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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일상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오전에는 이론 수업, 오후에는 실전 수업을 들었다.
이론 수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몬스터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처럼 몬스터의 정보를 파악하는 건 헌터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천공벌은 대형 곤충 몬스터에요. 벌처럼 생겼는데 기다란 침으로 상대를 꿰뚫는 게 공격 방식이죠.”
몬스터의 공격 패턴은 무엇이고, 약점이나 특징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를 시작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수업의 갈래가 뻗어갔다.
“천공벌을 상대할 때는 불속성의 공격이 유리해요. 날개를 불태우면 쉽게 잡거든요.”
몬스터 수업은 매일 몇 시간씩 이어졌다. 하지만 몬스터의 종류가 많고 여전히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있어 학습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점심 맛있게 먹어요~”
안도경이 교실을 나가자 곳곳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시간이 지나며 노래방 마이크와 스피커를 동원한 수업 방식에는 익숙해졌지만, 몇 시간씩 연속으로 행해지는 수업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수업 들을 필요 있나. 그냥 때려잡으면 되지.”
유현의 말에 서혜빈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게 말이 쉽지. 되겠냐?”
“넌 몰라도 난 되지.”
“......그래도 외피가 두꺼운 놈들이나 수중 몬스터는 불가능할걸?”
“그건 그렇겠네.”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오래 단련했더라도 주먹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또한, 물속이나 하늘에서는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 지상처럼 압도적인 파괴력을 내는 건 어려웠다.
‘그래도 마법이 있으니 싸우는 게 아주 어려운 건 아니지.’
생각난 김에 유현은 코어를 살폈다.
포션의 제조 규모를 확장하며 수입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그 덕에 재구조화 가속 포션을 한 병 더 만들어 섭취했다.
지금은 실전에서도 유용하게 활용이 가능한 수준이다.
‘역시 돈이 좋아.’
유현은 스마트폰을 꺼내 어제 왕대길이 보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롭게 개발한 포션들의 임상실험 자료였다.
포션을 만드는 건 쉽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쉽게 생긴다.
임상실험은 이런 부작용을 미리 걸러내는 과정이었다.
‘이건 일반인에게만 사용 가능한 포션이겠군.’
그 과정에서 헌터에게는 부작용이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부작용이 없는 포션도 몇 가지 발견했다.
아직은 시기상조기에 샘플만 남겨둔 상황. 좀 더 안정화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포션도 판매할 계획이다.
‘떼부자가 되겠지.’
유현의 포션 제조 방식은 다른 기업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되어 일반인용 포션처럼 이전에는 없었던 결과를 만들어냈다.
재료들을 모아 끓이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방식이었지만, 같은 방식이라도 재료의 혼합 비율과 끓이는 시간의 차이 등, 여러 가지가 달랐다.
***
오후 수업은 실전 수업이었다.
무기술이나 무술 등, 다양한 항목으로 실전 감각을 기르는 수업이다.
“오늘은 상황 파훼를 해보겠다.”
상황 파훼.
한 가지 상황을 정해놓고, 그 상황을 빠져나오는 걸 실습하는 수업이다.
“마나가 전부 떨어졌을 때, 집단 활동을 하는 짐승형 몬스터 오스가 너를 포위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학생들은 VR기기를 착용하고 해당 상황을 직접 마주했다.
그리고 거기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타개하는 게 상황 파훼의 수업 방식이었다.
“다 때려죽입니다.”
“......너는 하지 마라.”
유현은 애초에 시작도 하지 못했다.
마나가 없다는 가정은 애초에 그에게 큰 제약이 되지 못했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나 볼까.”
유현은 훈련실을 돌며 다른 사람들을 확인했다.
훈련실 위에 있는 스크린을 통해 해당 인물이 보고 있는 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먹이로 유혹해서 벗어나는구나.”
오스는 사람의 반 정도 크기의 짐승 몬스터. 잡식성이기에 먹이로 유혹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또한 이론 수업의 효과였다.
“얘는 나랑 비슷하네.”
한주석은 묵직한 덩치를 활용하여 오스와 씨름했다.
곳곳이 물어 뜯겼지만, 어차피 고통은 느껴지지 않기에 모든 오스를 기절시켜 상황을 해결했다.
“덩칫값 하는군.”
모든 상황이 끝나면, 아이들은 녹화된 영상을 통해 서로의 방식을 확인하며 지적하고 학습했다.
뭐가 문제였고, 어떤 방법을 사용했으면 좋았을지 등.
정답이 없는 훈련인 만큼, 아이들 간의 토론은 굉장히 열띠게 진행됐다.
“모래를 뿌리는 건 너무 근시안적이에요. 당장은 상대의 시야를 가릴 수 있어도 금세 열 받아서 쫓아온다고요.”
“시야만 가리면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도망치는 데도 성공했고.”
간혹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안칠성이 제지하여 싸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고생했다.”
수업이 종료되면 그 자리에서 종례와 하교가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기숙사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훈련장에 남아 훈련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 훈련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신가온도 급히 나가는 걸 보니 일이 있는 것 같았다.
“......혼자 남았네.”
유현도 평소라면 그냥 기숙사로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훈련장에서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마법의 사용이었다.
코어의 마나도 충분했기에, 오랜만에 마법의 감각을 일깨워볼 생각이었다.
“후우.”
유현은 심호흡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가장 먼저 사용할 마법은 기초 공격 마법. 체내를 질주하던 마나가 술식에 의해 체외로 방출되었다.
[애로우]
소환된 화살이 유현의 의지에 따라 전방에 있는 인체 모형을 향해 쇄도했다.
파바박!
모형에 연속으로 처박히는 화살들.
제각기 다른 부위의 급소를 정확히 노렸다.
“아직 녹슬지 않았군.”
전투 감각은 갈고 닦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써왔어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다행히 아직 마법의 정확도는 퇴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좀 더 미세하게 다뤄볼까.”
유현이 다시 화살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손짓을 통해 화살을 더 세밀하게 컨트롤 했다. 화살들이 허공을 부유하며 곡예를 펼치듯 움직였다.
“좋아, 좋아.”
유현이 좀 더 거칠게 팔을 휘두르자 화살들이 빠른 속도로 공간을 갈랐다.
속도가 빨라졌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컨트롤은 자유자재였다.
몇 달 쓰지 않은 것만으로 녹슬기에는 그간 마법을 써온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여러 가지 해봐야겠어.”
유현은 화살을 지우고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등 뒤로 물로 이루어진 작은 구체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연격으로.”
구체가 모형을 향해 쇄도했다.
유현은 수구를 쏘아 보낸 직후 다른 마법을 캐스팅했다.
[라이트닝]
수구가 모형에 적중한 것과 동시에 한 줄기 번개가 작렬했다. 물길을 따라 전격이 퍼지며 사방으로 불꽃이 일었다.
“연격은 성공. 다음은 동시 캐스팅.”
동시 캐스팅. 머릿속으로 서로 다른 마법의 술식을 그려야 하는 복잡한 방법이었다. 유현 역시 오랜 훈련으로 간신히 터득한 방법이었다.
“너무 큰 건 좀 그러니까….”
[애로우]
[가속]
허공에 화살이 나타난 직후, 총알처럼 쏘아져 모형의 머리를 관통하고 훈련장의 벽까지 날아갔다.
[애로우]와 [가속]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 결과였다.
“마법은 됐고.”
일단 즉시 전력으로써 마법은 합격이다.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다음에는 조끼를 입고 와야겠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납이 가능한 아공간에는 수많은 물건이 존재한다.
마왕의 군단장들이 사용하던 아티팩트는 물론이고, 저명한 대장장이들이 만든 전설의 무기들도 있었다.
“무기들도 활용을 해봐야지.”
대부분의 무기는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다만 모두 자신 있는 건 아니기에 조금씩 연마할 생각이었다.
대표적으로 원거리 무기가 그랬다.
“그러고 보니 아공간에 뭘 넣어놨더라?”
워낙 이것저것 다 쑤셔 넣다 보니 정확히 어떤 물건이 있는지 모른다.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바로바로 빼낼 수도 없으니 언젠가는 한번 정리를 해야 했다.
“바로 가서 해봐야겠네.”
유현은 훈련장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
유현의 기숙사는 B동 1층이었다.
A동으로 가고 싶었지만, A동은 여자 기숙사라서 B동으로 왔다.
“집이 너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유현이 집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내부 인테리어는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올 당시 아카데미 측에서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공해주는데, 달리 원하는 게 없었기에 유현은 그냥 대충 가구만 넣어달라고 했다.
그 결과가 이토록 휑한 집안이었다.
“TV 1대. 소파.”
넓은 거실에는 그게 다였다.
다른 방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침실에는 침대만 덜렁 있고, 그 외의 방에도 책상이나 책장만 덜렁 있었다. 단어 그대로 주거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뭐, 어차피 평생 살 것도 아닌데.”
필요한 건 다 있다.
화장실에 욕조도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목욕탕도 있고.
그런 편의시설들이 이곳으로 온 목적이었기에 유현은 큰 불만이 없었다.
“정리하고 목욕탕이나 갈까.”
유현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아공간 조끼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휑한 거실은 무언가를 늘어놓고 정리하기에 최적인 공간이었다.
“...휑한 집안을 이렇게 활용할 줄이야.”
아공간 조끼를 열고 뒤집자 몇백 년간 모아온 물건들이 쏟아졌다.
높은 층고와 상당한 넓이의 거실이었지만,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발 디딜 곳 하나 없었다.
“......”
물건들에 휩쓸려 저만치 밀려난 유현은 넋을 놓은 채 물건의 산을 바라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에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내가 이렇게 많이 모았었나?”
주섬주섬 허리를 숙여 물건들 사이를 뒤적였다.
무엇의 것인지 모를 해골도 있고, 어디에 써먹는 건지 알 수 없는 쓰레기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딴 걸 대체 왜 주웠지?”
유현은 물건을 하나하나 살피며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구분했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고.”
마나도 느껴지지 않고, 그 자체로도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군단장들의 전리품은 따로 빼두고.”
마왕의 군단장들이 사용하던 각종 아티팩트들. 사용하면 부작용이 있지만, 효과가 뛰어나 버리긴 아까운 물건들이었다.
“이건 가지고 있긴 애매하네. 버리자.”
마나가 담겨있지만, 사용할 구석이 요원한 물건들도 모두 버리는 쪽으로 분류했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고, 밤을 보내고, 새벽이 찾아왔다.
조금씩 속도를 높이던 유현은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이건….”
타조 알 크기만 한 타원형의 구체였다. 꼭 생긴 게 알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런 걸 대체 어디서 주웠지?”
정확히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는데 그게 기억날 리 없었다.
버릴지 말지 고민하던 유현은 부엌으로 가 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
“알이면 삶아서 한 번 깨보자.”
유현은 냄비에 구체를 넣은 뒤 거실로 돌아와 정리를 이어갔다.
쓸만한 물건들로 분류한 건 주로 포션, 장비, 아티팩트, 보석, 스크롤 등이었다.
그 외에도 용도는 알 수 없지만 특별해 보이는 물건은 판대륙의 기념품이라는 느낌으로 소장하기로 했다.
“쓸만한 무기가 생각보다 많네.”
도끼, 장검, 활, 석궁, 건틀릿, 방패 등. 판대륙 전역을 떠돈 덕분에 꽤 많은 종류의 무기를 모았다.
“일단 챙길 물건은 전부 아공간에 넣고….”
유현이 마법을 활용해 물건들을 아공간에 빠르게 담았다.
그리고 나머지 물건들은 판대륙제 용광로에 담아 마법을 사용해 통째로 불태웠다.
“이야, 잘 탄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이 지나고.
유현은 불꽃을 껐다. 거실이 완전히 깨끗해졌다.
“끝!”
시간은 어느덧 새벽.
하지만 목욕탕은 24시간 영업이기에 지금 가도 늦지 않는다.
“씻고 무기 목록을 한 번 추려봐야겠군. 상태가 안 좋은 건 다 버려야겠어.”
그런 계획들을 구상하며 현관을 나서려던 그때였다.
덜그럭!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