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94화 (94/219)

94

입구가 열림과 동시에 두 사람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첫 번째 구간은 늪지대.

늪을 통과해 전방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

두 버튼이 함께 눌려야 하기에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실격이다.

“아아! 늪지대입니다!”

사회자는 처음 보는 것처럼 해설을 시작했다.

“늪지대는 한 번 빠지면 점토와 모래가 몸과 압착 되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데요! 과연 어떻게 돌파할까요!”

이케가미는 큰 고민 없이 늪지대로 발을 디뎠다.

그의 마나가 늪에 가라앉은 무거운 흙을 강제로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아! 이케가미!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케가미는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긴 늪지대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특성과 환경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결과였다.

“이케가미 선수가 도착한 지금! 유현 선수는….”

전광판이 유현의 코스를 비추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관중석이 잠깐 조용해졌다.

비교적 고요한 경기장 내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버튼을 누른 이케가미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설마 벌써….’

늪지대는 꽤 길고 깊다.

특히 유현의 코스는 불리하게 바뀌어 일반 코스보다 더 밀도가 높다.

한 번 빠지면, 제아무리 그라고 해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터.

이케가미가 입술을 잘근거리는 도중, 전방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우웅.

닫힌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어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현 선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구간을 돌파했습니다! 다시 보기로 보시죠!”

문이 열렸지만, 이케가미는 나아가지 않았다.

‘돌파했어?’

생각지도 못한 소식.

곧 귓가로 관중들의 함성이 스몄다.

“와아아!”

“미쳤다! 저걸 한 번에 뛰었어!”

다시 보기를 보던 모든 이가 경악했다.

몇 번의 도움닫기 후 이어진 도약.

마치 영화 속 슈퍼 히어로처럼 유현은 멋지게 하늘을 날았다. 덤블링을 활용한 안정적인 착지는 덤이었다.

“엄청난 능력입니다! 굉장히 멋있게 돌파했네요!”

이케가미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2구간은 화산 구간입니다!”

늪지대 구간 다음은 화산 구간이었다. 바위 아래 잔뜩 깔린 마그마가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바위를 밟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면 되는데요. 마그마가 깔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입니다!”

이케가미가 첫 번째 다리 위로 발을 디뎠다.

두 번째 다리는 반투명한 가림막에 의해 가로막힌 상황. 팀원이 같은 위치에 와야 가림막이 사라지며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저쪽 코스의 다리는 여기보다 부실해.’

중앙 부분은 똑같지만, 외곽 부분을 밟을시 쉽게 부서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마그마 속에 빠지리라.

‘안전장치는 되어있어도….’

빠진다면 아주 멀쩡하지는 않을 테니 최강자전에서는 실격될 것이다.

“가운데만 밟아라.”

이케가미가 간곡하게 중얼거린 직후, 두 번째 발판이 열렸다.

이케가미가 주먹을 불끈 쥐며 안도했다.

“나이스.”

두 번째 다리로 넘어가자 곧장 세 번째가 열렸다. 유현도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아아! 두 선수 모두 머리가 비상하군요! 빠르게 패턴을 파악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광판을 바라보는 양동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아직 2구간이지만, 현재까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1구간을 그렇게 통과할 줄이야.’

양동길 역시 유현의 특성이 신체 강화가 아니라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그래서 1구간은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거라고 예상은 했으나, 그토록 가뿐하게 뛰어넘어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구간도 성과는 없군.’

양동길은 그의 특권으로 내부의 화면을 단독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유현을 확인한 결과, 2구간에서는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분명 망설였지.’

유현은 징검다리의 외곽을 밟으려 했으나 그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땅에 손을 대보더니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혼자 고개를 주억였다.

그 뒤는 지금 보는 것처럼 순조로운 통과였다.

유현은 징검다리의 중앙만을 밟으며 사뿐히 다음 구간으로 넘어갔다.

“설마….”

양동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케가미를 응시했다.

그가 유현에게 알려주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대단한 우연이거나, 아니면, 유현이 신체 능력에 어울리는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라거나.

물론 바위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는 건 웬만한 고등급 헌터들도 불가능한 일이기에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 반드시 우연이어야 했다.

“그래야 성공할 텐데.”

양동길이 초조한 시선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3구간.

숲이 우거진 지대로 몬스터가 등장하고 함정이 설치된 구간이다.

함정을 피하고, 몬스터를 죽이며, 몬스터에게서 확률적으로 드랍되는 열쇠를 얻으면 된다.

“크아앙!”

날카로운 뿔을 가진 늑대 몬스터 울프 혼이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름은 울프 혼.”

수업 시간에 배웠던 몬스터다.

커다란 덩치에 맞게 단일 개체로 활동하며, 속도와 날카로운 발톱 및 이빨이 주요 무기였다.

“속도가 빨라서 진행 방향이 단순하다고 했지.”

유현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적과 맞붙었다.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는 울프 혼.

살짝 몸을 틀어 적의 공격을 회피했다.

“크아아앙!”

회피 직후, 울프 혼을 공격하려던 유현은 멈칫했다.

주변에서 다른 울프 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느껴지는 다수의 기척.

곧 숲 저편에서 여러 마리의 울프 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울프 혼은 분명 단독 행동 개체라고 배웠는데.

무리지어 등장한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뭐, 상관없지.”

배운 것과 다르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상대가 몇이든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현은 주먹을 쥔 채 몰려드는 울프혼의 무리로 질주했다.

“아아! 유현 선수! 당황하지 않고 침투합니다!”

사회자 역시 해설로 울프 혼이 단독 행동 개체라는 특징을 짚어주었다.

관중들도 그 덕에 유현이 왜 멈칫했는지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적진에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 더욱 열광했다.

“다 죽여!!”

“멋있다!!”

잠시 후, 그 함성은 더 커지고 뜨거워졌다.

“와아아아아아!”

유현의 무위는 속된 말로 화끈했다.

주먹과 발은 물론 전신을 활용한 전투. 팔꿈치로 적의 머리를 찍는가 하면, 울프 혼의 뿔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려 여러 마리를 동시에 쓸어버리기도 했다.

그 공격에 적들의 살갗이 터지며 허공에 혈흔이 흩날리니, 영화 속 특수효과처럼 화려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등급 테스트 1등 다운 대단한 전투력입니다!”

사망한 몬스터들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열쇠가 나왔습니다!”

땅에 떨어지는 열쇠를 줍는 것을 끝으로 전광판의 시점이 뒤바뀌었다.

이케가미가 숲속의 흙을 사용해 적과 사투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쪽은 1대1 전투네요! 유현과는 달리 울프혼이 무리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이케가미 역시 S등급의 수준답게 화려한 전투를 펼쳤다.

땅에서 솟아난 흙의 주먹이 울프 혼을 위로 띄우고, 이어서 수십 갈래의 가시가 울프 혼의 몸을 꿰뚫었다.

적을 하나씩 잡아가는 이케가미.

아까 전 쏟아지던 야유와 달리 다들 그의 전투에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아아!”

“다 죽여버려!!”

그 전투에 의문을 느낀 건 한 사람뿐이었다.

“......”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는 안칠성. 그는 분석적인 시선으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1, 2구간에서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어.’

하지만 세 번째 구간은 달랐다.

기존 성질과 다르게 행동하는 몬스터들. 울프 혼은 본래 무리 행동을 하지 않는 몬스터다.

그리고….

‘저렇게 빠르지도 않아.’

울프 혼이 민첩하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잘못 봤나 싶었으나 이케가미 쪽 울프 혼들의 움직임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양동길. 손을 써뒀구나.’

행사에 사용되는 몬스터들은 투입 전 밑 작업을 거친다.

죽으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도 미리 주입한 약물의 영향이었다.

유현 쪽 울프 혼들이 더 민첩하고 강한 이유도 양동길이 강화 약물을 주입한 탓이리라.

‘시체를 확보하면 더 확실한 증거가 될 텐데.’

아쉽게도 시체는 사라졌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방송인 만큼 영상 자료가 두 코스의 몬스터의 차이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그래도 이걸로는 부족해.’

안칠성은 전광판에서 시선을 돌렸다.

경기장의 꼭대기 층 VIP 관람실.

양동길도 저곳에서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끌어 내려 주마.’

관중들의 함성이 높아졌다.

이케가미도 적을 죽이고, 열쇠를 확보했다.

“아아! 12조! 무척 빠릅니다! 아무도 함정에 걸리지 않았어요!”

다른 조들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현의 신체 능력은 남달랐고, 이케가미는 이미 모든 구조를 알고 있었으니까.

“젠장!”

양동길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던졌다.

바닥을 나뒹구는 찻잔.

양동길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발치로 굴러온 찻잔을 걷어찼다.

“왜! 왜 저렇게 쉽게 가는 거야!”

강화된 울프 혼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화 약물을 투입했어도 유현은 등급 테스트에서 S등급을 기록했으니 몬스터 따위로 그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분명 함정을 더 많이 깔아두었는데! 왜!”

양동길이 울프 혼을 강화한 건 난전을 위해서였다.

전투가 과격해져야 전투 도중 함정을 밟기 쉬울 테니까. 결과는 보다시피 허탕이었다.

“어떻게 하나를 안 밟지?”

유현의 코스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

하나라도 밟는다면 치명타가 될 수 있게 유현을 위해 특수 설계된 함정들.

하루 정도면 회복하겠지만, 적어도 최강자전은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함정들만 피해가고 있어.”

유현이 발을 디디는 곳은 모두 함정의 바로 옆이었다.

전투를 이어가면서도 함정이 아닌 바로 옆 멀쩡한 땅만을 밟았다.

양동길은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밟을 것 같으면서도 안 밟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이케가미가 말해줬나?’

아니, 아무리 말해줬다고 해도 그 많은 함정을 이 정도로 절묘하게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남은 건 한 가지.

감각적인 회피였다.

‘사람이 그 정도로 예민할 수는…….’

문득 2구간에서 들었던 의심이 떠올랐다.

바위의 가장자리를 밟지 않던 유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그게 우연이 아니라면?

바위의 미세한 균열을 알아차리고 의도적으로 행동한 것이라면?

‘만약 그렇다 해도 이번에는 의식조차 안 했어.’

2구간에서 멈칫하며 수상한 행동을 보였던 것과 달리 그의 걸음은 자연스러웠다. 애초에 함정 따위를 여념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절대 감각은 아니야. 말이 안 돼.’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더라도 모든 함정이 눈에 보이는 듯한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그럼 대체 뭐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양대길이 마른세수를 했다.

“...빌어먹을.”

양동길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위로 유현의 등이 보였다.

왜인지 4구간의 입구를 통과하지 않고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유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푸른 빛을 내는 그의 오른쪽 눈동자.

시각 마법의 하나인 투시가 작동하는 중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두 눈을 뜨자 시야가 멀쩡히 돌아왔다. 다시 왼쪽 눈을 감자 지면 아래에 매몰된 온갖 함정들이 보였다.

“무슨 함정이 이렇게 많아.”

처음 3구간에 들어왔을 때, 유현은 땅을 디디딜 때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챘다. 그래서 투시의 눈을 사용했고, 함정을 피해가며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시험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간부터 그 생각이 바뀌었다.

많아도 너무 많은 함정의 숫자.

특히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함정들이 다수였다.

누군가 자신의 신변에 위험을 가하기 위해 깔아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케가미가 시작 전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일까?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유현은 몸을 돌렸다.

이 코스가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설계된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

할 수 있는 건 무사히 클리어하여 상대를 엿 먹이는 것이다.

“누군지 걸리기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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