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2화 (102/219)

102

아카데미 메인 경기장에는 이명(異名)이 존재한다.

바로 카멜레온 스타디움.

기본 형태는 잔디 구장이지만, 그 용도에 따라 시설을 변경할 수 있다.

거대한 전투 필드도 그중 하나였다.

“전투 필드가 등장했습니다!”

잔디 구장이 모습을 감춘 경기장.

넓고 평평한 필드 위로 반투명한 벽이 세워졌고, 벽 위에는 천장이 덮였다.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는 바닥, 벽, 천장. 바닥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명에 가깝게 처리되어 있어 관중들의 시야에는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둥! 둥! 둥! 둥! 둥!

스피커를 통해 장내에 웅장한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중들의 가슴을 진동시키는 규칙적인 떨림. 시작도 전부터 군중의 열기가 서서히 뜨거워졌다.

“와아아아아아!”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두 선수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김필중, 이케가미.

더 커진 관중들의 목소리가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김필중 이겨라!”

“한국인의 매운 맛을 보여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스시놈아!”

“우우우우! 범죄자 자식!”

“여기서는 흙도 못 쓰는데 어쩔거냐? 얌전히 져라!”

“어차피 질 거 그냥 기권해!”

김필중을 향한 응원, 그리고 이케가미를 향한 비난.

물론 이케가미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번엔 재밌었다!”

“오늘도 힘내라! 근성 가이!”

“어차피 질 것 같은데 그래도 최선을 다하라고!”

“오이오이~! 오마에의 전력을 보여줘!”

이케가미와 김필중이 서로 거리를 좁혔다.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여긴 흙이 하나도 없네~?”

“닥쳐.”

“뒤통수 친 주제에 큰 소리는.”

“먼저 돈 보고 접근한 게 누군데?”

김필중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들켰네? 근데 그걸 이제야 알았어?”

“진작 알았지. 내가 뭣 때문에 뒤통수를 쳤겠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던 중 전광판 위로 카운트 다운이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전투를 준비하세요.

전투 시작까지 30초.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홱 몸을 돌려 거리를 벌렸다.

최강자전의 룰은 단순하다.

먼저 전투 불능 상태가 된 이의 패배. 도중에 전투를 포기하여 항복할 수도 있다.

‘저딴 새끼한테는 절대 질 수 없어.’

이케가미는 김필중에게 이를 갈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김필중이 비꼬았던 것처럼, 흙이 없는 필드에서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언제나 그게 고민이었다.

흙이 없는 장소에서는 멍청히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예선 경기에서는 경기장의 외부가 일반적인 땅이었기에 흙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은 벽, 바닥, 천장 할 것 없이 모두 특수하게 처리되었다.

외부에서 흙을 끌어오고 싶어도 끌어올 수 없었다.

‘멍청히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았어.’

이케가미는 그동안 열심히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경기장에서도 흙을 사용할 수 있을지.

그 연구는 바로 전날까지도 계속됐고, 오늘 새벽에야 새로운 능력을 깨우치는 데 성공했다.

-경기 시작합니다!

카운트 다운의 종료와 함께 사회자가 소리쳤다.

곧장 뛰어오는 김필중.

그의 입가에는 비릿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빠르게 끝내주마!”

흙이 없다면 이케가미는 일반인.

전투의 성패는 완전히 자신의 손에 달려 있었다.

“받아라!”

거리가 좁혀지자 김필중은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허공을 휘몰아치며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붕대.

이케가미에게 빠르게 가까워지며 뭉툭하던 끝이 뾰족하게 뒤바뀌었다.

씨익.

이케가미는 날아드는 공격에도 도리어 웃음을 띄웠다.

그 미소에 김필중이 움찔했다.

‘뭐, 뭐야?’

분명 자신의 압도적인 우세인데도 여유로운 얼굴. 무언가 숨겨둔 게 있는 건가 싶어 자연스레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아냐,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빨리 선수 쳐서 쓰러뜨리면 돼.’

붕대가 점차 가속했다.

타이밍을 기다리던 이케가미가 크게 소리쳤다.

“지금!”

몸을 숙이며 바닥에 손을 짚은 이케가미.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마나가 전방을 가로막았다.

“하핫!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헛수고다!”

이대로 이케가미의 몸을 찌른다면 자신의 승리.

김필중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조금의 불안감이 사라지려던 그 순간.

그의 붕대가 느닷없이 나타난 토벽에 가로막혔다.

“......뭐?”

분명 흙이 없는데, 대체 어디서 갑자기?

김필중은 당황스러웠지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케가미가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쉬이익!

토벽이 무너지며 흩어진 흙더미가 다시 하나로 합쳐져 김필중을 향해 쇄도했다.

“크윽!”

김필중은 섬유를 뻗어 간신히 공격의 궤도를 틀었다.

하지만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쉬익!

쉬이익!

김필중의 공격을 막았던 벽은 제법 두꺼웠고, 남겨진 흙은 많았다.

그 잔재로 만들어진 수많은 토창(土槍)이 그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

수많은 창을 눈앞에 둔 순간, 김필중의 머리가 하얘졌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것뿐이었다.

“시발….”

창이 그의 몸에 처박혔다.

김필중은 허공을 날았고,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허억, 허억.”

마나로 흙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술. 마나의 사용과 체력적 부담이 커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만약 김필중이 침착하게 모든 공격을 쳐냈다면, 그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내가 이겼어.’

집중하느라 멀어졌던 청각이 서서히 되돌아왔다.

이케가미는 그제야 커다란 함성을 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짧은 전투였으나 임팩트는 대단했다.

많은 이가 이케가미의 패배를 예상한 대결.

흙이 없는 필드에서 흙을 다루는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러나 이케가미는 그 약점을 이겨내고 승리했다.

“대단하다!”

“어떻게 한 거야?!”

“존나 멋있잖아~! 실화냐고!”

이케가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승리의 기쁨이 벅차올랐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힘껏 휘둘렀다.

“이겼다아아아아!”

승자의 포효가 스피커를 통해 관중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러자 그의 승리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냈다.

“우우우우! 범죄자 새끼는 빨리 내려가라!”

“어딜 큰 소리야!”

“닥치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この殺人者!(이 살인자!)”

들려오는 험담에 이케가미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참을까 말까 고민하길 잠시.

이케가미가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黙れ!僕が勝ったんだよ!(닥쳐! 내가 이겼다고!)”

그의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시끄럽던 내부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뭐라는 거야?”

“黙るべきは君だ!(닥쳐야 할 건 너다!)”

고요 속에 들려온 모국어에 이케가미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그 여자를 죽이겠다고 한 적도!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다고! 다 너희들 머릿속에서만 돌아다니는 망상이라고!”

목소리에 뒤섞인 울분.

한국어로 소리치자 그제야 관중들이 반응했다.

“헛소리하지 마!”

“저 새끼 끌어내!”

그를 향한 비난이 거셌지만, 이케가미는 굴하지 않고 계속 소리쳤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라!

남 욕할 시간이 있으면 책이라도 한 줄 더 읽어! 그렇게 멍청하니까 머저리 같은 거짓말에 속는 거잖아!!!”

이케가미가 경기장을 비추는 카메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중지를 펼쳐 과격하게 휘둘렀다.

“엿이나 처먹어라! 개똥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나는 결백하다!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고!”

그의 언행은 인터넷 중계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국가부터, 직접 관련된 일본까지.

네티즌들의 반응은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ㄹㅇ이네 검색해보니까 누가 정리해놨네

-결과도 무죄가 아니라 무혐의네; 법원 간 적도 없는 사건으로 그 지랄 한 거였음?

-俺は信じていたんだよ!(믿고 있었다고!)

-Interesting. who really believed this?

-确认后发现没有逻辑只有飞跃(확인해보니 논리는 없고 비약만 있어.)

반면, 현장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헛소리하지 말라느니, 저새끼 퇴학시키라느니. 온갖 험한 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케가미는 그런 말들을 한 귀로 흘렸다.

‘믿는 사람이 없대도 상관없어.’

그간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모든 것들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후련할 줄이야.”

이제는 부모님의 두 조국에서 몽땅 욕을 처먹게 생겼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어떤가.

진실도 밝히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사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나았다.

“휴.”

대기실에 누워있던 유현이 스마트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주 시원한 복수였다.

‘질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이겨서 다행이었다.

유현은 실시간 중계를 종료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사람들이 이케가미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증거 찾았다]

[여기 정리 잘 돼있음]

[아니; 이케가미가 피해자였네;;]

[욕 존나 했는데 미안해지누]

이케가미가 했던 말들은 사람들에게 의심이라는 싹을 심었다.

의심을 품은 이들은 증거를 찾기 시작했고, 곧 선행자들이 인터넷에 남기고 간 글을 발견했다.

사건의 수상한 점. 의심되는 점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케가미가 도리어 피해자라고 확실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리된 증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했다.

-이케가미는 결백하다. 청렴한 재수사가 필요하다.

“해냈네.”

이케가미는 자신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설령 세상이 그에게 다시 품을 내어주지 않더라도 그의 항전은 틀리지 않았다.

***

경기장 바깥에서 이케가미의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는 와중 경기장에서는 두 번째 매치가 시작되었다.

A등급과 S등급 신가온의 대결.

관중석에서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신가온 파이팅!!!!”

소수만 들어갈 수 있는 길드용 좌석 대신 일반석 단체 관람을 선택한 스파르타 길드.

주변 사람들은 구릿빛 사내들의 응원에 넘어지거나 기겁하며 도망쳤다.

“하하하.”

신가온은 길드원들을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시끄러운 경기장 안에서도 단번에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어이! 집중해라!”

상대의 부름에 신가온은 다시 몸을 돌렸다.

“후우….”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는 신가온.

그의 반대 손에는 중간 길이의 목검이 들려 있었다.

진검의 사용이 불가능한 최강자전.

그 탓에 무기를 들지 않고 싸우는 이들이 많지만, 신가온은 검을 들었다.

그에게 검이 없다면, 정상적인 전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경기 시작합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신가온은 곧장 적을 향해 쇄도했다. 상대의 특성은 바위.

자신의 몸뚱이를 바위처럼 변하게 하는 헐크 같은 능력.

“으아아아아!”

고성과 함께 상대의 모습이 뒤바뀌었다.

덩치는 몇 배나 커졌으며, 몸뚱이는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목검 따위로는 흠집도 내지 못할 것 같은 외형.

하지만 신가온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우어어!”

괴물 같은 포효를 터뜨리며 상대가 주먹을 휘둘렀다.

쿵!

바닥을 내려찍은 주먹.

신가온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한 뒤, 녀석의 팔을 밟고 빠르게 달려 몸 뒤로 훌쩍 넘어갔다.

무방비로 드러난 등판.

등 역시 바위였지만, 신가온은 검을 휘둘렀다.

“나, 나왔다!”

신가온의 특성 검술(劍術).

검을 든 채 특성을 사용하는 신가온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다.

모든 검술을 익힌 그는 마나라는 이질적인 에너지를 극한까지 활용하여 상대에 맞게 자신의 검을 바꿨다.

강검(强劍).

목검을 감싸는 푸른 빛 기운.

그의 전완근이 부풀며 한순간 폭발하듯 검이 가속했다.

빠각!

검이 등에 작렬하며 상대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착검된 부분을 기준으로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바위.

상대가 일어나기 위해 몇 번 꿈틀대더니 털썩하고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의 함성.

조용하던 길드 석에서도 몇 개의 평가가 이어졌다.

“한 방이 있군.”

“이번엔 강검인가.”

그때 저쪽에서 엄청난 고성이 들려왔다.

“역시 신가온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수 있는 목소리.

한상용은 피식 웃었다.

“대단한 양반들이야.”

스파르타 길드.

저력으로만 따지면 5대 길드에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

하지만 그들은 던전을 돌아 길드 랭킹을 올리는 것보다도 수련에 더 관심이 많았다.

“만약 저들이 들어왔다면 너희의 자리는 없었을 거다.”

“닥쳐 좀. 사사건건 시비걸지 말고.”

그 반응에 서동철이 코웃음쳤다.

-3경기는 30분 뒤! 4경기는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S등급 간의 매치 업! 한서희와 유현의 매치입니다!

쓰러진 참가자가 실려 나가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상용과 서동철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어디 한번 보자고.”

“못난 놈이라면 곧장 처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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