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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88화 (88/219)

88

유현은 이케가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했지만, 안칠성이 있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모였으니 수업을 시작하겠다.”

학생들이 모두 모이고 안칠성이 수업을 시작했다.

“전투 시뮬레이션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VR로 했던 것처럼 특정한 상황을 설정할 수도 있고, 전세계 유저들과 랭킹을 겨룰 수 있는 몬스터 타임어택 기능도 존재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 할 건 퀘스트다.”

퀘스트 시스템.

게임 속 퀘스트처럼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중간중간 주어지는 과제를 해결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방식이다.

“다들 RPG게임 알지? 거기서 나오는 퀘스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상의 NPC와 대화하고 퀘스트를 수령하면 필드가 바뀐다.

그럼 거기서 퀘스트를 수행하고, 완료하여, 또 다른 필드로 이동.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식이었다.

“퀘스트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실존하는 개체도 있고, 새롭게 만들어진 개체도 있다. 배운 내용을 토대로 잡거나, 즉석에서 적을 분석하여 사냥해라.”

퀘스트의 시대도 설정할 수 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할 수도 있고, 먼 과거가 배경이 될 수도 있다.

또 육지가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으며, 하늘이 될 수도 있다.

“육지 이외에 장소에서는 완전히 실제와 같은 감각은 아니야. 그래도 최대한 그 느낌을 살려서 만들었으니 비슷하긴 할 거다.”

그 뒤로도 시뮬레이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최첨단 시설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길고 장황한 설명이었다.

“자, 그럼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시작하자.”

훈련장에는 총 세 개의 시뮬레이션 필드가 존재했다.

국가의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되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3인 1조로 나누자. 나와서 한 명씩 뽑아라.”

아이들은 한 명씩 나가 제비를 뽑았다.

“파란색이다.”

“내랑 같은 팀이네~”

유현도 마지막으로 제비를 뽑았다.

빨간색이었다.

“파란색은 1번 방으로, 노란색은 2번 방, 빨간색은 3번으로 가라.”

같은 제비를 뽑은 아이들이 하나둘 방으로 이동했다.

유현도 3번방 앞으로 움직였다.

“......쳇.”

“......”

3번 방 앞에는 이케가미와 이름 모를 남자가 서 있었다.

제법 통통한 한주석보다 더 큰 덩치.

2미터는 될 것 같은 키에 살집이 어마어마하여 꼭 씨름 선수 같았다.

“반갑다, 친구들.”

유현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케가미는 그 인사를 무시했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

이목구비는 살에 파묻혔지만, 안경 너머의 눈빛은 또렷했다.

목소리 또한 덩치만큼이나 묵직했다.

“넌 이름이 뭐냐?”

“오철용.”

“네가 철용이구나.”

이케가미에 관해 신가온에게 알려주었다던 사람이었다.

“난 유현이야.”

“알아.”

유현은 오철용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작은 화면 위에 웬 3D 캐릭터들이 화려한 복장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리듬 게임?’

오철용이 원으로 표시된 노트를 타이밍에 맞게 터치했다. 그럴 때마다 화려한 이펙트가 터졌다.

‘이어폰을 끼고 있구나.’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소리를 꺼놓고 게임을 하는가 싶었더니 반대쪽에 이어폰 하나를 끼고 있었다.

“되게 잘한다.”

손가락이 저렇게 두꺼운데 어떻게 저 작은 화면을 다 두드리는 걸까.

“조용. 집중 하겠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노트들.

눈으로 좇기도 힘든 노트를 오철용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화면 위로 1000번째 콤보를 달성했다는 이펙트가 나타났다. 엄청난 실력이었다.

“3번 방! 너희도 들어가!”

안칠성이 뒤쪽에서 소리쳤다.

오철용은 게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방 안으로 들어갔고, 유현도 그 뒤를 따랐다.

시뮬레이션룸 내부는 하이패스 테스트 때 봤던 것과 똑같았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공간. 어디가 벽인지조차 알 수 없는 장소였다.

-우선 시뮬레이션이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하니 테스트를 하겠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스피커로 안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놀라지 말도록.

다음 순간, 시야가 뒤바뀌었다.

천장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졌고, 따뜻한 태양 볕이 땅을 비추었다.

바닥은 풀잎이 되었고, 벽은 넓은 초원을 끌어안았다.

“와.”

유현은 허리를 숙여 풀을 쥐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미묘한 감촉.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비슷하게 구현한 것도 신기했다.

-벽에 부딪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바닥이 너희의 움직임을 읽고 움직이니까.

유현은 초원을 걸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고, 멀리서 무언가의 포효가 들려오기도 했다.

-참고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는 가지 마. 배경에 충돌이 생겨서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우니까.

유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시뮬레이션에 큰 흥미가 없는지 이케가미가 지루한 얼굴로 앉아있다.

“야, 일어나봐. 저쪽으로 뛰어 보게.”

“꺼져.”

유현은 이케가미의 뒷덜미를 잡아 저쪽으로 집어 던졌다.

아까 전 조금이나마 생겼던 동정심은 욕을 먹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런, 씹!”

이케가미가 균형을 잃은 채 허공을 날았다. 급히 바닥을 향해 손을 뻗자 초원의 바닥이 솟구치며 그의 움직임을 멈췄다.

“오, 특성에도 대응한다더니 이런 식이구나.”

“개자식아!”

이케가미가 유현을 향해 소리쳤다.

유현은 아까 이케가미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가운뎃 손가락을 뻗어주었다.

-싸우지 마라.

모니터링 중인지 안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어떤 건지 대충은 알겠지? 그럼 바로 퀘스트를 시작하마. 튜토리얼 단계이니 어렵진 않아.

또다시 세상이 뒤바뀌었다.

회색빛 하늘, 빌딩은 무너졌고, 도로는 부서졌다.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곳은 폐허가 된 도심이었다.

“......”

주변을 둘러보던 유현은 곧장 도로에 서 있던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게임처럼 그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표시되고 있었다.

“약국에서 약을 구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기계적인 말투로 퀘스트를 주는 NPC. 직후, NPC의 머리 위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침략당한 도시. 시민의 치료를 위해 구급상자를 구해오세요.]

“와, 신기하네.”

유현은 아까 설명을 들은 대로 수락이라고 적힌 글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곧 npc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사라지고,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가 나타났다.

“철용아! 가자!”

오철용은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거 계속 할 거냐?”

“한 판만 더 하고 끌게. 린코짱 스페셜 카드 받아야 해서.”

오철용이 게임을 이어가는 사이, 유현은 이케가미를 돌아보았다.

무척이나 사나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야, 너도 빨리 와라.”

“......”

유현은 한숨을 푹 쉬고는 아까 들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렇게 틱틱대는 거냐?”

그 말에 이케가미가 눈을 크게 떴다.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다시 지껄여봐.”

이케가미가 성큼성큼 걸어와 유현의 멱살을 붙잡았다.

“네가 무슨 일을 겪었든 상관없어. 근데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이케가미가 이를 악물었다.

까드득 거리는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 나왔다.

“모르면 닥치고 있어.”

“말부터 잘 들어.”

“알겠으니까 두 번 다시 그 이야기 꺼내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이케가미가 유현의 멱살을 세게 내쳤다.

“유현. 나 게임 끝났어.”

마침 오철용도 준비가 완료됐는지 다가왔다.

다가온 오철용이 유현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웬만하면 건들지 마.”

유현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말을 잘 들어야 안 건드리지.”

“저래도 할 일은 다 하니까. 아마 말 안 했어도 왔을 거야.”

오철용의 이야기를 듣던 유현은 무득 궁금증이 생겼다.

“네가 가온이한테 알려줬다고 했지? 넌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게 찾아본다고 다 나와?”

“음... 찾아보기도 했고, 내 인맥을 좀 활용했달까? 후훗.”

뿌듯한 얼굴로 코를 쓱 닦는 오철용.

그가 곧 허공을 가리켰다.

“그런데 친구들. 우리 이제 슬슬 가야지? 이 퀘스트 제한시간이 있는 것 같아.”

손가락의 끝에는 퀘스트 내용과 줄어드는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그래, 가자.”

세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바뀌었다.

발아래로 무언가를 미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트레드밀이나 비슷한 기기를 활용한 것 같았다.

“저기다.”

화살표를 따라 모퉁이를 돌자 전방에 무너진 약국이 보였다.

하지만 커다란 몬스터가 막고 있어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몬스터의 머리 위에 그리폰이라는 글자가 출력되고 있었다.

“그리폰. 비행형 짐승 몬스터인데 비행이 가능하지만, 공격 패턴이 몸통 박치기 하나라서 어려운 상대는 아니야.”

오철용이 그리폰에 관한 정보를 속사포 같이 쏟아냈다.

옆을 돌아보니 오철용이 진지한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 올렸다.

“전력으로 따지면 너 혼자로도 가능하겠어.”

“그걸 다 기억하고 있어?”

“이 정도는 본인에게 있어 껌이지.”

상당히 독특한 말투였다.

오철용의 인상이 단단히 새겨졌다.

“삐이이이익!”

그리폰이 괴상한 울음을 토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힘찬 날갯짓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유현은 곧장 그리핀을 향해 도약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꺄아아아악!”

유현은 비명을 듣고 멈칫했다.

약국 우측에 웬 여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구현할 줄이야….’

한눈을 판 사이 그리폰이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유현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그리핀을 향해 발을 튕겼다.

쩡!

주먹이 그리폰의 턱주가리에 부딪히며 묵직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이!”

얻어맞은 그리폰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이름 아래에 있던 HP바가 순식간에 절반이 줄어들었다.

“쓰바, 손 아프네.”

유현이 손을 털었다.

얼마나 단단하게 업그레이드한 것인지 주먹이 얼얼하다.

‘건틀릿이라도 껴야겠는데.’

지금까지는 답답해서 맨손으로 싸웠건만, 이렇게 아프면 답답하더라도 장비를 착용하는 게 나을 듯 싶다.

“다시 온다!”

오철용이 소리쳤다.

왜 자신 혼자 싸우는 건지 의문이 들었으나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유현은 그리핀을 향해 다시금 점프했다.

***

시뮬레이션 관리실.

안칠성이 세 개의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번 방부터 3번 방까지 모두 같은 퀘스트가 주어진 상황.

아이들이 시뮬레이션에 잘 적응하는지,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각자 어떻게 반응할지 등을 보기 위한 튜토리얼이었다.

“다들 타임라인은 비슷하군.”

모두 약국 앞에서 그리폰과 마주했다. 3번 방이 서로 충돌을 겪으며 조금 늦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1번 방은….”

신가온, 서혜빈, 한주석이 모인 조.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전투력이 뛰어난 조다.

“가온이가 시선을 끌고 혜빈이가 공격. 좋은 전략이야.”

신가온의 특성은 검과 함께할 때 극대화된다.

무기가 없는 지금, 그의 힘을 최대로 활용하는 건 미끼 역할이었다.

“1조는 순조롭게 돌파하겠고, 2조는...”

2번방에 들어간 건 메이블, 김풀잎, 한서희.

“여기도 무난하게 돌파하겠군.”

안칠성은 3번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케가미와 유현, 그리고 오철용이 들어간 방으로, 가장 걱정되는 곳이었다.

“왜 그렇게 싸워대는지 원.”

안칠성 역시 이케가미가 겪은 사건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아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으려나.”

화면 너머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케가미는 화면에서 보이지도 않고, 오철용은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현이는 그리폰이랑….”

그리폰과 싸우는 유현을 보며 안칠성은 움찔했다.

그가 그리폰의 머리에 다리를 휘감은 채 주먹으로 연신 같은 부위를 내려치고 있었다.

“설마 또 뭉개지진 않겠지.”

엄청난 돈을 투자해 강화한 외갑이다. 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주먹질 따위로 망가뜨릴 순 없을 것이다.

“계속 때려봐라. 그게 부서지나.”

안칠성이 씩 웃으며 화면을 응시했다. 마나를 두른 건지 유현의 주먹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불안하게 갑자기 마나는 왜 둘러.”

유현은 흔들림 없이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폰의 체력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 날갯짓도 점점 둔해지더니 종국에는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군. 부서지진 않았어.”

지난번처럼 시설이 손상되었다는 알림은 울리지 않았다.

역시 업그레이드한 보람이 있었다.

“3번도 무난하게 통과하겠고….”

안칠성이 안심하며 다른 화면을 살펴보려던 그때.

파손을 알리는 효과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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