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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67화 (6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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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김영업이 서류 봉투와 함께 돌아왔다.

그가 소파에 앉으며 원형 탁자 위에 올려진 병을 가리켰다.

“이게 뭔가요?”

“포션입니다.”

포션이라는 말에 김영업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포션인데요? 이런 병에 담긴 상품은 처음 보는데.”

“당연하죠. 제가 직접 만든 건데.”

“......예?”

포션 제작이 법적으로 제한된 건 아니지만, 그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은 몇 없다. 아무 재료나 막 넣어서 섞는다고 포션이 완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요?”

“예.”

김영업은 포션 병을 들고 살폈다.

오묘한 빛깔의 푸른색 액체.

이런 수상한 색감의 포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재료를 사용한 거지?’

포션은 기반이 되는 원재료의 색깔을 따라간다.

대표적인 예로 회복 포션이 있다.

회복 포션의 주원료는 붉은색을 가진 적초(赤草).

어떤 상태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첨가물이 달라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띄는 게 특징이다.

‘그나마 비슷한 건 정화계열의 파란색인데.’

곰곰이 포션을 바라보던 김영업은 병을 내려놓았다. 일었던 호기심은 다시 가라앉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포션은 아니겠지.’

포션의 주원료가 되는 약초는 특정 사냥형 게이트에서만 출하된다.

그 게이트는 이미 포션 제조업체가 독점한 상태고. 그러니 일반인이 재료를 얻을 수 있을 리 없다.

‘만에 하나 재료를 얻었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아.’

설령 재료가 있다고 해도 포션 제작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방법이 무척이나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눈앞의 아마추어 같은 이들이 만든 포션이라면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신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리라.

“계약 때문에 온 게 아니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김영업은 며칠 전 부장에게 들었던 조언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자기가 만든 포션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첫 계약부터 만나게 될 줄이야.

‘삼촌이 그랬지. 포션 만드는 건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괜히 성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고.’

이야기를 듣고 잘 타일러서 상대를 돌려보내는 게 제일이고, 그게 안 되면 경비를 호출해 강제로 연행하는 게 차선이다.

포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민간이 만든 포션은 공장에서 취급하는 불량품보다 못하다.

‘첫 번째 계약이라 기대했는데, 어디서 또 빌어먹을 떨거지가 들어와서는, 쯧.’

상대가 소형 길드기에 어떻게 하면 최대한 포션을 더 팔 수 있을지 고심했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하아.”

김영업은 굳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비쳤고, 행동 역시 거칠어졌다.

“우리는 포션 안 사요.”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유현의 발언에 김영업은 피식했다.

“후회? 설마.”

삼촌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한성제약에 입사하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했던가. 김영업이 회사에 가진 자부심은 대단했다.

“여기 한성제약입니다. 아무리 포션을 잘 만드셨어도, 우리의 기술보다 뛰어나지는 않아요.”

손을 뒤집듯 순식간에 달라진 태도.

유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메디컬에서는 제 요구를 승낙했습니다.”

“......메디컬이요?”

경쟁사의 이름이 나오자 김영업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지금 그 메디컬을 말한 건가요?”

“예. 맞습니다. 글로벌 제약회사 메디컬.”

“하, 말이 되는 소릴 하셔야죠.”

메디컬. 한성제약과 국내 시장을 양분하는 글로벌 기업.

김영업은 그런 곳에서 이런 껍데기뿐인 포션을 원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말이 허풍 같습니까?”

“그럼 그걸 믿으라고요? 이런 쓰레기 같은 포션을 메디컬에서 사려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쓰레기 같은 포션.

유현의 이마에 가느다란 핏줄이 돋아났다. 포션의 제작자로서 작품의 모욕은 곧 자신을 향한 모욕이었다.

‘참자, 참아.’

그는 속으로 참을 인을 그렸다.

어차피 상황 자체는 의도했다.

저 빌어먹을 주둥이에서 나온 욕설까지는 아니지만.

“그럼 한번 메디컬에 확인해보세요. 추천은 안 드립니다. 괜히 제가 이쪽에도 왔다는 사실을 알려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김영업이 눈가를 좁혔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말투.

말과 행동에서 당당함이 묻어나왔다.

‘이걸 진짜 확인해볼 수도 없고.’

메디컬은 치열한 경쟁자의 포지션이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들고 온 포션 때문에 연락을 취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만약 이 남자가 말한 게 진짜라면?’

그 메디컬에서 이 포션에 관심을 보인 게 정말이라면 외형은 이래도 무언가 있다는 뜻이었다.

‘눈 딱 감고 전화로 확인해봐?’

그래서 남자가 거짓말을 한 게 확인된다면 거기서 끝.

‘문제는 거짓말이 아닐 경우.’

메디컬이 진짜 이 포션에 관심을 가졌었다면, 남자가 이곳에도 포션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알려서 좋을 게 없다.

‘포션을 구매하기 위해 서로 싸우겠지. 포션의 가격이 계속 올라갈 거야.’

김영업이 텁텁한 입술에 침을 발랐다. 긴장감의 발로였다.

‘기회를 잡을 거라면 지금이 적기야.’

잘만하면 자신의 회사생활에 탄탄대로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잘못하면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찼다며 해고당할지도 모르고.

“끄응.”

김영업이 앓는 소리를 내자 유현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언급한 메디컬이 생각대로 작용하고 있었다.

‘열심히 고민해라.’

강찬성이 알려준 정보들에는 메디컬과 한성제약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엄밀히 말해 두 기업은 경쟁자긴 하지만, 극심한 라이벌 관계까지는 아니었다.

한성제약은 아직까지 내수에 집중하는 반면, 메디컬은 전세계적으로 포션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한성제약은 메디컬의 이름이 나오면 쉽게 대처할 수 없지.’

한성제약이 유일하게 메디컬을 앞설 수 있는 국내 내수 시장.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장 점유율을 어떻게 해서든 앞서가려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메디컬이 관심을 가진 이름 모를 포션이 자신들에게 왔다?

진위를 떠나 그들은 포션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응을 보니 성공이군.’

유현의 계획대로 상황은 차근차근 진척되고 있었다.

“포션의 용도가 뭐죠?”

골머리를 쥐어 싸매던 김영업이 물었다.

“해독제입니다.”

포션은 가짜가 아니다.

실제로 판대륙에서 유현 본인이 직접 제조한 포션으로, 마족과 그 떨거지들이 사용하던 모든 독을 해독하는 효과가 있다.

‘유용하게 잘 써먹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온갖 독에 면역이 생기며 끄떡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전에는 이런 해독제에 의존하고 살았다.

확신은 없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독에도 통할 가능성이 높다.

“해독 포션이라….”

한성제약에게는 부실한 라인업의 상품이다. 놓쳐선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하, 시발. 이걸 진짜 믿어야 하나?’

김영업은 포션을 살피더니 결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서 일단 위쪽에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아마 한 시간 정도는….”

“5분 안에 여기로 안 오면 메디컬로 가겠습니다.”

김영업이 입을 떡 벌렸다.

“5, 5분이라뇨.”

“그 정도도 못 합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김영업이 유현의 눈을 피했다.

‘무슨 사람 눈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

김영업이 유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조,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헤헤.”

“지금 웃음이 나와요?”

“......”

“3분 드립니다. 정확히 179초 뒤에 안 오면 메디컬로 갑니다. 지금 또 178초가 됐고, 아, 말하는 사이에 175초가 되었습니다.”

김영업이 사색이 되어 뛰어나갔다.

쾅. 회의실의 문이 닫히고, 유현이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꽁무늬 빠지게 뛰네!”

강찬성은 말없이 유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거... 진짜... 포션 맞지?”

“맞아. 내가 직접 만들었어.”

“......포션을 직접 만들었다고?”

강찬성이 눈을 크게 떴다.

직접 포션을 만들다니.

그런 사람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만들었어?”

“잘. 효과는 확실하니까 이 형님만 믿어라.”

강한 확신을 담아 말하는 유현.

강찬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믿는다.”

“그래.”

강찬성은 잠시 심호흡을하더니 이내 말을 쏟아냈다.

“이, 씨바! 너 간덩이가 지구 밖으로 뛰쳐 나갔냐? 저 새끼 갑자기 정색했을 때 진짜 개쫄았잖아. 너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냐? 나 같으면 당황빨다가 나가리 됐을 것 같은데.”

“욕이야 칭찬이야?”

강찬성이 유현의 어깨를 신나게 두드렸다.

“당연히 칭찬이지 새끼야! 저 새끼 표정 봤어? 얼굴로 욕하던 놈이 메디컬 이야기 나오자마자 공포 영화 등장인물 마냥 바짝 쫄아가지고는. 크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강찬성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이러면 우리 목적은 다 이룬 건가?”

“야, 설레발 치지 마.”

아직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계획은 이제 시작이었다.

***

“해독제라고?”

한성제약 영업부의 부장 왕대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새하얗게 펼쳐진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네, 삼촌. 분명 해독제랬어요.”

“효과는 확인했어?”

“그건 아직….”

“그래, 시간이 없었겠지. 일단 가자.”

3분의 제한시간. 모르는 이라면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수많은 헌터를 접한 왕대길의 생각은 달랐다.

“괜히 심기 건드리진 않았지?”

“......예, 일단은 그랬습니다.”

“일단은? 무슨 짓 했어?”

“아니, 걔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요구를 하니까 표정 관리를...”

“하아. 영업아. 내가 매번 말하잖아. 헌터 중에 정상인도 많지만, 미친놈도 많다고. 걔가 갑자기 눈깔 뒤집히면 어떡할래?”

“...죄송해요, 삼촌.”

두 사람은 빠르게 복도를 지나 회의실 앞에 섰다.

똑똑.

왕부장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왜인지 회의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뭐야. 아무도 없는데?”

뒤따라 들어온 김영업의 얼굴이 굳었다.

“나, 나갔나 본데요?”

“나가?”

“예, 예. 아무래도 제 표정이 마음에 안드셔서...”

빠각!

그때, 김영업이 철퍽 쓰러졌다.

뒤를 돌아본 왕대길은 두 사내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유현이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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