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1화 (101/219)

101

경기장에 올라가기 위해 모인 참가자들.

S등급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우승할 것이라며 이야기했고, 그 과정에서 서혜빈과 한서희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흥. 당신 능력으로는 최대가 2라운드일 텐데요. 우승은 꿈도 꾸지 말아요.”

“너도 똑같거든?”

“내 능력과 당신 능력의 차이를 생각해요. 우리는 근본부터 다르다고요.”

“야, 자꾸 조잘거릴 거면 그냥 올라가기 전에 시원하게 맞다이 한 번 뜨고 가라.”

“넌 조용히 해!”

유현의 제안은 무시당한 채, 두 사람은 말싸움을 이어갔다.

말싸움은 경기장 위로 올라와서도 계속됐고, 결국 유현은 참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

“둘이 좀 사이좋게 지내~”

사이좋게 유현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인 두 여학생. 두 사람은 큰 소리를 치며 발버둥 쳤다.

“야! 이거 안 놔! 놓으라고!”

“빨리 빼요! 뭐 하는 짓이에요?!”

이런 장소에서 능력은 사용할 수 없고, 힘으로 떼어내자니 유현의 실전 압축 팔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놓으면 또 싸울 거잖아. 시끄러워서 안 돼.”

실실거리던 유현은 갑자기 느껴진 살기에 고개를 돌렸다.

2층 난간.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다른 관중들의 소리에 뒤엉켜 들리지 않았다.

“마, 마! 유현! 니, 니 미칬나!”

그때, 앞서가던 한주석이 뒤를 돌아보더니 기겁하며 뛰어왔다.

“왜?”

“니, 니 뒷감당 우예 할라 그러노!”

“자꾸 싸우잖아.”

“아니, 암마 그래도 그렇제…. 와…. 근데 내 살다 살다 이런 꼴은 또 처음 보네. 이야, 신기하긴 하다.”

한주석은 두 여학생의 정수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살면서 언제 이런 꼴을 볼까.

그토록 긍지 높은 두 사람을 이렇게 다룰 수 있는 건 어지간한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 니 혹시 급전 필요하나.”

“돈이야 있으면 좋긴 하지.”

“보험 많이 들어놨제? 그거 잘못하면 보험 사기로 고소당한다. 그리고 내 볼 때는 한 10개는 들어놔야 수지타산이 맞을 것 같은디.”

서혜빈이 앞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머리가 겨드랑이에 들어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발끝은 한주석의 정강이에 적중했다.

“아악!”

“야! 떠들지 말고 얘 좀 어떻게 해봐!”

한주석이 고통에 입술을 깨물며 허겁지겁 손짓했다.

이쯤 하면 됐겠다 싶었던 유현은 거기서 겨드랑이를 벌렸다.

“아아아악!”

“......하아.”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드는 두 사람.

하지만 이윽고 이어진 행동은 똑같았다.

“너 죽었어!”

주먹을 쥔 채 달려드는 서혜빈.

한서희는 손으로 유현의 등을 때렸다.

시트콤 같은 장면이 전광판에 나오자 관중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저게 그 콧대 높던 아가씨들 맞나?”

“시작부터 아주 재밌구만!”

한층 가벼워진 장내의 분위기.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웃지는 못했다.

“버릇을 고쳐줘야지.”

“내 오늘 저놈의 목을 따야겠다.”

유현을 노려보는 한상용과 서동철.

딸처럼 애지중지하던 조카였고, 미안한 마음이 많은 딸이었다.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한 사람에게 저런 몹쓸 짓을 당하다니.

당장 자신들조차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이었기에, 두 사람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 진정하십시오.”

“그냥 학교 친구들끼리 장난 좀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과 동행한 스카우터들이 둘을 말렸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경기가 끝나면, 혼을 좀 내줘야겠어.”

“동감이다.”

한상용과 서동철은 처음으로 합심했다.

***

최강자전의 시작은 대전 상대 추첨이었다.

전광판 위로 토너먼트 표가 나타났다. 지난번처럼 한 명 한 명씩 뽑는 게 아닌, 동시에 12개의 매치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대전 상대가 결정됩니다!”

“와아아아!”

“빨리 눌러라!”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 속에서, 사회자가 버튼을 눌렀다.

곧 빈칸에 동시에 이름이 새겨졌다.

하지만 물음표로 표시되어 확인할 수 없었다.

“아아!”

“무슨 장난질이야!”

“빨리 공개해!”

대진표는 오늘 경기에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할 거라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뛰어난 능력자들 간의 대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열어라!”

“열어라!”

관중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쳤다.

“여러분! 보고 싶습니까!”

“네!”

간을 보던 사회자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곧 대진표를 가리고 있던 물음표가 동시에 사라졌다.

한순간 조용해진 경기장.

대진표를 읽던 사람들이 곧 한 부분에서 일괄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와!”

“유현과 한서희가 붙는다!”

1라운드의 유일한 S등급 매치 업.

다른 대진은 모두 S등급 VS A등급이거나 A등급 간의 대결이었다.

“아아! 1라운드부터 S등급 간의 대결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우승 후보 한서희와 팀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유현입니다!”

참가자의 절반이 A등급인 최강자전.

모든 S등급이 A등급을 만나는 경우의 수 역시 존재한다.

본선까지 올라온 이들이니, S와 A의 차이는 미비하겠지만,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떨어지는 건 사실.

그래서 다들 S등급 간의 대전에 환호성을 질렀다.

심지어 그 대전이 바로 유현 vs 한서희. 경기장의 분위기는 단번에 후끈 달아올랐다.

“와아아아아아~!”

“자, 여러분! 그럼 정각에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관중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선수들은 경기장의 지하로 내려갔다.

한서희는 유현의 뒷모습을 흘끗였다.

긴장되는 자신과는 달리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필이면….’

유현과 1라운드부터 만나게 될 줄이야. 다른 이들은 몰라도 한서희는 유현을 가장 성가신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유현도 뒤를 돌아보았다.

잔뜩 긴장한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다시 몸을 돌린다.

“잘 해보자는 건가….”

한서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기실로 향했다.

유현도 마찬가지로 대기실로 향하던 중, 이케가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케가미의 경기는 1경기.

개막전이었다.

“오늘로 확실해지겠네. 누가 더 S등급에 어울리는지.”

가까이 가보니 이케가미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상대는 지난 번 공용 휴게실에서 이케가미의 멱살을 붙잡았던 그놈이었다.

“......”

뭐라 계속 이야기하려던 녀석은 유현을 발견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이케가미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

어색하게 인사하는 이케가미.

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게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쟤 저번에 그놈이지?”

“응. 내 상대야.”

“아, 쟤가 김필중이야?”

이케가미의 1경기 상대는 A등급 김필중. 등급 테스트 당시에도 봤었는데, 이름은 처음 알았다.

“능력이 붕대였나.”

“붕대라기보다는 마나를 섬유로 바꿀 수 있어. 실을 만들 수도 있고, 카펫처럼 큰 것도 가능해.”

섬유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고 다루는 능력. 흙을 다루는 이케가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길 수 있냐?”

“글쎄. 쉽진 않을 것 같아. 쟤도 등급 테스트에서 포인트는 거의 다 모았었으니까.”

“아, 맞아. 네가 쟤네 포인트도 다 먹었지.”

“......너도 먹었잖아.”

“에이, 너랑 나랑은 입장이 다르지. 내가 먹은 건 전리품. 네가 먹은 건 친구들 뒤통수친 결과물. 솔직히 화날 만도 해.”

이케가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나도 나쁜 놈은 맞아. 그런데 저놈들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뭐? 왜?”

“넌 친구가 뭐라고 생각해?”

친구의 의미.

누군가는 한참을 생각하겠지만, 유현은 금방 답했다.

“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

“......무슨 전쟁광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하네.”

“너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그놈들처럼 돈만 보고 오는 놈들은 아니야.”

“돈?”

“부모님이 두 분 다 헌터셔서 집에 돈이 많거든.”

처음 아카데미에 전학왔을 당시.

초기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며 그에게 다가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케가미 역시 그때는 엇나가기로 작정했던 때였던지라 꽤나 막 나갔었다.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범죄자니, 살인자니 그러길래, 괜히 스트레스받느니 진짜 나쁜 놈처럼 행동하려고 마음먹었었어.”

“터프하네.”

“아무튼, 그렇게 지내는데 걔네가 갑자기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온 거야.”

이케가미는 그렇게 다가오는 이들을 굳이 막지 않았다.

평소에 까칠하기는 했어도 다가오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는 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먹을거리였지. 지갑을 안 가져왔는데 식당에서 뭣 좀 사달라, 나중에 갚을 테니 돈 좀 빌려줘라. 이런 식이었어.”

“돈이 그렇게 많아?”

“용돈을 꽤 많이 받았어. 모자라면 부모님한테 말해서 더 받기도 했고.”

“부모님한테 삥을 뜯네.”

이케가미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그놈들이 돈 때문에 다가온 줄은 몰랐어.”

“그래도 계속 돈 가지고 수작부렸으면 알아챘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부모님이 용돈을 계속 주시더라고. 아무래도 그렇게 생긴 친구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케가미는 등급 테스트에서 시계를 선택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냈다.

그런 관계를 더 유지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잘했네. 그게 무슨 친구냐. 돈줄이지.”

“맞아.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게 나은 것 같아.”

“그래놓고 아까 와서 큰소리친 거야?”

“제 딴에는 억울했나 봐. 보통 가해자들은 그렇잖아. 자기가 무슨 짓 했는지도 모르는 거.”

말을 잇던 이케가미는 속으로 화를 삭이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길 수 있겠지?”

“그런 거 말고 그냥 하나만 생각해. 네가 복수할 상대들. 오늘 여기서 지면 평생 되갚을 날이 없을지도 몰라.”

“복수….”

단어를 곱씹던 이케가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친구랍시고 자신을 이용해먹었던 놈과의 경기이자 최강자전의 개막전.

절대 질 수 없다. 패배해선 안 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현장이다.

그중에서는 고국의 사람들도 있을 테고, 자신을 욕하며 매도하던 이들도 분명 존재할 터.

진실을 추구하는 대신 거짓을 말하고 귀에 담던 이들, 믿음을 배신했던 고국의 친구들, 더불어 돈만 보고 다가오던 이들까지.

모두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한 방 먹여 줄 거야.”

이건 단순히 승패가 걸린 싸움이 아니었다.

삶이 담겨 있고, 그간의 고통이 누적되어 있으며, 분노가 축적된, 한 인간의 자존심과 긍지 그리고 인간성이 걸린 전투.

여생이 달린 결전(決戰)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

고작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이케가미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비장한 표정에서는 투지가 느껴졌으며, 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가 겪은 일도, 감정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현은 투지를 불태우는 이케가미의 마음은 알 것 같았다.

‘복수는 자신을 지키는 행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

그건 유현이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케가미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잘해라.”

한마디를 던지고 유현은 몸을 돌렸다. 잘하라는 응원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미 싸움을 각오한 이에게 걱정이나 잔소리, 열심히 하라는 말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길게!”

이케가미의 고성이 귓전에 닿았다.

멈칫한 유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다 네 덕분이야! 고마워!”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야! 아직 경기 시작도 안 했어!”

“그래도 고맙다고! 너도 한서희 이겨!”

유현은 불안함을 느끼며 다시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보통 만화에서 보면 저러다 지던데….’

아니겠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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