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여름의 더위는 더 짙어졌고, 유현의 일은 더 바빠졌다.
치킨 배달을 도와주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포션의 구조를 연구하던 유현.
최근에는 일이 너무 많아져 포션에 할애할 시간조차 부족해졌다.
“대체 장사가 왜 이렇게 잘 되는데!”
인근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며 치킨집은 호황을 이루었다.
영업 시작 이후 영업이 종료되기 직전까지 배달 어플의 주문 알림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빠! 치킨!”
막 튀긴 치킨이 또 나왔다.
유현은 영혼 없이 치킨을 포장하고 봉투에 담았다.
“후딱 갔다 와. 그것만 하면 브레이크 걸고 점심 먹을 거니까.”
“내가 제 명에 못 살겠다.”
“또 징징대네. 누군 편해? 내가 여기서 튀기는 치킨만 하루에….”
유현이 손을 휘저으며 가게를 나왔다. 저 빌어먹을 가시나. 무슨 이야기만 하면 자기가 더 힘들다는 식으로 응수한다.
‘사실 그게 맞긴 하지.’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냥 치킨을 목적지에 두고 오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배달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아니고, 힘겹게 뛰어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동생의 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슬슬 직원을 늘려야 할 텐데.”
네 사람으로는 충당이 안 될 만큼 장사가 잘된다.
분점을 내면 안 되겠냐는 프랜차이즈 제의까지 있었다.
그뿐인가. 멀리서 소문을 듣고 포장해가는 손님도 늘어났다.
“두 분이 알아서 하시겠지?”
유현은 바리바리 싸든 치킨을 들고 길을 달렸다.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설 때는 허공으로 도약해 마치 날아가듯 이동했다.
그 덕에 웬만하면 조리하고 5분 이내에 치킨이 배달됐다.
재주문율이 높은 이유에는 유현의 이런 깔끔하고 빠른 배송 덕도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 집.”
유헌은 문앞에 음식을 둔 뒤 벨을 누르고 빠져나왔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 시간이 되었다.
지금부터 매장은 브레이크 타임이니 유현은 가게로 돌아가는 대신 작업실로 이동했다.
“빨리 오셨네요?”
작업실 앞에는 왕대길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흙이 덕지덕지 묻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물건 받자마자 냉큼 달려왔습니다.”
“들어가서 한 번 봅시다.”
오늘은 왕대길이 구해온 재료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그가 알아본 재료의 이름들이 정말 자신이 알던 판대륙의 물건일지,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같은 우연일지.
“여기서 포션을 만드시는 겁니까?”
왕대길이 텅 빈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예. 재료를 전부 구하면 여기서 만들겁니다.”
“설비 같은 건 필요 없습니까?”
회색빛 벽지가 붙은 넓은 공간.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냉장고 하나가 인테리어의 전부였다.
“불이랑 냄비만 있으면 됩니다.”
“그렇군요.”
다른 이의 말이었다면 의심부터 들었겠지만, 유현의 말이기에 왕대길은 수긍했다.
“일단 재료부터 봅시다.”
왕대길이 유현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물씬 풍기는 흙냄새.
유현은 쇼핑백에 손을 넣어 내부를 휘저었다. 흙더미 속에서 무언가 손에 잡혔다.
‘......’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까칠한 촉감.
유현은 그대로 손바닥에 마나를 실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포션의 재료가 됩니까? 찾아보니까 몇 개는 외국에서 그냥 식재료로만 쓰인다던데. 그마저도 많이 먹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유현은 말없이 손에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길 잠시. 흙더미 속에서 조심스레 손을 빼냈다.
“아니, 이게 무슨...”
왕대길이 입을 벌렸다.
유현의 손에 들린 재료가 희미한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거 누구한테 구한 겁니까?”
“예? 아, 겨, 경매장에서 구했습니다.”
“출품자는요?”
“그건 잘...”
유현은 바닥에 쇼핑백을 뒤집어 엎었다. 흙더미가 바닥 위로 쏟아졌다.
‘진짜야.’
판대륙에서 나오던 재료들과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게 아니었다.
유현은 자리를 깔고 앉아 다른 재료들도 확인했다. 그의 손이 닿는 것마다 모두 제각기 다른 빛을 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빛이 나죠?”
“나중에 말씀 드릴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유현의 분위기 심상치 않음을 느낀 왕대길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작업실을 나갔다.
“허허.”
유현은 팔짱을 낀 채 흙더미 위에 나란히 놓인 재료들을 내려다보았다.
판대륙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은 분명 판대륙에서 나오는 재료들이었다.
대체 왜 이것들이 지구에 있는 걸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야, 목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목소리를 입에 담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유현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이게 뭐냐?”
지구에 판대륙과 비슷한 게 존재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사람 사는 건 서로 다른 세계라고 해도 거기서 거기니까.
실제로 지구에서 읽은 만화책의 일부는 판대륙과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이건 그냥 똑같잖아.”
비슷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재료였다.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
“야, 빨리 나와서 말해봐.”
유현이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 그가 목소리를 찾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이었다.
“이거 막 지구가 멸망하고 그런 거 아니지? 어? 그것만 말해봐.”
창밖으로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지나갔다. 이어서 자동차의 클락션이 들려왔다. 공간을 메우는 건 도심의 소음뿐이었다.
“하아, 이 개새끼.”
유현이 마른 세수를 했다.
기껏 지구에서 평범하게 사는가 했더니 불길한 징조를 발견했다.
화조차 나지 않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유현은 바닥에 앉아 재료들을 하나하나 손에 쥐었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유현은 우선 정말 이게 위기의 징조인지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먼저 체크해볼 수 있는 건….’
재료의 등장 시기.
이 재료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먼 과거부터 존재했다면, 특별히 무언가의 징조는 아닐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판대륙의 식물이 이곳에 있는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유현은 휴대전화를 꺼내 재료들을 검색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이것들은 지구에서 상당한 과거 시점부터 존재한 식물들이었다.
‘혹시 다른 것도 있나?’
유현은 왕대길이 모른다고 했던 재료들의 이름도 검색했다.
그것들의 검색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검색되는 건 식물에만 한정되는군.’
일단은 안심이었다.
“징조 같은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아직 여러 의문점은 남아 있다.
재료의 출처라던가, 왜 식물에만 한정되는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대체 왜 이게 지구에 있는 건지.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부터 있었던데.’
유현은 침음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당장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문제가 생길 기미도 없으니 굳이 더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잘 됐지.”
판대륙의 재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특히 포션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더욱.
재료의 선택지가 늘어나니, 재구조화 가속 포션을 만드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이걸 식재료로 쓴다고 그랬지? 먹어본 적은 없는데.”
유현은 뿌리 하나를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함을 느낀 그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
다음날.
왕대길은 유현의 연락을 받고 급히 작업실로 향했다. 양손에는 유현이 부 탁한 짐들로 가득했다.
“왔습니다!”
벌컥 문을 열어젖히자 구린 냄새가 풍겨왔다.
왕대길은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멈췄다.
‘무슨 냄새가….’
왕대길은 작업실 안으로 들어와 짐을 내려놓았다.
어딜 간 건지 유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려나 보네.’
어제와는 달리 작업실에는 여러 가구가 채워졌다.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 놓인 거치대에 수십 개의 빈 병이 거치되었다.
그 외에 노트북을 비롯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왔어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유현이 돌아왔다. 왕대길은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거 주세요.”
유현은 왕대길이 챙겨온 가열장치를 책상에 세팅했다. 가스레인지와 무쇠 냄비였다.
“이걸로 되려나 모르겠네.”
본래 포션 제작에 필요한 가열장치는 솥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재료가 있을 줄 알았으면 진즉에 제대로 된 작업실을 구하는 건데.’
애당초 포션 제작을 염두에 두고 고른 작업실이 아니었다.
훔쳐 온 포션의 구조를 체크하기 위한 공간이었을 뿐. 냉장고 하나만 덜렁 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포션 제작 이야기를 꺼낸 건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당신을 끌어 들어야 했으니까.”
“아……”
“그래서 장기적인 계획도 없었습니다. 이런 재료를 구해달라고 한 것도, 구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걸 핑계 삼아서 당신을 쳐내려고 했었고요.”
왕대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기에는 생각보다 흔한 재료들이었다.
‘혹시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그러시는 건가.’
그 당시에 자신 있게 말하긴 했지만, 누군가를 책임질 정도의 능력은 없다.
왕대길은 유현의 말뜻을 그렇게 받아들이고는 내심 감탄했다.
‘이 얼마나 겸손한 행동이란 말인가.’
만약 자신에게 유현과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뽐내고 다녔을 것이다.
나는 강하고, 게다가 포션도 만들 줄 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대신 되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왕대길은 큰 감명을 느꼈다. 그가 진심으로 유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비록 말년에는 구석으로 좌천되었지만, 전성기 때는 날렸던 영업맨입니다. 믿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 포션을 판매하겠습니다.”
“예? 아, 예. 그건 그렇고 아마 그리 많은 양은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재료도 그렇고, 설비도 부족해서요.”
최적의 설비는 모닥불처럼 뜨거운 불과 그런 불꽃에도 견디는 솥이다.
거기에 재료와 물을 적정 비율로 섞고 오랜 시간 가열하면 그걸로 완성이었다.
하지만 이런 제한된 실내에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거야 저희가 함께 힘을 합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왕대길은 가방에서 밤새 정리한 파일을 하나 꺼냈다.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참고가 될까 싶어 앞으로의 로드맵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뭘 또 이런 걸 다 하셨대.”
유현은 파일을 살폈다.
거기에는 초기 단계부터 아주 상세하게 미래가 설계되어 있었다.
-현재 포션 시장에서 가장 공급이 부족한 분야는 해독입니다. 해독은 각기 다른 독성 물질에 반응해야 해서 메디컬도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시작 라인업은 해독 포션.
지난번, 유현이 사용했던 그 포션이었다.
“흐음.”
유현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파일을 모두 읽었다.
“이대로 하죠.”
“예? 정말입니까?”
“네. 괜찮네요.”
괜히 제약회사에서 20년을 구른 게 아닌지 계획의 완성도는 대단했다.
여러 가지 플랜이 만들어져 있고, 그 플랜에 대비한 플랜까지 존재했다.
포션 판매 쪽으로는 문외한인 유현에게는 아주 획기적인 미래 설계였다.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유현은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웠다. 다음으로 냉장고를 열어 미리 만들어두었던 포션의 원료를 꺼냈다.
“이 냄새였군요.”
커다란 볼 안에 들어있는 괴이한 물질. 어제 가져온 재료들을 잘게 자르고, 빻고, 섞어서 만들어낸 혼합 원료였다.
“이건 무슨 포션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예?”
유현이 냄비 안에 원료를 쓸어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아직 몰라요. 나도 이 재료만으로 포션 만들어보는 건 처음이라서.”
왕대길의 표정이 굳었다.
유현은 가스렌지의 불을 켜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다른 재료들도 구해오셨어야지. 내가 성의를 봐서 해독 포션 만들 수 있게 노력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