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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신가온이 주저앉았다.
“......”
대련의 초반부만 해도 할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유현의 장점인 특성을 사용할 수 없는 싸움인 데다가, 상대는 검의 초심자였다.
모든 부분에서 자신이 우위인 싸움이었다. 그런데 졌다.
대체 왜?
왜 진 거지?
특히,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그 속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인간의 속도가 아니었다.
특성도 없이 그런 속도를 내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너 대체…….”
신가온이 유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깨에 검을 올린 채 신가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단한데. 그걸 반응할 줄이야.”
“......뭐?”
신가온이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반으로 부서진 목검이 쥐어져 있었다. 손목에 뒤늦게 고통이 몰려왔다.
‘맞아. 막았어.’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고, 반사적으로 검을 비틀어 막아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반응속도였다.
“내가… 어떻게 막았지?”
그 말에 유현이 낮게 웃었다.
“사람이라면 한 번쯤 주마등 같은 순간을 겪게 되지.”
“확실히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긴 했어.”
“그걸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 있어. 순발력이 대단하거나, 반응속도가 뛰어난 사람들.”
“그게 나라고?”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가온에게는 재능이 있다.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재능이.
직접 검을 맞댔기에 알 수 있었다.
그의 검은 빨랐고, 강했으며, 깔끔했다. 검술 자체의 실력도 일품이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신체적 요소들도 탁월했다.
“더 노력하면 발전할 수 있을 거야.”
“......”
신가온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강했고, 자신이 약했을 뿐이니까.
단지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 더 노력했다면, 공격 한 번쯤은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제 누워서 게으름 부릴 시간에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면.
늦잠 자지 않고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달렸더라면.
“표정이 안 좋네.”
“아쉬워서 그래. 더 노력했으면 조금은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안 될 텐데.”
“마지막에 그건 특성이 아니지?”
“아니야.”
“그럼 정말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안 되겠구나….”
아득하리만치 높은 곳에 있는 사람.
거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까.
유현의 말처럼 쉽게 좁힐 수 없는 격차였다.
“나중에 또 싸워줘.”
하지만 닿지 못할 곳이라며 하늘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죽더라도 위를 향하고 싶었다.
“......”
웃으며 말하는 신가온을 보며 유현은 혀를 내둘렀다.
재능 탓을 하거나,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자신 있던 분야에서 패배한 천재들은 으레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혹여나 좌절한다면 조언이라도 좀 던져줄 생각이었다.
‘그럴 필요도 없네.’
조언도 충고도 필요치 않다.
신가온은 오늘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삼아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 아이가 가진 가장 커다란 재능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해라.”
유현은 신가온에게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켰다.
***
대련장은 조용했다.
이미 유현의 진짜 힘을 알고 있던 사람도, 모르던 사람도 모두 충격을 금치 못했다.
“......”
그의 특성은 신체 강화가 아니었다.
또한, 검을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야… 너 알고 있었어?”
서혜빈이 한서희를 돌아보았다.
한서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신체 강화가 특성이 아니라는 건 알았어요. 하지만 저렇게 검을 잘 다룰 줄은….”
“쟤 뭐야 대체? 몸을 그렇게 움직이는데 그게 특성이 아니라고?”
검을 다루는 솜씨도 놀랍지만, 서혜빈에게는 그간 유현이 보여준 힘이 특성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움직이지? 말이 돼 이게?”
“말이 안 되죠. 하지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그냥 수긍하는 게 마음 편할 거예요.”
한서희도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오히려 저 힘을 상세히 설명하는 게 더 미친 짓 같았다.
그건 마치 특성의 기원을 밝히려는 시도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대단하다….”
메이블은 나지막이 감탄했다.
처음에 걱정했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멋진 싸움이었다.
단순히 힘과 속도로 몰아붙이는 게 아닌 기교와 기예로 무장한 검사들의 전투. 마치 영화 속 아름다운 액션씬 같았다.
“......쳇.”
이케가미는 혀를 찼다.
그 역시도 두 사람의 전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작 목검이었지만 두 사람의 공방은 그만큼 화려했고, 박진감 있었다.
퉁, 퉁!
유현이 대련장의 벽을 두드렸다.
넋을 놓고 있던 안칠성이 뒤늦게 대련장의 벽을 내렸다.
“빨리 안 열고 뭐 해요?”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안칠성은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황당했다.
유현이 이길 거라고 예상은 했다.
신가온이 검을 잘 쓰긴 하지만, 특성이 없다면 유현의 힘과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이런 방식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늘 검을 처음 써본 게 아니냐?”
“예전에 검도 좀 했습니다.”
“그게 검도 배운다고 되는 실력이라고?”
“목숨 걸고 배우면 가능해요.”
유현은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는 몸을 돌렸다.
안칠성은 잠시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신가온에게 말을 붙였다.
“너는 좀 괜찮냐?”
“네, 괜찮아요. 재밌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호적수를 만났구나.”
“호적수는 아니에요. 현이가 제대로 했으면 금방 끝났을 테니까요.”
“......그래, 그랬지. 저 녀석은 방어만 했었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다 각자가 본 유현의 무위를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직접 싸워보고도 믿어지지 않아요. 어떻게 특성도 없이 그렇게 움직일까요.”
“그냥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해.”
“현이는 1학년 때 F반이었죠? 그때도 그랬나요?”
안칠성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지. 키도 작고, 소심하고. 뒤늦게 재능이 개화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그렇군요.”
“너도 가서 쉬어라. 다음 차례 애들 불러오고.”
“네, 알겠어요.”
신가온이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유현을 둘러싼 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우예 했나? 그거 특성 아이면 내도 할 수 있는거 아이가?”
“꿈 깨라. 그냥 운동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마! 그럼 니는 우예 했노!”
“그런 게 있어.”
유현은 다른 아이들의 물음에 대충 대답하고, 직접 눈앞에서 시범을 보여 자신의 힘과 속도가 특성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아이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그날 수업이 마무리되고, 대련장의 일은 학생들의 입을 통해 길드로 전해졌다.
유현이 가진 힘은 특성이 아니었고, 그에게 뛰어난 검술 실력이 있다는 것.
높은 등급의 특성에 버금가는 힘이었지만, 그가 가진 특성이 소화 가속이라는 사실도 함께 전해져 큰 반향은 없었다.
만약 특성마저도 뛰어났다면, 그를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리라.
“유현이라는 학생 말입니다.”
신가온이 속한 길드 [스파르타]의 수뇌부 회의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왔다.
“대련에서 가온이를 이겼다고 하더군요.”
길드의 간부들이 기다란 원탁에 모여 앉아있다.
막바지에 다다르며 늘어진 회의였지만, 길드의 특급 유망주 신가온이 언급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우리 가온이가 졌다고?”
“유현이면 등급 테스트에서 1위 했던 학생 아닙니까?”
“소문으로는 그 친구 특성이 없다던데.”
간부들이 곳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한 마디씩 뱉었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가온이가 말하기를 원래 특성은 소화 가속이라는 기이한 특성이며, 기존에 특성이라고 알려진 신체 강화는 본래 가지고 있는 힘이라더군요.”
그 말에 회의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누구 하나 그 말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게 말이 되나?”
“저도 그게 의문스럽지만, 가온이가 직접 이야기했으니 사실입니다.”
상석에 앉은 근육질의 노인이 근심이 깃든 얼굴로 팔짱을 꼈다.
“믿을 수 없군. S등급에 도달할 수 있는 몸뚱이가 특성이 아니라 타고난 힘이라니.”
“그럼 가온이가 진 것도 이해가 가지.”
소식을 전하던 장발의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대련이 검을 사용한 대련이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침묵은 이전보다 더 길었다.
검술의 귀재라 불리는 신가온.
특성 사용이 불가능해 힘과 속도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가온이가 검술로 패배하다니.”
“방심한 것 아닌가? 가온이는 길드에서도 적수가 없는 놈이야.”
장발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가온이가 말하길 마치 벽 같았다는군요. 모든 공격이 막히고, 고작 일격에 패배했답니다.”
“허….”
“목표를 찾은 것 같다는 말도 하더군요. 정말 뛰어난 실력자인 듯합니다.”
모두가 탄식하는 가운데, 죽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가온이가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흥미롭군. 실제로는 어떤지 궁금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검술에 있어서는 굉장히 까탈스러운 녀석이니까요.”
“저도 가온이가 상대를 그렇게까지 칭송하는 건 처음 보네요.”
어려서부터 신가온을 지켜봤던 이들이기에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혹시 아카데미에 길드 참관 일정이 있나?”
“가장 근접한 일정은 최강자전입니다.”
“투기대회 말이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 투기대회. 통칭 최강자전.
말 그대로 참가자들이 서로의 무력을 다투어 순위를 정하는 대회다.
길드와 일반인의 관람이 가능하며 아카데미 학생들이 최초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직 길드와 계약을 맺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주요한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일정이 언제지?”
“공지된 일정은 다음 달입니다.”
“아쉽군. 당장이라도 쳐들어가서 우리 가온이를 이긴 놈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은데.”
노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간부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보였다.
“얼마나 센 놈인지 궁금하군요.”
“가온이에게 상처를 남기진 않았겠지.”
“다치진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신가온, 그의 존재는 스파르타 길드에게 단순한 길드원 이상이었다.
이름처럼 땀내 나는 남성들이 잔뜩 모인 스파르타 길드에서 신가온은 한 송이 꽃 같은 존재였다.
지켜주어야 하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쁜 자식 같은 아이.
오랜 시간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신가온과 함께 했기에 형성된 유대감이었다.
“이번 투기대회는 반드시 참관해야겠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대장, 저도 데려가시죠.”
길드의 간부 전원이 참관 의사를 밝혔다. 유망주 영입이나 단순한 관광의 목적이 아니었다.
신가온을 패배하게 만든 놈, 그리고 신가온에게 인정받은 놈의 실력을 한 번 보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너무 많으면 곤란한데.”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육질의 중년 간부가 책상에 주먹을 내리쳤다.
“공평하게 결투로 정하는 건 어떻소?”
“그래, 그게 좋겠군.”
“다들 링으로 모이시오.”
중년 남성이 회의실을 나가자 그 뒤로 간부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