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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82화 (82/219)

82

여름에 시작된 방학은 가을에 끝났다. 학생들은 하복 대신 춘추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누군가는 짧다고 할 수 있는 두 달간의 휴식. 하지만 유현에게만큼은 길고 긴 방학이었다.

“하암.”

개학 전날까지 새롭게 옮긴 포션 공장에서 새로운 포션을 점검하던 유현은 오늘 새벽 최종 테스트까지 마무리 지은 후 곧장 학교로 향했다.

오늘로 유마망의 포션은 하나가 더 늘어 두 종류가 됐다.

하나는 해독, 다른 하나는 지혈.

외상에만 효과가 있는 제품으로 상처 부위를 수복하여 출혈을 막는다.

성능은 메디컬 포션에 비해 조금 낮지만, 가격은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만드는 게 재미는 있는데 피곤하단 말이지.”

유현이 기지개를 켜며 교정을 걸었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했다.

교정에 펼쳐진 가로수는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완연한 가을이었다.

목적지는 S등급을 위해 마련된 전용 건물. 셔틀을 타면 금방이지만, 기분 좋은 날씨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바깥에 있다가 여기 들어오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니까.”

아카데미의 정경은 이국적인 느낌이 다분했다. 건물의 디자인이라던가, 전체적인 구조라던가.

문득 다른 국가의 아카데미는 어떨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유현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방학 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건물 입구에 명패가 새로 생겼다.

[스페셜 하우스]

S등급을 위한 건물답게 굉장히 직관적이고 알아듣기 쉬운 이름이었다.

“이름이 생겼네요?”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미리 기척을 알아챘던 유현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끄덕였다.

“재밌는 이름 같아.”

“그러게요.”

유현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있던 건 자신이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

“왜 그렇게 봐요?”

“너 누구야?”

메이블은 유현의 물음에 장난스럽게 웃었다.

“여름이라 바다에 좀 오래 있었어요.”

온통 구릿빛으로 물든 메이블의 피부. 유현이 기억 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춘식이는 어디 갔냐.”

“......”

“춘식아…!”

“아! 하지 말아요!”

유현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얼마나 재밌게 놀면 그렇게 타?”

“그냥 누워 있다 보니까….”

두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에 학생증을 찍어 출석하고, 곧장 교실로 향했다.

바뀐 건 명패뿐, 건물의 내부는 방학 전과 똑같았다.

“와, 우리가 처음이에요!”

“에잉, 쯔쯧. 요새 애들은 너무 게을러.”

“풋. 유현 씨도 요새 애들 아니에요?”

유현이 지그시 메이블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웃던 그녀는 그 시선에 웃음을 지웠다.

뭘 잘못한 걸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메이블의 표정이 굳었다.

“죄, 죄송해요.”

유현의 시선을 이기지 못한 메이블은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자꾸 존댓말 쓰는 거야?”

“존댓말이요?”

“응. 너도 그렇고 한서희도 그렇고. 왜 그렇게 존댓말을 쓰냐?”

“음….”

메이블은 곰곰이 생각했다.

인지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동급생에게 존댓말을 썼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습관이 돼서 그런가 봐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존댓말을 써서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네?”

“네. 싫으면 바꿀까요?”

유현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만 그러면 모르는데 두 명이 그러니까 느낌이 이상해.”

“그럼 앞으로는 반말 쓸게...요.”

“어색하면 안 해도 돼.”

메이블은 고개를 흔들었다.

“열심히 할게!”

말하고는 입술을 깨무는 메이블.

아직은 부끄럽고 어색한 모양이었다.

“난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하, 할 수 있어…!”

혹여나 나중에 생길 문제를 대비하여 유현은 강요가 아니라는 걸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방학 때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했다.

어디에 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그녀 역시 유현이 길드 파티에서 벌였던 일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들 엄청나게 좋아하더라. 나도 되게 멋있었다고 생각해.”

“그래?”

그냥 생각대로 행동한 것뿐인데, 그게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좋게 보인 모양이었다. 댓글들도 그렇고, 다른 유명인사들도 자신을 언급하며 무슨 영웅처럼 취급했다.

‘강찬성은 그냥 피해자 취급받던데.’

영상이 유명해지고, 자기가 무슨 반항 한 번 못하는 찌질이처럼 나왔다며 어찌나 징징대던지. 귀가 닳는 줄 알았다.

‘근데 그거 맞잖아.’

그래서 딱히 바로 잡아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권민성이라는 사람은 왜 오줌 싼 거야?”

“나도 몰라. 겁먹었나 봐. 그것보다 우리 집이 치킨집을 하는데….”

유현은 포션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마음껏 떠들었다.

“와, 진짜? 잘 됐다!”

“나중에 한 번 놀러와. 내가 한 마리 튀겨줄게.”

“알았어. 꼭 갈게~”

메이블은 조금씩 반말에 익숙해졌다.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살판났네.”

한창 대화가 오가던 와중, 잔뜩 날 선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교실에 들어온 이케가미는 태연하게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 안녕?”

“시끄러워.”

“...미안.”

메이블의 인사를 차갑게 되받아치는 이케가미. 여전히 까칠한 놈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빈자리가 조금씩 채워졌다. 고작 아홉 명뿐인 교실이었지만, 책상과 의자는 훨씬 많아 인원 분포가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저 뒤에, 누구는 맨앞에.

교실로 들어온 안칠성은 그걸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따로국밥이야. 여기 와서 모여 앉아.”

아이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고 교탁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안칠성이 아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다들 방학은 아주 잘 보낸 것 같구나.”

안칠성의 시선이 메이블에게 유독 오래 머물러 있었다.

메이블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개학식이다. 하지만 예전에 말했듯 너희는 여유가 없어.”

안칠성이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휘갈겼다.

“오늘부터 그간 배웠던 이론을 복습하고, 새로운 이론을 배운다. 너희는 2학년이지만, 2학년 중에 가장 아는 게 적기도 해.”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한 조기 진급은 학습량의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남들이 3년 동안 배울 것을 하이패스 통과자들은 2년 안에 배워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제도가 유지되는 건 뛰어난 아이들의 빠른 사회 진출을 위해서였다. 누군가는 헌터로 사회에 기여하고, 누군가는 길드나 가업을 승계하고.

“오늘부터 특별 강습에 들어간다. 게으름, 졸음 등. 일체의 행위는 용납하지 않아. 그럼 바로 수업 시작하니까 정신들 똑바로 차려라.”

안칠성은 아이들을 지나 교실 뒤로 향했다. 곧 앞문으로 다른 선생님이 들어왔다.

“안녕~”

기다랗고 꼬불거리는 검정 머리.

무테안경 너머로 사람 좋아 보이는 눈웃음이 보였다.

“오늘부터 너희 이론을 맡게 된 안도경이라고 해~ 이론 수업은 전부 내가 가르칠 거야.”

그의 손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들려 있었다. 그 반대 손에는 스피커에 연결된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졸면 안 된다~”

그 말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시간은 헌터 이론.

헌터의 정의부터 시작된 아주 기초적인 수업이었다.

“헌터라는 건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어. 하지만 게이트에서 나오는 가공물들을 활용하기 시작한 건 현대부터였지. ”

안도경의 수업은 졸 수가 없는 구조였다. 노래방 마이크에 업소용 스피커를 동원하여 수업하는데 대체 누가 졸 수 있을까.

“그리고 다음은….”

아침 일찍 시작된 수업은 점심시간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그는 교실을 오가며 네 시간을 내리 떠들었다.

모두 헌터의 이론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중복되는 내용도 없었다.

“이번 연도에는 조는 친구가 없어 다행이네~”

수업을 마치면서 안도경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유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상 노래방이나 다름없는데, 누가 졸 수 있을까.

“와, 저게 사람이고?”

한주석이 기가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크는 그렇다 쳐도 머선 수업을 쉬는 시간도 없이 한 번에 해뿟노. 환장허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쉬는 시간은 1분도 없었다.

아무리 단기간에 이론을 배워야 한다지만, 이렇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다니. 다들 말은 안 했지만, 한주석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수업 두 번 했다간 사람 잡겠어.”

서혜빈이 기지개를 켰다.

그녀 역시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졸린데, 잘 수가 없는. 그렇다고 쉬지도 못하는 고문.

“......”

교실은 조용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교실을 떠나지 않았다.

흐르는 침묵 속에서 메이블은 눈알을 굴렸다.

누군가 무슨 말이라도 하거나, 교실을 나가 분위기를 바꿔주길 바랐으나 고요함은 계속되었다.

결국, 한주석이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마! 분위기가 이게 뭐꼬! 밥 무러 갈 거 아이면, 함 모여봐라! 자기소개라도 해보자!”

“그거 재밌겠다.”

유현도 한주석의 의견에 동조했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세 명.

언젠가 직장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나부터 시작한다? 나는….”

“유치하게 자기소개는.”

이케가미의 목소리가 유현의 말을 가로막았다.

다시금 고요가 찾아든 실내.

이케가미가 의자를 거칠게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다 아는 얼굴 아냐? 헛짓말고 밥이나 처먹어.”

이케가미가 뒷문으로 향했다.

이어서 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뒷문이 닫혔다.

멀뚱히 서 있던 유현은 이케가미의 말을 곱씹었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다.

“그냥 밥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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