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98화 (98/219)

98

찾아온 경찰은 양동길을 연행했다.

손지현은 사건이 조용히 진행되기를 원했으나 경찰서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관련 사실은 익명에 제보로 언론사에 흘러들어갔고, 곧 인터넷에 대서특필됐다.

[아카데미 부원장 양동길, 뇌물 수수정황 포착.]

[느닷없는 팀전. 알고 보니 양동길의 복수를 위한 계획?]

[아카데미 측, 다른 아이들은 모두 피해자. 뇌물 공여자 공개 예정 없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많은 사실이 언론을 탔다.

양동길이 그동안 무슨 짓을 했고, 이번 팀전은 왜 기획되었는지.

그리고 팀전에서 유현의 코스가 다른 이들에 비해 몇 배는 어려웠다는 사실까지도.

-유현 코스가 제일 어려웠다는 데 사실임?

-클리어도 12조밖에 못했잖음.

-ㄷㄷ 남들은 일반 난이도로 클리어도 못하는데 혼자 하드코어로 플레이해서 클리어까지한다고?

-ㅈㄴ멋있네

팀전을 분석하는 영상도 동영상 사이트에 업로드됐다.

[유현이 사용했던 B코스. 영상 보면서 직접 비교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최근 화제가 되는 유현 영상을 분석해봤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11조가 통과한 B코스를 보면 장애물이 없거든요? 근데 유현이 사용하는 B코스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모든 구간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팩트를 짚어주는 영상은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

기사로만 접했던 사람들은 영상을 확인하고 더욱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댓글

-와, 미쳤네;

-혼자서 다른 대회 한 수준인데?

-보면서도 어케한 건지 모르겠다

유현의 활약을 극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팀전 자체에 의문의 목소리를 던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팀전 없애라 그냥;

-최강자전인데 팀전이 왜 필요함?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이건 좀 심하네

일이 일파만파 커지며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졌다.

팀전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부터, 이미 진행된 팀전도 그냥 무효화 하라는 주장까지 이어졌다.

아카데미로 온갖 항의가 쏟아졌고, 상층부에서는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렸다.

[아카데미 최강자전 팀전 폐지 발표, 기존 진행된 팀전은 무효화]

팀전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은 유현과 이케가미 두 사람뿐이었기에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폐지 결정에 동의했다.

유현 역시 아카데미 측에 보상을 받는 대가로 무효화에 동의했다.

“......그래서 받은 게 그거야?”

상위 클래스의 기숙사동.

그 앞에 새롭게 세워진 인공 암벽등반 시설. 웃통을 벗은 유현이 손에 분진을 바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해볼래? 은근 재밌다.”

“아니…. 난 됐어.”

서혜빈은 질색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웬 흉물이 들어서나 했는데 그게 유현이 팀전 폐지에 동의를 하고 받은 보상이었다니.

심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만약 유현이 팀전 성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팀전이 무효화 될 일도 없었을 테고 최강자전 순위 경쟁에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했을 테니까.

일종의 1등을 위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이거 근데 너무 높지 않아?”

“이 정도는 돼야 재밌지.”

30m는 되어 보이는 높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이게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

서혜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계속 보고 있을 거야? 볼일 있어서 온 거 아냐?”

유현이 서혜빈에게 물었다.

서혜빈은 짐짓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 길드에서...”

유현이 서혜빈의 앞으로 손사래를쳤다.

“길드 이야기는 하지 마. 안 그래도 전화 엄청온다.”

“......역시 그렇구나.”

팀전의 활약으로 유현의 유명세는 더 높아졌다.

그간 학생들을 통해서만 접촉해오던 길드들이 이제는 유현에게 직접 적으로 컨택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전화는 물론이고, 편지까지.

심지어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부모님의 가게에 찾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누가 내 번호라도 뿌리나?”

“그거야 뭐. 몸집 큰 길드면 알아내는 거 일도 아니니까.”

“에라이, 휴대전화를 없애던가 해야지. 아무튼, 길드 이야기는 금지야.”

“그래~ 알았다 알았어.”

입술을 삐쭉이던 서혜빈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유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데. 뭐가 또 남았어?”

홱- 고개를 돌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서혜빈.

곧 한 걸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어제 아빠한테 전화 왔다?”

“오.”

“등급 테스트 잘했대. 팀전도 무효화 되긴 했지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하셨어.”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더 근성을 가지라는 잔소리였을 뿐. 물론 서혜빈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잘됐네. 잘 지내니까 얼마나 좋냐.”

서혜빈이 뒷짐을 지며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불렀다.

“고맙...다?”

서혜빈이 허공을 바라보며 새침하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말로만?”

“......필요할 때마다 만화책 빌려주면 됐지. 내 방 도서관 아니거든?”

유현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농담이지. 신간만 잘 채워놔.”

“야! 도서관 아니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고받는 농담이 싫지는 않은지 서혜빈도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슬슬 가라. 벽 좀 타게.”

“안 그래도 갈 거거든.”

서혜빈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울타리 바깥으로 나갔다.

유현은 곧장 맨몸으로 인공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직선코스를 시작으로 울퉁불퉁한 리드 코스까지.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서혜빈은 그 날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마치 거미 같은 움직임.

어두운 밤에 본다면 정말 거미가 아닐까 착각할 수준이었다.

“와......”

서혜빈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움직일 때마다 도드라지는 근육의 형태. 전완근이 팽창하고 광배근을 비롯한 크고 작은 등의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혜빈은 문득 호흡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왜인지 심장 박동이 조금 커진 것 같기도 했다.

“......크흠.”

서혜빈은 얌전히 몸을 돌렸다.

열이 올라 화끈해진 얼굴을 손으로 식혔다.

그날 밤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유현의 등이 떠나지 않았다.

***

양동길의 부정부패 사건은 빠르게 일단락됐다.

본인의 입으로 모든 범행을 불었고, 그 증거들도 명백했기에 질질 끌 이유가 없었다.

양동길은 아카데미에서 해고당했고, 이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었다.

“못해도 10년은 썩겠지.”

유현과 이케가미는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그간 사건의 수습을 위해 이루어졌던 며칠의 임시 휴교가 오늘로 끝났다.

“10년이라...”

“적냐?”

“적지. 우리 부모님한테 돈 뜯어낸 거 생각하면 10년은 더 썩어야 하는데.”

이케가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양동길은 그동안 입학과 재학을 대가로 상당한 거액을 요구했다.

아무리 돈 잘 버는 헌터라지만, 적은 돈이 아니었던 데다가, 힘들게 일한 돈을 그대로 상납하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이 돈 줄 테니까 나 좀 조져달라는 부탁을 해?”

“......”

이케가미가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에 유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몇 차례 사과받은 일이지만, 이케가미를 놀리는 데 이만한 주제가 없었다.

“농담이야, 인마.”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그 이야기는 절대 농담으로 못 받아들여….”

“그럼 나중에 또 써야겠네.”

“아, 제발.”

유현이 낄낄거리며 웃던 그때.

앞문과 뒷문이 동시에 열리며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사이에는 안칠성도 있었다.

“휴, 안 늦었구마.”

“헉, 헉.”

며칠 만의 등교거늘, 그 짧은 시간 만에 생활 패턴이라도 바뀌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지각 임박자들의 숫자였다.

“자, 다들 앉아라.”

안칠성은 출석부에 아이들의 등교 여부를 체크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아카데미에 문제가 좀 있었다.”

언론의 보도를 타며 모두가 사건을 알게 됐다.

하지만 짧게나마 언급하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안칠성은 그 사건을 입에 담았다.

“다들 미안하다.”

사실상 모두가 피해자인 사건이었다.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도, 참가한 학생들도.

그 역시 선생으로서 죄책감을 느꼈다.

“선생님이 머선 잘못이 있다고 사과합니까. 그냥 사고 아입니까!”

한주석의 말에 안칠성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라도 말해주니 고맙구나.”

안칠성이 유현과 이케가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두 사람.

이미 몇 번이나 사과를 했지만, 안칠성은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시선을 의식한 유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요?”

“네가 괜찮대도 편하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지.”

“그럼 집문서라도 넘기시던가. 원래 사과는 돈과 마음이 함께 따라야 하는 건데.”

표정이 굳는 안칠성을 보며 유현은 농담이라고 부연했다. 사실 반은 진심이었다.

“쉬는 동안 최강자전의 일정이 다시 잡혔다.”

연기되었지만, 정확한 소식은 없던 최강자전.

아침이라 피곤이 깃들어있던 몇몇 아이들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는 소식이었다.

“이번 주말이다.”

앞으로 나흘 뒤, 최강자전이 다시 열린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행해졌던 대회와 같은 1대1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외부에서 많은 질타를 받고 아카데미 내적으로 여러 변화를 도모했다.

가장 우선되는 건 학생의 인권.

늘어난 휴식은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변화였다.

“자, 그럼 바로 수업 들어가기 전에.”

안칠성이 이케가미를 돌아보았다.

이케가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이케가미가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는군.”

모두의 시선이 교탁에 선 이케가미에게 향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정하게 내린 머리카락. 사건을 겪기 전 본래 이케가미가 유지하던 헤어 스타일이었다.

이케가미는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미안했다.”

이케가미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사과였다.

이어서 내막을 설명했다.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고, 왜 그토록 모나게 굴었는지 등.

이야기가 끝나고, 이케가미가 겪은 사건을 알고 있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완전 미친놈들 아니야?”

“와, 금마들 진짜 사람이가? 우예 그러노?”

“그동안은 그냥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런 뒷사정이 있었군요.”

아이들의 반응에 이케가미는 도리어 얼떨떨했다.

“...믿어 주는 거야?”

그간 쌓아온 이미지 때문에라도,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도 의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만큼 이케가미의 이야기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당연히 믿지!”

조용히 앉아 있던 메이블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왜 진작 말 안 했어!”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된다는 듯 화내는 메이블.

진실을 알면 나올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만, 그동안 이케가미에게는 그런 반응조차도 머나먼 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토록 정상적인 반응에 참아왔던 감정이 한순간 울컥하며 치솟았다.

이케가미는 아이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

교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따금 메이블이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가만히 아이들을 지켜보던 안칠성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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