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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7화 (107/219)

107

“...톤파?”

신가온은 유현이 꺼내든 무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들어만 봤지 쓰는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차피 주먹이랑 똑같아.’

톤파의 공격 범위는 결국 팔을 벗어나지 않는다.

‘현이가 주먹질하는 건 본 적 없는데.’

하지만 회피력이 대단하니 맨손 무술 역시 수준급이 아닐까.

신가온은 긴장을 머금었다.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을수록 방심해서는 안 된다.

‘온다.’

1라운드 때와는 달리 유현은 곧장 신가온에게 쇄도했다.

수십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주파하는 속도. 적에게 공격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오른쪽.’

신가온의 눈이 푸른 빛을 냈다.

마나로 강화된 신경이 유현의 공격에 반응했다.

따악!

나무로 제작된 두 무기가 맞부딪쳤다. 엄청난 힘의 격돌이었지만, 둘 중 누구도 멈칫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유현의 공격.

신가온은 전신의 신경을 극대화해 몰아치는 속공을 막아냈다.

‘못 따라갈 속도는 아니야.’

반격할 틈이 보였다.

신가온은 유현의 공격을 강하게 받아쳤다.

균형이 무너지며 살짝 비틀거리는 유현. 신가온은 그 순간을 노리지 않고 역공에 들어갔다.

쉬이익!

속검과 강검의 결합, 쾌도.

그 이름에 걸맞게 신가온은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검격을 몰아쳤다.

그 한 방 한 방이 얼마나 강한지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대단한데.’

유현은 신가온의 검술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누구의 공격보다도 빠르다.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어려운 속도.

지금도 간신히 막고 있는 수준이었다.

‘속도는 둘째치고, 힘이 너무 강해.’

공격을 막으며 데미지가 조금씩 누적됐다.

팔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

버틸 만했지만, 문제는 팔이 아니라 무기였다.

‘이러다 부서지겠어.’

최강자전을 위해 내구도를 강화한 무기였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아낼 수준은 아니었다.

부서지면 맨몸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 유현은 고통을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피하는 건 무리야.’

어지간한 공격은 몰라도 이런 속도의 검격은 피할 수 없었다.

일단은 막는 게 최선이었다.

-아아! 유현 선수 밀리는 것 같은데요!

“와아! 개쩐다!”

“저걸 대체 어떻게 휘두르고 어떻게 막는 거야!?”

관중들은 두 사람의 현란한 무위에 열광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 간의 치열한 싸움 같은 한 장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광경이었다.

‘진짜 작정하고 왔군.’

신가온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지난번 대련 때와는 달리 특성이 존재하는 싸움. 특성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계속 막고 있을 수만은 없는데….’

유현은 공격을 막으며 계속해서 반격할 틈을 노렸다.

하지만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검술.

만약 신가온이 판대륙에 있었다면, 판대륙에서 손가락에 꼽을만한 검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까 좀 억울하네.’

어떤 놈은 20년 깨작 노력해서 이렇게 성장하는 재능이 있는데, 왜 나는 천 년을 개고생하고 맨몸으로 이놈이랑 비비는 걸까.

‘안 되겠다.’

억울해서 참을 수 없다.

제아무리 다른 무술이나 마법을 함께 배웠다지만, 그래도 천 년인데.

‘고수의 면모를 보여줘야겠어.’

천년의 발악이 고작 천재의 노력에 패배할 수는 없는 법.

마법은 쓰지 않아 주지.

유현은 스스로 전투의 제한을 내걸며 두 눈을 번쩍였다.

‘아무리 완벽한 공격이어도 약점은 있기 마련.’

유현은 타이밍을 노렸다.

신가온의 검격은 무턱대고 쏟아지는 게 아니었다.

일정한 공격 패턴이 존재하고, 유현은 지금까지 공격을 막으며 그 패턴을 파악했다.

‘우측 상단부에서 좌측 하단부로 가로지르는 대각선 공격.’

다른 방향의 검격과 달리 몸에서 검이 아주 미세하게 떨어지는 패턴이었다. 반격을 위해 공략한다면 이 부분밖에 없다.

‘바로 지금!’

신가온의 목검이 우측 상단부로 치솟은 순간.

유현은 곧장 왼손의 톤파를 위로 뻗어 신가온의 공격을 조금 더 일찍 막아냈다.

“헉!”

힘이 어중간하게 실린 자세.

예상지 못한 포인트에서 공격을 방해당한 신가온의 균형이 한순간 무너졌다.

신가온은 검의 방향을 바로 잡으려 했지만, 유현은 그 과정에서 생긴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아아! 유현 선수! 신가온 선수를 넘어뜨렸습니다!

유현은 투우장의 소처럼 신가온에게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엄청난 힘에 뒤로 나가떨어진 신가온. 그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유현이 그의 상반신을 깔아뭉개는 게 더 빨랐다.

“크윽!”

신가온이 이를 악물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현은 허벅지에 더 힘을 주어 신가온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후, 드디어 잡았네.”

유현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어, 어떻게….”

“어떻게 반격했냐고?”

당황한 눈으로 말을 더듬는 신가온.

유현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너무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 자꾸 24가지 방향을 차례대로 공격하잖아. 그거 습관 잘 못 들인 거야.”

“......그 와중에 그걸 눈치챘다고?”

신가온은 경악했다.

쾌도. 가장 빠른 속검과, 가장 강력한 강검을 합친 검술.

누군가는 한번 막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공격이었다.

그런데 그걸 모조리 막는 것도 모자라서 무의식 속에 체득한 자신의 공격 습관까지도 파악해냈다.

대단하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하….”

신가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면서 유현과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 이게 인간인가? 싶은 의문이 샘솟았다.

“...진짜 말도 안 돼.”

신가온은 목에 힘을 풀고 땅에 완전히 누웠다.

계속 움직여보려고 시도는 하는데, 역시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건 성미에 차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꽉 조이고 있으면 답이 없다.

“끝이냐?”

“풀어주면 안 돼?”

“안 되는데.”

다시 시작하면, 유현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적어도 검술에 한해서는 자신의 신체를 뛰어넘는 능력.

지금이야 무의식적인 패턴을 노려 공격에 성공했지만, 다시 싸우면 그 패턴을 바꿀 것이다.

마법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그를 쉽게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역시 안 되지.”

신가온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질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패배가 눈앞에 다가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래도 못 이기는 건가.’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지난번 대련과는 달리 자신의 전력을 다한 싸움. 이렇게 쉽게 패배하다니, 이번만큼은 그의 자존심에도 스크래치가 났다.

“야, 우냐?”

“눈에 먼지가….”

“뭘 울고 그래, 인마. 더 노력하면 되지.”

신가온은 바닥에 누워 유현을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그렇게 강해?”

줄곧 궁금했지만, 한 번도 하지 않은 질문. 뜻밖의 질문에 유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을 오가는 숱한 기억들.

흙을 구르고, 피와 땀을 흘리고, 생사를 오가고.

그 지독한 훈련 속에서 깨달은 건 바로.

“가장 단순한 게 가장 강한 거야.”

“......”

신가온은 그 말을 하는 유현의 눈빛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뭐랄까, 과거를 향한 후회 같기도 했고, 원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지만,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가장 단순한 게 가장 강하다.”

신가온은 그 말을 되뇌었다.

평소 그의 신념과 정확히 일치하는 말이었다.

‘더 노력해야겠어.’

지금보다 더 나은 노력.

언젠가는 눈앞의 사내에게서 승리를 거머쥐고 싶었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신가온은 전투를 포기했다.

2라운드 첫 번째 경기는 유현의 승리. 두 우승 후보를 누른 파죽지세의 2연승이었다.

“......”

스파르타 길드는 침묵했다.

길드의 자랑, 신가온의 패배.

결과도 결과지만, 그 과정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건 박진주였다.

“......말이 안 나오는군.”

톤파. 전투에서 사용하는 이가 적은 이질적인 무기.

유현은 그 무기를 제 몸처럼 활용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신가온이 단 한 번도 공격에 성공하지 못할 줄이야.

‘만약 쾌도가 아니었다면….’

상대가 신가온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유현은 압도적인 기세로 상대를 압박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톤파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났다. 보여준 건 방어뿐이지만, 그게 곧 그의 공격도 탁월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나마 신가온이었기에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허.”

스파르타의 간부들은 헛웃거나 탄식했다. 1라운드 때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현을 얕봤던 그들.

그런 만큼 경기의 결과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저놈 대체 뭐 하는 놈이오?”

“분명 검술은 잘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저런 무기까지….”

“살다 살다 가온이의 쾌도를 모두 막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그들은 이미 신가온과 한 번씩 붙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유현의 실력이 더 확실히 와닿았다.

“아무리 세상이 좁다지만 이토록 가까운 곳에 가온이를 뛰어넘는 아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

“천외천. 하늘 위에 하늘이 있듯,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지.”

“재능뿐만이 아닐세.”

그에게 주어진 재능은 몸뚱이 하나.

남들보다 빠르고 힘이 세다지만, 그것만으로 무기를 잘 다루게 되는 건 아니다.

재능, 그리고 불굴의 노력.

간부들은 그 노력을 높게 사고, 유현을 인정했다.

“저런 뛰어난 전투력이 특성이 아니라는 게 여전히 믿기지가 않군요.”

“어려서부터 얼마나 노력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소.”

간부들은 서로의 감상을 주고받았다.

직접 그의 무위를 보고 나니, 신가온이 대련에서 검술로 패배했다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우리 가온이는 특성도 없이 저런 괴물과 싸우려고 했다니.”

“......부럽군.”

간부들은 유현이라는 강자와 결투한 신가온이 부러웠다.

신가온의 패배로 침울해졌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한번 싸워보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네.”

“나도.”

간부들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참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유현을 붙잡고 싸움을 걸고 싶은 마음이었다.

“안 그래도 가온이가 부탁을 하나 하던데.”

간부들의 시선이 박진주에게 돌아갔다. 박진주는 근엄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유현을 길드 식당에 데려와서 돈까스를 먹여주고 싶다더군.”

박진주가 간부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들 의견은 어떤가?”

식당.

그곳은 훈련장에 이어 스파르타 길드의 심장이자 하루의 시작과 끝인 장소. 외부인에게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스파르트의 보고(寶庫).

순간 간부들은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식당을 내주고, 싸움을 신청할 기회를 얻느냐, 아니면, 전통을 지키고 기회를 날리느냐.

꿀꺽.

저마다 긴장을 머금은 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주제는 공식 회의에서 논해야 하거늘….”

“이왕 생각난 거 말해봤네.”

하나같이 무거운 얼굴로 침음하는 간부들.

다음 경기가 시작되었지만, 그들의 고심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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