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00화 (100/219)

100

시간은 흘러 최강자전 당일.

국민에게 지탄받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모든 좌석이 매진됐다.

토요일, 일요일. 주말 양일 전석 매진. 이틀에 걸친 일정인 만큼 아카데미 근교 도시에 있는 숙소들의 예약도 가득 찼다.

-오늘이야말로 아카데미의 최강자가 누군지 결정이 됩니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최강자전의 소식을 전했다.

-유례없이 많은 S등급이 나온 황금세대. 과연 누가 우승을 차지할까요?

진행자의 물음에 다른 출연자가 웬 패널을 꺼냈다.

최강자전 예상 순위를 대중으로부터 조사한 결과였다.

-사전 투표 결과 1위는 한서희 양이었습니다.

-아, 엄청난 득표율이네요. 이건 아무래도 실력도 실력이지만, 팬심이 반영된 결과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한서희 양은 다른 재벌가와는 달리 활발한 sns 활동으로 친근감이 있으니까요. 다음으로 2위는….

순위가 하나씩 발표되고, 중하위권에서 사회자가 탄성을 뱉었다.

-오, 이번에는 최근 화제가 된 학생 중 하나군요.

7위. 유현.

-유일하게 팀전을 끝낸 팀이었죠?

-맞습니다. 특히 유현군의 스톱 무빙은 정말 대단했죠.

12조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부정부패조차 막지 못한 유현의 질주. 그리고 여러 논란을 가진 왜인 이케가미. 열광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조였다.

-둘 다 통과한 건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최근 이케가미군이 겪은 사건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는데요.

-맞습니다. 여배우 살해 협박 사건이었죠? 일본 현지에서는 자국에서 퇴학당한 학생이 외국 아카데미에 다녀도 되는지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또 살인 미수의 범죄자라는 소문도 있는데요. 이건 제가 좀 찾아보니까 사실이 아니더군요.

TV에서는 연신 아카데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해댔다. 날이 날이니만큼 특집으로 편성된 탓이었다.

“......후.”

이케가미는 한숨을 쉬며 TV를 껐다.

저번보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오늘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을 타고 고향까지 흘러간 소식들. 언뜻 봤지만, 당연히 반응은 좋지 않았다.

“...됐어. 신경 쓰지 말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게 사실의 전부다.

주변에 그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거짓말이라며 소리치는 이들에게 기죽을 필요 없었다.

-최강자전 참가자들은 정해진 시간까지 경기장 지하 대기실로 모이기 바랍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송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기숙사에서 나와 경기장으로 향했다.

서혜빈도 일찍이 기숙사를 나와 경기장을 향해 걸었다. 평소라면 시간에 맞춰 셔틀을 탔겠지만, 머리가 조금 복잡하여 걷고 싶었다.

“하아.”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바로 어제, 아버지가 직접 참관을 하러 온다고 소식을 알려온 탓이었다.

“잘할 수 있겠지.”

처음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국내에 들를 계획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조금 긴장을 누그러뜨렸는데….

‘분명 좋은 일인데….’

좋은 일인데,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유야 뻔했다.

그동안 아버지 앞에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팀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직접 보러 온다고 하니 자연히 생각이 많아졌다.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쩌지 등.

“끄으응.”

끙끙 앓던 바로 그때.

힘없이 늘어진 그녀의 어깨 위로 누군가 손을 올렸다.

“야.”

“꺄아아아악!”

기겁하며 앞으로 달려가는 서혜빈.

어느정도 멀어지고 나서야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유현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공포 영화 찍냐?”

“기척이라도 내던가!”

“계속 불렀어, 인마. 지가 못 들어놓고는.”

서혜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가? 하고 중얼거렸다.

“어디에 정신이 팔렸길래 바로 뒤에서 불러도 못 듣냐?”

“......그런 게 있어.”

“경기장 가지? 같이 가.”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걸었다.

아침에 나온 최강자전 뉴스 특집 이야기, 대전 상대는 누가 될 건지, 예상 순위는 어딘지 등.

여러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가 유현은 아까 전 서혜빈의 상태를 떠올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아까는 왜 그러고 있었냐? 무슨 고민 있어?”

“……그게 있지.”

잠시 고민하던 서혜빈은 유현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라도 이야기해서 부담감을 내려놓고 싶었다.

“이번에 아빠가 최강자전 구경하러 오신대.”

“잘됐네. 소원 이룬 거 아냐?”

“소원까지는 아니었어.”

“좋은 일은 맞잖아.”

“그렇긴 한데…. 아빠가 본다니까 조금 부담스럽네….”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었다.

“부담스러울 게 뭐가 있는데? 나 같으면 두손 두발 다 벌리고 환영하겠다.”

품까지 내어드릴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부모님은 오늘도 가게 문을 여신다.

“야, 그건 너네 집이나 그런 거고...”

“말해봐. 왜 부담스러워?”

“난 아빠 앞에서 뭐 해본 적이 없어서. 괜히 실수하면 어쩔지 걱정돼.”

유현은 짐짓 고민하는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잠시간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럴 때는 확실한 게 있는데.”

서혜빈의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유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듣고 싶어?”

“뭔데?”

“진짜 듣고 싶어? 상처 받을 수도 있어.”

서혜빈이 미간을 찌푸렸다.

“빨리 말해봐!”

“괜히 아빠 의식하다가 실수해서 1라운드에서 떨어지면 사람들한테 놀림 받고 아빠한테는 무시당할걸? 고작 그것밖에 못 하냐면서.”

난데없는 험담에 서혜빈의 표정이 굳었다.

유현은 그녀를 보며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저게 S등급이냐며 의심하겠지. 그러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전부 바닥으로 떨어지고, 비관을 이기지 못해 아카데미를 그만두게 될지도 몰라. 헌터? 헌터 같은 소리 하네.”

“......”

“더 해줘?”

서혜빈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유현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이른바 충격 요법.

최악의 수를 제시하여 부담스럽던 요소를 적당한 긴장감으로 바꿔버렸다.

“어때, 좀 낫냐?”

“......기분은 나쁜데 마음은 좀 편해졌네.”

“다 너니까 하는 말이야.”

만약 어중간한 실력이나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유현의 말에 멘탈이 부서졌을 것이다.

하지만 서혜빈은 높은 에고와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

유현은 그녀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단단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아, 맞다. 오늘 동생 온다고 했는데.”

유현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서혜빈에게 말했다.

“나 먼저 간다.”

서혜빈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유현이 땅을 박차고 저 위로 사라졌다.

서서히 작아지는 그를 보며 서혜빈이 한숨을 쉬었다.

“못된 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불만을 중얼거리면서도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 아까보다는 낫네.”

한결 가벼워진 마음.

서혜빈이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

경기 시작까지 앞으로 1시간.

경기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나무의 길드 마스터 한상용도 전망 좋은 길드 전용 좌석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마스터, 오늘 중점적으로 볼 인물은….”

“나도 알고 있어.”

소나무 길드의 스카우터 팀장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유현은 범위 외입니다. 특성도 없고, 점수 갈취로 1등을 먹은 아이를 마지막 선택까지 끌고 온 건 전적으로 아가씨의 고집 때문이니까요. 유망주는 장기전입니다. 아시겠죠?”

“그냥 슬쩍 보기만 할 거야.”

정말 슬쩍 볼 생각으로 왔다.

대체 그 아이가 뭐길래 논리적이던 조카가 그렇게나 직감을 부르짖었을까.

“만약 그 아이가 서희 말대로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면, 우선 영입 대상으로 꽂아도 상관없는 건가?”

“......상관은 없는데 가능이나 할까요? 그 아이의 실력은 둘째치고, 애초에 길드 들어오는 것도 싫다고 하던데.”

“싫으면 마는거지.”

길드에 들어오는 건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마음.

길드 측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지만, 그래도 싫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매치 업은 아직인가?”

“조금 있으면 추첨할 것 같습니다.”

한상용은 경기장을 쭉 훑어보았다.

1층을 가득 메운 사람들.

길드용 좌석이 위치한 2층 역시 사람들로 빼곡하다.

“옛날 생각나네.”

한상용은 과거를 떠올렸다.

그 역시 아카데미를 졸업한 헌터.

최강자전도 그가 거쳐온 교육 과정 중 하나였다.

“마스터 졸업할 때면 그때 그 사람 있던 시기 아닙니까?”

“맞아. 그놈과는 꽤 친했었지.”

“정말입니까?”

“그래. 그때는 손지성처럼 한국을 세계에 알릴 헌터가 되는 게 꿈이라고 자주 말했었어.”

“......흥미롭네요. 그런 사람이 귀화를 선택하다니.”

“뭐, 사정이 있겠지.”

잡담을 나누던 도중, 비어있던 한상용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웃으며 떠들던 한상용은 불현듯 음험한 기운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옆으로 돌아갔다.

“......”

자리에 앉으려던 서동철은 멈칫했다.

어색한 침묵 속에 교차하는 시선.

상당히 당황했는지 두 사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네가 왜 여기에….”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서동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한상용도 헛기침하여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스카우터가 한상용의 귓가에 속삭였다.

“죄송하기는 무슨.”

소나무와 생화.

5대 길드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두 길드는 흔히들 말하는 라이벌 관계였다.

순위를 다투는 것은 물론, 던전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기도 했고, 영입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가 있기도 했다.

‘하필 이놈이 옆에 올 줄이야.’

한상용은 서동철을 응시하며 속으로 뇌까렸다.

길드용 좌석은 길드에 따라 아카데미에서 랜덤하게 배분한다.

지금 이렇게 나란히 앉은 건 누군가의 의도가 아니라 단순한 우연이었다.

“또 도둑질해가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각오해라.”

한상용의 경고에 서동철이 코웃음쳤다.

“도둑질이라니. 우리는 제안만 했을 뿐. 받아들인 건 박이랑 본인이다.”

“유망주에게 간부직을 제의하는 대형 길드가 세상 어디에 있는데? 게다가 길드 실습까지 모두 마친 학생에게 접근하는 건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생각 못 해봤냐?”

“우리는 제의했을 뿐이고, 선택은 박이랑이 했다. 붙잡고 싶었으면, 우리와 경쟁했어야지.”

몇 년 만에 만난 악연.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이곳에 온다는 걸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생각난 김에 물어나 보겠다. 대체 이번에는 왜 참가했지?”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본래 길드 마스터가 최강자전에 직접 관람을 하러 오는 일은 드물다.

특히나 5대 길드 같은 대형 길드라면 더더욱.

“내가 먼저 물었으니 답해라.”

“닥쳐.”

만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으르렁거렸다.

두 길드의 스카우터는 노심초사하며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랐다.

“욕부터 하는 말버릇은 여전하군. 고치는 게 좋을 거다.”

“네 눈이나 고쳐라. 음침하기 짝이 없어서는.”

그때, 관중들의 함성이 커졌다.

참가자들이 대진 선발을 위해 경기장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참가자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서동철은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장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서혜빈,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유현이었다.

“저놈이 유현인가?”

“맞습니다.”

“생각보다 허우대가 있군.”

마찬가지로 한서희를 한 번 훑었다가, 유현으로 시선을 옮긴 한상용.

그가 옆에서 들려온 유현이라는 이름에 홱 고개를 돌렸다.

“유현이 목적이야?”

서동철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입을 열었다.

“움찔거리는 걸 보니 네놈들은 유현이 목적인가 보군.”

“......”

“흥. 멍청한 놈들. 대체 유현이 보여준 게 뭐가 있지? 남의 점수를 갈취하여 얻은 등급 테스트 1등? 아니면, 특성도 쓰지 않은 신가온과 팽팽하게 맞붙었다는 이야기? 고작 그 정도밖에 증명되지 않은, 특성도 없는 유망주라. 너희에게 딱 어울리는군.”

서동철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말을 쏟아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상용의 반응을 살폈다.

만약 놈들이 유현에게 진짜 가치를 느끼고 있다면, 필히 발끈할 만한 말들. 상대가 한상용이라면 반드시 그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하지만 한상용은 반응이 없었다.

거기서 서동철은 결론을 내렸다.

“답이 없는 걸 보니 그저 그런 놈팽인가 보군.”

“......인정할게. 네 말대로 유현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없어.”

“그럼 그동안 했던 투자는 뭐지? 집을 사주고, 유현의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짓 말이다.”

한상용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역시 한서희가 그런 일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행동의 근거가 고작 ‘직감’이라는 것도.

“내가 한 일 아니야. 정확히는 내 조카가 한 일이지.”

“한서희 말인가? 그 아이가 왜?”

“난들 아냐. 직감이라는데 걔가 직감으로….”

이야기하던 한상용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그가 앞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일으키더니 입장하는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야! 너 뭐야! 뭐 하는 짓이야!”

“무슨 경우 없는….”

서동철이 한상용을 따라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도 한상용이 보던 것과 똑같은 풍경이 들어왔다.

유현의 어깨 사이 겨드랑이에 끼인 두 사람. 하나는 한서희였고, 하나는 빨간색 머리를 가진 자신의 딸….

“이, 이...!”

서동철이 벌떡 일어나며 노호했다.

“이 몹쓸 놈! 지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거냐!”

음성에 담긴 마나가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1층에 있던 관객들도 부담을 느낄 강한 에너지.

그러나 정작 그 타겟이 된 유현은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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