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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1화 (111/219)

111

최강자전은 뜨거운 성화 속에 마무리되었다.

곧장 이어진 시상식.

수만에 달하는 관중들이 유현의 우승을 축하했다.

“우승할 만했다!”

“최고였어!”

필드가 사라지고 마련된 시상식 무대 위로 아카데미의 원장 손지현이 올라왔다.

그녀는 마이크를 쥐고, 관중석을 쭉 둘러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카데미의 원장 손지현입니다.”

본래라면 부원장이 해야 할 일.

하지만 사건으로 공석이 된 탓에 그녀가 대신 시상식을 맡았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확인하셨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업적을 넘어 국가의 위신을 드높일 헌터들의 등장.

아카데미 황금 세대의 공식적인 첫 출범이나 다름없었다.

관중들 역시 그녀의 말에 환호했다.

“와아아아!”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손지현은 옅은 미소와 함께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우승자 유현.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멀뚱히 서 있던 유현이 계단을 타고 무대에 올라갔다.

“우승자에게는 세계 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집니다.”

아카데미 세계 선수권.

각국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을 가진 이들이 참가하여 경쟁하는 대회.

선발 조건은 아카데미에 따라 다르며, 대한민국의 경우 최강자전의 우승자에게 자격 중 하나를 부여했다.

“세계 선수권이 뭐에요?”

다음 보상을 발표하려던 손지현은 유현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걸 몰라요?”

마이크를 떼고 유현에게 묻는 손지현.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알 턱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보상은 상금뿐이었으니까.

“...세계 선수권은 전세계의 아카데미 학생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대회에요.”

단순히 서로의 무력을 다투는 대회가 아니다.

모두 같은 등급의 게이트에 들어가 얼마나 빠르게 게이트를 돌파하는지 경쟁하는, 헌터다운 대회였다.

동시에 국가의 위신은 물론 아카데미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이기도 했다.

“유현 학생은 최강자전 우승으로 그 대회의 참가 자격을 얻은 거고요.”

국가에 따라 주어지는 시드권의 숫자는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우 총 세 장.

나머지 두 장은 선발 대회와 학년 평가 우수자에게 부여된다.

“거긴 뭐 주는데요?”

“보상은 매년 다르지만, 주로 장비를 줘요.”

명인이 제작한 무기나 방어구.

또는, 마석을 활용한 기계 장치 등.

물론 보상이 매년 바뀌기에 아직은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럼 그 대회에 왜 나가요? 뭘 주는지도 모르는데.”

“명예를 위해서죠.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니까.”

명예를 위해서.

그리 나쁜 계기는 아니었지만, 크게 끌리지도 않았다.

“유현 학생? 이제 궁금증은 다 해결됐나요?”

손지현이 관중들을 흘끗거렸다.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자 관중들의 웅성거림 역시 커진 탓이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시상식은 다시 진행됐다.

유현은 메달을 목에 걸었고, 2천 만원이라는 숫자가 적힌 상금 패널을 손에 들었다.

“그럼 수상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상금의 액수를 보며 게임에 어떤 식으로 현질할지 궁리하던 유현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온통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유현은 마이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에요?”

“수상소감 없나요?”

“아~ 소감.”

유현이 관중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소감을 듣기 위해 잠잠해진 수만 명의 사람들.

잠시 고민하던 유현이 입술을 뗐다.

“여러분의 세금은 제가 잘 쓰겠습니다.”

유현이 몸을 돌려 다시 손지현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관중석을 보고 있던 손지현은 자신의 앞에 돌아온 마이크를 보며 눈을 크게 깜빡였다.

“......끝인가요?”

“네.”

“너무 짧지 않나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요.”

손지현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재밌네요. 알겠습니다.”

고요하던 관중석에서는 곧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강자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상위 클래스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카페. 최강자전을 마친 유현은 동생과 친구에게 구경이라도 시켜줄 겸 이곳까지 데리고 왔다.

원래는 그냥 보내려 했지만, 유희연이 악을 써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오빠는 왜 마법 같은 거 안 써?”

주시하가 화장실을 간 사이.

커피를 홀짝이던 유희연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썼는데?”

“어? 진짜? 하나도 모르겠던데.”

“들키면 피곤하니까 티 안 나는 것들로만 했지.”

유희연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오빠 특성 사람들이 신체 강화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불 뿜고 그러면 이상할 것 같긴 해.”

“이제 신체 강화 아니라는 거 알 사람은 다 알아.”

“그래? 아무튼 말이야.”

유희연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마법. 검색해 봤을 때는 분명 특성보다 광범위한 분야였다.

손에서 불이 나오는가 하면 물건을 얼리기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빠는 무슨 마법 쓸 수 있어? 만화나 애니메이션 보면 이것저것 다 쓰던데.”

“웬만한 건 다 쓰지.”

처음 마법을 배운 이후, 그는 매일 같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왕과의 전쟁을 마무리 짓던 그 날까지도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어느 수준인데?”

“만화로 치면 대마법사?”

판대륙의 마법은 등급으로 구분된다.

1급부터 10급까지.

가장 낮은 등급이 1급이고 높은 등급이 10급이며, 유현은 10급 마법까지 모두 마스터했다.

“물론 대마법사라고 모든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에이, 뭐야.”

“마법은 종류가 다양해. 가령 신성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나 마족이 사용하는 악마법 같은 건 나도 몰라서 못 써. 내가 쓸 줄 아는 건 일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표준 마법뿐이야.”

적어도 표준 마법 종류는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아, 그래도 다른 종족이 쓰는 마법은 몇 개 배우긴 했어.”

“오, 진짜?”

“이종족과 붙어 다니다 보면 그쪽에서 먼저 마법을 알려주기도 하거든.”

“와...”

그 말에 감탄하던 유희연은 이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말이야. 드워프나 엘프는 지구에도 존재하잖아.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어떻게 그렇게 겹치지?”

“......글쎄.”

유현도 일전에 들었던 의문이었다.

그때는 만화 속 묘사와 실제 종족 사이의 괴리가 심했기에, 그냥 인간의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결론 내렸었다.

“오빠처럼 누가 그 판대륙인지 핀대륙인지에 갔다 온 거 아닐까?”

“......에이, 설마.”

“근데 어떻게 그렇게 똑같지?”

“상세한 부분은 달라. 내가 예전에 다 말해줬었잖아.”

“엘프는 술을 퍼마시고 성격이 지랄맞다고 했었나?”

“기억하네.”

하지만 유희연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듯 턱을 매만졌다.

그 사이, 화장실에 갔다 왔던 주시하가 돌아왔다. 혼자가 아니라 웬 사내들과 함께였다.

“유현.”

유현은 자신을 부른 스파르타의 간부와 시선을 맞췄다.

“누구세요?”

“자, 잠깐만요!”

그때, 사내들 사이를 비집고 누군가 튀어나왔다.

헝클어진 금발의 귀공자. 신가온이었다.

“하아, 하아.”

급히 뛰어왔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는 신가온. 그가 곧 간부들을 돌아보며 잔소리했다.

“저 나오면 같이 가자고 했잖아요.”

“넌 똥칸 들어가면 기본 10분이잖냐.”

그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그들의 속에 있는 작은 전사의 참을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크흠.”

느닷없는 대변 타임 커밍아웃에 신가온이 헛기침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미안, 현아. 이분들은 우리 길드 간부님들이셔.”

“아, 스파르타 분들이구나.”

스파르타 길드에 대해서는 몇 번 이야기를 들었다.

싸움을 좋아하고, 의리가 넘치고, 무엇보다 먹는 걸 중요시 하는 곳.

듣기만 했는데도 무척 자신과 성향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길드였다.

“우린 너를 찾기 위해 경기장에서 이곳까지 뛰어왔다.”

“이분은 길드 마스터 박진주 아저씨.”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바요.”

“이분은 부길마 김택진 아저씨. 결투 신청은 흘려들어도 돼.”

박진주가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악수했다.

“반갑군. 꼭 만나보고 싶었어.”

유현의 손을 아담하게 만드는 손의 크기. 서로 맞잡은 손은 그 상태로 떨어지지 않았다.

부들부들.

두 힘의 격돌로 흔들거리는 두 사람.

표정은 평화로웠지만, 악수 사이에서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만 하세요~”

신가온이 억지로 두 사람을 떼어냈지만, 유현과 사소하게라도 힘의 자웅을 겨루고 싶어 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 모두가 그랬다.

“강하군.”

“역시 우승자다워.”

다들 유현과 악수를 통해 힘을 주고받으며 한 마디씩 감탄을 던졌다.

말리기를 포기한 신가온은 유희연과 주시하에게 다가갔다.

“현이 동생이랬죠?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까 거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게 됐어요.”

“에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빠놈 빌려서 저기 어디 멀리 여행 가셔도 상관없어요.”

신가온의 미모 덕에 유희연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웃음꽃이 피었다.

이런 사람이 오빠의 친구라니.

협박이나 공갈을 통해 이루어진 관계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아, 그럼 주말에 좀 빌려 가도 되나요?”

“물론이죠!”

악수하며 귀를 열어 두고 있던 유현이 즉각 반발했다.

“그걸 왜 네 마음대로 정해, 이년아.”

“오빠 주말에 어차피 기숙사에 처박혀서 게임만 할 거잖아. 할 거 없으면 가게 나와서 나대신 일이나 도우라니까.”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괜히 더 떠들었다가는 반강제로 아르바이트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일을 대신하는 거라면 몰라도, 동생의 일을 대신해줄 생각은 없었기에 아르바이트는 사양이었다.

줄곧 이어지던 악수 싸움은 곧 마무리되었다.

스파르타의 간부들이 유현의 테이블을 빙 둘러섰다.

그들에게 쏠리는 주변의 시선.

그 사이에서 신가온이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에 내가 식당 데려가 주겠다고 했었잖아?”

“최상급 돈까스를 먹게 해준다고 했지.”

“그게 실은….”

본래 그 대가로 내걸었던 건 대련에서 자신을 선택해주는 것.

하지만 간부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부님들이 추가 조건을 내거셔서 말이야….”

“추가 조건? 그때 대련 선택으로 이야기 끝난 거 아니야?”

두 사람 사이로 박진주가 끼어들었다.

“우리 스파르타의 식당 발할라는 외부인에게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 그곳은 전사들의 성지이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만찬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약속했는데요?”

“그래도 안 돼. 대신 우리 가온이의 실수를 인정하여, 기존에 존재하던 전통을 소개해주지.”

뛰어난 전사에게 먹고 잘 곳을 제공하는 것은 같은 전사의 의무.

스파르타의 간부들에게서 승리를 따낸 순간, 유현은 외부인이 아닌 전사로써 대접받는다는 게 그 전통의 요지였다.

“......전통 맞죠?”

유현이 신가온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신가온은 눈을 깔며 그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봐도 전통이 아니라 그냥 갑자기 생긴 거 같은데….

“전통은 본래 산자가 만들어가는 것이지.”

“앞으로 전통이 되면 된다네. 하하.”

그들에게 묻지도 않았건만, 진실을 떠드는 몇 간부.

박진주가 곧장 눈치를 줬지만, 이미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현.

역시 거절인가.

박진주를 비롯한 모든 간부가 실망하려던 그때.

“좋아요. 할게요.”

유현의 입에서 나온 건 긍정이었다.

예상외의 답에 간부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함성을 토해냈다.

“우워어어어어어어!”

뒤흔들리는 건물.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신가온은 황급히 그들의 포효를 막았다.

“조용! 조용히 해요!”

다시 가게가 조용해지고.

스파르타의 간부들은 기세등등하게 떠들었다.

“절대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주지!”

“네놈이 먹을 음식 따위 발할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하하하하!”

계획을 마친 스파르타 간부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카페를 떠났다.

남아있던 신가온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현아. 원래는 된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이상한 전통이 추가됐네.”

“사실 한번 싸워보고 싶긴 했거든.”

얼마나 강한 자들이길래 전사라는 이름을 들먹이는지.

호전성이 마구 들끓었다.

“그리고 식당 주인이 그렇게 하라는 데 해야지.”

식당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저들이 저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 결코 맛 없는 장소는 아닐 것이다.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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