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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6화 (11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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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장소지만,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세계처럼 이질적인 장소.

그 차이를 가르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주머니 사정이었다.

“희연아!”

그간 뼈저린 가난 속에 살았던 유희연은 난생처음으로 백화점에 입성했다.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많이 늦었지?”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설레는 마음에 30분도 더 전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지만, 유희연은 웃는 얼굴로 친구들을 맞이했다.

“바로 들어갈까?”

백화점 앞에 모였던 아이들은 회전문을 지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회전문조차 신기하게 느끼던 유희연은 백화점 내부의 풍경에 입을 떡 벌렸다.

“와….”

로비를 장식하는 예술적인 조형물. 수많은 선의 연결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일견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였지만, 자연스레 감탄이 튀어나왔다.

“희연이, 반응 좀 봐.”

“저게 그렇게 멋있어?”

“귀여워~”

다른 아이들의 말에 유희연이 얼굴을 붉혔다.

다들 이런 곳에 오는 게 익숙한 건지 자신만큼 신기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저 조형물 만든 사람이 올레크 파시닌이래.”

“그 예술하는 헌터 말이지? 멋있다.”

“이면 세계를 향한 자신의 의지를 표방한 작품이라는데 확실히 예술가들은 뭔가 다른 것 같아.”

그 뒤로 그 자리에서 예술가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졌다.

유희연은 입을 꾹 다물고 듣기만 했다. 하나같이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네 생각은 어때 희연아?”

“어? 나?”

“응. 올레크의 작품 중에 제일 유명한 게 원정대의 군상이잖아.

작가는 세상을 향해 투쟁하는 전사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몬스터랑 사람이랑 싸우는 것처럼 보여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얘들은 그냥 작가 말대로 보라는데.”

“......글쎄?”

원정대의 군상은 또 뭐고, 그 해석이 어떤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들을 그녀가 알 턱이 없었다.

“아! 너 뭔지 모르는구나!”

“야~ 희연이가 그걸 모르겠니? 네가 갑자기 그 얘기 꺼내니까 당황하는 거 아니야~”

유희연이 어색하게 웃고 친구들도 따라 웃었다.

비웃음이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다정!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구경이나 가자!”

“응~”

유희연은 몰려가는 친구들을 뒤따라갔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

전학 간 학교는 이전에 있던 곳과 완전히 달랐다.

아이들은 공부에 매진했고, 오가는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수준이 높았다.

어느 정도 대화는 통했지만, 가끔 이렇게 따라갈 수 없는 대화의 골이 생기고는 했다.

‘다들 착한 아이들이긴 한데.’

이전에 있던 학교에서도 착한 아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가난이 알려지고, 따돌림이 시작되며 모두 등을 돌렸다.

이 학교에서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아예 없지는 않을 터.

유희연은 긴장한 얼굴로 주먹을 꼭 쥐었다.

‘처음 온 티 내지 말아야지.’

백화점.

하나 같이 처음 접하는 것들뿐인 공간. 특히 이곳은 다른 백화점들보다 타겟층의 소득 수준이 높았기에 유희연에게는 더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괜찮아. 공부한 대로만 하면 돼.’

유희연은 친구들과의 백화점 나들이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올레크 파시닌인지 뭔지의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관심사인 명품과 관련해서는 여러 지식을 습득했다.

해당 브랜드의 인기 품목은 뭐고 신상품은 뭔지, 가격대는 어느 정도이고,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이 얼마나 유구한지 등.

“와, 저기 이번에 신제품 라인별로 하나씩 출시했다더니 사람들이 줄을 섰네.”

“우리도 갈까?”

“엑, 줄서기 귀찮은데. 그냥 다른 데 구경하자.”

아이들은 매장을 지나 다른 매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김다정이 시계매장 앞에서 우뚝 멈췄다.

“얘들아, 나 아빠 선물 살 거 있는데 너희 먼저 구경하고 있을래?”

“혼자서?”

“음….”

아이들을 살펴보던 김다정은 옆에 있던 유희연의 팔짱을 꼈다.

“희연이랑 빨리 사서 갈게~”

엉겁결에 붙잡힌 유희연은 시계매장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 빨리 고르고 올게!”

후다닥 매장 저편으로 뛰어 가는 김다정. 유희연은 그녀의 등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 선물도 결국에는 부모님 돈으로 사는 거 아닌가?’

잠시 의문이 들었던 유희연이었지만, 곧 다른 생각으로 화제를 돌렸다.

‘결혼기념일 선물도 사야 하는데.’

백화점에 온 목적이 친구들과의 나들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간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고맙다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유희연은 진열대 속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손목시계들이 간격을 둔 채 진열되어 있다.

클래식한 한편 세련된 디자인들.

인터넷으로 찾아본 가격이 있지만, 유희연은 혹시나 하여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이런 시계들은 얼마나 해요?”

앞에 있던 직원은 유희연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입술을 뗐다.

“최저가가 몇천부터인데 구매하시게요?”

직원의 태도에 유희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듯한 눈빛과 말투. 마치 네가 이걸 살 수 있겠어? 같은 뉘앙스였다.

‘뭐야, 이 싸가지는.’

한소리 하려던 유희연은 주변에 다른 고객이 찾아왔기에 참았다.

어차피 살 것도 아니고, 사더라도 기본도 없는 직원이 있는 매장에서 사고 싶지 않았다.

‘시계 말고 좀 싼 건 없나?’

하나에 몇천이면, 그동안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튀겼던 치킨들의 몇 배는 더 튀겨야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머, 희연아 추워?”

그때, 뒤에서 김다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잠깐 무서운 상상을 해서.”

“괜찮아?”

“응. 시계는 벌써 골랐어?”

김다정이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저었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시계가 많긴 하지. 고르기 어려울 만해.”

“아니~ 이것도 집에 있는 것 같고, 저것도 집에 있는 것 같고~”

“......”

그런 고민이었구나.

유희연은 새삼스레 상대가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좀 괜찮은 물건 추천해달라고 하고 싶은데 직원들이 다가오지를 않네~”

“먼저 물어보면 되잖아.”

“불러도 자꾸 못 들은 척해. 원래는 먼저 와서 말도 걸고 그랬는데….”

김다정이 불만을 토로하더니 이내 자신의 옷차림을 돌아보았다.

“혹시 옷 때문에 그런가?”

“...옷?”

“응. 나 너무 애같이 입고 온 건가 해서.”

브랜드가 아닌 평범한 보세 원피스. 척 보기에도 품질이 저렴하지만, 김다정은 그 옷이 주는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냥 다른 데 갈래?”

유희연 역시 직원에게 비슷한 취급을 받은 상황.

비정상뿐인 직원들이 있는 매장에서는 친구의 돈이라도 아껴주고 싶었다.

“아빠가 이 브랜드 좋아하시거든.”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김다정이 주변의 직원들을 훑었다. 여전히 직원들은 두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면, 희연아. 네가 하나 골라줄래? 넌 만약 아빠 드릴 거면 뭐 해주고 싶어?”

“우리 아빠는 이런 거 안 좋아하셔서 모르겠어.”

“아~ 시계가 취향이 아닌 분들 있지. 그럼 오빠는? 너 오빠도 있잖아.”

“오빠? 오빠도 글쎄~”

오빠가 좋아하는 거라고는 게임이나 만화. 가끔 집에 왔을 때, 방구석을 들여다보면 둘 중 하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오빠는 몇 살이셔?”

“우리보다 한 살 많아.”

“어머, 정말? 나랑 똑같네. 너희도 자주 싸우지?”

유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가끔 티격태격할 때는 있지만, 제대로 싸운 적은 몇 번 없었다.

“옛날에는 몇 번 싸웠는데 지금은 잘해줘. 용돈도 주고.”

“와, 대박~ 오빠가 그런다고?”

김다정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이내 그녀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였다.

“혹시 오빠분 여자친구 있으셔?”

“없을걸?”

“그럼 나 소개해 주면 안 돼?”

“안 돼.”

저도 모르게 내뱉은 단호하고 냉정한 말투에 유희연이 도리어 움찔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 아니야!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알겠어!”

“...미안.”

“에이, 미안할 게 뭐 있니?”

웃고는 있지만, 김다정은 낯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무안하기 짝이 없었다.

설마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붉어진 얼굴이 들킬 것 같아 김다정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진열대로 다가갔다.

“와, 이거 예쁘다. 이거 한 번 봐도 될까요?”

그녀의 앞에 있던 직원은 그녀를 슬쩍 보더니 되레 반문했다.

“이걸요?”

“네.”

“사시게요?”

마치 네가 이걸 살 만한 돈이 있냐는 듯한 말투와 표정.

김다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단 자세하게 좀 보고 싶….”

“예~”

말꼬리를 길게 끌며 딴짓을 하는 직원. 처음 당해보는 취급에 김다정이 마른 침을 삼켰다.

‘왜 그러시지…?’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가 싶어 김다정은 잠자코 기다렸다.

그런데 직원은 계속해서 딴짓을 이어갔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가, 진열대 위를 쓱 닦았다가.

아무리 봐도 바쁜 것 같지는 않았다. 김다정의 낯이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저, 저기….”

“조금만 더 기다려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

무시당하는 게 처음이었기에, 김다정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저기요.”

그때, 옆에서 날 선 음성이 들려왔다.

김다정은 자신의 친구를 돌아보았다. 평소에는 그토록 예쁘던 얼굴이 표독스럽게 일그러졌다.

“희, 희연아.”

“넌 가만히 있어봐.”

그녀를 뒤로 밀치며 앞으로 나서는 유희연.

직원을 향해 곧장 쏘아붙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에요?”

“예?”

“보여달라잖아요. 그럼 빨리 꺼내서 보여줘야지. 뭐해요? 직원이 그렇게 일해도 돼요?”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느낀 김다정이 유희연의 팔을 잡았다.

“희연아. 우리 그냥 가자.”

“놔.”

강압적인 한 마디에 김다정이 움찔하며 손을 뗐다.

“고객이 보여달라면 보여주는 게 정상 아니에요?”

직원은 피곤하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혹시 매장에서 구매하실 건가요? 저희가 최근에 도난 사건이 생겨서 미리 결제하시지 않으면 보여드릴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도둑질이라도 할 거라는 소리예요?”

“...음, 뭐, 그럴 수도 있잖아요.”

황당한 말에 유희연이 탄식했다.

“그게 무슨 되먹지 못한 말이에요? 그럼 저 사람들은 뭔데요!”

유희연이 가리킨 건 방금 막 들어와 실물 제품을 구경하는 커플이었다.

두 사람과 달리 옷차림부터 돈을 많이 쓸 것 같은 티가 났다.

“저분들은 구매 동의서를….”

“방금 막 들어왔는데요?”

“그걸 보고 계셨어요? 음침해라….”

기분 나쁜 눈빛을 보내며 도리어 유희연을 욕하는 직원.

조소를 머금은 채 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분들은 딱 보이는 수준이 다르잖아. 아직 어린 것 같아서 내가 좀 알려 줄게. 이런 데 올 때는 좀 차려입고 와야 해. 돈을 얼마나 쓸지 알아야 직원들도 대접을 해주지. 응?”

그 말에 유희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할 말은 수백 가지가 있었지만, 온갖 감정이 뒤엉켜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가주겠니? 다른 분들이 보시잖아.”

부들부들 떨리는 유희연의 손.

김다정이 다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희연아, 일단 진정하고...”

김다정 역시 이런 취급이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우선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이런 미친년아!”

유희연이 단번에 진열대 위로 몸을 날려 직원의 멱살을 붙잡았다.

“희, 희연아!”

“별 또라이 같은 년이 다 있어! 야! 사람 생긴 것만 보고 돈 있는 줄 없는 줄 네가 어떻게 아는데!!”

“꺄악!”

비명을 지르는 직원.

다른 직원들이 뛰어와 유희연을 억지로 떼어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사람 멱살을 그렇게 잡으면 어떡해요!”

“경비 불러! 경비!”

전후 사정은 뒤로한 채 도리어 유희연에게 소리치는 직원들.

유희연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꼴값도 유분수지! 하나 같이 정신을 못 차리냐!!”

“희, 희연아! 진정해!”

김다정이 온몸으로 그녀를 말렸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유희연은 직원의 멱살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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