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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저기서 뭐하냐?”
돌아오지 않는 강찬성을 찾아 장내를 거닐던 유현은 멀리서 강찬성의 뒤통수를 발견했다. 왜인지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슨 방송 촬영하는 것 같은데?”
“촬영?”
“셀카봉 들고 있잖아. 누구지? 유명한 사람인가?”
유현과 유희연은 인파 사이에 섞여들었다.
“아카데미 졸업하고 몇 년 재수했습니다. 한 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유현은 거기서부터 인터뷰 청취를 시작했다.
그 뒤로 이어진 모멸감을 느낄 만한 온갖 비방의 말들도 모두 들었다.
어느 정도 들은 시점에는 저 권민성이라는 작자가 오늘 자신이 이 자리에 끌려오게 된 계기인 강찬성의 사촌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연 그 말대로 재수 없는 놈이었다.
“강찬성님은 길드 마스터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권민성님은 캐리어 길드의 부마스터시고요.”
“네~ 동네 통장과 부통령 정도의 차이죠. 그치?”
나서고 싶었지만, 참았다.
두 사람의 일이니 괜히 끼어들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빠, 저 사람 진짜 재수 없다.”
“그러게.”
“안 되겠어. 내가 한마디 해야지.”
“아냐, 하지마.”
그래서 동생을 말렸다.
상대는 이름 있는 길드의 부마스터.
괜히 나섰다가는 길드 마스터라는 그녀의 꿈에 그림자가 드리울지도 모른다.
“그럼 저걸 듣고만 있어?”
“네 이야기 아니잖아.”
“오빠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냉정해? 피도 눈물도 없어?”
유희연이 고집을 부렸지만, 유현은 손을 놔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 유현을 향해 아쉬움의 눈빛을 보내는 건 덤이었다.
“근데 길드 이름이 뭐였더라? 요새도 활동은 하냐?”
“어, 뭐. 그럭저럭.”
“열심히 좀 해라. 길드 지원금도 받는다며?”
“그래.”
“괜히 세금 축내지 말고 때려치는 것도 방법이긴 해~ 지원금 때문에 우리도 세금 많이 내는 거 알지?”
유현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그냥 참으려고 했지만,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야.”
그가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나섰다.
“이 싹수없는 새끼 말하는 것 좀 봐라?”
느닷없는 욕설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김현식 역시 당황했다.
“저기 지금 인터뷰 중이니까….”
“인터뷰고 나발이고. 말을 저딴 식으로 하는데 그냥 놔둬? 너도 똑같아 인마.”
보나 마나 유명한 놈이랍시고 알랑방귀 뀌려는 생각이었겠지.
말하지 않아도 유현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쪽 지금 뭐라고 했어요? 싹수없는 새끼?”
권민성이 김현식을 밀치고 유현 앞에 섰다. 유현은 눈을 부라리는 권민성을 똑같이 쏘아보았다.
“제대로 들었네.”
“하. 어이가 없네. 당신 뭐야? 왜 멀쩡히 인터뷰하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어?”
“네가 먼저 쟤한테 시비 걸었잖아.”
“아니, 그냥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무슨. 다들 안 그래요? 웃겼잖아요?”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권민성에게 동조했다.
농담인데 너무 반응이 과하다느니.
당사자도 상관없어하는데 본인이 왜 나서냐느니 등등. 온갖 말들이 쏟아졌다.
“그것보다 당신 찬성이 지인이에요? 그러면 오히려 이렇게 나서는 게 더 찬성이 얼굴 먹칠하는 거라는 거 몰라?”
“이 새끼 얼굴에 먹칠하든 말든 내가 아니꼽다는데 뭔 상관이야.”
“하, 이건 뭐 하는 미친 새끼야. 야 강찬성. 아는 사람이야?”
모두의 시선이 가만히 있던 강찬성에게 돌아갔다.
느닷없는 유현의 출현에 깜짝 놀랐다가, 내심 유현이 저놈에게 한 방 먹여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하던 강찬성은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움찔했다.
“어? 나?”
“그래. 이 사람 아는 사람이냐고.”
“아, 아는 사람이긴 하지.”
“그럼 안 말리고 뭐 해?”
강찬성이 슬쩍 유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잠깐의 순간. 유현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말리면 죽여버리겠다고.
“둘이 알아서 해.”
“뭐?”
원군의 등장으로 강찬성의 기세는 살짝 올라갔다.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입을 다물고 멍청히 당하고만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넌 농담이었겠지만, 난 기분 나빴어.”
“......”
“그러니까 둘이 알아서 해라.”
강찬성이 슬쩍 물러나 구경꾼의 위치로 옮겨갔다.
“하. 저 배은망덕한 새끼.”
심각해지는 분위기. 김현식이 황급히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껐다.
‘x됐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방송 꺼야 하나?’
지금은 화면과 스피커만 차단한 상태. 김현식이 슬쩍 채팅창을 살폈다.
보나 마나 시청자들이 방송을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왜인지 채팅창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현식 뭐해!!!! 화면 비춰!!! 아아아아아아아악!!!!!!!!!!!
-소리만 들려도 이렇게 꿀잼인데 화면까지? 공중제비 500바퀴 쌉가능ㅋㅋ
-형 이게 너튜브 감이야. 허구헌날 몬스터만 잡아 족치다가 마석 나오면 이거 너튜브 감이네요 ㅇㅈㄹ 하는 게 아니라.
-현식아 이거 신이 주신 기회다. 권민성 쌈박질하는 걸 어디서 보냐
-커뮤에 좌표 찍었다 100만 가즈아!!
의외의 반응에 김현식은 당황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싸움은 자극적인 컨텐츠.
당연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 두 사람만 괜찮다면 생방송을 하는 것도….’
김현식이 눈치를 살피던 그때, 권민성이 말했다.
“뭐해요? 카메라 켜요 빨리.”
“예, 예?”
“저 개새끼 지랄하는 거 거기 사람들도 봤는데 끝까지 봐야지. 안 그러냐?”
김현식이 유현을 돌아보았다.
“마음대로 해요. 자기 망신이지 뭐 내가 손해볼 일 있나?”
김현식은 빠르게 카메라와 스피커를 켰다. 방송이 다시 돌아오자 채팅창은 더 활발해졌다.
“거기 그쪽.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요. 나랑 싸움이라도 할 건가?”
“그것도 좋지.”
“이 사람 봐라. 당신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내 새끼발가락 쥐며느리 발톱에 더 관심이 많아서. 어제 문턱에 박았거든.”
장난스러운 유현의 답에 권민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가 평소에는 실실거리며 웃어도 만만한 사람은 아닌데.”
“강찬성이 만만하긴 해도 무시당할 사람은 아니지.”
“찬성이는 둘째 치고. 당신도 헌터지? 나한테 이러면 제대로 헌터 생활 못할 텐데?”
“뭘 둘째 쳐 인마. 네가 개지랄해서 나도 개지랄하는 건데.”
권민성은 한숨을 쉬며 유현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달라지는 주변의 공기.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상위 헌터라면 누구나 발할 수 있는 마나의 압박이었다.
“여러분,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김현식이 스피커에 입을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와, 저거 마나 프레싱 아님?
-실제로 보는 거 첨인데 눈빛 지리네ㄷㄷ
-근데 멀쩡해 보이는데?
A급 헌터가 쏘아보낸 살벌한 기백은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에게도 어렴풋하게나마 전해졌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 역시 영향을 받았다. 몇몇은 긴장감을 드러냈고, 몇몇은 자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정작 타겟이 된 유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태연히 숨을 쉬었고, 표졍 변화도 없었다.
“......?”
한동안 유현을 노려보던 권민성은 의아함을 느꼈다.
‘통하지 않는다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권민성을 향해 유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하냐?”
“......”
유현이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권민성의 손을 붙잡았다.
직후, 권민성은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 물에 잠긴 듯 주변의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뭐야.’
물에 빠진 몸이 서서히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전신에 가해지는 압력은 더욱 심해지고, 귀에서는 먹먹함을 넘어 고통마저 느껴졌다.
무어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몸은커녕 입술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김현식이 작게 중얼거렸다.
유현이 권민성에게 가한 마나 프레싱은 권민성이 했던 것과는 달리 오로지 타겟에게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주변의 누구도 권민성이 처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왜 저래?”
“갑자기 안 움직이네.”
사람들이 떠드는 가운데, 권민성은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은 뜨고 있었지만, 처절한 어둠만이 그의 시야를 메웠다.
호흡 역시 줄곧 멈춘 상태다.
몸은 간절히 산소를 요구했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살고 싶냐?]
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권민성은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바람을 떠올렸다.
‘살려줘.’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호흡은 다시 돌아왔고, 멀어졌던 청력도 순식간에 정상이 되었다.
“좋은 구경 했으니까 살려줄게.”
“......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온 감각.
권민성은 한동안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어우, 냄새.”
“저거 오줌이야?”
“어머, 어쩜 좋아.”
그는 주변의 웅성거림을 듣고 하반신이 축축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장의 바지 밑단을 타고 암모니아를 품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황급히 허리를 숙이는 권민성을 보며 유현이 웃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뒤이어 들려온 웃음소리는 구석에 빠져 있던 강찬성의 것이었다.
그는 배꼽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구를 기세로 웃어댔다.
“강찬성 너 이 새끼….”
“야, 그거 냄새가 너무 심한데 빨리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씨발!”
유현의 비아냥 섞인 충고에 권민성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이전까지 유지하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와, 권민성 욕하는 건 처음 본다.”
“무슨 오줌을 싸냐? 극혐.”
“진짜 더럽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저들끼리 웃고 떠들며 흩어졌다.
평소 권민성이 쌓아왔던 잘 생기고 위트있던 이미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제보를 받은 진행요원들이 자리를 청소했다.
그 사이, 유현은 김현식에게 다가갔다.
“아까는 갑자기 미안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가만히 듣고 있는 것도 잘한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죄송합니다. 근데 맞는 말씀이셨어요.”
인터뷰를 위해 누군가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를 눈앞에서 보고도 그냥 넘기다니.
김현식은 진심으로 자책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과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채팅창 반응이 아주 뜨거워요.”
김현식이 유현에게 채팅창을 보여주었다.
-zzzzzzzzzzzzzzzzzzzzz
-ㅋㅋㅋㅋㅋㅋㅋㅋㅋ
-wwwwwwwwwwwww
-LOLOLOLOLOLOL
-오줌보 펑펑! 권민성 속도 펑펑! 캐리어 길마 속도 펑펑!
-살다 살다 헌터가 오줌 지리는 것도 보네ㅋㅋㅋ
한국인은 물론이고 평소에는 몇 없던 해외 시청자들도 채팅창에 나타나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권민성의 오줌 파티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다행이네요.”
“덕분에 재밌는 장면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현식이 고개를 숙이고는 품속에서 명함을 하나 꺼냈다.
“저는 헌터 크리에이터 김현식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받아든 유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명함에 적힌 컨텐츠 크리에이터 김현식이라는 글자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었나?’
곰곰이 기억을 뒤적이던 유현은 곧 김현식을 기억해냈다.
“아!”
“......?”
판대륙에서 1000년 만에 지구로 돌아온 그 날. 게이트의 내부에서 마주했던 그 남자였다. 그때도 분명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아뇨, 아닙니다.”
그때 자신은 가면을 쓰고 있어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야기를 꺼내면 눈치챌 테고, 설명을 요구하겠지. 게이트에서 왜 떨어졌는지,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등. 그걸 일일이 설명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조금 있으면 시작할 것 같습니다.”
어느새 행사 시작이 20여 분 앞으로 다가왔다.
김현식은 방송을 종료하기 위해 마무리 멘트를 했다.
“여러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공식 방송에서 시청해주세요!”
미리 약속된 방송 시간은 행사 시작 전까지였다. 이왕이면 다른 헌터들 인터뷰를 좀 더 하고 싶었지만, 상대를 찾고, 인터뷰하고, 행사 시작에 맞춰 지정된 자리에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이 부족했다.
-방종 에바지.
-방금 그분이라도 인터뷰 해봐.
-맞어, 잘생긴 오빠 데려와.
“그분이요? 아~”
유현은 마침 바로 앞에 있었다.
5분 정도 짧은 인터뷰라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세요?”
“인터뷰요? 음...”
귀찮은데.
고민하던 유현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하겠습니다.”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유현은 가방에서 포션 병을 꺼내며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면에 상표가 잘 보이도록 방향을 조절했다.
“어, 그 포션….”
“들고 해도 되죠?”
“아, 예! 가능합니다!”
유현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인터넷 문화가 익숙한 건 아니지만, 인터넷 방송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유현입니다.”
“유현 님이시군요.”
김현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현.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헌터 랭크는 어떻게 되시나요?”
“없습니다.”
“에이. 헌터 랭크가 어떻게 없어요~”
김현식은 농담인 줄 알고 웃었지만, 유현의 표정은 진지했다.
“노, 농담 아니에요?”
“아닌데요.”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되었다.
-???
-그럼 뭐임?
화면을 들여다보던 유현은 채팅창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저는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그것보다 여러분. 이게 제가 만든 해독 포션인데...”
아카데미 학생. 유현.
두 키워드가 합쳐지고 나서야 김현식은 그 이름이 왜 낯익은지 깨달았다.
“...미친.”
김현식은 그만 셀카봉을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