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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97화 (9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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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전이 한창인 와중, 경기장을 떠난 안칠성이 향한 곳은 아카데미 본부 건물이었다.

주말이라 텅 빈 건물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안칠성은 정적을 가로질러 본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커다란 문 앞에 멈췄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나이가 지긋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안칠성은 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적으로 꾸며진, 그리 넓지 않은 내부. 백발의 노인이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책상머리에는 원장 손지현이라고 적힌 명패가 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원장 손지현은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예리한 인상은 주름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S등급 아이들은 어떤가요? 괜찮나요?”

“아, 예. 착하고 말도 잘 듣습니다.”

“F 학급도 오래 맡았으니 그쯤이면 됐고, S등급은 당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했어요.”

“아... 그래서 저를...”

갑자기 S등급을 맡게 된 건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별일 아니면 전화로 말했어도 될 텐데.”

“아, 그게 말입니다.”

안칠성이 품속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부원장 양동길의 부정을 고발하려고 합니다.”

“......”

침묵이 흘렀다.

손지현의 표정이 굳으며 방안의 기류가 무거워졌다.

안칠성은 손지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옛날에도 이랬었죠.”

손지현은 과거의 사건을 떠올렸다.

물증만을 가지고 양동길을 고발했던 안칠성.

선생의 비리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물증이 없는데도 수사에 착수했다.

아카데미를 한참 동안 뒤집고 엎은 끝에 나온 결론은 무혐의.

뇌물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

“그때 그건 제 실수였습니다.”

안칠성은 양동길을 회유했다.

학부모에게 돈을 돌려주면 그냥 눈감고 넘어가겠다고.

그게 악수였다. 양동길은 돈을 꿀꺽한 것은 물론,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당신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거라는 게 아닌 건 알아요. 분명 조사로 밝혀내지 못한 진실이 있었겠죠.”

“......”

“그렇다고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만약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단순 좌천으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허위 신고로 사안이 커졌던 만큼, 안칠성은 선생직을 박탈당하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손지현의 대처 덕분에 F등급 선생 자리로 물러나는 데 그쳤다.

“그때 일은 죄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칠성이 그녀의 앞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까요.”

“이게 뭐죠?”

안칠성은 대답하는 대신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곧 그가 부원장실 앞에서 녹음했던 양동길과 이케가미의 대화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재생이 끝났다. 손지현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 녹음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는요?”

“아쉽게도 뇌물을 주고받은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팀전에 손을 썼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팀전이 이루어진 시설이겠군요.”

안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현장 자체가 증거였다.

두 코스를 두고 서로 비교해본다면 다른 점이 있을 터. 다르다는 것 자체가 부정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확인해봅시다.”

두 사람은 함께 원장실을 나섰다.

***

시설의 뒷정리는 중단되었다.

안칠성과 손지현은 인력을 대동해 내부 상태를 샅샅이 체크했고, 한쪽 코스에만 의도적인 조작이 가해졌다는 다수의 정황을 포착했다.

“......진짜네요.”

“추궁하면 뇌물과 관련된 증거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손지현은 그 자리에서 관중들에게 최강자전의 연기를 안내했다.

단순히 최강자전을 중단하고 해결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대했다.

연기 사유는 교내 내부 사정 및 참가자들의 체력관리.

팀전으로 학생들이 지쳤기에 만족할만한 전투를 벌이지 못할 거라는 말로 관중들을 수긍시켰다.

“부원장은 어디 있죠?”

“VIP실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경기장의 3층으로 향했다.

사람이 없어 고요한 3층의 복도.

바깥에서 관중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저기, 원장님.”

안칠성이 앞장서 걷던 손지현을 불렀다.

“중요한 이야기 아니면 나중에 하죠.”

“이케가미 말입니다. 그 친구는 봐주면 안 되겠습니까?”

이케가미도 결국에는 피해자다.

사적 제재를 의뢰한 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안칠성은 누구라도 이케가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퇴학까지는 면해주시면….”

“학생의 처분은 나중에 이야기하죠. 지금은 부원장이 급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다시 이동을 재개한 그때.

어디선가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아악!”

이어서 복도를 울리는 맨발의 뜀박질 소리.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곧 두 사람의 앞까지 도달했다.

“워, 원장님!”

모퉁이를 돌아 튀어나온 건 헐벗은 차림의 남자였다.

얼굴은 누구에게 맞았는지 퉁퉁 부었고, 몸에는 상처가 잔뜩 나 있었다.

“어딜 도망가!”

모퉁이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양동길이 화들짝 놀라며 철퍼덕 넘어졌다.

그는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더니 두 사람의 앞까지 기어왔다.

“워, 원장님! 저 좀 살려주십쇼!”

“......부원장?”

“예! 맞습니다! 저 양동길입니다! 살려주십쇼! 웬 미친놈이!”

양동길이 손지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손지현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 어디로 튀었어!”

다시 들려오는 누군가의 음성.

안칠성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

탄식하는 그를 보며 손지현이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안칠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유현의 목소리.

그리고 누군가에게 호되게 맞고 달아난 것 같은 양동길.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은 완벽히 파악했다.

“그게….”

그가 말하려던 찰나, 익숙한 얼굴이 모퉁이 너머에서 나타났다.

“여기냐?”

양동길을 쫓아온 유현은 손지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은 곧 양동길의 등짝으로 옮겨갔다.

“옳지! 거기 있었구나!”

“히, 히익!”

양동길이 손지현의 다리 뒤로 빠르게 기어갔다.

유현은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 잠깐만요.”

손지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제야 유현은 손지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구세요?”

“아카데미 원장 손지현입니다. 당신은 유현이죠?”

“아, 원장님이구나. 제가 그 사람은 맞는데 지금 하던 일이 있어서….”

원장의 옆을 지나치려던 유현을 안칠성이 붙잡았다.

시야가 좁아졌던 유현은 그제야 안칠성을 발견했다.

“뭐야. 선생님은 여기 왜 왔어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만.”

“...?”

“일단 자리를 옮기죠.”

네 사람은 다시 VIP실로 이동했다.

도중에 유현이 양동길의 머리채를 붙잡으려는 등 소동이 있었지만, 안칠성이 가까스로 떼어냈다.

“어...”

VIP실 소파에 앉아 있던 이케가미는 느닷없이 나타난 안칠성과 손지현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다 알고 있으니 앉아서 얘기하자.”

“......예.”

손지현의 말에 이케가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칠성은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았다. 곧 스피커를 통해 녹음 파일이 흘러나왔다.

“......”

“그럼 그렇지.”

내용을 들은 유현이 양동길을 노려보았다.

“부원장님. 이게 전부 사실인가요?”

“......”

“말 안 해 이 새끼야?”

유현이 쏘아붙이자 양동길이 흠칫 몸을 떨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전부 사실입니다!”

그 광경에 손지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어떤 짓을 했길래 양동길이 학생의 말 한 마디에 저런 동물적인 반응을 보이는 걸까.

“본인이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말해주세요. 여기 녹음되지 않은 것까지.”

“......저, 전부요?”

양동길은 망설였다.

지금까지 저지른 범법 행위를 전부 말하면 처벌 수위는 더 강해질 터.

그냥 여기 녹음된 것만 말하는 게 현명했다.

“일단 팀전을 기획하고, 그 시험장에서 유현의 차례에만 여러 복잡한 장치를….”

말을 잇던 양동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살기등등한 시선에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섰다.

목전까지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는 무언의 경고가 그의 옆 통수를 찔러댔다.

“......전부, 전부 말하겠습니다.”

그건 유현을 향한 호소였다.

이후, 양동길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카데미에서 어떤 범법을 저지르고, 학생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등.

안칠성은 그 이야기를 모두 녹음했다. 거기에는 오래전, 자신이 고발했던 그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다인가요?”

“예, 이제 정말 없습니다.”

손지현은 근심 어린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지금까지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학원의 총 책임자로서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먼저 들었다.

“미안해요.”

손지현이 유현과 이케가미에게 사과했다.

“그럼 좀 더 때려도 되죠?”

“...아뇨, 그건 안 돼요.”

팔을 걷어붙이던 유현이 실망하며 다시 소매를 내렸다.

“안 선생님. 경찰을 불러줘요. 이 사안은 아카데미 내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네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경찰이 개입하면 일은 더 복잡해진다. 그 과정에서 아카데미의 원장인 그녀에게 부담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원장의 상관인데 제가 책임을 져야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케가미 학생.”

사색이 되어있던 이케가미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 역시도 유현에게는 가해자인 입장. 어떤 처벌이 뒤따를지 노심초사하던 중이었다.

“학생도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손지현이 말끝을 흐리며 유현을 쳐다보았다.

“우선 피해자와 합의를 보는 게 맞겠죠.”

만약 유현이 봐주겠다면 더 처벌을 논할 생각은 없다는 뉘앙스였다.

이케가미는 유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착잡한 표정으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그때는 내가 어떻게 됐었나 봐. 봐달라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야.”

“그래. 벌은 달게 받아라.”

유현이 씩 웃으며 받아쳤다.

그 말에 이케가미도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알았어. 그래도 너 안 다쳐서 다행이네.”

“장난이지, 인마. 뭘 또 진지하게 받아.”

유현이 화난 가장 큰 원인은 양동길이지, 이케가미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 엇나갈 놈이었으면 벌써 사람 몇 명 죽였겠지.’

유현은 이케가미가 성격은 더러울지언정 나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번 겪어보니 실제로 성격도 크게 모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게 성격이 더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고집불통은 아니었다.

팀전이 시작되기 전 주고받은 몇 마디로 마음을 바꾼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더 까칠하게 대한 거겠지. 마치 고슴도치처럼.

“그럼 이케가미 학생의 처벌은 없는걸로 할게요.”

“아,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유현은 몇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그리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앞으로는 좀 똑바로 살자.”

“......오케이.”

“그리고 또 뭐야.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도 좀 하고. 평생 담아놓고 살 수는 없잖아.”

이케가미는 그 말에 담긴 뜻을 곧장 이해했다. 대중을 향한 속풀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노력해볼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이케가미의 처벌 관련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안칠성은 흐뭇하게 웃으며 유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선생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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