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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69화 (6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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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길이 선두에서 길을 안내했다.

천장과 바닥은 물론 벽까지 온통 새하얀 공간. 왕대길은 이곳을 외곽지대라고 불렀다.

일종의 침입 방지 구역으로 누군가 무단으로 침입하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잘못된 구역으로 가면 곧장 경보가 울립니다.”

그것 외에도 잘못된 문을 열거나, 문을 억지로 열려고 시도하면 마찬가지로 경보가 울린다고 한다. 내부자를 조력자로 돌린 게 빛을 발했다.

“이쪽으로 나가면 외곽지대는 끝입니다.”

복잡한 길을 지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턴 경비 인력이 상주합니다. 자세한 배치 인원은 모르지만, 많을 거예요.”

“이제 제가 앞장설게요. 뒤쪽에서 길만 알려줘요.”

유현이 왕대길의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외곽지대와는 달리 평범한 실내가 나타났다. 영화에서 나오는 비밀 기지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오라고 하면 따라오면 됩니다.”

유현이 품속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경비원들과 마주할 경우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한 대비였다.

유현이 먼저 모퉁이를 돌았다.

전방으로 쭉 이어진 복도가 길의 전부였다. 그 복도에는 경비원 한 명이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일단 보이는 건 한 명.’

길이 하나밖에 없기에 다른 쪽에서 나타날 염려는 없다.

유현은 은밀하게 경비의 뒤를 밟았다. 보폭은 넓고 속도는 빨랐으나 소음은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경비의 뒤에 도달했고, 목을 내려쳐 간단히 경비를 제압했다.

“허.”

일련의 과정을 보며 왕대길은 탄식했다. 몸놀림은 둘째 치고, 사람을 제압하는 방식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 가요.”

유현이 두 사람에게 손짓하자 강찬성이 재촉했다.

그 역시도 유현의 깔끔한 제압에 놀랐지만, 멍하니 감탄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신속하게 유현이 기다리던 문 앞에 도착했다.

“이 문을 나가면 이런 식의 통로가 있습니다.”

“세 방향이군.”

왕대길이 수첩에 그림을 그려가며 길을 설명했다.

여기서 나가면 전방, 좌측, 우측, 세 방향으로 통로가 갈라지며, 어느 쪽에 경비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있긴 있습니다.”

“바로 대응하지 않으면 들키겠군요.”

“네. 위치를 알면 좋으련만….”

유현이 불쑥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체내를 달리던 마나가 그의 손가락 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나는 그대로 공간을 타고 뻗어 나갔고, 문 너머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쉿.”

눈을 감고 집중하는 유현.

왕대길과 강찬성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뭐 하는 겁니까?”

“저도 모르겠는데요.”

잠시 뒤, 유현이 눈을 떴다.

“한 명이야.”

“뭐?”

“좌측 복도에 한 명이라고.”

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유현이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간 유현은 곧장 왼쪽으로 사라졌다. 이전과는 달리 힘을 실은 민첩한 움직임. 확신이 엿보이는 과감함이었다.

“나와도 돼.”

곧 유현이 다시 돌아왔다. 안쪽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와 복도를 돌아보았다.

유현의 말대로 왼쪽 복도에만 사람이 있었다.

‘말도 안 돼.’

유현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경비원을 보며 왕대길은 다시 한번 기함했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심화 되었다. 아무리 헌터라지만, 벽 뒤에 누가 있는지까지 알아내다니. 그런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저 사람 정체가 뭡니까?”

왕대길이 강찬성에게 물었다.

“어... 정체요?”

알려주기에는 여러 가지로 난감한 부분이 많았다.

유현은 미성년자고 제대로 된 길드 계약을 맺은 상태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직 자신도 모르는 점이 많았다.

“뭐해? 빨리 안 오고.”

그때, 타이밍 좋게 유현이 두 사람을 불렀다.

“오라네요. 갑시다.”

강찬성이 후다닥 뛰어갔다.

왕대길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똑같은 방법으로 나아갔다.

왕대길이 위치를 알려주면, 유현이 마나를 활용하여 외부 인원을 확인했다. 그다음에는 유현이 경비를 쓰러뜨렸고, 쓰러진 경비원들은 깨어나도 꼼짝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묶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길 몇 번.

세 사람은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버실이 있는 지하 5층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층은 상주 인력이 상당히 많습니다. 보안도 다른 곳보다 더 철저하고요. 하지만 다른 곳보다 구조가 단순한 게 특징입니다.”

왕대길이 수첩에 그림을 그렸다.

5층은 복도가 사각형 형태로 이어진 층이었다. 사이사이 끝과 끝을 연결하는 복도가 있었지만, 사각형의 형태를 벗어나진 않았다.

“서버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왕대길이 입구에 점을 찍고, 다음으로 서버실의 위치를 표시했다.

“입구 반대편이네요.”

“이쪽에도 입구가 있긴 하지만, 거기로 가려면 더 복잡한 길을 지나야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상관없으니까.”

“...예?”

목적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작전 성공의 핵심이 되는 열쇠였다.

그게 상관없다니. 왕대길은 유현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가겠습니다.”

“잠시만요.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닙니까?”

나가려는 유현을 왕대길이 붙잡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간다.

경비 인력은 물론 한성 길드까지 몰려올 것이고, 모두 붙잡힐 것이다.

경찰에 넘어간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취조받고 교도소에서 사는 게 여기서 고문 받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좀 더 침착하세요. 우리 여기서 걸리면 다 죽습니다.”

“무서워요?”

왕대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현은 그의 눈에 비친 감정을 읽었다.

“걱정 마요. 들킬 일 없으니까.”

“안에 몇백 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말을 뱉은 순간, 왕대길은 흠칫 몸을 떨었다. 등골이 서늘한 감각.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한껏 무거워진 공기가 숨통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급한 데 왜 이렇게 말이 많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왕대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몇백 명이 있든 몇천 명이 있든 난 안 들킵니다. 얌전히 여기 박혀 있어요.”

“아, 알겠습니다.”

유현이 문을 열고나갔다.

그 행동에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후우.”

왕대길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은 강찬성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원래 저런 사람입니까?”

“나도 몰라요. 근데 원래 싸가지가 없긴 합니다.”

“아, 확실히...”

자신이 20살은 더 많아 보이는데 딱히 예의를 차리는 낌새가 없었다.

“아저씨는 그래도 존댓말이라도 해주지. 나한테는 반말만 찍찍해요. 내가 곧 서른인데.”

“그나마 제가 나은 처지였군요.”

“나중에 한 마디 해주실래요? 전 무서워서 못하겠는데.”

왕대길은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저었다. 강찬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마음 저도 압니다.”

두 사람이 동병상련하던 그때.

누군가가 기척도 없이 문 앞에 나타났다.

“으아악!”

강찬성이 화들짝 놀랐다.

왕대길 역시 심장이 철렁하는 걸 느꼈다.

“뭘 그리 놀라?”

“으아아악!”

상대가 누군지 확인한 강찬성은 더 크게 놀랐다.

“벌써 왔다고?!”

“어, 어떻게….”

왕대길은 유현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그가 이곳을 나서고 고작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다니. 머릿속으로 부정적인 전망이 그려졌다.

“우리 이제 죽는 겁니까?”

“갑자기 죽긴 왜 죽어요?”

“경비원들 피해서 도망친 것 아닙니까?”

“아닌데요?”

아니라는 말에 왕대길이 입을 벌렸다.

“그, 그럼 설마 전부 쓰러뜨리고 오셨다는 말입니까?”

유현은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가시죠. 다 잡았습니다.”

“저, 저, 정말이요?”

유현이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리 의심이 많은 건지 원.

“진짜 다 잡았다고?”

“둘 다 속고만 살았나.”

유현이 다시 복도로 사라졌다.

그의 확언을 듣고서도 강찬성과 왕대길은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왕대길은 특히나 더 그랬다.

‘그냥 뛰어만 다녀도 10분은 걸릴 넓인데.’

심지어 복도의 테두리만을 순회하는 게 아니라 사이사이에 있는 복도까지 모두 살펴야 했다.

더불어 적을 쓰러뜨리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상식적으로 몇 분이란 시간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일단 나가봐요.”

강찬성은 복도로 나왔다.

고요한 복도. 바로 옆에 손발이 옷에 묶인 경비원이 있었다.

“어우, 씨. 깜짝이야.”

왕대길도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그의 시선은 강찬성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저쪽 끝까지 이어진 복도.

그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포박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맙소사.”

거짓말이 아니었다.

성공의 여부조차 불확실한 일을 불과 몇 십초 만에 해냈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눈앞에서 증거를 확인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도 확인해 보자.’

왕대길은 급히 발을 옮겼다.

빨라진 걸음은 뜀박질이 되었고, 곧 전력 질주로 뒤바뀌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몇 분.

한 바퀴를 돌고 더 뛰어 서버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미리 와 있던 유현과 강찬성이 서 있었다.

“어딜 갔다가 이제 와요? 와서 이것 좀 열어봐,”

왕대길이 숨을 헉헉대며 유현을 응시했다.

머리 위로 올린 가면 아래 드러난 호쾌한 미남의 얼굴. 그 얼굴의 어디에도 초조함이나 긴장감은 없었다.

조금 땀을 흘리고 있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뭐 해요? 열어 보라니까?”

왕대길이 카드키를 들고 다가갔다.

카드를 긁으며 그는 생각했다.

이 남자의 속에는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평범한 헌터가 아니야.’

유현이 남긴 흔적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경비원이 자신이 입고 있던 옷가지에 묶여 기절해 있었다. 어디에도 혈흔은 없었고,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복도를 거닐던 이는 물론이고, 보안실이나 관리실에 머물던 이들까지 전부.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자신의 상식을 초월한 헌터.

헌터라는 존재가 인간의 범주를 겉돈다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 이상이었다. 이 이상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건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알았으니까 빨리 와서 열어요.”

왕대길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열기 위해 뛰어갔다.

20년간 회사에서 쌓아온 경험이 유현에게 강하게 반응했다.

사내정치로 단련된 지난날들.

자신에게 이 남자는 분명 도움이 된다.

‘상부상조할 수 있는 관계.’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 그것만으로 충성을 바칠 이유는 충분했다. 적어도 황전무에게 당한 것처럼 내쳐질 일은 없을 테니까.

“열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복잡한 방식의 카드키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무사히 여는 데 성공했다.

이 역시도 왕대길이 회사 이곳저곳을 개처럼 구르며 쌓아온 지혜였다.

유현은 서버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넓었으나 온갖 장치들이 빼곡해 숨이 턱 막히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헤어집시다. 난 포션 찾으러 갈 테니 데이터 지우고 전기 차단해요.”

“예, 알겠습니다. 그쪽은 미리 관리실로 가서 전기 내릴 준비를 해주세요. 데이터 지우고 나면 소리로 신호하겠습니다.”

“오케이.”

강찬성과 유현이 서버실을 나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복도에 황대길의 고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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