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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74화 (7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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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터 협회.

한반도에서 가장 처음 설립된 헌터들의 모임이자 헌터 생태계의 전반적인 관리를 책임지는 국가 단체.

현대에 들어서 여러 길드의 활약이 본격화되며 협회의 위세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협회는 헌터 업계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마석 관리, 헌터 관리, 길드 관리 등. 주요 게이트 토벌을 제외한 헌터 산업군에는 모두 협회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날씨 좋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곳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 종로의 한 고층 빌딩. 협회 본부가 위치한 23층 내부 테라스에서 협회장 최칠기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

뜨거운 태양이 실내를 달궜지만, 최칠기는 더운 기색 하나 없었다.

“며칠이나 남았지?”

최칠기가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의 뒤쪽에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깔끔한 스타일과 카리스마 넘치는 강인한 인상. 양복 가슴팍에는 김동현이라고 적힌 명찰이 붙어 있었다.

“사흘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여름의 막바지에 열리는 협회의 정규 모임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협회에 등록된 길드들이 모이는 자리로 친목을 위한 일종의 파티였다.

“참가율은?”

“좋지 않습니다.”

“절반이 안 되나?”

김동현의 침묵은 곧 대답이 되었다.

최칠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5대 길드는 모두 오나?”

“현재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소나무뿐입니다.”

“허허.”

과거 협회의 설립 목적은 체제의 안정이었다.

그러나 혼란스럽던 과거가 지나며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목적 역시 변화했다.

S등급 헌터 하나가 군단급 권력이라 불리는 작금의 시대. 대형 길드에는 그런 헌터가 몇이나 있다.

그들이 작정하고 국가의 전복을 시도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대놓고 반란을 꿰는 인물은 없었다. 또 다른 경쟁 길드와 그런 길드들을 주시하는 협회 때문이었다.

길드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힘을 키웠고, 그동안 큰 싸움 없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협회의 역할은 자연스레 싸움을 막고, 분쟁을 해결하는 평화의 중재자가 되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 모임 역시 긴장감 완화의 일환이었다.

서로 간의 친목을 다지고 사업적인 관계를 맺는 등 평화를 도모하는 게 목적이었다.

“계속 참여율이 줄고 있어.”

모임의 참여는 강요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의무 참여 조항이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최칠기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규 모임의 참여율은 헌터 업계의 동향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의 참여율은 완전한 냉전과 다름없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는?”

“그동안 참여율은 꾸준히 줄어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분쟁 발생 건수도 똑같이 줄어들었고요.”

미리 준비했는지 청산유수처럼 답이 흘러나왔다.

“참여가 줄었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참여율이 줄어든 건 단지 시대의 변화입니다. 실제로 최근 길드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김동현의 설명은 한동안 이어졌다.

단순히 헌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사회적인 풍조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개인주의라. 요지는 사교 활동보다 개인의 여가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이군.”

“예, 그렇습니다.”

“그래도 너무 줄어든 것 아닌가 싶은데….”

“저도 그 부분이 의아하여 좀 더 조사해보긴 해봤습니다. 아마 다른 이유도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뭔가?”

김동현이 대답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겉면에 U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작은 포션병이었다.

“그게 뭔가?”

“협회장님께서도 한성제약 사건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모르면 간첩이지. 그렇게 매일 같이 뉴스에 나오는데.”

“한성제약이 몰락한 이후 많은 길드가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시도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유명한 길드들은 다 들어왔죠. 그런데 만약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길드가 그 자리를 꿰차면 어떨 것 같습니까?”

어떻기는. 당연히 난리가 나겠지.

이런 행사에 참석할 여유 따위는 없을 정도로.

최칠기는 설마 하는 얼굴로 포션을 가리켰다.

“혹시 그 포션이?”

“맞습니다. 한성제약의 몰락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포션 브랜드입니다. 아직은 해독 포션 뿐이지만, 가격은 물론 품질과 성능이 뛰어나 헌터들 사이에서 가성비 포션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최칠기가 포션을 살폈다.

작은 병 안에 가득 담긴 오묘한 빛깔의 액체. 지금껏 봐온 포션과는 달리 작은 병인데도 양이 아주 넉넉했다.

“어디서 만든 건가?”

“마망 길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처음 들어보는군.”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곳입니다. 찾아보니 그전에는 사냥형 게이트 토벌 외에는 활동이 없더군요.”

“그런 곳에서 포션을 만들어?”

“이걸 한 번 보시죠.”

김동현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마망 길드와 관련된 정보가 화면에 출력되고 있었다.

“길드원이 한 명이라고?”

“일단 지금 확보한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허, 이게 말이 되나?”

포션을 만드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그 많은 대형 길드들도 애를 먹고 있지 않은가.

그런 걸 혼자서 해내다니. 다른 길드들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다들 아주 바쁘겠군. 누구는 방법을 갈취하려 할 테고, 누구는 열심히 포션을 분석하고 있을 테니.”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혹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예상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통찰이야.”

확실한 건 아니지만, 김동현의 추측은 그럴듯한 근거가 있었다.

“이번 모임에 마망 길드도 참가하나?”

“예. 총 세 사람이 참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셋이라니. 길드원이 하나인데?”

“길드 마스터 강찬성 외에 나머지 둘은 일반인입니다. 아마 친구나 친인척을 초대한 것 같습니다. 규정상 가능하니까요.”

포션 제작과 관련이 있는 사람일까.

최칠기는 김동현이 내민 태블릿을 확인했다.

그 말대로 길드 마스터 강찬성 외에도 두 사람이 적혀 있었다.

“나이를 보면 포션 관련 관계자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나?”

“아쉽게도 관계는 불분명합니다.”

가만히 태블릿을 들여다보던 최칠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게 한 사람의 이름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유현이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아?”

“음….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말이야.”

눈가를 좁히며 고민하던 최칠기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지나가다 잠깐 들었거나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닌 것 같았다.

“이 마망 길드와는 한 번 자리를 가지고 싶군.”

“모임 날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고맙네.”

***

마망 길드의 포션 브랜드 유마망은 날이 갈수록 주가를 올렸다.

판매를 시작한 포션은 번번이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고, 관련된 문의가 끝없이 들어왔다. 언제 추가로 생산되는지, 더 구할 수 없는지 등.

유현은 배달도 내던지고 포션 제작에 몰두했지만, 주문량을 모두 충족할 수는 없었다.

“작업실을 옮겨야겠어.”

처음 마련한 열 평 남짓한 작업실 내부는 포션 제작을 위한 장비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현재 생산량은 주당 100병.

재료는 넉넉하지만, 공간이 부족하다. 포션 제작 특성상 작업 공간의 대기 상태가 중요하기에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었다.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겠는데.”

현재 당면한 과제는 포션 물량 확보. 그걸 해결하기 위해선 환풍이 잘 되는 넓은 실내 공간이 필요하다.

‘재료 보관 공간도 늘려야 해.’

재료는 특성에 따라 세 가지 방식으로 보관한다. 냉장, 냉동, 실온. 지금은 가정용 냉장고로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작업 공간이 커지면 재료도 더 많이 필요하니 이 작은 냉장고로는 역부족이었다.

‘돈 들어갈 데가 한두 곳이 아니군.’

포션으로 번 돈은 물론 사비까지 털어야 할 지경이다.

투자한 만큼의 값어치는 하겠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아봤어요?”

유현이 작업실 구석 책상에 앉아 있던 왕대길에게 말을 걸었다.

며칠 전, 그에게 새로운 작업 공간을 알아보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

“지방에 있는 폐공장 정도는 얻을 수 있습니다.”

“너무 지방으로 가면 안 돼요. 포션 이동 중에 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선택지가 확 줄어듭니다. 지금 이것저것 늘어놓은 게 많아서요. 포션 개발 비용도 있고, 소형 이외에 중형, 대형 포션도 생산할 계획입니다.”

왕대길은 포션 제작 이외 모든 것을 담당했다. 회계는 물론이고 고객 문의 처리 및 요청 사항 수집 등. 사실상 경영자나 다름없었다.

“일단 다른 건 접어두고 포션 생산량부터 늘립시다.”

“아, 그러면 수도권 내에서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해요.”

사업 초기.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다.

소비자들의 새로운 요구도 중요하지만, 당장 판매할 포션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근데 얘는 어디 갔어요?”

“백화점에 간다고 나갔습니다.”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강찬성이 뛰어 들어왔다. 양손에는 쇼핑백이 가득 들려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야! 이거 입어 봐!”

황급히 달려온 강찬성이 유현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쇼핑백에는 반듯하게 개인 정장이 들어 있었다.

“웬 양복?”

“내일 가는 거 잊었냐? 이 형님이 특별히 양복 쏜다!”

그 말에 유현이 지난번 있었던 강찬성과의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유희연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협회 주최의 길드 모임에 가기로 했었다.

“그게 내일이었구나.”

유현이 강찬성을 응시했다. 눈빛에는 귀찮음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너 솔직히 말해 봐. 거기에 난 왜 데려가는 거야?”

“에이, 다 네 동생을 위해서라니까?”

“속일 사람을 속여라.”

어색하게 미소짓던 강찬성이 곧 한숨을 쉬었다.

“사실은 말이야….”

강찬성은 순순히 진실을 읊었다.

자신에게 사촌이 하나 있는데, 이번에 그 녀석도 그 모임에 참가한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별 것 없는 가족의 만남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새끼가 아주 나쁜 새끼야.”

“나쁜 새끼고 나발이고 날 이용하려고 했던 거네?”

“......그, 그게 아니라고 말은 못 하지만, 그래도 네 동생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유현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인정했다.

길드 모임에 가는 건 동생에게 득이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되진 않을 테니.

“견학 대신 그놈 좀 어떻게 해달라는 소리야?”

“아니, 그건 아니고…. 내가 아카데미 S급 유망주랑 아는 사이라고 하면 그놈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서.”

“......”

“난 그 새끼 충격받은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그게 내 소원이다.”

강찬성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유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알겠어.”

강찬성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진짜 고맙다...”

“대신 다음에 또 거짓말하면 혓바닥 뽑아버린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강찬성이 뻣뻣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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