진짜 효자네, 효자. 결혼기념일에 선물도 주러 오고.”

“우리 아들도 저렇게 키워야 하는데.”

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배달 알림이 울렸다.

종업원들이 자리로 돌아가고, 유현도 포옹을 풀었다.

“저 이제 갈게요.”

“조심히 들어가라.”

“감기 조심해. 밤에 잘 때 이불 잘 덮고 자고. 알겠지?”

“두 분도 조심하세요. 무슨 일 생기시면 바로 전화하시고요.”

유현은 부모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섰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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