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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5화 (115/219)

115

스파르타 길드에서 점심을 먹은 유현은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이 터진 탓에 다들 호승심은 잠시 접어두고 대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유현 역시 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생각이었기에 그들을 뒤로했다.

삐리릭.

유현이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구름에 부서진 오후의 햇볕이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왔다.

고요한 집안.

주말이지만, 다들 각자의 일정으로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유희연! 없냐!”

막내는 가게로, 첫째는 집에 있을 거라던 어머니의 말과 달리 텅 빈 집 안.

동생의 방으로 향하던 그는 문에 붙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경고. 방 들어가면 죽임.

유현은 피식 웃으며 메모지를 구겼다.

“죽이긴 무슨.”

유현은 메모지를 쓰레기 통에 버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스파르타에서 배부르게 식사는 했지만, 어머니가 해 준 음식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식탁이 비어있었다.

“미리 나온다고 하면 어머니가 항상 음식을 해두고 가셨는데.”

기대감을 버리지 못한 유현은 슬쩍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애석하게도 텅 빈 냉장고.

가게 일이 바빠 반찬도 해놓을 틈이 없으신 것 같았다.

“쩝. 별수 없지.”

유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가 챙겨온 책을 꺼냈다.

[나도 할 수 있다. 드워프 특제 수프 비법서]

우선 책을 처음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한 페이지씩 넘겨보면 대충 봤을 때는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드워프 요리사가 적은 책인가.”

지구에서 드워프가 장인의 종족으로 통하듯, 실제로 그가 만난 드워프들은 특유의 집념이 있는 종족이었다.

그 집념은 분야를 막론하고 발휘됐다.

요리는 물론이고 짜리몽땅한 체격으로는 불리한 검투사까지.

워낙 다양한 분야에 장인들이 분포되어 있기에, 어떤 문제든 드워프만 찾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속설까지 있었다.

“나도 도움 많이 받았지.”

유현은 페이지를 넘기며 주의 깊게 내용을 읽었다.

문장 구조가 특이한 부분은 있지 않은지, 재료 설명을 위해 그려진 그림에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등.

가장 1차원 적인 방식으로 암호화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

심혈을 기울여 조각품을 깎는 예술가처럼 한 페이지씩 들여보다 보니, 어느덧 창밖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분량은 반이 넘게 남았다.

“은근히 두껍네.”

유현이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마침 바깥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책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유희연이 막 귀가한 참이었다.

“어디 갔다 오냐?”

“도서관.”

“네가 도서관을?”

“시비 걸지 마라. 나 지금 손에 책 들고 있다.”

“들고 있으면 어쩔 건데? 던질 거야? 던져 봐라~”

유희연이 망설임 없이 책을 투척했다.

휘리릭- 팔락이며 허공을 가르는 책. 유현은 가뿐하게 책을 잡아냈다.

“던지란다고 진짜 던지네.”

“던지라고 했으니까 던지지.”

유현은 책을 가지런히 덮었다.

[명품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웬 명품?”

“신경 끄셔.”

유현은 동생에게 책을 돌려주고 부엌으로 향했다. 너무 집중한 탓에 배가 완전히 텅 비었다.

“저녁은 먹었냐?”

“응. 편의점에서 먹고 왔어.”

“집밥을 먹어야지, 편의점은….”

냉장고 문을 연 유현은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아차했다.

먹을 게 없다는 걸 완전히 까먹었다.

“너 하연이 밥은 잘 챙겨주지?”

“하연이 편의점 도시락 좋아해.”

“그런 거 먹이지 말고 좀 해서 먹여.”

“나도 학교 때문에 바쁘거든? 아니면 오빠가 용돈 좀 많이 주던가. 반찬 시켜 먹게.”

“주면 가계부 잘 써야 해. 언제 어디서 돈을 썼고, 왜 썼는지.”

“...됐다, 됐어. 돈도 많으면서 쪼잔하기는.”

유희연이 혀를 차며 홱 방으로 들어갔다.

“쯔쯧. 쪼잔이 아니라 기본이지. 나도 매달 현질 가계부 쓴다, 인마.”

유현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배는 고프지만, 먹을 게 없으니 우선 남겨진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흠….”

턱을 매만지며 다시 펼친 책.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긴 시간을 들여 책을 완독했다.

결과적으로 단순 일독으로는 성과가 없었다.

‘이번에는 마법 반응을 살펴보자.’

마나가 책에 반응한다는 건 어떤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다는 뜻.

일단 글자나 그림의 변형은 없으니 몹시 복잡한 방식으로 숨겨져 있을 것이다.

‘보통 책에 뭔가를 숨길 때는 정보가 적힌 종이를 백지화하고 그 위에 새 내용을 덧씌우는 게 일반적이야.’

나무는 숲에 숨겨야 한다는 말처럼 책에 종이 자체를 숨겨 놓는 방식이었다.

‘일단 그 방법을 썼다는 전제하에 찾아봐야겠어.’

보안을 위한 마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예상한 방법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만큼 시간을 들여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탐지]

두 눈을 감고 책의 표지에 손을 올리는 유현.

그 상태로 책장을 넘기고, 페이지를 넘기며 마법의 기운을 좇기 시작했다.

팔락.

팔락.

창밖의 달빛과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만이 적적하게 공간을 메웠다.

시간이 지나며 바깥의 소음이 하나씩 늘어났다.

부모님이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한 소리.

유하연이 슬쩍 방문을 열어봤다가 닫는 소리.

밥도 못 해 주고 미안해서 어쩌냐며 유현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대화.

그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달이 물러나며 동이 터 오르던 그 순간까지도 팔락임은 멈추지 않았다.

작업이 끝난 건 부모님이 막내와 함께 가게로 출근한 점심 무렵의 일이었다.

“......”

유현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장을 덮었다.

집중이 풀리며 한 번에 몰려오는 굶주림과 피곤함.

유현은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탐지는 생각보다 높은 등급의 스킬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장시간 사용하면 부담이 되는 스킬이었다.

“힘드네...”

잠시 누워있던 유현은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동생도 외출하는 모양이었다.

“끙차.”

유현은 몸을 일으켜 다시 책 앞에 앉았다.

책 바깥으로 표시된 마나 책갈피. 그 책갈피의 숫자가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숨기고 싶은 게 많았나 봐.”

수많은 종이에서 검출된 마법 반응. 괜히 마나가 이 책에 반응한 게 아니었다.

“이건 또 다 언제 해독하냐.”

마법 반응이 검출된 종이들은 모두 암호화되어 있어 해독해야 한다.

탐지보다 더 고되고 힘든 일이 바로 해독. 페이지들에 감춰진 마법을 전부 풀어내려면 한 달간 밤을 새워도 부족했다.

“우선 한 장만 먼저 해봐야겠다.”

일부만 해독에 성공하더라도 그 전체적인 얼개는 파악할 수 있을 터. 이 종이에 감춰진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현은 가장 처음 발견한 페이지를 뜯어냈다.

마나로 만들었던 책갈피를 제거하고,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해독의 첫 번째 순서는 마법 분석.

말 그대로 마법을 분석하는 일이며, 해당 마법이 정확히 어떤 마법인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그다음 두 번째, 해체.

마법 분석이 완료되었다면, 해체 마법을 통해 해당 마법을 제거한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실전은 쉽지 않았다.

“후.”

복잡한 술식의 계산들을 역산하는 게 해체의 기본. 마법은 종류에 따라 그 술식이 달라서 해체 마법 역시 범용적인 사용이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해체 마법은 하나의 도구일 뿐, 만능이 아니었다.

‘첫 장은 생각보다 복잡하진 않은 것 같은데.’

유현은 차근차근 분석하고 계산하며 마법을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걸린 시간은 고작 몇십 분 남짓이었다.

“왜 이렇게 쉬워?”

유현은 웃음을 머금으며 다음 페이지를 손에 쥐었다.

첫 번째가 쉬웠으니, 두 번째도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허.”

척 보기에도 몇 배는 복잡해 보이는 두 번째 페이지.

해체할 수 없지는 않지만, 지금 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나중에 천천히 해야지.”

책의 구매 일자는 10년 전.

당장 서두르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확인이나 해봐야지.”

유현은 해독이 완료된 첫 번째 페이지를 들었다.

본래 요리법이 적혀 있던 종이.

지금은 일부분에 지도의 해안선처럼 꾸불꾸불한 곡선이 그려져 있었다.

“지도?”

유현은 유심히 종이를 바라보더니 종이를 접어 빈 부분을 없앴다.

그 형태가 좀 더 확실해졌다.

“지도 조각 같은데.”

어디 지도지?

마법과 마찬가지로 지도의 위치를 단순히 선 하나로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

다른 페이지들도 마저 해독해야 했다.

“판대륙 책이면, 판대륙의 지도려나.”

지금은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에 중요한 건 이 책이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했는지의 여부.

지도도 지도지만, 핵심은 책의 출처였다.

‘책을 구매했다는 베네치아의 골동품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흔히들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그곳. 살면서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만큼, 가본 적 없는 도시였다.

‘해외까지 날아가기는 좀 그런데.’

직접 바다를 건너간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일. 가야 한다면 일정이 없는 방학이 적기였다.

‘문제는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건데...’

하지만 베네치아의 골동품 점이면 몇 곳 없지 않을까?

도시의 크기는 몰라도 골동품점 자체가 흔한 곳은 아닐테니까.

“뭐, 이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끝.

유현이 기지개를 켜며 벌렁 드러누웠다.

곧장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신호가 왔다.

“...밥 먹고 쉬다가 학교로 돌아가야겠군.”

유현은 책을 아공간 조끼에 넣은 뒤 방을 나왔다.

“부엌에는 먹을 게 없고.”

혹시나 하여 확인했지만, 역시나 텅 빈 냉장고.

깨끗한 냉장고를 보고 있자니 두 동생이 걱정되었다.

“맨날 편의점에서만 사 먹게 두는 건 좀 그런데.”

부모님이야 그렇다 쳐도 두 동생은 아직 성장기였다.

특히 막내는 한창 많이 먹고 자랄 나이. 편의점 도시락이 맛있게 나온다고 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돈도 들어왔는데 마트나 다녀올까.”

유마망의 포션 판매금은 꾸준히 입금되고 있다.

이번 달 현질 비용과 재구조화 가속 포션 제조 비용을 빼도 한참 남는 금액.

판매하는 포션의 개수가 늘어나니 자연스레 수입도 증가했다.

“가까운 마트가 백화점이었지. 복귀 전에 장이나 봐야겠다.

방으로 돌아와 지갑을 챙기려던 유현은 문에 붙은 쪽지를 뒤늦게 발견했다.

“뭐야 이건 또.”

유희연이 외출하기 전에 붙여놓은 것 같았다. 상당히 긴 내용. 천천히 쪽지를 읽던 유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오늘이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고?”

전혀 알지 못했던 유현. 그동안 챙긴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걸 어제 미리 말 해주지. 그럼 좀 여유롭게 준비 했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집안 사정이 좋아진 만큼 꼭 챙겨드리고 싶었다.

“얘는 돈도 없으면서 자기가 무슨 선물을 사겠다고.”

유현은 방으로 들어가 지갑을 챙겼다.

목적지는 백화점.

먹을 것도 사고, 부모님 선물도 구입할 생각이었다.

“근데 뭘 좋아하시려나.”

애초에 선물 같은 걸 해봤어야 말이지.

머리를 긁적이던 유현은 일단 비싼 걸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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