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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등급의 점심은 스페셜 하우스에 마련된 식당을 이용했다.
메뉴는 하위 클래스의 식당보다 다양했고 그 모든 것들이 공짜였다.
그래서 유현은 온갖 메뉴를 주문하여 테이블 하나를 독차지했다.
“점마, 내가 찹쌀떡 줄 때는 몇 개 쳐묵지도 않드만 억수로 잘 먹네”
“저게 사람이냐 돼지냐.”
멀찍이 서 있던 서혜빈이 질린 듯 몸을 떨었다.
“역시 현이가 그동안 마이 힘들었나 보다.”
“갑자기 웬 헛소리야?”
“아이다. 됐다. 우리도 밥이나 묵자.”
식당은 넓었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짝을 이루거나 혼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와, 진짜 재밌었겠네요.”
“네. 한 번 서희 씨도 가보세요.”
한서희와 메이블도 같은 테이블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어색한 것 같기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두 사람의 모습. 가끔 말은 해봤지만, 친하지는 않은 사이였다.
“서희 씨는 방학동안 뭐 하셨어요?”
“저는….”
길드 파티에서 있었던 유현과의 일이 먼저 생각났다.
왜 그때 일이 생각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기억에 남는 일이었던 탓일까.
“얼굴이 빨개요. 어디 아프세요? 치료해드릴까요?”
“제, 제가요?”
한서희가 뺨에 두 손을 올렸다.
차가운 손바닥에 열감이 느껴졌다.
“조금 더워서 그런가 봐요.”
“더워요? 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식당을 빠져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 유현 혼자뿐이었다.
“꺼억.”
수십 개의 접시가 깨끗이 비었다.
유현은 만족감에 배를 두드렸다.
“이 맛에 등급 올리는구나.”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등.
온갖 국가의 음식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는 식당은 유현에게 있어 최고의 복지였다.
“오길 잘했어.”
맛은 평범하지만, 언제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볼까. 역시 등급 테스트를 선택한 건 현명한 행동이었다.
유현은 접시를 정리하고 자리를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
뒤통수로 느껴지는 적나라한 시선.
대놓고 쳐다보고 있다고 광고를 하는 수준이었다.
유현은 몸을 틀어 뒤를 확인했다.
훤칠한 귀공자 느낌의 남자가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유현이지?”
머리는 아카데미에서도 드문 금빛이었고, 그 머리에 어울리는 귀티나는 외모였다. 같은 교복인데도 태가 다르다.
“누구?”
“어…. 나 교실에서 못 봤어?”
유현이 유심히 남자의 얼굴을 살폈으나 기억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다른 아이들을 살펴본 적이 없으니까.
“하하. 진짜 못 봤구나.”
“같은 반인가?”
“응. 나도 이번에 S등급으로 올라왔어. 신가온이라고 해.”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인사나 하려고 말 걸었어. 그동안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신기하다.”
신가온이 유현 앞에 잔뜩 쌓인 접시로 손을 뻗었다.
“도와줄까?”
“나야 땡큐지.”
두 사람은 함께 접시를 퇴식구에 반납하고는 식당을 나왔다.
원체 사람이 적은 건물인 탓에 점심인데도 식당 밖 복도는 조용했다.
“후식으로 음료수라도 마실래?”
식당의 출입구에는 자판기가 있었다.
음료수 역시 공짜였기에, 두 사람은 음료수를 뽑아 들고 복도 벤치에 앉았다.
“키야~”
시원한 탄산이 입안에서 톡톡 터졌다. 소화가 잘될 것만 같은 청량함이었다.
“아까 보니까 먹는 거 진짜 좋아하는 것 같더라.”
“찾아서 먹진 않는데, 있으면 많이 먹지.”
“그럼 나중에 우리 길드 한번 놀러 올래?”
“그냥 여기서 먹지 뭐하러 거기까지 가.”
신가온이 뭘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 오늘 돈가스 먹었는데 우리 길드랑 여기랑 차원이 달라.”
아카데미의 돈가스도 맛있는데 차원이 다르다니.
돈가스를 좋아하는 유현은 신가온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설명해봐.”
“여기건 그냥 시중에서 파는 그런 느낌이거든? 근데 길드에서 주는 건 튀김이 바삭한데 부드러워.”
“바삭하면 딱딱한 거 아냐?”
“아니야. 이게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씹으면 바삭함이 터지면서 입안에서 사르륵 녹아.”
유현이 군침을 삼켰다.
조금 전에 식사를 마쳤음에도 설명을 들으니 식욕이 돋았다.
“가자.”
“잘 생각했어. 대신 조건이 있는데.”
“네가 가자 해놓고 조건이 있어?”
“그렇게 큰 건 아니고…. 이따 오후에 무기술 수업이라고 들었거든? 괜찮으면 거기서 대련할 수 있을까? 물론 선생님 허락 맡으면 말이야.”
자기랑 싸워달라는 소리였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기에 유현은 곧장 수락했다.
“그런 거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고마워.”
유현은 다시 음료를 마셨다.
신가온. 합격자 리스트에서 네 번째에 있던 이름이었다.
편법을 사용한 이케가미를 제외하면 사실상 3위이니, 메이블을 제외하고는 가장 뛰어난 실력자다.
‘그래서 싸워보고 싶은 건가?’
자기 위에 있는 놈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서?
유현이 신가온을 응시했다.
이온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마치 광고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생긴 건 무슨 도련님처럼 생겨서 은근히 도전적이다.”
“푸흡. 뭐, 뭐라고?”
“그게 아니면 갑자기 싸워달라고 할 이유가 없잖아.”
신가온이 뿜었던 음료수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좀 이상한가?”
“이상할 게 뭐 있어. 승부욕 넘치는 건 좋은 거지. 특히 이런 곳에서는.”
“그치? 이상한 거 아니지?”
배시시 웃는 신가온을 보며 유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왜 이런 애가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아닌 헌터를 하겠다고 하는 걸까.
“아, 슬슬 가봐야겠다.”
어느새 점심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음료를 비우고 교실로 돌아갔다.
잠시 뒤 수업 종이 치고, 안칠성이 교실로 들어왔다.
“오후 수업은 무기술이다.”
신가온의 말대로 오후 수업은 무기술이었다.
유현은 과거에 다뤘었던 무기들을 떠올렸다.
‘이것저것 다 써봤던 것 같은데.’
워낙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적과 싸우다 보니 수많은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중 자신 있는 건 역시 가장 많이 사용한 검이었다.
“특성에 어울리는 무기는 특성 활용을 더 쉽고 다각적으로 만들어 주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1학기 때 무기술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다.”
안칠성이 유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넌 무기부터 골라야 해.”
“뭐 있는데요?”
“음…. 뭐가 있었더라….”
그때 뒤쪽에서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당히 칼잡이나 해라. 어중간한 거 들어서 깝죽대지 말고.”
유현이 이케가미를 돌아보았다.
그의 따분한 표정에는 유현을 향한 적대감이 드러나 있었다.
“너는 저번에 그렇게 맞아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그때는 내가 봐준 건데.”
“봐줘? 오냐. 그럼 어디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
“싸우지 마라.”
안칠성의 중재에 유현이 혀를 차며 다시 몸을 돌렸다.
“무기류는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좋겠다. 종류가 많기도 하고, 어차피 수업도 대련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니까.”
대련장이라는 말에 몇 사람이 반응했다.
“오늘 대련해요?”
“첫날부터?”
안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대련도 많이 할 예정이다. 대인 전투 능력도 충분히 기르라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헌터의 적은 몬스터만이 아니다.
특성을 범죄에 활용하는 이능 범죄자들도 그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이었다.
“최근 들어 능력자의 범죄 비율이 올라가고 있어서 말이야. 아마 그것 때문에 내린 지시가 아닌가 싶다.”
이능 범죄자에 대응하기 위해 특수 경찰이 있지만, 선발 과정도 까다롭거니와 박봉 받으면서 경찰 할 바에야 헌터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 채용난을 겪고 있다.
“자, 그러면 다들 옷 갈아입고 지하로 가자.”
훈련 시설은 스페셜 하우스의 지하에 존재했다.
대련장 외에도 개인 훈련실, 체력 단련실, 시뮬레이션 실 등. 다양한 공간이 지하에 마련되었다.
학생들은 훈련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대련장에 모였다.
넓은 대련장은 특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해도 부서지지 않게 특수한 광물로 제작되었다.
또한 최신식 설비가 가미되어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기능들이 존재했다.
“다들 무기부터 챙겨가라.”
벽면에 빌트인 되어 있는 무기 보관대도 최신 설비 중 하나였다.
훈련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관대로 다가가 익숙한 무기를 손에 쥐었다.
모두 살상력이 없는 가짜 무기들이었다.
“선생님. 저는 개인 무기를 챙겨왔는데 그걸 써도 될까요?”
“위험한 건 아니지?”
“네. 목검이에요.”
신가온은 들고 있던 케이스를 열어 기다란 목검을 꺼냈다.
짙은 색깔의 목재로 만들어진 검에는 흠집이 잔뜩 있었다.
‘노력가군.’
유현은 검을 보자마자 노력의 흔적들을 알아차렸다.
얼마나 쥐었는지 손잡이는 닳아있고, 검의 날 역시 군데군데 이빨이 빠져 있었다.
“조금 낡았지?”
시선을 눈치챘는지 신가온이 유현 쪽을 돌아보았다.
“낡은 게 아니라 노력의 흔적이지. 대단한데?”
“고마워. 부러지면 새 걸 사려고 하는데 이번 거는 영 안 부러지네.”
“그 기분 알지. 그냥 새 걸 사도 되는데, 이전에 쓰던 검이 멀쩡하면 마음이 불편해.”
신가온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그리고 부러뜨려야 꼭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 같지 않아? 나는 그러던데.”
유현의 말에 신가온이 반색했다.
“와, 어떻게 알았어? 검도라도 배웠어?”
“비슷해.”
그걸 검도라고 해야 하나.
따지고 보면 검을 배운 게 아니라 살기 위한 발버둥이나 다름없었다.
“유현. 네 차례다.”
“옙.”
어느새 무기를 고를 차례가 다가왔다.
유현은 성큼성큼 걸어가 무기 보관대 앞에 섰다.
활, 망치, 몽둥이, 채찍 등 다양한 무기가 있었지만, 그의 손은 망설임 없이 목검을 쥐었다.
“그걸로 할 테냐?”
“예.”
“가장 무난하긴 하지.”
유현은 신가온의 들뜬 눈빛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들 자기 무기는 다룰 줄 알테니 기본 훈련부터 시작해라. 현아, 너는 내가 가르쳐주마.”
“괜찮아요.”
“검이란 게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쉽게 휘두르는 그런 게 아니야.”
“저도 대충은 알아요.”
안칠성은 더 말하지 않았다.
유현은 막 무기를 손에 쥔 단계.
어떤 방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롭게 사용하며 이 무기가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검이 맞지 않으면 다른 무기로 바꿔도 좋다.”
“옙.”
안칠성이 대련장을 컨트롤러를 조작하자 바닥에서 천천히 벽이 솟아났다.
그 벽들은 서로 맞물려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다.
“개인 훈련실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이동해서 훈련해라.”
대련장의 최첨단 설비 중 하나인 훈련장 구분 시스템이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훈련실로 들어갔고, 유현은 개인 훈련실 대신 대련장을 선택했다.
“어색하네.”
유현이 검을 쥔 손을 움직였다.
손에서 놓은 지 고작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손에 들어온 감각이 영 부자연스러웠다.
“이래서 훈련은 매일 해야 하는데.”
유현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가장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었지만, 이것만큼 감각을 되찾는 데 효과적인 게 없었다.
“같잖게 검술은.”
멀찍이 서 있던 이케가미가 유현을 보며 코웃음 쳤다.
그의 눈에 유현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검을 손에 쥔 어리석은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검술이라고 쉬운 게 아닌데.”
느닷없이 들려온 하이톤의 음성.
이케가미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응?”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계속 있었는데?”
이케가미가 헛기침을 했다.
“들었냐?”
초록색 눈동자가 이케가미를 빤히 바라보았다.
“못 할 말도 아니잖아?”
“......”
“어차피 그게 사실인데. 검술이 쉬운 거였으면 개나 소나 다 하게.”
“그, 그래.”
초록색 머리가 자리를 벗어났다.
“...기분 나쁜 새끼.”
이케가미도 무기를 손에 들고는 개인 훈련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