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아, 홍보 좀 하려는데 왜 떨어뜨려요.”
“아, 죄송합니다.”
김현식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빨리 다시 들어봐요.”
“예, 옙!”
카메라의 주인은 김현식이었지만, 오히려 유현의 말에 휘둘렸다.
그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유현은 태연하게 포션병을 내밀었다.
“이게 저희가 판매 중인 해독 포션인데 가성비가 아주 좋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마망 길드로 연락 주세요.”
-지금 인터뷰하러 와서 홍보하는 거임?
-ㅋㅋㅋㅋ골때리네
-근데 ㄹㅇ아카데미 학생임?
-아카데미 유현이면 걔 아님?
채팅창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유현의 홍보 행위에 웃는 채팅 반, 나머지 반은 유현이라는 이름과 아카데미에 반응했다.
“저기 잠깐만요. 우리 홍보는 나중에 하고….”
“계속 들고는 있어도 되죠?”
“아, 예. 그건 되는데요. 진짜 아카데미 학생이에요?”
“네.”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유현은 분명 학생이라고 이야기했다.
“거짓말 아니죠?”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김현식은 그 말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권민성을 상대로 그 짓을 해놓고 학생이라고?
‘진짜 아카데미 S등급 유현인가?’
유현.
흔한 이름은 아니다.
하물며 아카데미에 유현이라는 사람이 두 명 있지는 않을 터.
김현식은 긴가민가 싶어 채팅창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 반으로 갈리던 시청자들은 이제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ㄹㅇ유현임?
-등급 테스트 1등 유현?
-혐식아 빨리 물어봐!!
채팅을 읽던 유현은 김현식이 물어보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제가 그 유현 맞습니다.”
김현식의 입이 떡 벌어졌다. 채팅창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와 ㅁㅊ
-시발 실화임?
-아니 처 돌았네; 현식이 왜케 운이 좋냐;;
-지금 길드 파티 가면 볼 수 있는 겨? 가도 됨?
지금껏 온갖 소문만 뒤따르던 아카데미 등급 테스트 1등의 정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김현식은 흥분에 휩싸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지, 지, 진짜 그 유현이에요?”
“예, 맞습니다.”
김현식이 황급히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사, 사인 좀 해주세요.”
김현식은 방송도 잊은 채 유현에게 사적인 요구를 했다.
카메라가 아래로 내려가며 시청자들의 원성이 뒤따랐지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사인이요?”
“아, 안 될까요?”
“아뇨. 해본 적이 없어서.”
“해본 적이 없...!”
아카데미 S등급 학생의 역사적인 첫 번째 사인.
김현식은 그만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 만큼 값지고, 기쁜 일이었다.
“이 정도면 되나?”
유현은 대충 이름을 휘갈겨 김현식에게 내밀었다.
김현식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품에 안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 셀카봉을 들었다.
채팅창에서는 김현식을 향한 욕설이 쏟아졌다.
-포포링님이 600초간 임시 퇴장되었습니다.
-혐식코인님이 600초간 임시 퇴장되었습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욕설을 적다 강퇴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김현식은 그제야 아차하며 방송을 재개했다.
“아! 여러분! 잠시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는 ㅅㅂ
-소리나 끄고 구라쳐라
-얼굴에 철판깔았누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뒤로하고, 김현식은 인터뷰를 이어갔다.
“설마 그 유현님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많은 분이 찾겠다고 발버둥치신 거 알죠?”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방학 할 때 그 인파를 직접 확인했으니 모르는 게 이상했다.
“여기 오셨다는 건 이미 소속된 길드가 있으시다는 뜻인데 혹시 어디 길드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길드 소속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이 초대해줘서 구경하러 왔어요.”
“아하! 그렇군요!”
김현식은 몇 배는 높은 텐션으로 유현을 인터뷰했다.
헌터나 장래와 관련된 질문부터 가족 구성원 같은 사적인 질문까지.
순수한 호기심 해소에 가까운 인터뷰였다.
“참! 그러고 보니 아까 포션도 파시던데 그건 어쩌다 팔게 되신 건가요?”
김현식 역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유마망의 포션을 알고 있었다.
그걸 왜 유현이 팔고 있는 걸까.
“포션에 관한 건 모두 비밀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포션에 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그때 장내 스피커를 통해 파티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아......”
김현식이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여러분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굴피님의 100,000원 후원]
-현식아 시청자 숫자 보이지? 끝내면 안 된다!
권민성 사건과 더불어 유현의 등장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며 시청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제는 1만 명을 넘어선 상황.
채팅창은 읽을 수도 없이 빠르게 올라갔다.
“와, 굴피님! 1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시청자 숫자 보면 끝내고 싶지 않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계약을 위반하고 방송을 진행할 만한 깡과 돈이 김현식에게는 없었다.
“여러분, 그럼 나중에 봐요!”
방송을 종료한 김현식은 장비를 정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만나뵙게 돼서 정말 좋았습니다.”
“저야말로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유현은 흡족한 얼굴로 포션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 혹시 계좌번호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아까 돈 받은 거 보내드릴게요.”
“그걸 저한테요?”
“네. 유현님 덕분에 받은 돈이니까요.”
그 말에 유현은 가슴 깊이 따뜻함을 느꼈다.
이 얼마나 개념이 충만한 사람인가. 요즘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인(聖人)이었다.
“괜찮아요. 그쪽 방송해서 얻은 돈이니까 그쪽이 가지는 게 맞죠.”
“에이. 저는 오늘 시청자 수와 컨텐츠로 제대로 보상받았습니다. 쿨하게 불러주시죠!”
“어허이….”
유현이 못 이기는 척 계좌를 불렀다.
김현식은 곧장 그의 통장으로 돈을 송금했다.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오늘 출현하신 영상은 제가 편집해서 단독 영상으로 올려도 될까요?”
“그것도 광고 수익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 예! 걱정하지 마십쇼. 수익 들어오면 제가 깔끔하게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비율은요?”
“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김현식의 말문이 막혔다.
“반반은 어떠세요?”
50%. 그냥 인터뷰만 했을 뿐인데 절반을 준다니.
유현은 큰 고민 않고 수락했다.
“콜.”
“오! 쿨하시네요! 그럼 번호 교환할까요?”
두 사람은 서로의 번호를 교환했다.
김현식은 유현의 번호가 적힌 화면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번호 땄다.’
처음으로 손에 들어온 유명한 헌터의 번호. 아직 헌터는 아니지만, 분명 유명해질 헌터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럼 나중에 영상 올라가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옙.”
“아, 그리고 가기 전에 사진 한 장만...”
김현식은 유현과 기념 촬영을 마치고 후다닥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유현은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유혀어어언!”
줄곧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찬성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사랑한다!”
유현은 몸을 틀어 강찬성의 포옹을 피했다. 몇 번 인가 공격과 회피가 이어지고, 강찬성은 포옹 대신 어깨동무를 선택했다.
“아까 그 새끼 표정 봤어? 아오~! 아주 속이 시원하더라!”
“너도 이제 놀릴 거 하나 생겼네.”
“그 새끼 이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지? 찾아보니까 저 사람 구독자 수가 10만인가 되던데.”
“그러겠지. 꽤 유명한 놈인 것 같더만.”
“진짜 고맙다! 덕분에 그동안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갔어!”
강찬성이 사이다 몇십 병을 들이킨 것 같은 표정으로 유현의 머리를 품에 끌어당겼다.
“아, 사내 새끼가 뭐하는 거야!”
“이 형님이 뽀뽀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런다 인마! 하하하하!”
유현은 끝없이 다가오는 강찬성의 당수를 가격했다. 그가 웃는 얼굴로 기절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우, 더럽게 시끄럽네.”
유현은 쓰러지는 강찬성을 받아들어 어깨에 걸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보던 유희연이 당황하여 뛰어왔다.
“아, 아니. 지금 기절시킨 거야?”
“조용하니 좋잖아.”
“허, 참.”
두 사람은 함께 지정된 좌석으로 이동했다.
***
호텔의 입구.
고급 승용차의 문이 열리며 한서희가 하차했다.
기다리고 있던 협회장 최칠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한서희는 최칠기의 뒤쪽에 서 있던 김동현과도 가벼운 목례를 주고받았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몇 년 된 것 같은데.”
“아마 3년쯤 된 것 같아요.”
한서희를 보며 최칠기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는 마냥 어린애 같았는데 몇 년 지났다고 제법 숙녀다운 티가 나는구나.”
몸의 굴곡이 슬며시 드러나는 검정색 하이웨스트 원피스가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는 할아버지가 직접 해주셨어요.”
“허허, 그 양반이 예전부터 손재주는 좋았지.”
화려한 핀으로 고정된 올림머리가 그녀의 옷차림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바람이 심하구나. 들어가자.”
세 사람은 VIP 통로를 통해 호텔 안으로 진입했다.
“학교생활은 재밌고?”
“할 만해요.”
“이번에 S등급이 됐다고 들었다만 고생했구나.”
“입학시험 때 바로 못 간 게 아쉬워요.”
그 말에 최칠기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첫술에 배부르기가 쉽지 않지.”
셋은 연회장으로 향하는 대신 뒤쪽에 마련된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직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아 잠시 이야기라도 나눌 요량이었다.
“그놈은 잘 있드냐?”
“너무 건강하셔서 탈이에요. 저번에도 웃통 벗고 운동하시는데 깜짝 놀랐어요.”
“덥다고 벗어 재끼는 건 여전하구나.”
김동현이 테이블 위에 찻잔을 놓았다. 달콤한 향기와 뿌연 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할 일이 많을 텐데 참가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당연히 참가해야죠.”
“너무 바쁘면 금방 돌아가도 된단다.”
한서희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여유 있어요. 할 일은 오전에 다 하고 와서요.”
“그러고 보니 오늘 포션 공장에 다녀왔다고 했지?”
한성제약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여러 길드의 난입. 소나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네. 할아버지 따라서 갔다 왔어요.”
“다른 곳은 다들 포션 하나씩 발 빠르게 내던데 아직 소식은 없고?”
“할아버지 일처리 방식 아시잖아요. 그런 애매한 포션 하나 빨리 만들어 출시하느니 제대로 된 포션 만들어서 내보내겠다는 생각이세요.”
“그 녀석 답네, 하하.”
최칠기가 차를 홀짝이고는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유마망이라는 포션 브랜드 알고 있나?”
“네. 들어봤어요. 신생 포션 브랜드 중에 제일 유명한 곳이잖아요.”
“한성제약이 몰락하고 바로 등장한 곳이라 다들 의심이 많았지. 그놈들이 범인 아니냐는 등 말이야.”
“그럴 만도 하죠. 모길드도 별 볼일 없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의심들은 모두 불식됐다. 브랜드의 모체가 되는 길드인 마망과 한성제약 사이의 연관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의 커넥션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의심이 이어졌겠지만, 정말 자그마한 연결점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 행사에 그 브랜드의 모길드가 참석한다.”
“네? 정말요?”
“그래.”
“안 그래도 할아버지가 거기 이야기도 많이 하셨거든요. 품질은 뛰어나고 가격도 엄청 싸다고.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한 대요. 대신 가격은 더 높여서.”
유마망의 해독 포션은 다른 대형 기업의 해독 포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가격은 몇 배나 저렴하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의 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마 다른 부가적인 요소가 뒷받침된다면 적어도 국내 종합 해독 분야에서는 메디컬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할아버지가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쉽게 됐네요. 길드 이름이 뭐였죠? 아망이었나?”
“마망이란다. 혹시 거기에 몇 명이나 있는지는 들어봤니?”
한서희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는 건 그 길드가 꽤 오래전 창단된 소형 길드라는 점 뿐이었다.
“길드 마스터 혼자란다.”
“......네? 혼자서 포션을 만들어요?”
“누가 포션을 만들어서 그 사람한테 줄 리는 없으니 그렇겠지.”
한서희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나도 얼굴 정도는 알고 싶어서 미리 어디에 앉는지 알아놓았단다. 이따가 같이 한 번 가보자꾸나.”
한서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되네요.”
잘만 한다면, 소나무의 포션 사업에 도움이 될 정보를 얻을지도 모른다.
‘서로 사업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곳으로 오며 한서희는 할아버지에게 여러 권한을 위임받았다.
다른 길드와의 협업을 도모하고 소나무의 사업 활로를 개척하는 것 역시 그녀가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참, 그리고 이따가 이벤트 열리는 건 알고 있지?”
“대충은 들었어요.”
“예전에 네가 가지고 싶다던 물건이 이번 이벤트 우승 상품으로 편성됐어.”
한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요?”
“그래. 한 번 참가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물건.
한서희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뭐였지?’
애초에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협회장님 앞에서 이야기했을 리는 없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슬슬 가야겠다.”
세 사람은 대기실을 나와 회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