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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70화 (70/219)

70

한성제약 산하 길드 한성.

공장 부지 한쪽에 위치한 길드 본부 건물에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렸다.

“전부 장비 챙겨서 집합한다!”

정전의 여파는 길드 건물에도 찾아왔다. 불은 꺼졌고, 전자기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수뇌부는 관리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빨리! 빨리 움직여!”

길드 본부의 넓은 로비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어둠 속에서도 정갈한 대열.

마치 잘 훈련된 군인 같았다.

“전원 인원 체크!”

“1분대 4명 만원!”

“2분대 4명 만원!”

각 4명씩 네 개의 분대.

길드 마스터를 포함한 수뇌부 다섯.

총 21명으로 이루어진 한성 길드는 오로지 한성제약만을 위해 만들어진 길드였다.

던전에서 원료를 얻고, 공장을 경비하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다들 주목.”

“주목!”

길드 마스터 김지용이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공장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경비원은 물론이고, 관리실도 먹통이야.”

“......”

“침입자가 있다면 생포해라. 반항이 심하면 죽여라.”

“알겠습니다!”

“출발해.”

김지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일 좌측에 선 1분대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뒤를 2분대가, 그 다음에는 3분대가 뒤따랐다.

“우리도 간다.”

길드원들이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간 뒤, 길드의 수뇌부가 바깥으로 나갔다.

멀리 보이는 공장 건물.

길드원들은 이미 건물에 다다라 있었다.

“무슨 일일까?”

“중간에 보고 들어온 건 없어. 단순 사고일 지도 몰라.”

“하지만 연락이 아예 안 되잖아.”

소수 정예로 유명한 한성 길드.

다른 중형 길드에 비해 길드원은 적지만, 개개인의 무력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나 수뇌부의 무력은 웬만한 대형길드 소속 간부와 맞먹었다.

“시답잖은 잡담은 그만해라. 가서 확인해보면 될 일이야.”

“옙.”

수뇌부가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작아졌다.

***

“여기가 창고군.”

지하 5층에서 빠져나온 유현은 창고를 향해 나아갔다.

줄곧 뒤를 따라오던 두 사람이 없으니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삐빅.

유현이 카드키로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창고에는 냉기가 흘렀다. 포션의 보관을 위해 내부의 온도는 영하에 가까웠다.

“하나씩만 챙기자.”

유현은 빠르게 창고를 돌았다.

포션은 종류에 맞게 섹터별로 구분 되어 있어서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이 중에 열쇠가 있으면 좋으련만.’

포션을 얻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나 재구조화를 가속할 포션의 제조를 위해서다.

만약 여기서 얻은 포션으로 만족할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때는 다른 공장을 털어 볼 생각이었다.

“다음은 연구실.”

연구실에는 아직 시험 단계인 포션들이 보관되고 있다.

유현은 곧장 창고를 빠져나와 연구실을 향해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누가 오는군.’

계단을 올라가던 유현이 멈칫했다.

조용한 층계에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울렸다.

‘그놈들이겠지.’

한성 길드의 출동은 예상했다.

문제는 시간.

과연 헌터들이라 그런지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들키면 안 되는데.’

강찬성과 왕대길은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을 터.

혹여 그들이 한성 길드의 인원과 마주하게 된다면 큰 낭패였다.

그에 따른 계획도 세워두었지만, 그걸 실행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최대한 들키지만 말아줘라. 들키더라도 늦게 들켜.’

유현은 속으로 빌며 계단을 올라갔다.

“아래쪽이다!”

움직임을 포착했는지 큰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멈추지 않고 올라갔고, 상대도 빠르게 내려왔다.

잠시 뒤, 유현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한성 길드와 대치했다.

“누구냐!”

어둠 속이었지만, 그들은 야시경을 통해 유현을 볼 수 있었다.

경비원도, 연구원도 아닌 유현의 복장. 그들은 유현이 곧장 침입자임을 파악했다.

“투항해라!”

유현의 눈이 푸르스름한 빛을 흘렸다.

‘4명.’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가볍게 돌파해나갈 수 있는 수준.

유현은 빠르게 판단했다.

“공격해!”

그가 공격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길드원들도 움직였다.

타오르는 불꽃이 날아들고, 유현을 둘러싼 공기가 무거워졌다.

저마다 특성을 사용했으나 유현은 아랑곳않고 전진 스탭을 밟았다.

그렇게 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갔...”

길드원들의 판단과 행동은 빨랐지만, 유현의 주먹은 그보다 더 빨랐다.

제압당한 네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긴 지도 모른 채 기절했다.

“좋은 거 들고 다니네.”

유현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아공간에 챙겨 넣었다.

한 시가 바빴지만, 눈앞의 보물을 놓칠 수는 없었다.

유현은 경비원들과 같은 방식으로 길드원들의 후속 처리를 마치고는 다시 움직였다.

***

“헉, 헉.”

강찬성과 왕대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현재 위치는 1층.

쉬지 않고 5층 분량의 계단을 뛰어온 탓에 기진맥진이었다.

“형님, 힘들어요?”

강찬성의 물음에 왕대길은 주저앉은 채 손만 휘저었다.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

평소에 운동 좀 해둘걸.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좀만 더 힘냅시다.”

왕대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1층까지 도착했으니 이제 남은 건 1층 복도와 외곽지대뿐이다.

CCTV도 없고, 방해하는 인력도 없으니 그냥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참, 영업이도 챙겨야 합니다.”

“예, 예. 물론이죠. 그 사람 버려두고 가면 우리도 큰일 나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두 사람은 천천히 1층 복도로 걸어 나왔다. 곳곳에 널브러진 경비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좀만 서두르죠.”

꽁꽁 묶어두었으니 깨어나도 큰 문제는 없지만, 그들이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르기에 신속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게다가 한성 길드가 언제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까지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어딜 가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들을 붙잡았다.

“......”

강찬성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고개를 반쯤 돌렸다. 어둠 속 저편. 누군가 홀로 서 있었다.

“옷 입은 걸 보니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강찬성이 목을 내리깔아 목소리를 바꿨다.

“치, 침입자가 옷을 가져갔습니다.”

“그게 너희 아니야?”

“저희가 침입자로 보이십니까?”

한성 길드의 간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그들의 모습은 침입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쪽은 완전히 지쳤고, 다른 쪽도 비슷해 보였다. 침입자라면 이렇게 대책없이 움직이진 않겠지.

“혹시 모르니까 얼굴이라도 좀 보여줄래?”

강찬성은 망설였다.

정황이 없으니 여기서 체포되지는 않더라도, 얼굴을 보여주면 용의자 몽타주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셋 센다. 안 보여주면 침입자라고 간주하지.”

강찬성은 머리를 굴렸다.

어떤 핑계를 대야 지금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하나.”

머릿속으로 수많은 사고가 오갔지만, 합리적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둘.”

이제는 더 피할 길이 없었다.

지금 얼굴을 보여주고, 나가서 성형이라도 하는 게 그나마 생각 나는 이상적인 해결책이었다.

‘젠장.’

강찬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

간신히 서 있던 왕대길이 진동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굳어 있던 강찬성도 왕대길을 보고는 따라서 쓰러졌다.

“뭐야. 나도 가봐야 하나?”

간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쓰러진 두 사람을 발견했다.

“허. 기절했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는 간부.

그가 두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콰쾅!

또다시 땅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진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무언가 붕괴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치지지직.

간부가 어깨에 달아둔 무전기가 소음을 냈다.

곧 기계음 사이로 목소리가 뒤섞였다.

-여긴 ...험실. 행동을 멈... 실험,,, 전원 집합.

중간중간 끊겼지만, 그게 전하는 바는 알아들었다.

“쳇.”

간부가 혀를 차며 급하게 몸을 돌렸다. 전원 집합이라면 큰 싸움이 생긴 게 분명한 상황.

여기서 저들을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다른 데서 난리가 났으니 어차피 저놈들은 아니겠지.’

그렇게 간부가 떠나갔다.

기척이 사라진 걸 확인한 강찬성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는 뒤쪽을 확인한 뒤에야 완전히 안도했다.

“아휴,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강찬성이 몸을 일으키며 왕대길을 부축했다.

간신히 일어난 왕대길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저씨, 계속 가야 해요. 좀만 정신 차려요.”

“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

길드 마스터 김지용은 간부 둘을 데리고 곧장 연구실로 향했다.

만약 침입자가 있다면 창고나 연구실을 노릴 거라는 판단이었다.

“어이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연구실에 도착한 유현은 입구에서 세 사람과 마주쳤다.

“역시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군.”

김지용이 중얼거렸다.

단순 사고였다면, 경비 측과 연락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들어왔냐?”

“코스프레도 아니고 뭐야?”

두 간부가 유현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트레이닝복에 웬 이상한 가면을 착용한 유현의 모습은 그들에게 퍽 우습게 보였다.

“조용.”

김지용이 두 사람의 앞으로 나섰다.

고작 한 마디였지만,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유현은 그가 한성 길드의 주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관심받기 싫어서 어중간한 등급에 머물러 있다는 그놈이구만.’

지금껏 많은 헌터를 본 건 아니지만, 아카데미에서 나름대로 강한 아이들을 만나왔다.

김기용의 기백은 확실히 남달랐다.

아카데미의 풋내기 애송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

‘노련함이 엿보이는군.’

아카데미 학생들은 재능의 원석.

상위권 학생들과 상위권 헌터의 능력적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다른 점은 경험. 이 자의 기세 역시 경험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래 봤자지.’

눈앞의 남자가 삶의 절반을 전장에서 뒹굴었다고 해도 고작 몇십 년이다. 유현에게 김지용은 풋내기와 다름없었다.

“너희는 나서지 마라.”

강자는 강자가 알아본다는 말처럼 김지용 역시 유현의 저력을 눈치챘다.

여기까지 들어온 것만으로도 그 강함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비키란다고 비키진 않을 거고.”

“정확히 아는군.”

유현은 김지용에게 다가갔다.

불필요한 대치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작전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라도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미안하지만 일행이 있어서 말이야.”

“그쪽도 우리가 쫓고 있어. 이미 잡았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빨리 불러들여야지.”

김지용이 실소했다.

“불러들인다? 할 수 있을 것 같나?”

“무전기 있지?”

“우리는 경비원이 아니다. 그놈들처럼 멍청하게 당해주진 않아.”

상대의 몸을 훑던 유현은 어깨에 매달려 있는 무전기를 발견했다.

“이곳에 들어온 걸 후회하게….”

김지용의 모습이 사라졌다.

간부들은 멍청히 눈을 꿈뻑이며 어리둥절했다.

“어, 어디 가셨지?”

“순간이동?”

다음 순간, 뒤쪽에서 거대한 파괴음이 들렸다.

쾅! 콰쾅!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야시경의 초록색 시야 너머로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고, 그것을 연신 바닥에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진동했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대지가 울렸고, 천장에 부착된 설비가 붕괴했다.

“......”

둘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폭력은 바닥을 떠나 벽으로 이어졌다. 벽이 무너지고, 창문이 깨졌다.

“저, 저거 설마….”

사방으로 튀는 부스러기 속에 신발과 옷가지들이 날아다녔다.

그게 자신들의 대장인지는 굳이 말로 떠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간부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이내 그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전파했다.

“여, 여긴 실험실. 행동을 멈추고 저, 전원 실험실로 전원 지, 집합 전원.”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헌터가 되어 전투현장에도 몇 번인가 나갔지만, 지금 목도한 풍경은 어느 때보다 잔혹했다.

“후.”

유현이 손에 쥐고 있던 멱을 놓았다.

상대의 맥을 짚고, 아까 훔쳐 온 회복 물약을 입에 흘려 넣었다.

‘간만에 힘좀 뺐네.’

노련한 놈들은 초반에 빠르게 끝내는 게 편하다. 안 그러면 귀찮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방금 무전했지?”

유현이 간부들을 돌아보았다.

둘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얼굴을 가린 흉측한 가면과 주변의 풍경이 겹쳐지며, 마치 지옥도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뭐야, 왜 말이 없어.”

두 간부의 시선은 이내 김지용에게 향했다. 언제나 믿고 따르며 충성을 바치던 우두머리가 마치 주검처럼 널브러졌다.

“......”

간부 하나가 무릎 꿇었다.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전투 의지는 상실되었다.

지원을 불렀지만, 그들이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 살려만 주십쇼.”

다른 간부도 무릎을 꿇으며 빌었다.

“허, 참. 누가 보면 내가 사람이라도 죽이는 줄 알겠네.”

유현은 옅은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김기용을 들어 간부들에게 던졌다.

“안 뒤졌으니까 포션 먹이고 재워.”

유현은 태연하게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왕대길에게 들은 대로 시험중인 포션의 샘플은 모두 실험실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와, 진짜 많네.”

몇백 병은 되어 보이는 양.

유현은 싱글벙글 웃으며 아공간에 포션을 쓸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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