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0화 (110/219)

110

결승전만을 남겨둔 최강자전.

정오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한여름 밤의 콘서트장 같았다.

함성은 기본이고, 결승전만을 위해 마련된 응원단 좌석에서는 커다란 북소리도 들려왔다.

“춘식아~! 힘 빡 주고 가즈아아아아잉!”

“Let’s gooooooooooo! mable!”

메이블을 응원하는 각기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언어도, 생김새도 모두 달랐지만, 인상은 이상하리만치 비슷했다.

“와, 저기는 무슨 포스가….”

“뭔가 무섭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커다란 덩치를 가진 백인들.

마찬가지로 거대한 몸집의 황인들.

그런 풍채에서 풍겨오는 기세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 건너편의 응원석까지 압도했다.

“저 사람들 누구야 대체?”

유희연이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주시하에게 물었다.

주시하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S등급 메이블 유에 대해서는 들어만 봤지 그녀와 관련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현이 상대가 혼혈이거든? 아버지가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알고 있어.”

“서로 가족 아닌 건 맞지? 왜 저렇게 비슷해?”

얼굴만 빼고 몸만 보면 같은 핏줄을 공유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아마 하는 일이 비슷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일? 직업도 알아?”

“검색하면 나오긴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아.”

유희연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그럼 그거 우리 가족도 나오는 거 아니야?”

“아직은 없던데? 다른 애들이야 워낙 예전부터 유명했으니까.”

“그럼 다행이고. 그래서 저 사람들 하는 일이 뭔데?”

주시하가 상대방의 응원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동선수도 있고, 헌터도 있고 다양한데 두 집안에서….”

둥둥둥둥!

묵직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시하는 좀 더 목소리를 키웠다.

“경호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둘 다?”

“응. 아버지 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호 업체 세스콤. 어머니 쪽은 코리안 시큐리티라는 국내 기업으로 민간 경호 업체에서는 1등이야. ”

“...오빠는 별 걸 다 알고 있네.”

주시하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냥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까….”

유희연은 상대의 응원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북을 두드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메이블 유와 크나큰 괴리감이 있었다.

“저 유전자를 뚫고 그런 사람이 나오다니….”

가녀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은발의 여인. 그녀의 가족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기적 같은 확률에 유희연이 혀를 내둘렀다.

“어, 현이 나왔다.”

결승전이라고 하여 이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선수가 나왔고, 관중들은 열광했다.

“유현! 유현!”

“메이블! 이겨라!”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 응원석에 앉은 응원단의 힘이 실려 소리는 더 커졌다.

-시작도 전부터 두 선수의 응원전이 치열하네요~!

응원전은 유현 측이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았다.

단기적으로 생성된 유현의 유명세.

팬이 많이 생겼지만, 이전부터 꾸준히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메이블에는 미치지 못했다.

더불어 가족들의 엄청난 화력까지.

유현 측 응원단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오빠! 목소리 좀 키워봐!”

“이, 이게 최대야!”

유희연이 주시하를 닦달했으나 주시하는 이미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유현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시작부터 기선 제압을 당할 게 뻔한 상황.

유희연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람만 좀 더 있었다면….’

갑자기 우렁찬 포효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유현!!!이겨라아아아!!!”

바로 뒤에서 들려온 고성이 고막을 찔러왔다.

유희연은 눈을 질끈 감으며 귀를 틀어막았다.

두 응원단의 응원마저 집어 삼켜버린 어마어마한 성량.

고요해진 가운데, 유희연이 슬며시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

뒤쪽에 서 있는 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길게 늘어진 민소매를 입은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사내들.

그 옆에는 그들과 전혀 상반된 미모의 청년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여기 빈 자리에서 같이 응원해도 될까요?”

청년, 신가온은 훈훈한 미소를 보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뒷자리는 물론 좌우와 대각선까지.

모두의 양해를 구한 신가온은 이내 앞에 앉아있던 유희연에게도 물었다.

“혹시...”

“네! 괜찮아요!”

느닷없는 신가온과 스파르타 길드의 등장. 사람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쏠렸다.

유희연은 시선을 다시 경기장에 돌린 채 주시하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오빠, 저 사람….”

“으, 응. 신가온님이랑 스파르타 길드 분들이셔.”

주시하가 흥분한 눈으로 슬쩍슬쩍 뒤를 돌아보며 그들을 구경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떨렸다.

‘이 분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날이 오다니.’

근엄한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는 스파르타의 간부들.

마치 자신들의 전장인 것처럼 비장함 마저 엿보였다.

“준결승을 못 본 게 너무 아쉽군.”

“동의합니다. 영상으로만 봐도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하필 오늘 같은 날 레이드가 잡혀서는.”

최대한 빠르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모였지만, 준결승은 이미 끝난 뒤였다.

“이번에도 유현이 이겼으면 좋겠어.”

그들 모두 유현의 승리를 바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가온이 유현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패배를 선사한 상대가 우승까지 거머쥔다면 신가온의 패배 역시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마련.

외부에서는 고군분투한 신가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질 테고, 신가온 본인도 더 많은 것들을 그 전투에서 찾으려고 하리라.

“다들 너무 시끄럽게 응원하지는 마요~ 알겠죠?”

신가온의 말에 간부 중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릇 응원이라는 건 관객의 본능과 같은 것. 조절하라고 하여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 시작한다.”

필드 위로 메이블이 올라왔다.

준결승과 마찬가지로 여러 기동 장치를 몸에 착용한 상태. 달라진 점은 없었다.

“유춘식! 힘내라!!”

메이블의 응원석에서 경기장까지 내려꽂히는 우렁찬 함성.

메이블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족들은 계속해서 입맛대로 이름을 바꿔 불렀다.

“Mabel! YOU CAN DO IT!”

“춘식아! 할머니도 보고 있다!”

귀까지 붉어진 그녀의 얼굴.

후끈해진 건 관중석의 열기 만이 아니었다.

***

아카데미의 원장 손지현은 스케줄이 없을 때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스케줄이 적은 주말, 오전 중 모든 일을 끝마친 손지현.

평소라면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최강자전이 한창인 메인 경기장의 3층으로 향했다.

“교장 선생님이 여긴 어쩐 일로...”

경기장 3층 공용 관람장.

VIP실을 만들고 남은 공간을 공용 좌석으로 남겨둔 곳으로, 주로 선생들이 이곳에 와서 구경하고는 했다.

주말인 만큼 모두 출근하지 않은 지금. 관람장에서 혼자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안칠성은 손지현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를 볼까 해서요.”

“경기를요?”

“안 되나요?”

“아, 아뇨. 앉으시죠.”

손지현의 최강자전 관람.

안칠성이 알기로는 부임한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지막이 차성진의 최강자전이라고 했나.’

오래전에 참관한 게 마지막이라고 언젠가 들었었다.

추측하기로는 차성진의 귀화와 관련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손지현은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강자전을 보는 게 무척 오랜만이라서요.”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안칠성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녀가 오래도록 챙겨보지 않던 최강자전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걸까.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이유가 궁금한가요?”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한 마디.

당황한 안칠성을 보며 손지현이 옅은 미소를 띄웠다.

“지난번에 검증 차 봤던 영상을 보고 저 학생에게 흥미가 생겼어요.”

저 학생이 누굴 의미하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현 말이군요.”

“맞아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죠. 그런 움직임은 저조차도 놀라웠으니까요.”

지긋한 나이.

수많은 것을 봐온 그녀에게 놀라움은 다른 이들에 비해 무딘 감정이었다.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유현을 보며 느껴졌다.

“처음에는 놀라움이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차성진 헌터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군요.”

차성진. 손지성의 뒤를 이을 헌터라고 평가받던 역대 최강 수준의 능력자.

손지현은 그의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며 큰 기대감을 품었다.

오빠인 손지성이 국가의 위상을 널리 떨쳤다면, 그 기반을 더 공고히 할 인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으니까.

“정작 헌터가 되고 2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지만요.”

“......”

“배신감이 컸어요. 공과사를 구분하지 않고 챙겨줄 수 있는 건 다 챙겨줬는데….”

“그게 그동안 최강자전을 보지 않은 이유였나요?”

손지현은 경기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한창인 경기장.

두 사람은 치열한 공격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잡히면 끝나는 싸움. 서로가 서로에게 품을 내주지 않고, 상대의 품을 쥐기 위해 애썼다.

안칠성 역시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유현을 보고 그 사람이 생각났다는 말은 혹시 유현도….”

“밝은 미래가 보인다는 뜻이에요.”

9명의 S등급 사이에서도 유달리 두드러지는 학생.

그가 있다면, 분명 대한민국의 헌터계, 나아가 대한민국의 장래가 어둡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느낌이 강해요.”

세계 헌터 기구 가입국 기준 평균 이상은 되지만, 선진국에는 못 미친다.

강한 헌터의 숫자는 적고, 그마저도 해외로의 인재 유출이 반복되고 있다.

“만약 유현이라는 아이가, 아니, S등급 아이들 모두가 국내에 남기만 한다면 분명 국가적으로도 큰 발전이 있을 거에요.”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S등급 헌터의 숫자는 다섯 명. 아카데미 등급처럼 헌터 등급도 세계 표준으로 정해지기에 그들을 향한 해외의 러브콜은 여전하다. 지금도 수많은 인재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마 여러 국가에서 아이들을 귀화시키려고 혈안이 되겠죠.”

외교 협약으로 금지된 행위지만, 암암리에 오가는 대화까지 규정을 들이밀 수는 없는 법.

차성진 역시 비밀스러운 협의를 통해 해외로 유출되었다.

미국 정부가 간섭했을 게 분명했지만, 의심할 정황이 없었다.

“막을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대화까지 국가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적인 접촉까지 국가가 간섭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줄 수 있는 혜택은 모두 주지만, 결국 선택은 학생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리 부정적인 생각은 안 들어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손지현이 싱긋 웃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 미소에는 조금의 근심도 없었다.

“저 아이가 구심점이 되어 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유현.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아이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불의를 쉽게 넘기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는 대범함.

그리고 동료를 받아들이는 포용력까지.

리더가 되기에는 충분한 자질이었다.

“유현이 떠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안선생님 생각은 어떤가요?”

안칠성은 고민했고,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요.”

근거가 없는 직감.

하지만 묘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세계 선수권에서 조심해야겠군요.”

“미리 유현 학생에게도 말해 두세요. 선택은 유현 학생의 몫이니 우리가 틀릴 수도 있지만요.”

안칠성은 한층 근심이 깊어진 눈으로 경기장을 응시했다.

손을 뻗고, 몸을 비틀고.

화려한 기술이 없는 투박한 싸움이었지만, 관중들의 함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뜨겁게 들끓었다.

“아아아! 아깝다!!”

“좀만 더 빨리 움직여봐!”

유현은 뻗어 오는 메이블의 손을 피하며 내심 감탄했다.

‘무슨 게임처럼 움직이네.’

기동 장치를 극한까지 활용하는 메이블. 결승까지 허투루 올라온 게 아니라는 듯 뛰어난 컨트롤을 선보였다.

그 탓에, 당장 유현도 쉽게 그녀의 틈을 잡지 못했다.

상대의 손을 피하며 잡으려면 뒤를 노려야 하는데, 메이블 역시 그 점을 파악하고 절대 뒤를 내주지 않았다.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군.’

그렇다고 고초를 겪을 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슬슬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유현은 머릿속으로 마법의 술식을 그렸다.

[슬로우]

발동된 마법이 메이블의 속도를 늦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빈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아아아! 메이블!

느려진 몸에 흠칫한 메이블.

금방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이미 유현이 자신의 뒤를 점했다.

‘안 돼!’

메이블은 급히 기동 장치를 한계까지 가동했다. 그러나 유현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는 게 더 빨랐다.

“윽!”

유현은 두 손목을 제압하고 메이블을 바닥에 처박았다.

이후, 무릎으로 등을 눌러 움직임을 차단했다.

허우적거리는 메이블의 양손.

유현의 신체에 접촉하기 위해 애썼지만,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와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시간이 흐르길 잠시. 목에 힘을 주며 반항하던 메이블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졌어.”

유현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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