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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89화 (8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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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왜...”

유현은 조금 전 때렸던 부위를 쓰다듬었다. 움푹 팬 게 느껴졌다.

“......”

화풀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강화]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추락하던 그리폰의 머리를 한 번 더 두드렸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하아.”

예상치 못했다.

아무리 때려도 일그러지는 기색 하나 없기에 강화 마법도 안심하고 사용했건만.

“조졌네.”

오철용도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유현. 그거 괜찮아?”

“......글쎄다.”

유현이 조심스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안칠성이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현.

예상대로 곧 목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쏘리.”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스피커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힘 조절 좀 해라, 제발….

“옙.”

유현은 짧게 대답하고는 약국으로 들어갔다.

넘어진 매대와 바닥에 어질러진 약품들 사이로 구급상자 하나가 빛을 냈다.

“저거구나.”

구급상자를 챙기자 허공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물품을 손에 넣었습니다.]

유현은 구급상자를 들고 약국 밖으로 나왔다.

오철용은 약국 옆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을 옮기고 있었고, 이케가미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었다.

“......”

유현은 잠시 이케가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철용아, 가자.”

“잠깐 기다려.”

오철용은 사람들을 마저 옮기고 유현에게 돌아왔다.

“퀘스트야?”

“아니. 그냥 옮겨달라고 해서 옮겼어.”

NPC들은 퀘스트가 아닌 사소한 부탁도 했다. 이것 역시 인공지능이 작용한 결과였다.

***

“어쩌면 좋냐.”

안칠성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시선은 전방에 위치한 모니터에 머물러 있었다.

“주먹 모양으로 패였네.”

모니터 위에는 그리폰의 머리 역할을 하던 필드 서브젝트가 3D로 표시되고 있었다.

파손율은 1%. 심각한 파손은 아니었다. 단지 움푹 패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생각도 못 한 일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대체 손이 얼마나 매운 거야.”

총알도 버티고, 폭발도 가뿐히 버텨내는 강도를 가진 물질이다.

살짝 들어간 게 파손의 전부지만, 고작 주먹질로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건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위에 보고하면 믿으려나.”

수리하려면 보고를 해야 하는데, 과연 믿어줄지 의문이다.

“하아...”

학생이 강한 건 선생으로서는 좋은 일. 그러나 직장인의 관점으로는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보고서를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벌써 눈앞이 캄캄했다.

“부수는 건 이제 그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한 번 경고 했으니 알아들었겠지.

안칠성은 다시 자세를 고쳐앉고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번 시뮬레이션 퀘스트는 튜토리얼이라 크게 복잡하지 않다. 총 두 개의 분기점을 거쳐 구급상자를 NPC에게 가져다주기만 하면 된다.

“다들 그리폰은 잡았고.”

첫 번째 분기점인 그리폰의 방해는 모두 통과했다.

그리 강한 개체는 아니기에 다들 무난하게 돌파할 거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그다음.

두 번째 분기점이다.

‘튜토리얼 수준이지만, 쉽지 않을 거다.’

가장 먼저 두 번째 분기점과 마주한 건 2번 조였다.

화면 위로 두 발로 선 늑대들이 나타났다. 흔히들 웨어울프라고 부르는 몬스터들이었다.

2미터는 족히 넘는 신장, 커다란 손은 인간의 가죽 따위를 단번에 찢어발길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적과 마주한 아이들은 곧장 전투를 준비했다.

“두 번째는 싸우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안칠성이 화면의 시점을 전환했다.

웨어울프의 옆에 npc들이 뭉쳐 있었다. 곧 숨어있던 그들을 웨어울프 무리가 발견했다.

“구하고 지키면서 싸워라.”

***

“크르르르…….”

늑대의 입에서 낮은 울음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그들과 마주한 이케가미는 긴장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도, 도와주세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쪽에서는 NPC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웨어울프 몇 마리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케가미, 넌 저쪽 맡아.”

유현의 명령이 들려왔다.

“......싫어.”

이케가미는 유현의 말을 따르는 대신 전방의 웨어울프를 공격했다.

쿠쾅!

땅에서 솟아오른 흙더미가 전열에 선 적들을 허공으로 띄웠다.

이케가미는 멈추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바닥에서 솟구친 흙더미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허공에 뜬 웨어울프를 향해 쇄도했다.

“크아아앙!”

웨어울프는 허공에서 그대로 몸을 비틀어 공격을 회피했다.

중력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

이케가미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저기서….”

웨어울프들은 그대로 NPC들 앞에 착지했다.

날카로운 손톱은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npc들의 몸을 관통했고, 그들은 단말마를 지르며 축 늘어졌다.

“뭐해, 인마!”

유현이 이케가미의 팔을 잡아당겼다.

“등신아! 내가 뭐라 그랬어!”

“......NPC 가지고 꼴사납게 큰소리치지 마.”

이케가미가 유현의 손을 뿌리쳤다.

“허.”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그의 태도에 유현이 탄식했다.

아무리 NPC라지만,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이런 뻔뻔한 새끼를 봤나.”

유현이 웨어울프를 공격하려던 이케가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빠각!

이케가미가 자신의 뒤통수를 문지르며 유현을 노려보았다.

“씨발! 뒤질래?”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

그 되먹지 못한 말버릇 오늘 아주 단단히 고쳐주마.

“멈춰!!!”

두 사람이 충돌한 가운데, 오철용이 그들을 말렸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친구들.”

“말리지 마. 오늘 이 새끼 피해의식 단단히 고쳐놓을 테니까.”

“피해의식? 개소리하지마!”

“일본에서 처맞고 여기 와서 꼬장부리는 게 피해의식이지 뭐야.”

이케가미의 입술이 분노로 파르르 떨려왔다.

유현은 그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왜 엄한데 와서 화풀이야?”

“한 번만 더 지껄여봐.”

그 말에 유현이 가소롭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불만 있으면 거기 가서 풀어. 기자들 딱 모아놓고 할 말 하라고. 내가 연애 좀 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 왜 니들이 나서서….”

“닥치라고!”

이케가미가 유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분노가 담긴 공격은 정확도가 떨어졌다.

유현은 가볍게 공격을 흘려낸 뒤,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래, 오늘 끝장을 보자.”

“두 번 다시는 그 주둥이 못 놀리게 만들어 주마.”

두 사람은 곧장 싸움을 시작했다.

유현은 이케가미에게 보다 똑똑히 가르침을 주기 위해 주먹에 힘을 뺐다.

“......하아.”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오철용이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적이 바로 뒤에 있는데 지들끼리 싸우는 데 급급이라니.

“오레 사마가 나설 수밖에 없군.”

오철용이 몸을 돌려 웨어울프들과 마주했다.

으르렁거리며 오철용을 경계하는 적들. 곧 그가 절도있게 양팔을 교차하고는 손가락을 펼쳤다.

“나의 몸은 지방으로 가득하다.”

살이 뒤룩뒤룩한 손가락 사이로 마나가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방은 곧 에너지가 되오, 마나는 도화선이 되니.”

그의 마나가 지방과 뭉치며 손가락 사이에 둥그런 형태를 이루었다.

“내 몸은 곧 폭탄이다.”

그가 말을 끝맺자, 손가락 사이에 부유하던 형태가 뚜렷한 물체가 되었다.

“크아아아!”

오철용이 달려드는 웨어울프들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던 둥근 물체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멸하라!”

그가 소리친 직후.

쾅!

구체가 웨어울프와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후훗.”

오철용이 연기를 바라보며 안경을 추켜 올렸다.

다음 순간, 체력을 잃은 웨어울프들이 연기 바깥으로 힘없이 엎어졌다.

“크하하하하!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나의 권능!”

한창 주먹을 주고받던 유현과 이케가미도 굉음에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미친놈.”

싸움의 흐름이 끊기자 서로를 향해 불태우던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이케가미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싸움은 그렇게 애매하게 마무리됐다.

“유현, 보았나?”

“특성이야?”

“그래. 나는 세계를 터뜨릴 수 있는 남자. 오철용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하게 됐군.”

오철용을 보던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살이 좀 빠진 것 같냐?”

“그건 나의 권능이 지방과 마나를 결합하여 폭탄을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지.”

“오, 멋있는데.”

“크하하하하!”

유현은 오철용을 한 번 띄워주고는 멀어지는 이케가미를 돌아보았다.

싸움에 결판은 나지 않았지만, 더 싸울 기분도 아니었다.

‘유치하게 뭐 하는 짓이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고작 저런 애들이랑 쌈박질이나 하고 있다니.

게다가 지금은 퀘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해야 할 일에서 멀어져 싸움을 벌였으니 책임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한 소리 듣겠군.’

그 예상은 적중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퀘스트를 완료한 3조는 시뮬레이션 실을 나오자마자 눈에 불을 켠 안칠성과 마주해야 했다.

“너희가 뭘 잘못했는지는 잘 알겠지.”

오철용은 슬쩍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안칠성의 손에 붙잡혔다.

“너도 친구가 싸우면 말려야지.”

“......적들의 접근이 빨랐습니다.”

그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기에, 안칠성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좀 더 거칠게 말려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뭐, 철용이는 둘째 치고. 유현. 이케가미. 이야기나 들어보자. 왜 싸웠냐?”

“얘가 자꾸 말 안 듣고 혼자 돌잖아요. npc도 그래서 죽고.”

아이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일러바치듯 유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안칠성은 말없이 이케가미를 응시했다. 저 말이 맞냐고 물어보는 행동이었다.

“......”

이케가미는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안칠성은 한숨을 쉬었다.

“다음부터는 싸우지 말도록.”

세 사람은 다른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몇 사람이 곧장 그들에게 몰려들었지만, 안칠성의 제지로 청취는 하지 못했다.

“이번 시뮬레이션의 퀘스트는 튜토리얼 느낌의 쉬운 퀘스트였다. 다들 반응을 보면 괜찮았던 것 같은데.”

학생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과 착각 할 만한 높은 완성도, 조금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옥에 티 수준이었다.

“다른 것도 있나요?”

신가온의 질문에 안칠성이 씩 웃었다.

“많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다 해볼 예정이다.”

***

그날 내내 시뮬레이션 수업이 행해졌다.

학생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몬스터와 맞붙으며 경험을 쌓았다.

“다들 수고했다.”

반복된 전투로 모두 기진맥진했다.

학생들은 느릿느릿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유현도 비척거리며 훈련장을 떠났다.

“......”

안칠성은 혼자 남은 이케가미를 돌아보았다.

떠날 생각이 없는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는 안 가냐?”

그 말에 이케가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

안칠성이 걱정 어린 눈으로 이케가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싸운 건 그 일 때문인가.

자국에서 있었던 과거의 사건.

다들 쉬쉬하며 떠들지 않지만, 유현이라면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어차피 떠나온 김에 잘 지내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봐온 결과, 이케가미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 좀처럼 융화되지 못했다.

그의 담임을 맡았었던 A반 선생에게도 물어봤지만,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붙어 있던 건 이케가미가 쓰는 돈에 딸려온 놈들.’

그게 A반 선생의 말이었다.

두 부모가 저명한 헌터인 만큼 돈 하나는 많았을 테니 쓰임새가 남달랐겠지.

안칠성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훈련장을 나왔다.

쥐죽은 듯 조용한 스페셜 하우스의 복도. 그래서 작은 소곤거림조차 크게 느껴졌다.

“......잖아요.”

곧장 위로 올라가려던 안칠성은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걸음을 돌렸다.

가까워지니 목소리가 더 확실히 들렸다.

“됐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케가미의 목소리였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통화를 엿듣는 버릇은 없기에 안칠성은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들려온 말이 그의 발을 붙잡았다.

“부원장실로 직접 찾아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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