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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79화 (7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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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희는 가까스로 유현을 붙잡아 도로 자리에 앉혔다.

“들어도 모르는 사람은 할 이야기가 없는데?”

“...미안하다니까요.”

“미안할 말을 왜 하지?”

“처음에는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안 그랬죠.”

한서희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조심하자는 교훈을 다시금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한서희를 보며 쿡쿡거리던 유현은 곧 웃음기를 지웠다.

“정말 혼자서 포션을 만들어요?”

“응. 나 혼자 만들지. 판매나 영업 같은 건 다른 사람들이 다 해줘.”

유현이 강찬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포션 만드는 건 어떻게 알게 됐어요? 누구한테 강의라도 들은 건가요?”

“포션 강의를 누가 해주냐? 전부 내가 몸소 배운 거야.”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말이었다. 유현 역시 포션 제작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은 판대륙의 약제상과 마법사들에게 배웠다. 나머지 반은 직접 포션을 설계하고 제조하며 습득했고.

“대단하군요. 포션 제작법을 직접 습득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 않습니다.”

최칠기가 옆에서 덧붙였다.

한서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혹시 현장을 보여줄 수 있어요?”

“아니.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사업적인 제의를 하려고 해요. 그 전에 현장 확인 정도는 하고 싶어서요.”

그 말에 강찬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업적인 제의라뇨?”

“우리가 그쪽을 인수할게요.”

인수합병. 대기업이 사업 분야를 넓히기 위해 흔히들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조건은...”

“싫어.”

유현은 단칼에 거절했다.

한서희는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유는요?”

“뻔하잖아. 시장에 경쟁자는 없고, 여기서 더 성장할 텐데 뭐하러 다른 곳에 팔겠어?”

“언제 경쟁자가 나타날지 몰라요. 순식간에 망할 수도 있다고요.”

“내가 있는 한 절대 망할 일은 없어.”

유현은 자신감을 내비췄다.

지금은 제조 환경이 여의치 않아 해독 포션에만 집중할 뿐이지, 만들 수 있는 포션의 종류는 많다.

그렇기에 강찬성도 유현도 유마망이 망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순조롭게 성장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장사에 중요한 건 타이밍.’

한성제약이 사라진 지금.

새로운 시장 진입자들이 성장할 만한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유마망은 그 타이밍에 맞게 시장에 진입했지만, 자금이 부족하여 추가적인 선점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렇기에 송진그룹의 제안은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그게 인수합병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먼저 인수를 제안했다는 건 저쪽도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거겠군.’

카피약이 나오는 의약품과는 달리 포션의 제조법은 국제법으로 개발사에 영구 귀속된다.

다른 곳으로의 판매도 할 수 없다.

한성제약이 그대로 무너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만약 레시피를 판매할 수 있었다면, 파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포션을 만들고 싶다면, 직접 레시피를 개발하는 수밖에.’

송진그룹의 제안은 결국 그런 레시피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아마도 혼자 해독 포션을 만들 정도라면 다른 포션의 개발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실제로 다른 포션의 레시피도 많이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애석하게 그 레시피는 길드 소속인 강찬성의 것이 아니었다.

“인수 이야기는 접어두고, 내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말해봐요.”

“애초에 나는 마망 소속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인수해도 너희가 얻을 건 해독 포션 밖에 없어.”

한서희가 아차했다.

포션 제조의 핵심은 유현.

유현은 마망 길드의 구성원이 아니었다. 그런 곳을 인수해봤자 큰 이득은 되지 않는다.

‘이런 실수를….’

유마망의 핵심 인력이 유현이라는 건 조금 전에 알게 됐다.

그 탓에 미처 변화한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이전에 생각해온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협상이 이루어지는 자리인 만큼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요?”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를 그쪽에 팔게. 총 세 개. 개당 20억.”

“......!”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한서희도 이번에는 티를 낼 수밖에 없었다.

포션 레시피 하나에 20억.

그 레시피가 제대로 된 포션이라면 거저먹는 금액이었다.

“싸지?”

“......종류는요?”

“그건 나중에 와서 직접 확인해 봐. 여기서 바로 계약서 쓸 건 아니잖아?”

그 말대로 확인도 없이 계약할 수는 없었다.

포션의 종류, 효과, 원재료 값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야, 그거 팔아도 되는 거야?”

강찬성이 유현의 귀에 속삭였다.

레시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으니 그는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

“어차피 많이 있어.”

“괜히 시장 점유율 빼앗기면 어떡해?”

“걱정 마라. 다 생각해 뒀으니까.”

유현이 송진그룹에 넘기려는 레시피는 중간 효율의 포션이다.

유마망이 추구하는 최고 효율의 값싼 가성비 포션이 아니었다.

어차피 버릴 설계도이니 이런 식으로 파는 게 현명했다.

“그럼 잘 생각해봐~”

유현은 빈접시를 들고 자리를 떴다.

강찬성도 눈치를 보더니 최칠기와 한서희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유현을 따라갔다.

“하아.”

자리에 남은 한서희는 옅은 한숨을 토해냈다.

“숨 막히네요.”

제안은 자신이 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유현에게 넘어갔다.

즉석에서 해낸 생각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치밀함. 머리의 회전 속도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꼭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하는구나.”

“그러니까요.”

최칠기의 말에 한서희도 공감했다.

만약 제 3자의 입장에서 봤다면, 누군가 카메라로 찍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떠냐? 하고 싶어?”

“아직은 모르겠어요. 분명 싼 가격이긴 한데, 포션 레시피가 가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것 같나?”

한서희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가짜를 팔 사람은 아니에요.”

“신뢰하는구나.”

“...글쎄요. 이상하게 저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면 거짓말 같지가 않아요.”

최칠기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유현의 언행에서 왠지 모를 압박감과 신뢰를 느꼈다.

‘살면서 이런 적은 몇 번 없었는데.’

최칠기는 멀어지는 유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지만, 언젠가는 그가 최고의 헌터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시간이 지나며 길드 파티는 무르익어 갔다.

파티장 곳곳에 술 냄새가 풍겼지만, 취한 사람은 몇 없었다.

헌터들은 체질적으로 알코올 분해가 일반인에 비해 몇 배는 빠른 덕이었다.

술이 오가고, 친목이 이어지는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무대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다들 즐기고 계신가요?”

장내에 울려 퍼지는 굵은 목소리.

느닷없는 음성에 사람들이 모두 전방을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벤트 진행을 맡은 헌터 배성용이라고 합니다.”

헌터 협회 소속 헌터 배성용의 등장에 군중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하, 뜨거운 환영 감사합니다.”

배성용은 마이크 하나 없이 큰 음성을 냈다. 그가 가진 특성 [증폭] 덕분이었다.

“아까 협회장님이 예고한 대로 아주 가볍지만, 보상은 그렇지 않은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뭔지 궁금하시죠?”

배성용은 능숙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올렸다.

분위기에 취한 이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높였다.

“오우! 좋습니다!”

군중의 반응에 만족한 배성용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준비한 이벤트는! 2인 1조 달리기 시합입니다!”

달리기 시합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달리기라고?”

“여기서 어떻게 뛰어?”

“나 구두 신었는데...”

“에이, 별로다.”

배성용은 군중의 반응을 살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하! 예상대로 반응이 별로군요! 하지만 이걸 보셔도 그럴까요?”

무대 뒤쪽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전광판 위에는 이벤트 상품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걸 확인한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했다.

“와, 저걸 줘?”

“맨발로라도 뛴다!”

상품의 종류는 다양했다.

작은 곰인형부터 특별 전세기 1년 이용권까지.

아무리 헌터들이 돈을 잘 번다고 해도 모두가 전세기를 탈 만큼 부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헌터들도 공짜를 좋아했다.

“선물은 먼저 들어오는 순서대로 고를 수 있습니다! 이벤트는 2인 1조고요! 다들 오늘 친해진 사람과 참가하고 상품 받아가세요!”

2인 1조라는 조건이 붙었으나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만큼 탐나는 상품이 많았다.

“......”

한서희 역시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작은 곰인형이 있었다.

“너도 참여해보지 그러냐?”

최칠기의 목소리에 한서희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저 인형...”

“그래. 네가 가지고 싶어 했지. 그냥 갖다 주고 싶은데 국세청에서 탈세자에게 압류한 물건이라 내게는 소유권이 없구나.”

“제가 저걸 갖고 싶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그놈한테 들었지.”

“...할아버지도 참.”

한서희가 원하는 작은 곰인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제 인형 브랜드의 테디베어였다.

그들은 매 시즌 새로운 테디베어를 출시하며, 한서희는 그 곰인형을 한 시즌도 빠짐없이 모두 모았다.

단 하나만 빼고 말이다.

‘전세계에서 10개밖에 제작되지 않은 한정판.’

모든 상품이 한정판이지만, 그 한정판에서도 가장 적은 개수가 제작됐다.

그녀가 어렸을 때 나온 상품이라 그녀의 재력으로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아직 저 물건 네 거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물건.

아직 한서희의 소유는 아니었다.

“......같이 하실래요?”

“이 나이 먹고 뛰면 다리 부러진다.”

한서희의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협회장님 아니면 같이 할 사람이 없는데.’

회장에는 면식은 있지만, 같이 뛰어달라고 할 만큼 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 혹시 김동현씨는 어디 계세요?”

“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안 보이는구나.”

희망이 다시 사라졌다.

그냥 포기할까.

포기하고 저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인형을 사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였다. 문제는 상대가 얼마나 가격을 제시할지 모른다는 것.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사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다.

“와, 무슨 전세기를 1년 동안 빌려주냐.”

깊이 고민하던 그때,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한서희가 고개를 들었다.

돈가스로만 몇 접시를 비운 유현이 입을 쩝쩝대며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

내키지는 않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서희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랑 해요.”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너도 전세기 타고 싶어?”

상품은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잘 조율해야 한다.

유현은 전세기가 아니라면 참가하지 않을 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타고 싶어요.”

전세기야 나중에 태워주면 그만.

하지만 테디베어는 지금이 아니면 누군가 적절한 가격에 중고를 팔길 바라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건 원치 않았다. 눈앞에 있는 지금 손에 넣고 싶었다.

“오케이, 그럼 가자.”

두 사람은 함께 무대 앞으로 향했다.

그들 외에도 주변에는 참가자들로 빼곡했다.

“와, 이거 절반 넘게 참가하신 것 같은데요?”

배성용이 인파를 보며 기함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참가율이었다.

“언제 시작해요?”

“맞아! 빨리 뛰자!”

“그럼 우선 규칙부터 설명하겠습니다!”

2인 1조인 만큼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계속해서 신체 부위 중 하나가 서로 붙어 있어야 한다.

능력과 마나의 사용은 불가능하며, 오직 신체의 힘만으로 달려야 한다.

“그래서 대체 어딜 뛰는 건데!”

“설마 이 안에서 뛰라는 건 아니겠지?!”

“걱정마세요! 필드는 아주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광판의 화면이 뒤바뀌며, 마라톤의 중계현장 같은 화면이 송출되었다.

드론이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구도였다. 어두웠지만, 유도선이 반짝거리며 길을 알려주었다.

“협회의 마크가 붙은 저 반짝거리는 유도선을 따라 쭉 달리시면 됩니다! 물론 왕복이고요. 유도선만 잘 따라서 오시면 됩니다!”

길이는 왕복으로 3km 남짓.

일반인이라면 꽤 걸리겠지만, 헌터들에게는 마나를 쓰지 않아도 금방 돌 만한 거리였다.

“참고로 유도선에는 마나 감지 장치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마나를 사용하면 곧장 탈락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상황과 그 외 부정행위도 모두 탈락! 그럼 출발선으로 가시죠!”

진행요원들이 사람들을 출발선으로 이끌었다.

출발선은 바로 호텔 입구였다.

넓은 입구 앞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출발을 준비했다.

누군가는 상대를 업었고, 누군가는 안았다.

손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붙어 있는 신체부위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한서희는 깊이 고민했다.

어떻게 뛰어야 최소한의 접촉으로 가장 빠르게 골인할 수 있을까.

‘일단 2등으로 들어오는 게 제일 좋은데.’

1등은 보나마나 전세기를 가져갈 게 뻔하다. 그러니 2등이라면 유현과 마찰 없이 테디베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난하게 손목을 잡고 뛰는 게 가장 좋겠지.’

그러나 한서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출발!”

배성용의 출발 신호는 기습적이었고, 그 신호에 곧장 반응한 유현은 재빨리 한서희를 들쳐멨다.

“꺅!”

“가즈아아아!”

유현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은 출발도 하지 못한 채 대거 탈락했다.

“이렇게 갑자기 출발하는 게 어딨어!”

“비겁하다!”

“제 맘입니다~!”

탈락한 사람들은 아우성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배성용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전광판을 응시했다.

“자~ 누가 먼저 들어올까요~?”

전광판은 텅 빈 순위표로 바뀌었다.

들어오는 순서대로 이곳에 순서가 표시된다.

“자, 여러분! 우리 제일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몇 분일지 한 번 예상해봅시다!”

“5분!”

“에이~ 5분은 너무 짧다!”

“8분!”

“8분? 8분 그럴 듯...”

그때, 전광판 위에 숫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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