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73화 (73/219)

73

유현의 일상은 치킨과 포션으로 도배됐다.

배달 일을 하며 틈이 날때마다 작업실로 돌아가 포션의 제작과정을 확인했다.

포션은 단순히 끓이기만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내용물이 넘치지 않도록 중간중간 불 조절을 해야 하며, 상태를 보며 추가로 재료들을 더 투입해야 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왕대길은 이런 식으로 포션을 만드는 건 처음 본다고 이야기했다.

살았던 세계가 다르니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도 당연했다.

“끄으으~”

유현이 기지개를 켜며 작업실로 들어갔다. 오늘도 점심을 틈타 작업실에 도착한 참이었다.

“왔냐?”

포션이 든 냄비를 지키고 있던 강찬성이 유현을 반겨주었다.

혹시 모를 화재나 도둑으로부터 포션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둔 감시역이었다.

“너 이번주에 시간 되냐?”

“아니.”

“치킨집 쉬는 날 있잖아.”

“그때는 나도 쉬어야지.”

원래 약속이랑은 다른 이야기였지만, 강찬성은 참을성을 발휘하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포션을 구했으니까 이제 길드원다운 일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했냐? 내가 했지.”

“아니, 그래도 내가 공들여서 자료 조사를 했으니까….”

유현은 하품하며 포션 냉장고에서 이온음료를 꺼냈다.

“그래. 네 도움도 있었으니 성공했지. 한 10퍼센트 정도는 도움됐네.”

“야! 고작 10퍼센트라니!”

“까놓고 말해서 그냥 내부자 하나 납치해 와서 포션 어딨는지 불라고 했으면 끝나는 거 아니야. 그랬으면 이렇게 복잡하게 계획 세워가면서 할 필요 없었지. 인정?”

“......그런 식으로 말하면 할 말은 없지.”

유현이 이온음료를 들이켰다.

옆에 앉은 강찬성은 그 태연한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럼 길드 일 안 도와 줄 거야?”

“그거 도와주잖아. 어디야. 무슨 파티 가는 거.”

“아니, 겨우 그거 하나…. 아니다. 그거라도 해주는 게 어디야.”

황찬성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게 자신의 팔자려니 했다.

“에휴. 합심해서 길드 만들었던 놈들은 죄다 튀고, 좀 열심히 해보자 했는데 여기저기서 사기당하고, 그나마 너 만나서 나아지나 싶었더니, 도움은 하나도 안 되고.”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이네.”

“적어도 나한테는 나쁜 놈이지, 인마.”

“그럼 이거 필요 없어?”

유현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봉투를 흔들었다.

“뭔데 그게?”

“계약서.”

계약이라는 말에 강찬성이 빠르게 손을 뻗었다. 유현은 순순히 계약서를 넘겨주었다.

“별 거 아니기만 해봐.”

강찬성이 서류봉투의 봉인을 뜯고 서류를 꺼내 내용을 훑었다.

그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턱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 이런 미친.”

“알아보니까 포션은 길드에서 밖에 못 팔더라? 근데 나나 왕대길씨나 헌터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 그, 그래서 우리 길드를 쓰겠다고?”

“왜. 싫어?”

강찬성이 활짝 웃었다.

“싫긴, 새끼야! 사랑한다! 사랑해!”

강찬성이 유현을 껴안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유현은 발을 뻗어 강찬성의 접근을 막았다.

“수익 분배는 8대2이야.”

“야! 9대 1도 해줄 수 있어.”

“그럼 9대 1로….”

“농담이지 뭘 또 진지하게 받아! 하하하!”

유현이 피식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이전과 달리 실내에 풍기던 냄새가 한층 오묘해졌다. 포션이 완성되었다는 증거였다.

“자, 과연 사흘에 걸쳐 만든 첫 번째 포션은 효과가 있을까요?”

두 사람의 눈빛이 냄비에 쏠렸다.

유현은 긴장을 머금은 채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

“끄아아아아아아악!”

작업실에 강찬성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독에 감염된 그의 팔이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네가 선택한 독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뜨으으으윽! 쓰이빠아아알!”

왕대길이 이를 악물고 강찬성의 몸을 눌렀다.

경과를 지켜보길 잠시.

어느 정도 독의 증상이 심화되자 유현이 강찬성의 입에 포션을 흘려 넣었다.

“푸확!”

“에헤이! 이거 비싼 거야! 뱉지 마!”

이번에는 억지로 입을 붙들고 포션병을 때려 박았다.

콸콸 들어가는 수상한 빛깔의 액체.

반은 밖으로 흘렀고, 나머지 반은 목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우우우우욱!”

“토하지마!”

강찬성이 몇번이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유현은 녀석이 물약을 뱉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보라색 빛깔로 커졌던 그의 팔이 원래의 색과 크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진정이 됐는지 강찬성의 호흡도 규칙적으로 돌아왔다.

유현은 입에서 손을 떼고, 강찬성의 상태를 살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뿐, 외형적으로 큰 이상은 없었다.

“괜찮냐?”

강찬성이 지친 얼굴로 씩 웃으며 유현을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와아아아!”

왕대길이 환호했다.

“테스트 전부 통과했습니다!”

첫 번째 포션을 완성하고, 지난 사흘 내내 이루어졌던 포션 테스트.

게이트에서 자주 접하는 몬스터의 독을 모아 강찬성의 몸에 직접 주입하고, 새롭게 제작한 포션을 먹이길 반복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지구에 있는 재료로 새롭게 제작한 해독 포션은 총 30종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독을 모두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종합 해독약보다 2배는 높은 수준이었다.

“아이고, 몸이야.”

강찬성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독을 먹고, 회복하고, 쉬었다가 다시 독을 먹고.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니 상당히 힘들었다.

“야, 근데 이거 신기하긴 하다. 어떻게 후유증이 없어?”

몸이 피로할 뿐, 어디가 아프다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일반적인 독을 해독하더라도 후유증이 남기 마련인데, 유현이 만든 해독제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게 바로 나만의 노하우지.”

“방법이 뭐야?”

“만트라의 뿌리랑 미쟈의 이파리가 합쳐지면 디스펠 마법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어. 그것 덕분이야.”

“디스펠?”

“그냥 대충 알아들어.”

유현은 대강 얼버무렸다.

마법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마법적인 설명을 덧붙여봤자 알아듣지 못할 게 뻔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야.’

왕대길은 유현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처음에는 이런 재료로 포션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의문이 들었다.

유현이 가져오라고 지시한 재료 중 기존 포션 시장에서 재료로 쓰이는 게 없었으니까.

게다가 설비 역시 부족했으니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건지 물음표뿐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남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어코 포션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문무를 겸비한 대단한 인재. 시대를 이끌어갈 그런 인재임이 틀림없었다.

“자, 그러면 바로 양산 들어갑시다.”

생각에 잠겨있던 왕대길은 유현의 말에 곧장 일어났다.

“재료 사러 다녀오겠습니다!”

왕대길이 쏜살같이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즐거웠다.

한성제약에 처음 입사했을 때의 그 두근거림과 설렘이 왕대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저 아저씨 되게 신난 것 같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강찬성이 말했다.

“신날 만 하지. 인생 2막 시작인데.”

세상에서 누구보다 긴 세월을 살아왔기에 유현은 상대의 기분을 잘 알 수 있었다.

강찬성은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유현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 18살 아니지? 고삐리가 아니라 노인네 같아.”

“천 살은 더 먹었지.”

“헛소리하는 거 보면 고삐리 같기도 하고.”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해독 포션을 챙겼다.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다.

포션의 이름도 정해야 하고, 판매처도 확보해야 하며,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도 많다.

왕대길이 도와준다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정기적인 재료 확보.’

지금이야 이렇게 경매장에서 구해온다지만, 추후 공급이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주재료가 출하되는 게이트의 권한을 구매해야 한다.

‘그 전에 이것부터 다 처리해야 하는데.’

유현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한성제약에서 갈취한 포션으로 가득했다.

현재까지 절반의 구조를 확인했고, 나머지 절반은 손도 못 댔다.

‘후딱 해버려야지.’

포션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포션 제작의 길이 열린다.

벌써 몇십 개에 달하는 새로운 포션 설계를 확보해둔 상황.

나머지 절반도 빠르게 확인하여 더 많은 설계를 확보하고, 마나 재구조화 가속에 용이한 구조도 찾아야 한다.

“야, 너 슬슬 가라.”

“좀만 쉬었다 가자.”

“아냐, 지금 가야 해.”

유현은 강찬성을 쫓아내듯 내보낸 뒤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

“유레카!”

과거 한 학자가 새로운 개념을 깨닫고 알몸으로 외친 말이 유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의 앞에 부유한 복잡한 마나의 형태 구조들.

분석하지 않은 포션이 다섯 병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유현은 드디어 발견했다.

판대륙의 마나를 더 빠르게 지구의 마나로 바꿀 수 있는 구조를.

“이걸 이런 식으로 바꾸고, 서른여덟 번째 포션에서 얻은 구조 일부를 대입하면….”

포션의 구조가 더 치밀해지고, 간결해졌다.

유현은 자신이 이룩한 결과에 손뼉을 쳤다.

“난 천재야.”

이 포션만 있다면, 마나 구조의 변화에 얼마든 대응할 수 있다.

지구에서 판대륙으로 가든, 판대륙에서 지구로 오든, 아니면 마나의 구조가 다른 어떤 세계로 가든 이 포션이 해결해 줄 것이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유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출입구로 향했다.

‘올 사람이 없는데.’

왕대길은 영업과 재료 확보로 바쁘고, 강찬성도 제 나름대로 영업행위를 하고 있다.

인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지?’

유현이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정장 차림에 뿔테 안경, 나 사무직이요 하고 외치는 옷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남자가 내부를 한번 슬쩍, 바깥 입구를 한번 슬쩍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포션 만드는 곳 아닌가요?”

“맞는데 누구세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AOM?”

“아시죠? 최근에 날리기 시작한 길드입니다.”

“아하.”

AOM 길드 보급 담당.

명함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걸 보고 왔습니다.”

남자가 다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어디 길거리에나 널려 있을, 허접한 포토샵으로 제작된 싸구려 전단지였다.

“......”

유현은 전단지를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길드 마망의 이름과 강찬성의 사진이 중앙에 크게 출력되었다.

그 아래에는 그림자와 그라데이션이 얽히고설킨 글씨체로 포션을 판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게 당최….”

“해독 포션을 판다고 되어있는데 진짠가요?”

“아, 예. 그렇긴 합니다만.”

일단 포션 판매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법적 허가는 모두 받았고, 이름도 정해졌다.

문제는 아직 그것 외에는 무엇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션 가격이나 판매 채널 등.

‘이 새끼 언제 이런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지?’

매일 영업을 한다며 바쁘게 나돌아다니길래 뭘 하나 싶었더니만, 설마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줄이야.

“저기?”

남자의 부름에 유현이 싱긋 웃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그 웃음에 남자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왠지 모르게 섬뜩한 미소였다.

“어, 여기에는 한 병당 20만원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20만 원이요?”

“네, 네.”

“허허. 20만 원이요.”

“네. 20만원….”

유현이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이 천천히 남자의 어깨를 휘감았다. 남자는 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이게 20만원 받을 물건은 아니거든요?”

“하, 하지만 여기에는 20만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20만원. 포션을 한 번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원가가 50만원이다.

한 번 만들면 총 5병이 나오니 원가로 팔면 병당 10만원.

판매가로 병당 20만 원이면 원가 대비 두 배니 적절한 가격처럼 보일 수 있다.

‘근데 가격을 그런 식으로 정하면 안 되지.’

투입되는 인력과 시장 가격을 생각하면, 세 배 이상은 거뜬히 받아도 된다. 아직 시장 진입 초기 단계이니 가격으로 승부를 본다고 해도, 20만 원은 너무 싸다.

“그 20만 원은 이제…. 음, 그래. 못 본 거로 합시다.”

“제, 제가 봤는데요?”

유현이 남자의 어깨를 꽉 쥐었다.

두 눈에 어린 살벌한 기운이 남자를 압박했다.

“못 본 걸로 합시다.”

“......”

“대답 안 해요?”

“예, 예!”

유현이 남자를 조용히 작업실로 끌어들였다. 남자의 처량한 뒷모습은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였다.

‘강찬성 이 새끼. 오기만 해봐.’

가격 형성의 기본 개념도 없는 새끼.

유현은 속으로 호박씨를 까며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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