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2화 (112/219)

112

수도권 도심에 위치한 스파르타의 길드 본부의 하루는 새벽 일찍 시작된다.

“형님! 물건 들어왔습니다!”

스파르타의 식당 - 발할라에 사용할 식자재가 입고되는 시각 새벽 세 시.

당직 간부는 발할라를 담당하는 길드원과 함께 식자재의 상태를 체크 하고 식당까지 옮긴다.

“오늘도 상태가 아주 좋군.”

스파르타 길드에 보급되는 재료들은 모두 최상급의 재료들.

웬만한 고급 호텔이나 미슐랭 식당이 이용하는 공급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 그럼 다들 시작하자!”

“예!”

머리를 빡빡 깎은 요리사들이 곧장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요리사들 역시 자격증은 하나 없지만, 각고의 노력을 통해 업계에서 날고 기는 베테랑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

이 역시도 발할라가 만들어 낸 위대한 결과물. 발할라는 여전히 완성되어 가고 있다.

“오징어채 완성되었습니다!”

“연근 튀김 완성되었습니다!”

“소세지 볶음 완성되었습니다!”

새벽이 가고 동이 터오는 시각.

완성된 메뉴가 식당에 뷔페처럼 진열되었다.

아침 배식 시간은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스파르타의 일반 길드원들은 물론 간부들까지 한자리에 모두 모여 식사를 시작했다.

진열된 음식을 접시에 담는 소리.

식기와 수저가 맞부딪치는 소리.

접시와 수저를 반납하는 소리.

오직 그 세 가지 소음만이 식당을 메웠다.

벽에 걸린 규칙처럼 누구 하나 떠들지 않았다.

식사 규칙

-신성한 식사 시간에는 말하지 않는다.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는다.

간부들에게도 규칙의 예외는 없었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뒤, 발할라를 빠져나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오늘도 발할라로 갈 것 같은 맛이었구만.”

“아주 훌륭했어.”

간부들은 후식으로 커피를 뽑아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넓지 않은 초록빛의 공간.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이 따사롭게 비춰왔다.

“오늘 싸움 순서는 정했나?”

“뭣 하러 순서를 정하나. 이름 순서대로 들어가서 싸우면 되지.”

주말. 오늘은 바로 유현이 승부를 위해 스파르타 길드에 찾아오는 날이었다.

“그래도 순서는 정해야지. 상대가 지치기 전에 싸우는 사람이 가장 이득일 텐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군.”

그런 결론 하에, 간부들은 순서를 정하기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내가 먼저 하지.”

“아니. 내가 먼저 한다.”

“어허. 제아무리 같은 계급이라 해도 길드 입단일에 차이가 있을 텐데.”

당연하게도 간부들은 자신이 먼저 싸우기를 원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유현의 강함을 느끼는 것.

승리 역시 중요하지만, 지친 상대에게 얻은 승리는 그 가치가 퇴색된다.

“이런 건 원래 길드 마스터가 가장 먼저 하는 거다.”

“아무리 마스터라도 이런 기회에 특권을 가지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길드의 마스터나 부마스터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논쟁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유현이 찾아온 점심시간까지 계속.

“그래서 순서는 정했어요?”

신가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박진주에게 물었다.

박진주가 고개를 떨구었다.

“면목이 없군.”

“...아니에요. 순서도 중요하니까요.”

신가온은 그 중요성을 이해했지만, 유현은 어리둥절했다.

“순서를 왜 정해요? 그냥 아무나 먼저 하면 되지.”

“자네가 지치면 승리해봤자 의미가 없잖나.”

“지쳐요? 제가?”

유현이 코웃음쳤다.

박진주를 비롯한 간부들의 눈에 그 행동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지금 우릴 무시하는 건가?”

“내가 지친다는 말이 나를 더 무시하는 것 같은데.”

유현의 대꾸에 무거워지는 공기.

간부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기세를 내뿜었다.

“우릴 무시하지 마시오.”

“어디 햇병아리가 감히….”

“싸운다니까 같은 수준으로 보이는 건가?”

회의실에는 살벌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금방이라도 주먹이 나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

신가온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유현의 등을 밀었다.

“다들 내려가 계세요! 저는 현이 데리고 구경 좀 시켜줄게요!”

유현가 함께 회의실을 빠져나온 신가온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 착하신 분들인데 이상하게 호승심이 넘치셔.”

“다 이해한다.”

전사의 마음은 전사들이 아는 법.

유현은 간부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강자와 싸우는 건 언제나 가슴 떨리는 일이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워~”

신가온은 유현을 데리고 길드 투어를 시작했다.

스파르타의 본부는 7층짜리 꼬마 빌딩으로 지하는 2층, 지상은 5층까지 뚫려 있다.

대련장이 지하에 있는 관계로 두 사람은 지상부터 올라갔다.

“1층에는 식당이 있어.”

[발할라] 라는 명패가 붙은 입구.

안쪽으로는 탁자와 의자들이 잔뜩 있었다.

“맛있는 냄새.”

“곧 점심시간이라 그래. 한번 들어가 볼래?”

“그래도 돼?”

“보는 사람 없으니까 괜찮아.”

식당에 들어서려던 유현은 이내 멈칫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가자 그냥.”

“그래? 그럼 위로 올라가자. 1층에는 볼만한 곳이 식당밖에 없거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들이 정한 규칙을 어기는 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

비록 스스로 명예를 중요시하지는 않아도 상대의 명예는 존중하는 게 나름의 원칙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범위에 있는 상대에 한정한 원칙이다.

“2층은 행정 사무실이 모여있어.

게이트 관리랑 마석 처리 그리고 길드원들 관리 하는 곳이야.”

길드에는 하나씩 존재하는 행정 처리 장소. 게이트 낙찰 및 배정, 마석 통합 및 일괄 판매 등. 길드의 머리가 되는 장소였다.

“너도 게이트를 어떻게 낙찰받는지는 알지?”

“대충은.”

던전형 게이트가 출몰하면 헌터 협회에서 해당 게이트의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대강의 등급과 추정 상태를 기입해 게이트 경매 사이트에 올리면, 길드들이 그 공고를 보고 입찰하는 것이다.

“무조건 입찰한다고 되는 건 아니고, 해당 게이트를 클리어 할 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해.”

“게이트 등급이랑 같거나 한 단계 위여야 한다고 했었나?”

“응, 맞아. 낙찰 받으면 그때부터 게이트 레이드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는 거지.”

두 사람은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보급 본부를 비롯한 여러 창고가 있었다.

“레이드 준비가 시작되면 가장 바빠지는 곳이야.”

레이드에 필요한 보급품을 발주하고, 소유 중인 물건 중 필요한 물건들을 창고에서 빼내는 등.

전반적인 레이드 준비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한 번 창고 구경할래? 어차피 위층은 딱히 볼 게 없어서.”

“창고 좋지.”

스파르타 길드에서는 어떤 장비를 갖추고 있을까.

기계 같은 건 봐도 모르겠지만, 검이나 창 같은 장비는 대충 급을 알 수 있다.

“기다려봐.”

두 사람은 [장비 창고]라는 명패가 붙은 커다란 철문 앞에 섰다.

포션 창고나 일반 창고 등. 다른 창고들도 있었지만, 유독 장비 창고의 보안이 두터웠다.

“들어가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 뭐 훔쳐 갈 것도 아닌데.”

“그건 모르지.”

“......”

“농담이야.”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했나.

신가온의 표정이 굳었다.

“정말 농담이지?”

“당연하지.”

신가온이 한결 풀어진 얼굴로 카드키를 꺼내 보안 장치에 스캔했다. 그러자 장치가 위로 올라가며 숫자 다이얼이 드러났다.

다섯 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확인 버튼을 누르니 철컥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보안이 철저하네.’

그 정도로 귀한 물건이 이 안에 있다는 뜻인가?

그럼 못해도 마력 공학 무기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암시장처럼 불법 개조 무기가 있지는 않을 테고.’

유현은 신가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내부.

도서관의 책장처럼 규칙적으로 늘어선 진열대들이 내부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이쪽은 일반 장비들. 이쪽은 마력 공학 장비들이고...”

일반 장비는 단순 가공으로 제작된 평범한 무기와 방어구들이었다.

같은 무기나 방어구여도 크기가 제각각 다른 걸 보니 사이즈별로 철저하게 준비해둔 것 같았다.

“현아. 혹시 뭐 하나만 알려줄 수 있어?”

찬찬히 무기를 구경하는 도중 신가온이 말을 걸어왔다.

“뭘?”

“넌 검도 잘 다루고 톤파도 잘 쓰잖아. 혹시 다른 무기도 그렇게 쓸 수 있는 거야?”

모든 무기를 잘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적과 싸워야 했던 만큼 대부분 평균 수준은 됐다.

“웬만한 건 다 쓸 수 있어.”

신가온이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눈동자가 호기심에 반짝였다.

“그럼 혹시 보여줄 수 있어?”

유현은 대답 대신 진열대에 매달려 있던 창을 꺼냈다.

그리 길지 않은 중간 길이의 창.

곧장 능숙한 몸놀림으로 창을 회전시키며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와...”

마치 제 몸처럼 자유자재로 창을 돌리고 찌르고 휘두르는 유현.

신가온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구경했다.

“미쳤다. 어떻게 창도 잘 써? 너 진짜 천재 아니야?”

“천재는 너 같은 놈들이고.”

“에이, 난 고작 검 하나만 연습했는데도 너한테 졌잖아. 네가 천재지.”

유현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것도 보여줘. 이런 쌍절곤 같은 건 쓸 수 있어?”

“그건 좀.”

“그럼 이건?”

유현은 신가온의 물음에 한참을 시달리다가 그에게 간단한 무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나서야 질문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좀 여유롭게 둘러봐야겠군.’

신가온이 무기 연습에 몰두한 가운데, 유현은 유유히 창고 안을 돌아다녔다.

일반 장비코너를 벗어나 발을 들인 곳은 마력 공학 장비들이 늘어선 진열대였다.

일반 장비와 비슷한 생김새에 기이한 장치가 달린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마석의 힘을 넣어 힘을 더 증폭시키는 건가.”

작동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힘이나 속도를 강화하는 수준. 암시장의 격투장에서 봤던 폭발 장갑처럼 장비로 특성을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기야. 그걸 만들려면 사람을 잡아야 하는데.’

암시장처럼 범죄가 일상인 곳이 아니고서야 그런 장비가 있을 리 없지.

“그래도 이 정도면 전투에 도움은 되겠네.”

메이블의 기동장치처럼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이쪽은 뭐지?”

마력 장비 코너를 지나 더 깊숙한 구석. 그곳만 불이 꺼져 있어 가까이 가기 전에는 벽인 줄 알았다.

유현은 손가락을 튕겨 허공에 작은 빛을 만들었다.

“골동품?”

밝은 빛 아래로 먼지가 잔뜩 쌓인,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열대를 가득 채운 오래된 물건들. 길드 마스터의 취미라도 되는 걸까.

‘취미라기에는 관리가 너무 부실한데.’

유현은 물건들을 손에 들며 유심히 살폈다.

골동품 답게 하나같이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여긴 별거 없네.”

그렇게 몸을 돌려 나가려던 그때.

유현의 신경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

의문스러운 얼굴로 몸을 돌린 유현. 저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에 자신의 마나가 반응하고 있었다.

“......뭐지?”

홀린 듯 발걸음이 그곳으로 움직였다.

진열대는 물론 바닥까지 뒤덮은 골 등품 더미를 지나 도착한 창고의 끝.

가득 깔린 먼지 사이로 난잡하게 뒤섞인 골동품의 산이 보였다.

유현은 골동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어떤 사고를 거친 행동이 아닌, 직감에 따른 본능적인 움직임. 왜 그러는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으며, 단지 마나가 그 행동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뭔가 있어.”

수많은 보기에서 곧장 정답 하나를 골라내듯, 유현은 산더미처럼 쌓인 골동품 사이에서 한 가지 물건을 손에 쥐었다.

그 상태로 힘을 줘 손을 빼내자 물건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와르르!

중심축이 사라진 산더미가 무너져내렸다.

유현은 발치를 지나 굴러간 골동품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손에 쥔 물건을 바라보았다.

밝은 빛 아래 나타난 먼지가 가득한 책 한 권.

바람을 불어 먼지를 날려 보내자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언어가 눈에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