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66화 (66/219)

66

강찬성과 약속한 수요일이 되었다.

가게로 가니 강찬성이 이미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왔냐?”

“세 시간 전에.”

“많이도 기다렸네.”

“그 정도는 해야지.”

쭈그리고 앉아 있던 강찬성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남루한 행색을 보던 유현이 의아함을 표했다.

“포션은?”

“......포션이라는 게 말이야. 구하기 쉬운 게 아니라가지고.”

유현은 고민 없이 몸을 돌렸다.

강찬성이 다급히 그의 앞을 막았다.

“지, 지금부터 구하러 가자! 같이!”

“같이? 이놈 봐라?”

“사실 일부러 안 구해 온 거야. 이것도 길드 마스터의 업무 중 하나거든. 네가 오늘 도와줄 일이기도 하고.”

“일을 돕는 건 포션 받고 난 다음인데?”

“......하,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냐?”

유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번만 인정을 베풀기로 했다.

“어디서 구하는데?”

“이, 일단 따라와.”

두 사람이 함께 거리로 나섰다.

“말해 봐. 어디서 구하는데.”

“포션을 누가 만드는지는 알아?”

“제약회사 아니야?”

강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제약회사를 기반으로 한 길드에서 독점적으로 제작하고 공급해. 하나는 메디컬이라는 해외 기업.

나머지 하나는 한성제약이라는 국내 기업이야.”

“두 개밖에 없어?”

“그외 작은 곳들도 있긴 한데 시장의 90퍼센트를 이 둘이서 먹고 있어.”

유현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그게 지금 내가 직접 포션 구하러 가는 거랑 상관이 있나?”

“......”

“쓸데없는 설명하지 말고 왜 못 사 온 건지 말이나 해봐라.”

유현이 미심쩍은 눈으로 강찬성을 흘겼다. 강찬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주 깊은 사정이 있어.”

포션을 구매할 수 있는 건 정식 등록된 길드와 공격대에 한정한다.

하지만 그 두 분류에 속한다고 해도 쉽게 포션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포션은 종류가 다양해. 그리고 종류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지.”

단순 회복 포션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신체를 강화하거나 능력을 강화하는 포션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넌 모든 포션을 요구했잖아. 회복 포션 정도라면 내가 구해줄 수 있는데 모든 포션을 구하려면 길드 자금으로는 힘들어. 수량도 원체 적고.”

특수 포션의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현저히 적다.

그 적은 물량도 모두 대형 길드로 흘러 들어가니, 1인 길드 따위가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처음부터 못 구하는 거였네?”

“아, 아니! 못 구한다는 소리는 아니야. 방법이 있어.”

강찬성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현을 응시했다.

“대신 성공 확률이 극히 낮아.”

“상관없어.”

“좋아. 그럼 설명해줄게.”

두 사람은 사람 없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계획은 두 가지야. 길드에 방문해서 대형 길드처럼 당당하게 계약하기.”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라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두 번째 계획도 있긴 하지만, 이게 더 성공 가능성이 작아서.”

두 번째 계획은 이랬다.

포션 제조 공장에 직접 침투하여 포션을 갈취하는 것이다.

“그게 돼?”

“차선책이야. 첫 번째 계획이 된다면 첫 번째로 쭉 가는 거고.”

유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첫 번째 계획.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을 우리가 계약한다? 이건 어불성설이고. 그리고 두 번째 계획. 성공할 가능성은 없지만, 만약 성공했다고 치자. 그다음엔 어쩔 건데? 보나마나 전국에 수배될 텐데.”

“......”

순식간에 반박당한 강찬성은 데굴데굴 눈알을 굴렸다.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에라이, 무식한 놈아. 애초에 우리 상대는 해주겠냐?”

“아, 그건 문제없어. 오늘 그쪽 영업팀 직원이랑 포션 공장에서 미팅 잡아놨거든.”

유현이 헛웃었다.

“이건 능력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 하핫.”

“일단 네가 아는 것 전부 말해봐. 내가 짱구 좀 굴려 볼 테니까.”

유현은 강찬성을 통해 정보를 전해 들었다.

우선 포션 공장.

포션의 재료는 던전에서 출하되기에 포션 공장도 던전을 기준으로 지어졌다.

“이유는 중앙 유통 과정 단축, 도난 방지, 신선도 유지 등이 있어.”

“계속 말해.”

그 뒤로 강찬성은 한참을 이야기했다. 공장은 어떻게 생겼고, 자기랑 만나기로 한 영업사원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고, 회사 내 입지는 어떤지.

“...되게 쓸데없는 정보네.”

“더 있어.”

강찬성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말단 사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회사 대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넌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냐?”

“영업 비밀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은 드디어 도움이 될만한 보안과 관련된 정보였다.

포션 공장은 사각지대가 없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보안이 삼엄하다.

CCTV는 물론 드론 같은 최신 장비들도 활용하며 곳곳에 인력을 배치해둔다고 한다.

“이야, 거길 잘도 털고 나왔겠다?”

“......너라면 가능할 줄 알았지.”

“털고 나오는 건 되지. 문제는 얼굴이 팔리잖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릴 수는 있지만, 그것도 만능은 아니다.

조금의 위험이라도 있다면 유현은 시도할 생각이 없었다. 잘못됐다간 지금의 생활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또 이건 공장 지돈데….”

“줘봐.”

“그리 상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아.”

유현은 유심히 지도를 살폈다.

어디 내부 정보원이 유출한 건지 제법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위치 같은 건 안 적혀 있네?”

“공장 건설 당시의 단면도라서 그래.”

유현은 지도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는 생각에 잠겼다.

강찬성이 알려준, 어디서 알아내기 어려운 제법 고급스러운 정보들.

머릿속에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졌다.

“일단 정공법으로 가보자.”

“정공법? 계약으로 하자는 거야?”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그게 나아. 괜히 헛짓하다가 일 키우는 것보단.”

“......내가 생각하긴 했지만, 그런 계약을 우리가 맺을 수 있을까?”

유현이 강찬성의 머리를 붙잡았다.

“네가 잘했으면 됐을 거 아냐. 아니면 처음부터 포션 못 가져오겠다고 말을 하던가. 그럼 나도 너한테 부탁 안 했지, 인마.”

“아, 아니. 나도 최대한 모으려고 노력은 했지. 근데 쉽지가 않네.”

“그래. 노력했단 건 인정하마.”

공장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한 걸 보면 빈말은 아니었다.

유현이 계속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그 정보 때문이었다.

‘이걸 그대로 날리기에는 아까운데.’

이 정보들 덕분에 어쩌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지도 모르는 방법이 생각났다. 그래서 더 고민이었다. 이걸 일단 질러봐야 할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할지.

‘......그거다.’

유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참 뒤 새로운 결론을 냈다.

‘협상을 하는 거야.’

협상. 거리가 먼 단어는 아니었다.

판대륙에 있었을 적에도 많이 해봤었으니까.

판대륙에는 국가가 많았고, 저마다의 이해가 달랐다.

유현은 매번 다른 이유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어떤 국가의 수장과는 인력을 문제로, 어떤 국가의 수장과는 도로를 문제로 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지독한 수 싸움이었다.

‘잘만 협상하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겠어.’

협상만으로 결과까지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압축됐다.

만약 성공한다면, 고작 포션 몇 병 얻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해볼 만 하겠어.”

“해볼 만 해? 정말로?”

“네 계획대로는 아니야. 지금부터는 내가 주도한다.”

주먹을 사용할 수 없는 평화로운 전쟁, 협상,

유현은 그런 싸움에도 자신 있었다.

협상에 명확한 승패는 없지만, 그는 숱한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나 최소한의 손실과 최대의 이익으로 협상을 이끌었으니까.

“방법이 뭔데?”

“입 다물고 따라오기나 해.”

“아니, 나 진짜 불안하다고. 그냥 내가 다시 찾아볼까?”

그때, 저쪽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가 달려왔다.

유현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쫑알쫑알 말 많네.”

“잘못되면 진짜 큰일이니까 그러지!”

“그걸 안 다는 놈이 이렇게 대책 없이 계획을 세우냐?”

유현이 먼저 버스에 올랐다.

강찬성은 멍하니 유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이길래 저렇게 자신만만해?’

목소리, 눈동자, 행동. 어디에서도 흔들림은 보이지 않았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뢰의 아우라. 마치 자기가 생각한 게 곧 정답이라도 된다는 듯한 자신감이었다.

“아오, 씨. 모르겠다!”

강찬성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버스에 뛰어올랐다.

***

두 사람은 버스를 갈아타며 한참을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포션 공장이었다.

“엄청 크네.”

공장의 정문. 유현은 넓은 공장 부지를 보며 감탄했다.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 이상이었다.

“지난번에 연락드렸던 마망 길드의 강찬성이라고 합니다.”

유현이 부지를 구경하는 사이, 강찬성은 방문객용 출입문 앞에 섰다.

내부 벨을 누르고 자신을 소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전방으로 길게 이어진 통로.

사방은 꽉 막혔고, 벽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정신병원 같네.”

새하얗게 칠해진 복도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중간중간 설치된 카메라가 없었다면,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으리라.

“저긴가 보다.”

얼마나 걸었을까.

철문 하나가 보였다.

앞장선 강찬성이 철문 옆에 놓인 벨을 눌렀다.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말하는데, 너는 그냥 조용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강찬성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나한테 말 걸면 어쩌지?”

“적당히 눈치껏 대답해. 길드 마스터니까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거 아냐.”

그때, 철문이 열렸다.

두 사람을 맞이한 건 정장 차림의 말쑥한 남자였다.

“강찬성 길드장님? 통화했던 영업부 사원 김영업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자신을 김영업이라 소개한 남자가 강찬성과 악수했다.

김영업의 시선이 곧 유현에게 향했다.

“이쪽 분은 누구시죠?”

“이번에 새로...”

“유현입니다. 새로 등록된 길드원인데 아직 길드 데이터베이스에는 업데이트 되지 않았을 겁니다.”

유현이 강찬성의 말을 끊었다.

김영업은 강찬성의 눈치를 살피다 유현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유현은 상대의 분위기를 살폈다.

어딘가 어리숙한 외모. 정장은 새것처럼 정갈했고, 구두는 반짝거렸다.

무엇보다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다.

행동도 여러모로 경직된 구석이 있다.

강찬성이 말한대로 김영업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었다.

“이거 제 명함입니다.”

김영업이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명함이 없어서 드릴 게 없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세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고요한 회의실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김영업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강찬성이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와, 씨. 여기 무슨 카메라가 이렇게 많아?”

“그러게. 나도 이 정도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회의실로 오는 길은 처음 지나왔던 복도와 마찬가지로 온통 하얀 공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카메라는 사방팔방 달려 있으니, 강찬성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방은 정상이라 다행이네.”

기업의 회의실처럼 평범하게 꾸며진 회의실 내부. 그 많던 카메라조차도 이곳에는 구석에 한 대뿐이었다.

‘거슬리는데.’

유현은 마나를 대량으로 방출해 카메라에 혼선을 가했다.

카메라 너머의 화면은 지금 자신들이 앉아 있는 상태로 고정되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너 진짜 자신 있냐?”

“그럼.”

유현은 옷 안에 껴입은 아공간 조끼에 손을 넣었다.

곧 그의 손에 짙은 파란색 액체가 담긴 기다란 병이 들려 나왔다.

“뭐야 그게?”

“게임체인저.”

상대는 계약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곧장 테이블을 엎을 것이다.

신입이니 조금의 텀은 있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테이블의 목적을 바꾼다.’

그리고 상대가 그걸 인지하기 전에 매력적인 조건을 내놓는다.

이 액체가 바로 매력적인 조건이다.

포션 제조 기업이라면 단연 눈에 불을 켤만한 그런 액체.

“혹시 다른 업체 갔다 왔냐고 물어보면 갔다 왔다고 해라.”

“메디컬말이야?”

“그래, 거기.”

유현은 세 가지 플랜 중 첫 번째 플랜을 실행했다.

수익은 극대화하고, 손실은 최소화하는 플랜 A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