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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7화 (1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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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유현은 몇 분 뒤 집 근처 백화점에 도착했다.

몇 년 전 신축된 곳이라 그런지 로비부터 화려하다.

“여기도 명품. 저기도 명품.”

어딜 돌아봐도 명품 판매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면서 매장 앞에 관상용으로 진열된 물건을 슬쩍 훑었다.

밑에 붙은 가격표는 천만 원대를 호가했다. 그 경이로운 가격에 유현이 혀를 내둘렀다.

“무슨 가방이 이렇게 비싸?”

좋은 장비가 비싼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사치품에 이 정도 가격이 붙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걸 사려는 사람이 있나.”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것처럼 곧 그의 시야에 길게 선 줄이 들어왔다.

매장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

직원이 매장 내 혼란을 막기 위해 소수 인원만 출입을 허용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비쌀 만하네.”

가격이 비싼 데는 이유가 있는 법. 물량은 적은데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자연스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어, 저 사람 유현 아니야?”

“비슷한 것 같은데?”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매장 앞에 멈춰 선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 관심에 유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입가에는 헤벌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흐흐흐.”

최강자전 덕분인지 길에서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훤칠한 외모와 큰 키 덕분에 더욱 사람들의 눈에 띈 탓도 있었다.

‘관심은 좋지만, 오늘은 좀 조용히 다니고 싶은데.’

유현은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관심은 양날의 검.

그저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 피할 곳이 마땅찮은 이런 협소한 곳에서는 더더욱.

얼굴을 가린 채 걷던 유현은 백화점 내부 안내 표지 앞에서 멈췄다.

식품 매장은 지하 1층.

그 외 나머지는 쇼핑을 위한 공간이었다.

‘선물은 뭘 사드리지?’

먼저 생각난 건 옷이나 신발.

평소에 유용하게 쓰일 아이템들이었다. 가장 무난한 선택. 다만 부모님의 사이즈를 모르기에 섣불리 고르기가 어려웠다.

‘처음으로 하는 선물이니 좋은 걸 사드리고 싶은데.’

유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갔다. 현재 그가 있는 1층은 명품관. 자연스레 명품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은 사드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좋아, 결정했다.

현명한 소비는 아니겠지만, 선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머니는 가방. 아버지는 시계?’

유현은 무난한 물건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뒤, 몸을 돌려 지나왔던 매장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고성이 들려온 건 몇 걸음 움직이지 않았을 때였다.

“꺄아악!”

유현이 흠칫하며 신경을 예민하게 강화했다. 몬스터나 마나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큰 문제는 아닌 것 같군.’

유현은 가벼운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머, 뭐야?”

“싸움 났나 본데?”

서서히 가까워지는 고성.

곧 어떤 매장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와, 대박. 직원이랑 손님이랑 싸운다.”

“저 여자애가 먼저 멱살 잡았어.”

유현은 매장 앞에 도착했다.

큰 키 덕분에 몰려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장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곧장 보이는 건 직원의 멱살을 부여잡은 낯익은 뒤통수였다.

“꼴값도 유분수지! 교육을 어떻게 하면 하나 같이 정신을 못 차리냐!!”

“희, 희연아! 진정해!”

그 뒷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들려온 목소리.

유현은 그게 자신의 동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

유현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동생의 뒷목을 붙잡았다.

“너 뭐하냐 여기서?”

유희연이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화들짝 놀란 탓에 멱살도 놓고 말았다.

“누, 누구세요?”

“오빠 목소리도 못 알아들어?”

유현이 후드를 살짝 올리자 유희연의 눈이 커졌다.

“오빠! 아니, 내 얘기 좀 들어봐! 글쎄 이 사람이...”

“그쪽이 보호자예요?!”

두 사람이 아는 관계라는 걸 알아챈 직원 하나가 곧장 유현의 팔을 붙잡았다.

“나 여기 매니전데 경찰 부를 테니까 꼼짝 말고 있어요!”

“경찰을 왜 불러요?”

“얘가 갑자기 우리 직원 멱살을 붙잡잖아요!”

“얘가 이유도 없이 그럴 애는 아닌데….”

“뭐야. 지금 우리가 잘못했다는 거에요?”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됐어! 아주 끼리끼리 똑같구만!”

유현이 동생을 돌아보았다.

설명하라는 눈빛에 유희연은 화를 꾹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멱살 잡은 건 맞아. 근데 나도 억울해! 저 직원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시계 좀 보여 달라는데 도둑질당할까 봐 안 보여준 대잖아!”

“이런 데 올 때는 좀 차려입고 와야 한다고도 말했어요. 그래야 직원들도 대접해준다고요.”

김다정도 유희연의 주장을 거들었다.

유현은 김다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누구세요?”

“아, 저는 희연이 친구...”

고개를 숙이려던 김다정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굳었다. 그녀 역시 유희연과 마찬가지로 헌터 업계에 목표를 둔 만큼, 유현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유, 유현? 유현 맞아요?”

“사인해드릴까요?”

“아, 자, 잠깐만요. 제가 펜이랑 종이가...”

“둘이 뭐해!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유희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다정은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저는 희연이 친구 김다정이에요. 시계 사려고 왔는데, 저기 저 직원분이 이런 곳에 오려면 옷도 좀 차려입고 그래야 직원들도 상대해준다고 했어요.”

그 말에 몇몇 직원들이 당황하는 한편, 매니저도 그 직원을 홱 돌아보았다.

“너 그걸 직접 말했니?”

“......네.”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다시 이쪽을 돌아보는 매니저.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건 사과가 아니었다.

“뭐, 듣기는 좀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우리 같은 고급 인력이 아무나 붙잡고 설명하고 있으면 나중에 들어오시는 진짜 고객님들은 계속 기다려야 하거든요? 상식적으로 그게 맞아요?”

주변에 몰려 있던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단단히 미쳤네.”

“자기들이 무슨 자격증이라도 딴 줄 아나 봐.”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야겠다.”

매니저가 사나운 얼굴로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쳤다.

“시끄러! 당신네들이 뭘 안다고 떠들어! 할 말 있으면 직접 들어와서 이야기하라고!”

표독스러운 외침에 몇몇 사람들이 질린 듯 자리를 떠났다.

“아무튼, 당신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경찰 올 테니까!”

매니저가 유현과 두 사람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이제는 존대도 집어치운 매니저.

유현은 한숨을 쉬며 후드를 벗었다.

“유, 유현이다!”

뒤쪽에 있던 직원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았다.

정작 매니저는 그게 누구냐는 눈치로 직원을 돌아보았다.

“유현 몰라요? 아카데미 최강자전에서 우승했잖아요!”

“아카데미면 헌터 아카데미 말하는 거니?”

“네!”

매니저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봤자 학생인데.”

아카데미 학생은 아직 헌터가 아니며, 평범한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를 알아본 직원도 입을 다물었다.

“그 매니저님 말씀은 돈 많아 보이는 사람만 여기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거네요?”

“그래, 맞아. 아카데미 다닌다더니 머리가 똑똑하네.”

“그럼 그쪽이 보기에 저는 뭐 같아요?”

“뭐?”

“딱 보기에 어떤 고객 같아요? 돈 많아 보이는 진짜 고객? 아니면, 거지 같은 가짜 고객?”

매니저는 유현을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여기저기 헤진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 후줄근한 회색 후드집업, 시장에서 사 온 싸구려 신발까지. 그야말로 흙수저 삼위일체였다.

“구멍가게 갈 때도 그렇게는 안 입겠네.”

“그럼 저한테 시계 안 팔아요?”

“살 돈은 있고?”

“돈은 있죠. 한 번 보여주세요.”

당당한 유현의 태도에 매니저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이것도 영업 방해인 거 알지?”

“고객이 물건 사는 것도 영업 방해에요?”

“경찰 부르려고 하는데 네가 자꾸 방해하잖아!”

유희연이 입술을 꽉 깨물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유현이 그녀를 막았다.

“잘못은 그쪽이 먼저 했더만.”

“그렇다고 사람 멱살을 잡니?”

“뭐, 그건 우리 잘못이고. 아무튼, 쌍방과실이니까 그냥 적당히 끝냅시다. 내가 시계 하나 사드린다니까?”

“아까부터 그러는데 여기가 무슨 길거리 시계 가게인 줄 아니?”

“나 돈 있다니까?”

유현은 스마트폰을 꺼내 은행 어플을 켰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잔액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시계 사도 되죠?”

못마땅한 기색으로 화면을 슬쩍 쳐다본 매니저가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백만, 천 만, 억, 십억...”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금액을 체크하는 매니저. 억소리 나는 잔액에 경악했는지 기세등등하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유현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매니저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되죠?”

“무, 물론이죠! 이쪽으로 모실게요! 다들 뭐 하고 있어. 자리로 돌아가야지.”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진 매니저가 황급히 자리를 정돈시켰다.

직원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구경꾼들은 상황이 진정되자 흥미를 잃고 떠났다.

“고객님~ 이쪽으로 모실게요~”

유현은 매니저를 따라 이동했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고객님들.”

두 사람은 매니저의 가공할 변화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랍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울고 갈 생활연기의 끝판왕이었다.

“그럼 가실까요, 고객님?”

“예, 갑시다.”

유현은 벙찐 두 사람을 두고 매니저와 함께 진열대로 향했다.

“여기서 제일 비싼 시계가 뭐죠?”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매니저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직원에게 시계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곧 매장 앞에 전시되어 있던 시계가 진열대 위로 올라왔다.

“이게 저희 매장에서 가장 비싼 시계입니다. 십 억대를 호가하지만, 고객님 자산이면 충분히 구매가능하세요.”

사각형 강화 유리 안에 들어간 시계. 파손되지 않게 단단히 주의를 가한 모양새였다.

“꺼내서 볼 수 있어요?”

“원칙상 그건... 불가능하지만, 특별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직접 수십억의 현금을 확인한 매니저는 이미 정신이 반쯤 팔린 상태였다. 무조건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까지 할 정도였다.

“보시죠.”

매니저는 장갑을 낀 채 유리 상자를 열어 시계를 꺼냈다.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이네요.”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혹시 이렇게 높이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높이요?”

“네. 아래쪽도 보고 싶어서요.”

그냥 뒤집어서 보여주면 될 일이지만, 매니저는 무의식적으로 유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시계를 높이 쳐들어 뒤집는 매니저. 그 모습을 보며 유현은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유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여러 개의 마법 술식에 차례차례 마나가 주입되며, 순서대로 마법이 발현되었다.

[인비저블 핸드]

보이지 않는 손이 시계를 당겼다. 매니저가 손밖으로 흘러내리려는 시계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리스]

손과 시계 사이에 마찰력이 사라지며, 시계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챠락!

진열대 위로 추락한 시계는 그대로 매니저의 발아래까지 떨어졌다.

[브레이크]

와그작.

2급 파괴 마법. 브레이크.

화력은 약하지만, 시계 같은 작은 물건을 손상시키는 데는 효과적인 마법. 유현은 그 마법을 시계의 내부에 사용했다.

“꺄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에 매니저가 비명을 질렀다.

매니저는 급히 몸을 숙여 시계를 손에 들었다.

“어떡해! 어떡해!”

“허허. 거 조심좀 하시지.”

“네가 들라고 했잖아! 네 탓이잖아!!”

매니저의 고성에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떨어뜨린 건 그쪽인데?”

“네가 보여달라고 안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너 헌터지! 일부러 이렇게 한 거지!!”

“내가 무슨 수로 그래요?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매니저는 반박하지 못하고 연신 씩씩거렸다.

유현은 그녀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시계 하나 사려고 했는데 그걸 떨어뜨려 버리시네.”

“씨발놈아!!!”

“언어폭력! 왜 자기가 실수해놓고 남 탓하지? 이거 경찰서 갑니다?”

“너네도 내가 경찰 부를 거야! 폭력으로 신고할 거라고!”

유현이 한숨을 쉬며 진열대 너머로 몸을 기울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직원들이 모두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한번 말하면 알아 처먹어. 자꾸 나불대지 말고.”

목소리에 담긴 짙은 살기가 매니저를 압박했다.

순식간에 굳은 매니저의 얼굴.

살짝 벌어진 입술 밖으로 딸꾹질이 튀어 나왔다.

“그럼 수습 잘하시고. 갑니다.”

유현이 그녀의 발아래로 흘러나오는 액체를 일견하고는 몸을 돌렸다.

뒤에서 직원들이 매니저에게 다가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매니저의 배설물을 보며 역겨워하는 것도 들렸다.

“꼬장도 적당히 부려야지. 어우, 지긋지긋해.”

유현은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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