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90화 (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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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부원장 양동길.

부원장실로 오라는 건 분명 양동길의 직접 호출일 터.

과거부터 그와 껄끄러운 관계였던 안칠성은 자연스레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이어진 내용은 없었다.

통화가 끊기려는 기색이었기에 안칠성은 급히 몸을 숨겼다.

저벅, 저벅.

이케가미의 기척이 서서히 멀어졌다.

그 사이 안칠성은 조금 전의 통화를 되뇌었다.

‘양동길이 왜 여기서 나와?’

부원장이 학생과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이유는 없다.

양동길 그 자식이 학생을 하나하나 챙길 만큼 정이 넘치는 놈도 아니고.

‘뭔가 있군.’

다른 선생이라면 몰라도 그 양동길이다. 선생들의 부정을 눈감아주고, 입학의 대가로 뇌물을 처먹는 놈.

과거에 그런 이유들 때문에 몇 번인가 반목했고, 신고도 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적은 없다. 증거 부족이 원인이었다.

‘이번에도 설마….’

만약 그때처럼 몹쓸 짓을 벌이는 거라면, 놓칠 수 없다.

안칠성은 숨어있던 계단 밑에서 빠져나와 이케가미의 뒤를 쫓았다.

***

부원장실은 상위 클래스 건물 옆에 있는 아카데미 본부에 위치했다.

본부는 아카데미를 관리하는 사람들과 인사팀, 행정팀 등, 아카데미의 머리라고 불리는 장소였다.

아카데미의 핵심인 공간이었지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생이나 학생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본부를 오갔다.

안칠성은 본부 입구에 서서 부원장실이 있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환하게 켜진 불.

이케가미가 저곳에 간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간에 다른 길로 샜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본부에 들어가는 건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만약 또 그런 짓을 벌인다면….”

안칠성은 주머니에 넣어둔 녹음기를 손에 쥐었다.

과거와는 달리 기술이 발달한 요즘이다. 만약 과거와 같은 몹쓸 짓을 또 저지른다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확실한 증거를 남겨 무너뜨릴 것이다.

안칠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본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긴장감은 더 해졌다.

뭣 때문에 이케가미가 이곳까지 찾아온 걸까.

왜 두 사람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까.

그런 의문 속에 부원장실이 위치한 3층까지 도착했다.

안칠성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가장 구석에 있는 부원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힌 부원장실의 문.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안칠성은 허리를 바짝 숙이고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부모님은 잘 지내십니다.

이케가미의 목소리였다.

역시 이곳으로 왔구나.

안칠성은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시작했다.

-이번 달은 입금이 안 됐던데.

양동길의 말에 안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웬 입금?’

설마 학생에게 돈이라도 받아먹는 건가?

안칠성은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이런 일은 까먹으시면 안 된다고 전해드려라. 신뢰의 증거니까.

-죄송합니다.

-네가 누구 덕분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도 제대로 말씀드리고.

이케가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곧 살짝 열이 오른 듯한 양동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시하냐?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 나가봐.

안칠성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안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말해봐.

안칠성은 다시 자세를 고쳐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유현이라는 아이에게 불이익을 주세요.

-불이익? 이유는?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싸움의 영향일까.

이케가미가 양동길의 힘을 빌려 유현에게 해를 가하려 했다.

‘......내가 좀 더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설마 양동길이 그런 부탁까지 들어줄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썩었어도 녀석은 선생이다.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대가는?

-부모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 대놓고 하기는 좀 그러니, 다음 행사인 최강자전에서 한 번 손 써보지.

내부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빠져나오려는 기색을 느낀 안칠성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본부를 떠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분한 발걸음. 걸음은 침착했지만, 가슴은 뜨거웠다.

‘양동길, 이 개새끼.’

학생을 타이르지는 못할망정, 대가를 받고 다른 학생을 괴롭히려고 들어?

아무리 썩었다지만, 이렇게까지 밑바닥일 줄은 몰랐다.

“일단 돈을 받는 건 확실해.”

조금 전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아까전 입금이 안 됐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무엇을 대가로?’

부모님도 연관되어 있고, 마치 자신 덕분에 이케가미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자연스레 이케가미가 자국의 아카데미를 그만두었던 이유가 생각났다.

거의 사회에서 매장당하다시피 했던 사건으로, 그의 부모 중 하나가 한국의 유명 헌터인 탓에 국내에도 알려진 사건이었다.

‘......돈을 받는 대가로 입학을 받아줬군.’

타국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이들은 외교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받아주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도 입학 허가가 나온 걸 보면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게 양동길이군.”

쓰레기 같은 새끼.

안칠성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케가미는 피해자였다.

‘오해를 풀어주지는 못할망정, 입학을 받아주고 돈을 받아?’

그것도 매달?

더불어 학생의 사적 제재 요구까지 받아들였다.

안칠성은 머리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정말 구제 불능의 쓰레기가 됐구나.’

썩은 물을 가만히 두니 더욱 썩어들어갔다.

이걸 계속 방치하면, 결국에는 아카데미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증거는 잡았어.’

하지만 양동길을 확실하게 보낼 증거로는 부족하다.

시각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최강자전.’

양동길이 최강자전에서 유현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말이 녹음됐다.

뇌물을 주고받은 내역이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확보할 수 있는 증거는 그게 최선이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조진다.’

그저 마음만 앞서 심증만으로 우기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제라도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

***

헌터 아카데미 최강자전.

아카데미의 대규모 행사 중 하나로, 1년 중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아카데미의 행사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아카데미에서는 시작 전부터 여러 수단을 동원해 홍보했다.

인터넷, 크리에이터, 빌딩 전광판 등등.

길드 파티 영상 이후로 구독자가 두 배 증가한 김현식 역시 아카데미에게 광고를 받았다.

“여러분! 제가 오늘 아카데미에서 광고를 받아왔습니다!”

-현식이 드디어 월클?

-아, 숙제 방송 노잼

“다들 어떤 광고인지 궁금하시죠!”

-니가 아카데미 광고라며

-본인 입으로 말해놓고ㅋㅋ

-최강자전 광고겠지 머

김현식이 채팅창을 읽으며 활짝 웃었다.

“그러네요! 제가 벌써 말을 했네요!”

김현식은 아카데미 측에서 제공받은 포스터를 꺼냈다.

링 위에 올라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등이 그려진 포스터였다.

“짜잔! 아카데미 최강자전이 올해도 돌아왔습니다!”

-와~~~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현식이 진짜 월클됐네;ㅅ;

시청자들은 마치 처음 본다는 듯이 김현식의 리액션에 반응했다.

평소 그가 동네 착한 바보 형 같은 캐릭터를 잡은 탓에 시청자들 역시 센스있게 어울려주었다.

“하하!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렇게 광고 받은 것도 모두 여러분 덕입니다!”

-우리 덕분이 아니라 유현 덕분아님?

-ㄹㅇㅋㅋ 걔가 민성이 쪽주고 구독자 10만명 데려옴

-유현도 이번에 나오나?

길드 파티 사건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들 유현의 이야기를 했다. 김현식 역시 그의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수익의 절반 이상을 그에게 보내기도 했다.

“자, 여러분 유현님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 최강자전이 앞으로 2주 뒤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예선전이 한창이라는데요~ 다들 기대되시죠?”

최강자전은 사람들의 관심과 중계 일정을 고려해 하루 안에 모든 대회를 끝낸다.

예선은 진즉에 끝내고, 당일에는 본선과 결선을 중계하는 식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S등급이 대거 등장했잖아요? 누가 우승할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네요.”

곧 생방송 후원으로 시청자 한 명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우유님이 1000원 후원!

[어차피 우승은 유현 ㅅㄱ]

채팅창에서 곧장 반응이 올라왔다.

-엌ㅋㅋ 대깨유ㅋㅋ

-우리 친구는 우승이 누구 집 개이름이누?

-ㅇㅈ 신가온도 있고 스시국 유망주 이케가미도 있다구

-? 이케가미도 있음?

“자, 자 여러분! 아직 누가 참가하는지는 모릅니다!”

-뭘 몰라. S등급 무조건 참가하는 게 규칙인데.

-ㅋㅋ광고 받아놓고 규칙도 모르쥬?

-혐식이on

김현식의 눈이 커졌다.

“그런 규칙이 있어요?”

채팅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이 올라왔다. 김현식도 어벙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하하! 몰랐네요! 이제 알았으면 됐죠!”

분위기가 풀어지며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김현식은 최강자전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채널을 통해 중계되는지 등, 최강자전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특히 이번에는 작년과 다르게 팀전도 있다고 하는데요. 최강자전이라는 이름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재밌을 것 같죠?”

-ㅇㅈㅇㅈ

-원래 팀전이 남탓하는 거 보는 재미가 있음ㅋㅋ

-ㅋㅋ5명이 모이면 한 명은 ㅂㅅ이있다는데 S등급도 그러려나?

“자! 그럼 여러분!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오늘 교육 영상 올라가는 것도 많이 봐주세요!”

-오뱅알

-광곤데 오뱅알ㅇㅈㄹ

-나 유현인데 방송 잘 하ㄴ ㅔ

***

“...이 새끼들 봐라.”

유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채팅창을 읽었다.

-네가 유현이면 난 이케가미다

-콘니찌와~ 이꾸요옷~

-ㅋㅋㅋㅋㅋㅋ

-사칭도 눈치껏 해야지ㅉㅉ

유현은 열심히 자판을 눌렀지만, 아직 스마트폰 자판이 익숙하지 않아 번번이 오타를 냈다.

오타를 수정하는 사이 방송은 종료되었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아, 씨.”

유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으로 본 인터넷 방송.

인터넷 문화에 대한 내성이 전무한 그는 사람들의 채팅에 일일이 반응했다.

“지들이 뭘 안다고 씨부려.”

유현이 투덜거리며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김현식의 채널을 구독하고, 시간이 맞아 처음으로 본 방송이었다.

방송 자체는 재밌었지만, 채팅창 덕에 썩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유현! 뭐해!”

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안칠성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예선전이 한창인 보조 경기장. 이전 경기가 마무리되고 자신의 차례가 온 것 같았다.

“갑니다, 가.”

최강자전의 예선은 모든 등급이 통합되어 진행된다.

총 다섯 번의 경기를 펼치고, 한 번 이길 때마다 점수를 얻는데, 그 점수로 순위를 매겨 본선 진출자를 가린다.

신청하는 이들은 주로 상위 클래스에 집중되기에 의외로 밸런스 논란은 없는 편이었다.

“후딱 해치우고 게임이나 해야지.”

그래야 채팅으로 망친 이 기분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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