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8화 (108/219)

108

유현의 승리로 마무리된 2라운드 1경기가 끝나고 총 4번의 대진이 이어졌다.

절반이 탈락하고, 나머지 절반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마무리된 그날의 최강자전.

“의외의 결과야.”

안칠성은 살아남은 이들의 대진표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유현, 서혜빈, 메이블 유, 오철용.

다른 이들은 그렇다 쳐도 유현이 한서희와 신가온을 이기고 올라온 게 예상외였다.

‘강하다고는 생각했어.’

어느 정도 선전을 예상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진 운이 작용했을 때의 이야기.

상대에 한서희나 신가온 같은 우승 후보가 끼어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분전하다 지더라도 꽤 선방한 결과였을 텐데.”

오히려 분투한 건 유현이 아닌 상대방이었다. 유현을 향해 공격을 쏟아내던 한서희. 유현은 회피 끝에 한서희의 목을 붙잡아 제압했다.

‘불로 뒤덮였을 때는 꼼짝없이 끝난 줄 알았지.’

옷만 조금 탔을 뿐 유현은 멀쩡했다.

엄청난 방어력.

그 몸뚱이의 특징을 하나 더 알게 됐다.

‘신가온도 마찬가지야.’

처음의 일격을 제외하고 유현은 방어에만 치중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톤파라는 무기로.

무기의 특성상 맨손 무술에 능한 이라면 쉽게 다룰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기는 무기. 그걸 자기 몸처럼 다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웬만큼 써 본 솜씨가 아니던데.’

톤파로 공격을 막아내다 빈틈을 만들어 순식간에 신가온을 제압.

그 과정에서 거친 폭력은 없었다.

안칠성은 아까의 전투를 다시 머릿속에 그려보고는 또다시 감탄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전부 막았지?”

검을 잘 다루는 현역 헌터를 데려와도 몇 번은 허용할 만한 매섭고 강한 공격. 지금 생각해봐도 의문스러웠다.

“이 정도면 우승도 할 수 있겠는데….”

우승 후보 한 사람이면 몰라도 두 사람을 연속해서 꺾었다. 그것도 무척 좋은 과정을 보여주면서.

만약 다른 참가자들이 신가온이나 한서희와 붙었다면 승패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거칠고 난잡한 싸움이 됐겠지.”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맞는 상대라면 싸움의 규모가 커지기 마련.

실제로 다른 경기들은 그런 양상을 띠었다.

반면, 유현의 전투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깔끔하고, 간결해.”

한서희와 신가온이 유현에게 도전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게임 속 최종 보스 같달까.

“......도무지 그 끝을 모르겠군.”

안칠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고 있던 대진표를 정리했다.

소리를 줄여놓은 TV에서는 한창 금일 있었던 최강자전과 관련된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아카데미에서 최강자전이 있었습니다. 다들 유현이라는 이름은 알고 계실 텐데요. 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던 신가온과 한서희가 유현에게 패배했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두 매치의 하이라이트가 송출되었다.

유현이 한서희의 불꽃을 강한 충격으로 소화한 뒤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며 이번에는 신가온과의 전투. 첫 번째 매치보다 더 박진감 넘쳤다. 그걸 증명하듯 관중들의 함성이 스피커를 메웠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등급 테스트 1등 다운 모습입니다.

이 전투를 관람한 헌터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요.

미국으로 귀화한 차성진 헌터도 SNS에서 해당 영상을 직접 리뷰하며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모으고 있습니다.

시작도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최강자전.

올해에는 더 많은 이목이 쏠린 만큼, 그 결과에도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냈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특히 유현의 매치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유현 쟤는 대체 특성이 뭐임?]

-이해가 안 되네;

댓글

-신체강화 아님?

ㄴ아무리 신체강화라도 그렇지 저게 말이 됨?

-ㄹㅇㅋㅋ 피하는 거 개지림

-무슨 이상한 무기로 뒤지게 잘 막던데

ㄴ톤파라고 경찰들이 씀.

[유현 의심한 사람 개추]

-일단 나부터

댓글

-등급 테스트 1등을 왜 의심함?

ㄴ 친척형 여자친구 삼촌 친구의 동생이 길드 스카우턴데 유현 1등이 점수 갈취였다는 썰이 있었음.

ㄴ나도 들었는데ㅋㅋ

-솔직히 유현이 한서희랑 신가온 이길 줄은 몰랐다

-몬스터랑 헌터 상대하는 건 다르니까 간신히 이기거나 질 줄 알았는데 개바르더라

SNS는 물론 커뮤니티 등에서도 그의 활약상이 언급됐다.

뛰어나지만 증명된 사실이 적은 만큼 우승 후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는 완전히 뒤집혔다.

“반응이 대단한데.”

안칠성은 미소를 지으며 커뮤니티를 닫았다.

자신의 도움 하나 받지 않은 제자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니 뿌듯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때. TV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안칠성이 고개를 들었다.

차성진이 유현의 영상을 보며 코멘트를 남긴 동영상이 자료 화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놈은 할 짓도 없나.”

차성진. 현재는 Andrew ch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헌터.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했으며, 과거 한국 아카데미 재학 및 헌터 활동 초기 시절에는 제2의 손지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헌터였다.

-그가 우승하여 세계대회에서도 얼굴을 본다면 좋겠네요.

“쯧.”

안칠성은 혀를 차고 TV를 껐다.

그와는 접점이 없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좋은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세금으로 온갖 혜택은 다 받고, 귀화한 검은 머리 외국인.

귀화 관련 뉴스가 뜰 때마다 자기가 한국을 떠날 일은 없다며 떠벌리고 다니더니만.

“현이한테 접근하는 건 아니겠지.”

인재 유출은 길드만의 갈등이 아니었다. 국가가 직접 개입하기도 하는 상황. 차성진의 귀화 역시 미국의 정부가 개입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말이 추정이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어.”

이래서 국력이 강해야 하는데.

역으로 대한민국의 길드가 미국의 대형 유망주를 귀화시키려 한다?

설령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외교적으로 어떤 꼴을 당할지 불 보듯 뻔했다.

“협회에서도 잘 관리를 해야 할 텐데.”

S등급 9명. 아카데미의 황금 세대.

이들 중 하나라도 국외로 빠져나간다면,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다.

그때와는 협회장이 달라졌고, 여러 혁신을 꾀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분일까.

“......하아.”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최강자전 2일 차.

준결승과 결승전의 날이 밝았다.

남은 대진은 총 4경기.

준결승 1경기는 메이블 vs 오철용.

2경기는 서혜빈과 유현의 대결이었다.

“와아아아아!”

어제만큼 커다란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3라운드 준결승 1경기의 시작을 앞에 둔 지금.

메이블과 오철용이 각각의 통로를 따라 필드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철용쿤! 응원하고 있어!”

“오늘은 칸나쨩도 데리고 왔다고!”

2라운드 경기가 끝난 시점 홀쭉해졌던 오철용은 어느새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 있었다.

“메이블 이겨라!”

“이번에도 보여줘!”

메이블이 포니테일을 휘날리며 자신을 응원하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옷차림은 오철용과 사뭇 달랐다.

전신에 부착된 장치들.

1라운드 때부터 그녀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한 회피 기동 장치였다.

외부 제작 기기지만, 직접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기에 규정상으로 문제는 없었다.

-자!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오철용이 순식간에 손바닥 위로 폭탄을 만들어냈다.

주먹 크기만 한 원형 폭탄.

그가 팔을 크게 휘둘러 메이블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발(發)!”

날아간 폭탄은 빠르게 메이블의 머리 위로 도달했다.

오철용은 그 즉시 폭탄을 터뜨렸다.

쾅!

폭발과 동시에 메이블이 좌측으로 튀어나왔다.

평소 그녀의 몸으로는 할 수 없는 기계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

기동 장치의 마석이 푸른 빛을 내고 있었다.

-폭탄의 영향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메이블! 곧장 전방으로 질주합니다!

마석의 푸른 빛이 일순 강해지며 속도를 증폭시켰다.

놀라운 속도로 오철용을 향해 쇄도하는 메이블. 그녀의 목적은 오직 하나. 오철용의 신체에 손을 접촉하는 것. 그게 바로 능력 사용을 위한 선행 조건이었다.

“어딜!”

오철용이 손가락 사이로 수십 개의 폭탄을 만들어 투척했다.

투척 포인트는 메이블의 예상 경로.

사방으로 날아가던 폭탄이 톡톡, 바닥에 튕기고, 데구르르르 굴러가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폭탄.

메이블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폭탄 중 하나에 도달했다.

“터져라!”

오철용의 고함과 함께 폭탄이 폭발했다.

-아아앗! 메이블의 타이밍을 예측한 정확한 폭발! 이건 타격이 있겠는데요!

사회자의 빠른 말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이 뒤엉켰다.

“철용쿤 좋았어어!!”

“화끈하다!”

오철용이 관중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두드렸다.

“내가 누구? 폭탄 마스터 오철용!”

“와아아아아아!”

“오철용! 오철용!”

그가 관중들의 반응을 끌어 모으던 사이, 검은 연기 속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어어?”

“저거 뭐야?”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곳곳에 까만 그을림이 생긴 메이블이 뛰쳐나왔다. 전신의 기동 장치가 강한 힘을 뿜어냈다.

“크윽!”

오철용이 재빨리 몸을 돌려 반응했지만, 메이블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던진 폭탄들은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뒤늦게 떨어졌고, 메이블은 단숨에 오철용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다, 다메다!”

오철용이 소리치는 것과 함께 메이블의 손이 오철용의 팔을 붙잡았다.

숨을 헉헉거리는 메이블. 곧 그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내가 이겼어.”

메이블의 능력이 발동했다.

오철용은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털썩.

쓰러진 오철용. 메이블은 능력 발동을 멈추고 그의 기력을 일부 돌려주었다. 앞으로 30분 뒤면 무사히 깨어날 것이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메이블의 승리입니다!

해설의 목소리와 함께 경기가 종료되었다.

뜨거운 함성 속에, 오철용이 실려나가고, 메이블도 퇴장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깝게 졌네.”

메이블이 무사한 이유는 단순했다.

폭탄이 터진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조금만 더 늦게 썼다면 확실하게 폭발의 영향을 받았을 텐데.

‘오철용의 실수.’

오철용의 패배가 마땅한 싸움이었다.

유현은 대기실을 나와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유현! 유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고작 하루 만에 수많은 이들을 자신의 팬으로 만든 유현.

서혜빈을 응원하는 사람들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후.”

서혜빈이 필드에 들어오는 유현을 보며 심호흡했다.

‘이길 수 있을까.’

만약 유현과 싸운다면 어떨까.

최강자전이 시작되기 전, 그런 상상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온 결론은 하나.

바로 자신의 승리였다.

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봐야, 자신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경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유현은 강하다. 한서희나 신가온, 그리고 자신보다도 더.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제대로 싸울 수는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겨야 해.’

긴장을 머금은 서혜빈의 시선이 길드 석으로 돌아갔다.

어제 남은 경기를 모두 지켜봤던 아버지, 서동철.

그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잘 봤다. 잘 싸우더구나.

-너무 무리하지 말고, 긴장하지 마라.

-넌 강하다. 상대가 누구든 겁먹을 필요 없다.

아버지가 직접 했던 말들.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지고 싶지 않았다.

설령 지더라도, 허무하게 질 수 없었다.

“이기자.”

처음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언제나 차갑기만 했고, 곁에 붙어 있던 적도 적었으니까.

지금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짙은 패배감과 함께 경기를 시작했을 테니까.

“할 수 있어.”

자신을 응원하는 최고의 원군.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부터 경기를 시작합니다!

해설이 경기의 시작을 알려왔다.

결연한 얼굴로 각오를 마친 서혜빈은 곧장 마나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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