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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68화 (6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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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의 옆에 선 강찬성은 서둘러 김영업을 포박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이분이 왕대길 부장님 맞지?”

“나도 사진은 안 봐서 몰라, 이 미친놈아.”

왕대길이 움찔했다.

“나, 나를 알아요?”

“김영업씨 삼촌 아닙니까?”

“그, 그걸 어떻게….”

“이 친구가 손 좀 썼습니다.”

왕대길에 대한 정보는 강찬성이 자신과 통화했던 김영업을 조사하며 함께 알게 됐다. 그것도 상당히 세세하게.

“정보력은 좋은데, 사실 너무 쓸데 없는 것까지 조사하는 것 같아.”

“덕분에 이런 계획 세운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왕대길이 슬금슬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경비 호출용 벨을 누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이거 찾아요?”

유현의 손에 들린 작은 버튼.

왕대길이 소지하던 경비 호출 벨이었다.

“어, 어떻게!”

“아까 이놈도 만지작거리더니만. 이게 뭐 사람들 불러오는 건가 봐?”

“......”

왕대길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의 의도가 뭔지는 몰라도 장단을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왕대길의 의중을 간파한 유현은 말투를 한층 누그러뜨렸다.

“너무 경계하지 말아요. 나 당신이랑 한배 타러 왔으니까.”

“......?”

“내가 회사는 안 다녀봐서 사내 정치 이런 건 잘 모르는데, 인간 관계는 대충 알거든요? 당신 이번에 새로 부임한 대표한테 밉보였다며.”

왕대길이 눈을 크게 떴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아니, 그것보다! 밉보이다니! 그건 그냥 의견이 엇갈려서...”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던데?”

유현이 강찬성을 돌아보았다.

김영업을 깔고 앉은 강찬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황전무가 다 말했어. 왕서방인지 왕대길인지 그놈 이번에 화장실 옆으로 자리 옮길 거라고. 어차피 고객도 죄다 다른 영업팀에서 유치하고 있고, 능력도 안 되면서 면접에서 탈락한 자기 조카나 자리에 꽂고 앉았고, 회사 돈도 슬쩍 빼돌리고.”

“그, 그걸 다 말했다고? 황전무님이?”

“양주 몇 잔 꽂아주니까 술술 불던데? 나는 그놈 그거 자판긴 줄 알았잖아. 술이 들어가면 썰이 나온다니까?”

왕대길이 휘청하며 회의실의 탁자를 붙잡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였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이야기들까지 전부 나불댔다.

거짓말이라며 부정할 여지조차 남지 않았다.

“다, 다, 다, 자기가 시킨 일이면서... 비자금도 자기가 빼돌리라고 했고, 영업이 데려온 것도 그 보상이었고, 혹시 모르니 영업해온 물건도 다른 팀으로 넘기라고….”

“에헤이. 그렇다고 나쁜 짓도 해주면 안 되지.”

토사구팽(兎死狗烹).

왕대길은 이제야 자신이 내쳐졌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소문도,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이제야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괜찮으신가? 너무 충격받으면 안 되는데.”

왕대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버려진 건 버려진 거고, 지금의 상황은 또 이야기가 달랐다.

“당신들,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포션. 공장에 있는 거 종류별로 전부.”

이곳에 있는 포션의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에 달한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포션은 물론이고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시험 포션까지.

그 모든 것들을 원한다는 유현의 말에 왕대길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이 포션을 줘도?”

“네.”

유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내가 그래서 이러고 있잖아. 애초에 이 포션 하나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거든.”

“......처음부터 그것 때문에 계약을 제의한 것이군요.”

“맞아.”

왕대길이 유현의 검은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는 짓은 도둑질인데 대체 왜 저렇게 당당한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포션을 줄 수 없어요. 내 권한도 아니고.”

“위치 정도는 알지 않나?”

“알려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나에 대해 어떤 소문을 들었든 상관 없어요. 나는 여전히 한성제약의 일원입니다.”

왕대길은 충성심을 택했다.

그에게는 그게 최선의 선택지였다.

이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바깥에도 마찬가지다. 사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뒤통수를 칠 수는 없었다.

“하긴. 그쪽도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진 않겠지.”

유현이 천천히 왕대길에게 다가갔다.

“근데 말했잖아. 포션 하나로 목적을 이룰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고.”

“......?”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어때요?”

“보상을 준다는 겁니까?”

“그래. 당신이 위험을 감당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드리죠.”

왕대길이 마른 침을 삼켰다.

위험을 감당할 만한 보상이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충성심을 유지하는 건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흔들리는군.’

모두 유현의 예상대로였다.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경우라면 더더욱.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동기가 될 때도 있지만, 유현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 우리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것과 포션이 있는 곳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

“그리고 당신이 얻는 건-”

유현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곧 기다란 병들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나왔다.

제각기 다른 색의 액체가 담긴 형형색색의 병들. 그것들은 모두 포션이었다.

“새로운 일자리.”

“그, 그게 혹시 전부….”

“포션입니다.”

지구에서는 만들 수 없는 종류의 포션들. 비슷한 걸 만들려면 꽤 고생하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나랑 포션 장사나 합시다. 여기서 몇십 년 헛짓한 건 아닐 거 아냐.”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을 때 들었던 강찬성의 설명들. 유현은 그것들을 활용하여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의 이득을 볼 수 있을까.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단순히 눈앞의 목적에만 매몰되지 않고 김영업이나 왕부장처럼 사이사이 끼어든 요소들을 최적의 위치에 배치하여 보다 큰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어떻습니까?”

“...그 포션들도 전부 직접 만든 겁니까?”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다른 포션은 왜 필요합니까?”

“다 이유가 있어요. 그쪽이 알 필요는 없고.”

왕대길은 깊이 고심했다.

20년을 바쳤지만, 자신을 내치려는 회사와 함께하다 예정된 결말을 맞이하냐.

가능성은 작지만, 그 가능성에 미래를 걸고 새로운 도전을 하냐.

두 가지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보니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황 전무, 이 개새끼.’

왕대길이 이를 갈았다.

황 전무의 말을 따라 여러 부서를 오가며 온갖 쓰레기 같은 일을 다 했다.

그런데 그런 헌신 끝에 돌아온 건 비수라니.

왕대길은 분노를 깊이 삭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포션이 효과가 있다는 걸 제 눈앞에서 보여주세요.”

“물론이죠.”

유현이 책상 위에 꺼내두었던 해독 포션을 들었다.

이윽고 아공간에 손을 넣어 얇고 기다란 원통을 꺼냈다.

독침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였다.

“후!”

원통에서 발사된 날카로운 침이 왕대길에게 날아갔다.

“윽!”

목을 부여잡는 왕대길.

침의 착탄점을 시작으로 피부가 빠르게 변색하기 시작했다.

“독침입니다. 루로루로라고 지구에는 없는 몬스터인데 그 친구가 사용하는 일종의 무기에요.”

“크으으으으으ㅡ!”

왕부장이 목을 부여잡으며 책상 위에 엎어졌다.

바지가 당겨지며 드러난 그의 발목도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적중당하면 빠르게 죽음으로 치닫는 맹독 중의 맹독이죠. 이런 걸로 시험하기는 뭐한데, 극단적인 만큼 효과는 확실하다고 생각해서요.”

유현이 강찬성과 힘을 합쳐 발버둥 치는 왕대길을 고정했다. 그리고 강제로 입을 벌려 해독 포션의 내용물을 흘려보냈다.

“허억, 허억….”

거친 호흡이 차츰 가라앉고, 피부 역시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변색한 것처럼, 되돌아오는 것도 금방이었다.

“이, 이게 당최 무슨….”

“효과가 있다는 건 이제 아시겠죠?”

왕대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은 사라졌고, 후유증조차 없이 쌩쌩했다.

화낼 만한 일이었지만, 분노보다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앞섰다.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든 겁니까?”

“비밀입니다.”

“이렇게 효과가 좋은 걸 혼자 만들어 내다니…. 혹시 모르니 다른 것도 좀 시험해보면 안 되겠습니까?”

왕대길은 좀 더 꼼꼼하게 점검하고 싶었다.

회사를 버리는 선택을 한 만큼, 자신이 올라탄 배가 쾌속 항해가 가능한 쇄빙선인지 아니면 금세 떨어져 나갈 구시대의 유람선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흐음. 다른 건 좀 많이 귀한 포션들인데.”

다른 포션들은 모두 제작이 어려운 강화 포션이었다.

판대륙에서도 무척 어렵게 제조했으니 지구에서는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진 않을 것이다.

“이것만 하나 먹어봐요.”

왕대길이 유현이 건넨 포션을 살짝 마셨다. 곧 무겁던 몸에 활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활력 포션이에요. 그 정도면 됐죠?”

“효과가 좋네요. 딱히 부작용도 없는 것 같고.”

“그럼 결정한 겁니다?”

왕대길이 굳게 결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봅시다.”

왕대길의 참가가 성사되고,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어 작전을 점검했다.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마망 길드가 이곳에 왔다는 걸 들키지 않는 것.

처음부터 신상을 감췄다면 좋겠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그쪽은 CCTV를 좀 지워줘요. 여기 회의실 건 내가 아까 들어오자마자 차단했으니까.”

“전기부터 내려야하는 거 아냐?”

“아니. 이미 CCTV는 찍혔어. 우선 CCTV 내용 삭제 하고 그 다음에 전력을 차단해야 해.”

의논 끝에 세 사람은 계획을 완성했다. 우선 CCTV의 데이터를 삭제하고, 관리실로 이동해 전기를 내린다.

CCTV의 녹화 영상은 곧장 클라우드에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서버실을 공략해야 한다.

“거기까진 제가 동행할게요.”

“가는 길까지 있는 CCTV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평소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니까요.”

워낙 광범위하게 CCTV가 설치된 탓에 평소에도 계속 CCTV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호출이 들어오거나 이상 현상이 발견되면 그제야 화면에 집중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포션 공장의 경비 일부는 한성제약 산하의 길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길드 본부 역시 공장 부지 내에 있고요. 일이 커지면 그들이 모일 겁니다.”

“전력은 중형 길드 수준이라면서요.”

“길드 마스터는 상당히 강합니다. 소문으로는 관심받는 게 싫어서 어중간한 등급에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강찬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거 우리 다 좆되는 거 아니야?”

“초치지 마라.”

“아무튼, 최대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우리 셋 다 평생 여기서 못 나갈 수도 있습니다.”

포션 공장을 노리는 수많은 적으로부터 공장을 지켜온 이들.

그들은 두려움의 상징이자 형상화된 공포였다.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지막히 말하는 유현.

왕대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처음 본 상대인데도 왠지 모르게 강한 신뢰감이 들었다.

“혹시 일이 끝나면 뭐 하시는 분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유현이 흠칫하며 왕대길을 돌아보았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요새 만화 보니까 그런 말이 플래그라더만.”

“예?”

“나중 이야기는 그때 가서 합시다.”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막한 회의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가장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것. 오늘 여기에는 아무도 온 적 없는 겁니다. 나도, 얘도, 당신이랑 당신 조카도.”

“알겠습니다. 흔적은 모두 남김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유현이 두 사람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강찬성이 먼저 주먹을 맞부딪혔고, 왕대길도 어색한 동작으로 주먹을 쳤다.

“그럼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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