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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9화 (109/219)

109

유현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쾅!

붉은빛의 커다란 방패가 유현의 쇄도를 막아냈다.

이어서 방패의 형태가 거대한 망치로 뒤바뀌었다.

망치는 곧장 유현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고, 전진할 타이밍을 놓친 유현은 뒤로 물러났다.

쿵!

망치가 대지를 강타하며 지축을 흔들었다.

크기에 어울리는 강력함.

유현은 혀를 내둘렀다.

‘방심하면 당하겠는데.’

빠르고 강하다.

유현은 다시 발을 튕겼다.

-치열한 공방이 오갑니다!

어느 한쪽이 앞선다고 보기 어려운 격렬한 전투.

팽팽한 결투의 양상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잘한다!”

“그래! 그거지! 거기서 막고!”

유현의 전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돌려 본 서혜빈. 두 경기 모두 참고할 점은 부족했지만,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잘 싸우지만, 괴물은 아니야.’

유현 역시 위기에 봉착한 때가 있었다. 퇴로가 없는 공격이 그랬고, 쉼 없이 몰아치는 검격이 그랬다.

서혜빈은 그 점을 파고들어 최대한 유현의 선택지를 좁혔다.

방패로 벽을 만들어 퇴로를 차단한 뒤 공격하는 식이었다.

그런 공격을 끊임없이 몰아쳐 아예 반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문제는 화력인데.’

이 방식에도 맹점은 존재했다.

결국, 무기의 크기를 줄여 퇴로를 차단할 방패를 만드는 것이기에 유현의 단단한 몸뚱이를 공략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못할 건 없어.’

서혜빈은 유현을 노려보았다.

퇴로를 차단하고 지금보다 더 강력한 공격을 날리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았다.

단, 부작용이 뒤따라서 승리를 확신한 상황이 아니라면 위험성이 큰 공격이었다.

‘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데….’

서혜빈이 고민을 이어가는 사이.

사방은 물론 천장까지 꽉 막힌 공간에서 유현은 양팔을 교차해 망치로부터 몸을 방어하고 있었다.

쉼 없이 자신을 내려찍는 커다란 망치. 아까보다 크기와 힘은 줄었지만, 여전히 강하다.

작아진 지금의 수준도 직접 몸으로 버티려니 조금 벅차다.

‘아까 공격을 맞았으면 바닥에 두더지처럼 처박혔겠어.’

유현은 팔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빈틈 하나 없이 사방과 천장을 막은 사각형의 방패들.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수준의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려면 꽤 힘을 써야 할 건데.’

계속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하지만 유현은 그때까지 가만히 맞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최강자전 참여의 가장 큰 계기는 재미. 이건 재미가 없다.

“역시 부숴야겠어.”

유현은 마법을 사용했다.

5급 마법 슈퍼 배리어.

그의 오른팔에 투명한 보호막이 덧씌워졌다.

[강화]

그리고 강화 마법을 사용해 오른쪽 다리를 강화했다.

“후.”

유현은 한 차례 호흡을 들이쉬고, 왼팔을 내렸다. 홀로 망치의 일격을 견뎌내는 오른팔. 하지만 방어 마법 덕에 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어서, 유현은 강화한 다리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팽창하는 하체의 근육들.

마나의 순환이 빨라지고, 근력이 더 강화됐다.

“좋아.”

유현은 곧장 전방의 방패를 밀어 찼다.

쾅!

굉음과 함께 한 번에 떨어져 나가는 방패. 유현은 활짝 열린 문을 나가듯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유현 선수가 나왔습니다!

서혜빈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미세하게 떨려오는 그녀의 입술. 얼굴에 긴장이 잔뜩 묻어났다.

‘하, 한 번에 뚫렸어?’

지금까지 뚫어낸 이가 거의 없는 방패의 감옥.

물론 유현이라면 뚫을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고작 한 방은 아니었다.

방패가 찌그러지고, 끝까지 버티며 어느 정도 준비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

서혜빈이 흠칫하며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의 눈빛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신차리자.’

예상이 틀어졌다고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건 헌터의 기본.

서혜빈은 침착하게 천천히 걸어오는 유현을 대응했다.

쿵!

커다란 원형 방패가 달려오던 유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마치 돔처럼 유현을 집어삼킨 방패.

뒤이어 서혜빈은 무기를 소환했다.

같은 길이와 모양의 날카로운 창들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르륵.

흘러내린 코피가 인중을 지나 입술을 적셨다.

무리한 탓일까.

순간 현기증이 일었지만,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여기서 끝을 보는 거야.’

서혜빈이 턱까지 내려온 코피를 쓱 닦았다.

최후의 공격이자 승리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애당초 자신이 불리한 싸움.

큰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면 이길 가능성 자체가 전무하다.

‘못 끝내면 내가 져.’

서혜빈은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무기의 개수를 더 늘렸다.

흘러나온 코피가 턱 끝을 타고 필드를 적셨다.

그동안 줄곧 연습만 해왔던 무기의 동시 사용.

화력을 줄인 장비를 동시에 소환하여 다루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강력한 무기를 몇십 개씩 소환하여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몇 년간 이어진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을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아직 완전하진 않아.’

지금도 몇 개의 무기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승리의 끝자락도 손에 닿지 않으리라.

-아아! 이게 뭔가요! 엄청난 숫자의 창들이 허공을 수놓습니다!

더 이상 뒤는 없다.

이 공격에 모든 것을 담는다.

서혜빈은 유현이 밖으로 빠져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라면 분명 빠져나올 터.

섣불리 방패를 제거하기보다는 그가 뛰쳐나올 타이밍에 맞춰 공격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쾅!

유현은 있는 힘껏 방패를 걷어찼다.

하지만 워낙 단단하고 크기가 큰 탓에 구멍이 뚫리는 데 그쳤다.

“......밖에 뭔가 있군.”

틈새 사이로 붉은빛이 일렁였다.

유현은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수많은 창을 시야에 담았다.

“저런 식으로도 쓸 수 있어?”

평소와는 다른 사용 방식.

자연스레 그녀가 새로운 방식을 체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력했구만.”

물론 그런 노력의 여하와는 상관없이 유현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쾅!

한 번 더 방패를 밀어 차는 유현.

작게 뚫렸던 구멍이 넓어지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되었다.

유현은 살짝 허리를 숙여 밖으로 걸어나갔다.

여유로운 발걸음.

그러나 상황은 급박 했다.

서혜빈이 만들어낸 창을 유현에게 쏟아냈기 때문이다.

방패를 제거하고, 더 많은 무기를 만들어내 창의 숫자는 더 늘어 있었다.

-유현! 위기입니다!

마치 오로라처럼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은 붉은 빛의 거대 장창.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에 유현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와….”

코앞까지 가까워진 무기의 행렬.

멍하니 감탄하던 유현은 급히 발을 튕겼다.

직후, 그가 서 있던 곳으로, 그가 도망친 경로 위로 창의 유성우가 쏟아졌다.

차례대로 바닥에 꽂히는 창들과 번번이 추격에서 벗어나는 유현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와아!”

“뭐야! 말도 안 돼!”

날다람쥐처럼 공격을 피하는 유현을 보며 서혜빈이 이를 악물었다.

시뻘게진 흰자와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내리는 코피는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서혜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무기를 만들고, 쏘아냈다.

‘결국에는 잡을 수 없는 건가…?’

서혜빈은 자꾸만 찾아오는 불길한 예감에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이미 작전은 실패했다.

공격의 적기는 유현이 막 방패 속에서 빠져나온 최초의 순간.

그 순간을 노리고 빠르게 공격했지만, 유현이 반응하고 빠져나갔다.

알아도 당할 수밖에 없는 속도.

그만큼, 유현은 빨랐다.

‘아냐, 아직 포기하긴 일러.’

바닥에 꽂힌 창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무기들이 다시 허공에 나타났다.

서혜빈은 만들어낸 무기들을 활용해 쉴 틈 없이 공격을 가했다.

적중률은 0%. 컨트롤은 정확했지만, 유현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예측해야 해.’

이렇게 꽁무늬만 따라가는 공격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유현의 뒤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그의 경로를 예측하여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한쪽으로 몰아서 도주 경로를 줄이자.’

서혜빈은 무기들을 활용해 유현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았다.

쿵!

쾅!

떨어지는 무기들을 피해 점차 구석으로 회피를 이어가는 유현.

‘지금!’

도주 경로가 직선 하나밖에 없다고 판단한 서혜빈은 여력을 모두 쏟아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기들이 동시에 떨어집니다!

그의 머리 위는 물론이고 유일한 퇴로 위로 무기들이 빠르게 쇄도했다.

서혜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맞았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위치.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

“!!!”

유현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회피보다 더 현란하고, 관성이나 반발력 같은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몸놀림이었다.

-와아아아아! 이게 뭔가요!!!

비처럼 쏟아지는 무기들 사이를 질주하는 유현.

무기마다 조금씩 다른 낙하 타이밍을 계산하고, 발을 디디며 퇴로를 만들어냈다.

‘말도 안 돼.’

서혜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움직임. 앞으로 가다가 수평으로 이동하고, 그러다가도 절묘한 타이밍에 걸음을 멈추는 유현.

팀전에서 보여줬던 스톱 무빙의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 같았다.

단순한 회피를 떠나 기이한 춤동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

서혜빈은 탄식을 뱉었다.

순식간에 의욕이 사그라들고, 짙은 패배감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렇게 해도 안 된다고…?’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며 조금씩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유현.

서혜빈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유현을 맞이했다.

“왜 그렇게 열심이야.”

유현의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그의 표정도 말투만큼이나 평화로웠다. 어딜 봐도 사지에서 살아나왔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네.”

가속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공격이었다.

그만큼 매서웠고, 날카로웠다.

“......”

서혜빈은 말없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마치 즐거운 놀이를 끝냈다는 듯한 미소.

눈앞의 남자에게 자신의 최선은 겨우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구나.

서혜빈은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쉬며 분한 감정을 가라앉혔다.

“내가 졌어.”

이제야 실감한 힘의 차이.

한서희도 신가온도 괜히 당한 게 아니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

경기가 마무리되고, 결승전의 대진이 정해졌다.

유현과 메이블의 매치.

관중들의 예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만큼 팽팽한 싸움이 예상됐다.

결승전 시작까지 시간을 남겨둔 가운데, 서동철은 경기장 지하의 대기실로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본 딸의 얼굴은 침울했고, 어두웠다.

‘충분히 잘했어.’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서동철은 딸의 노력을 인정했다.

그녀가 경기에서 보여준 무력은 과거보다 몇 배는 발전하고 성장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크게 다친 게 아니면 좋을 텐데.’

가장 우려되는 건 딸의 부상이었다.

경기 도중 흘렸던 많은 양의 코피.

무리한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왜 그렇게 무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면 좋겠다.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었는데….”

대기실로 향하던 서동철의 걸음은 모퉁이를 돌기 전에 멈춰 섰다.

울음기가 섞인 딸의 목소리.

서동철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누가 보면 계속 진 줄 알겠다.”

이윽고 들려온 건 유현의 음성이었다.

‘저놈이 왜 여기에?’

순간 뛰쳐나갈 뻔했으나 서동철은 자제심을 발휘했다. 먼저 이야기 중인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너한테 이겨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단 말이야.”

“아빠가 지면 호적 판대?”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빠가 보러 와줬으니까….”

“그렇게 이 악물고 한 것도 아빠 때문이야?”

서혜빈이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있었기에 끝까지 버티고 싶었다.

가능하면 승리도 거머쥐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라도 좀 자랑스러운 자식이 됐다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서동철은 모퉁이를 돌았다.

말을 잇던 서혜빈이 그를 발견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마찬가지로 서동철을 발견한 유현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몸을 돌렷다.

“먼저 간다~”

유현이 자신의 대기실로 들어가고.

서혜빈은 고개를 숙인 채 어색하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죄, 죄송해요.”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딸을 보며 서동철은 씁쓸함을 삼켰다.

너무나 많은 업무, 그리고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관계.

이걸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딸 아이는 잘 성장했고, 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니까.

돈이야 부족하지 않으니 부모의 역할은 다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네?”

“넌 이미 충분히 자랑스러운 내 딸이다.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서혜빈이 큰 눈을 깜빡이며 서동철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보는 감정이 담긴 눈빛.

평소처럼 차갑고 냉정하던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미안하다.”

멀어진 관계를 단번에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노력한다면, 마음의 거리도 분명 가까워지리라.

오늘은 그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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