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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5화 (105/219)

105

한 차례 사고가 있었지만, 한서희의 공격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날카롭고 맹렬하게 유현을 압박했다.

하지만 길드 관계자들의 눈에 그건 더 이상 치열한 전투가 아니었다.

뜨거운 불꽃을 버텨낸 유현.

한서희의 공격 따위는 얼마든 뚫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건 그저 유현의 놀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놈 표정 좀 보시오.”

일반 관중석에 앉은 스파르타 길드원들. 관중들이 전투에 열광하는 가운데 그들은 조용히 전투를 관람했다.

“즐기고 있군.”

멀지만, 유현의 표정은 확실히 보였다.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비되어 한껏 들뜬 얼굴. 말 그대로 전투를 즐기는 중이었다.

“곧 끝나겠어.”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며 한서희와의 거리를 좁히는 유현.

유현은 계속해서 한서희의 목을 붙잡으려 했다.

한서희는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지만, 점점 한계에 치닫는 게 눈에 보였다.

“설마 한서희가 질 줄은 몰랐는데.”

뛰어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평가받던 한서희. 그녀의 실력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만큼 정평이 나 있었다.

반면, 유현은 막 두각을 나타낸 신인. 최근 유명세가 생기긴 했으나 한서희와 달리 대중 앞에서 실력을 증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서희의 승리를 점쳤다.

유현을 응원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단순한 팬심 때문이었지 실력 적으로 우세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두근거리는군.”

한서희를 가지고 노는 유현을 보며 스파르타의 간부들은 전투 욕구가 치솟는 걸 느꼈다.

유현의 속도, 힘, 거기에 검술의 귀재 신가온을 이긴 기본 검술 실력까지.

“당장이라도 붙어보고 싶은데.”

“몸이 근질근질하구만.”

그들이 뿜어대는 원초적인 본능에 주변에 앉은 관객들이 흘끔거렸다.

“엄마, 저 아저씨들 이상해~”

“쉿.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스파르타 길드가 앉은 관중석의 위층. 길드 석에 앉은 각 길드의 요인들도 흥미로운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속된 말로 거품이 아니냐는 평가까지 있었던 유현.

그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 그 평가에 동의했다. 특성은 없고, 봐줄 만한 성과인 등급 테스트조차 점수 갈취로 1위를 먹은 학생.

분명 실력은 있겠지만, 그게 아카데미의 정점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단한데….”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어.”

하지만 지금, 그 평가가 완전히 뒤집혔다.

유현의 엄청난 몸놀림에 감탄을 표하는 길드의 요인들.

한서희의 고군분투는 오히려 유현을 돋보이게 했다.

“정점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수준이야.”

“아직 우승한 건 아니지만….”

한서희를 저렇게 압박할 정도라면 우승 후보에 들어도 손색이 없었다.

“......”

한상용은 숨을 죽인 채 필드를 응시했다.

중앙 부근에서 시작된 교전은 어느새 가장자리까지 이어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필드의 벽.

한서희가 유현을 향해 공격을 몰아치고 있으니, 얼핏 보기에는 그녀가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장자리까지 몰린 건 도리어 한서희였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말은, 적어도 유현에게 통하지 않았다.

“잘 피한다 유현!”

“좋아! 확실히 압박하고 있어!”

“와아아아!”

일반인이 다수인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얼핏’ 보기에는 치열한 싸움처럼 보였으니까. 길드의 요인들처럼 전황을 파악한 이는 몇 없었다.

“불꽃을 맞아도 멀쩡한데 왜 계속 피하는 걸까요?”

스카우터의 말에 한상용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재미겠지.”

“재미요? 여기서요?”

아카데미 최강자전.

우승 시 어마어마한 보상이 뒤따르는 만큼 재미를 추구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척 보면 모르겠어? 서희는 계속 공격을 퍼붓고, 상대는 그걸 보란 듯이 피해내고. 표정만 봐도 즐기고 있잖아.”

한상용이 전광판을 가리키자 스카우터는 수긍했다.

“왜 웃나 했더니 그런 이유였군요.”

“이유도 없이 웃으면 미친놈이지.”

한상용은 다시 필드로 시선을 돌렸다.

“서희가 앞뒤 안 재고 무리하면 몰라도,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한서희.

이제 정말 끝을 앞두고 있었다.

“하악, 하악.”

한서희가 벽을 등진 채 숨을 몰아쉬며 최후의 공격을 쏟아냈다.

화마의 채찍들이 넘실거리며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모든 퇴로를 차단한 전 방향 일제 공격.

유현은 날아드는 공격을 보며 제자리에 멈췄다.

‘드디어 포기한 건가?’

아무리 유현이라도 피할 수 없는 공격.

생각해 보면 단순했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더 많은 불꽃을 일으켜서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면 진즉에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힘 조절에 몰두했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단순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대로 붙잡아서 항복을 받아내면….’

그대로 자신의 승리라는 생각에 한서희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때.

쾅!

유현은 포기한 게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아아! 불꽃이 꺼졌습니다!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중들이 함성을 드높였다.

“......말도 안 돼.”

한서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닥을 내리친 유현.

그 힘이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꽃을 진압했다.

모든 불꽃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유현이 빠져나와 지척까지 접근하는 데는 충분했다.

“허.”

한상용은 탄식했다.

유현에게 달려들던 수백의 불줄기들.

설마 한서희가 이기는 걸까, 잠깐이나마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현은 전혀 예상지 못한 움직임을 선보였고, 결국에는 한서희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어지럽다, 어지러워.”

한상용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두 눈을 감았다.

유현. 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일까.

바닥을 내려찍어 불꽃을 끄다니.

길드 본부로 데려가 신체검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서동철은 할 말을 잃은 채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길드 석으로 해설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유현 선수의 승리로 경기 종료됩니다!

***

“와아아아아!”

“대박!”

“나이스!!”

주시하와 유희연은 자리에서 방방 뛰며 환호했다.

강찬성도 손에 토토 용지를 들고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유현의 승리는 엄청난 이변이었다.

불꽃. 인류의 오래된 도구인 동시에 숙적. 그런 불꽃을 능숙하게 다루는 한서희는 세간에서 역대급 재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그녀는 지금까지 참가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유현의 패배를 예상했다.

하지만 유현은 해냈고, 관중들은 몹시 흥분했다.

“엄청난 역전이었어!”

“정말 대단했다고!”

관중들에게 이 전투는 전세에 밀리던 유현의 대역전처럼 보였다.

겉으로 보이는 데미지는 유현이 더 커 보였고, 경기의 진행 과정 역시 한서희의 공격만이 화려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왜 공격하지 않았어요?”

주저앉은 한서희는 압도적인 패배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

참가자, 그리고 소수의 고위 헌터들만이 알아차린 전투의 미묘한 흐름.

유현은 수많은 공격 기회를 활용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하게 상대의 목을 노리고 손을 뻗기만 했다.

“그럼 재미없잖아.”

유현은 웃으며 답했다.

재미. 한서희가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자신은 고작 유현의 재미를 위해서 희생되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결국, 상대를 공략하지 못한 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스스로의 부족함이 원인이 되었으니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그래서 재밌었어요?”

“응.”

경기가 시작되기 전, 유현은 마법을 쓸 생각이 없었다.

지구에는 마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그 존재가 알려진다면 복잡한 일이 생길 게 뻔하니까.

하지만 마법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한순간 그녀가 뿜어낸 강력한 화마.

반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몸이 활활 불타올랐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유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배리어 마법이라 다행이지.’

마법을 쓴 건 두 번.

불꽃으로부터 몸을 지킬 때와 쇄도하던 불줄기를 끄기 위해 강화 마법을 사용해 바닥을 내리쳤을 때였다.

“재밌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게 나쁜 실력은 아니라는 거니까.”

“그렇지. 수고했다.”

한서희는 유현이 내민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을 상당히 소진한 탓에 녹초가 된 몸. 설령 여기서 이겼다고 해도 다음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유현! 유현!”

승자의 이름을 사람들이 연호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각자가 들어온 입구를 통해 필드를 빠져나갔다.

유현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지하로 내려갔다.

오래간만에 몸을 제대로 움직여서 그런지 얼마 없던 스트레스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유현.”

대기실로 향하려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뒤를 돌아본 유현은 처음 보는 얼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뒤로 넘긴 머리. 이지적인 느낌이 드는 미남이었다.

“누구세요?”

“...나는 서동철이다.”

“누구요?”

“......”

설마 모를 줄은 몰랐는데.

서동철은 당황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생화 길드의 마스터. 그리고 아까 네가 겨드랑이에 처박았던...... 아이의 아버지다.”

“아.”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현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까 그렇게 살벌하게 쳐다보던 게 그래서였구나.

“그, 미안하게 됐습니다.”

“친구 사이에 그럴 수도 있으니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말과 달리 그의 눈빛에는 적의가 담겨 있었다.

***

“이 새끼 어디갔어.”

패배에 충격에 빠져있던 한상용은 서동철이 자리를 비운 것을 눈치채고 급히 경기장의 지하로 내려왔다.

예상과는 반대로 대단한 실력자였던 유현. 서동철은 그런 유현을 노리고 먼저 움직인 것이다.

“치사한 새끼. 이번에도 또 그 지랄을...”

한상용은 몇 년 전 서동철이 했던 악행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소나무 길드의 유망주였던 박이랑.

서동철은 그 박이랑에게 초보 헌터에게는 파격적인 길드의 간부직을 제의하며 데려갔다.

“박이랑 이 새끼도 어이가 없어. 소나무에서도 몇 년 뺑이치면 알아서 간부까지 갈 놈이 말이야.”

몇 년째 같은 내용으로 호박씨를 까댔지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얼마나 걸었을까.

저편에서 서동철의 뒤통수를 발견했다.

“야! 개눈깔 새끼야!”

유현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던 서동철은 따가운 외침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빨리도 왔군.”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한상용. 서동철은 다시 시선을 유현에게 돌렸다.

“정말 생각 없나?”

“없다니까요.”

유현은 막 서동철의 영입 제안을 거절한 차였다.

지난번 생화의 회의 자리에서 논의된 최고 수준의 혜택까지 이야기하고, 사적으로 여러 혜택을 더 추가했지만, 유현은 끝까지 거절했다.

“아쉽군. 자네라면 큰 전력이 될 텐데.”

막 옆에 도착한 한상용은 서동철을 옆으로 밀쳤다.

“반갑다, 유현. 난 소나무의 길드 마스터 한상용이야.”

유현은 상대가 다짜고짜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대응했다.

“영입하러 오셨어요?”

마치 집에 찾아온 가정 방문 영업 사원을 대하는 듯한 태도. 보통이라면 좀 더 호들갑을 떨기 마련인데.

한상용은 그의 초연한 반응에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가요, 안 가~”

유현은 잡상인을 쫓아내듯 손을 휘저었다.

“한서희한테 받은 게 많긴 한데, 그것도 다 이야기가 이미 되어 있어요.”

“야, 아니 그래도 잠깐 말이라도...”

“에헤이. 알만한 양반이 왜 이러실까. 괜히 더 떠들어봤자 입만 아프니까 가세요~ 거기, 그쪽 아저씨도 들어가시고요.”

유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대기실로 떠나갔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대우에 한상용은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그 옆에는 아저씨라는 말을 듣고 굳어버린 서동철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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