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화창한 주말 오후.
가족들의 외출로 혼자 가게에 나온 유현은 영업 준비를 마친 뒤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흐음.”
유현은 며칠 전 등급 테스트를 떠올렸다. 낮은 등급부터 높은 등급까지 쭉 이어진 싸움. 그 과정에서 유현은 마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주먹은 한계가 명확해.’
시험의 탑 몬스터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하는데, 몇몇 몬스터들은 주먹 한 번에 죽지 않았다.
몇 대 더 때리면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험의 탑 이야기. 게이트에서 언젠가는 주먹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과 만날지 모른다.
“마법이 필요해.”
지금 가진 마나로도 마법은 얼마든 사용할 수 있지만, 높은 등급의 적들에게 유효한 타격을 날릴 수준은 아니다.
“재구조화가 조금 빨라지면 좋겠는데.”
유현은 마나 코어를 살폈다.
처음보다는 많아졌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양.
매번 마나의 밀도가 높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하나.’
코어의 재구조화를 가속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문제는 하나 같이 지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점이었다.
‘포션으로 가속에 도움을 주거나,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은 곧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법사는 없어도 포션은 지구에도 존재한다. 그 포션을 응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존 포션을 활용해 새로운 포션을 만드는 거야.’
유현은 곧장 인터넷을 켜 검색했다.
알고 싶었던 건 포션의 설계와 구조였지만, 알아낼 수 있었던 건 포션의 효능과 공급처뿐이었다.
그리고 유현은 포션의 공급 단계부터 가로막혔다.
“이것도 헌터 자격증이 있어야 해?”
포션은 자격증이 있는 헌터에게만 판매된다. 유현은 구매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왜일까, 억울한 이 기분은.
‘일반인이 마시면 위험하구나.’
시중에 판매되는 포션을 일반인에게 사용할 경우 심한 경우 죽음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면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두 명.
한서희와 한주석.
하지만 둘 다 내키지 않았다.
‘도와주는 목적이 좀 그렇단 말이지.’
한 명은 길드 계약, 다른 한 명은 괴상한 동정심.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영 꺼림칙했다.
“그냥 훔쳐?”
범죄도 고려하던 그때.
출입문에 붙여 놓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
딸랑.
유현의 시선이 시계로 돌아갔다.
아직 영업시간까지는 10분이 남아 있었다.
“아직 문 안 열었어요.”
“나야, 오빠.”
유희연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세련되게 차려입고 나간 것 치고는 꽤나 이른 복귀였다.
“친구 만나러 간다더니 벌써 왔어?”
“오늘 출근한다던 친구 남친이 일찍 끝났다고 친구가 먼저 갔어.”
“남친? 출근? 성인이 미성년자를 만나?”
유희연이 한숨을 쉬며 카운터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걸 따져?”
“이 오빠는 몇백 년이 지나도 따질 거란다. 너 나중에 남자친구 사귀기 전에 오빠한테 와서 허락 맡아.”
“뭐래.”
유희연은 유현의 잔소리를 한귀로 흘려넘겼다.
“참, 밖에 누구 서성거리던데 아는 사람이야?”
“밖에?”
유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문 너머를 확인했다. 강찬성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아, 안녕?”
유현은 그대로 문을 닫았다.
강찬성이 뛰어들려고 했지만, 문 닫는 속도가 더 빨랐다.
“뭐야? 누군데 그래?”
“괴한.”
“괴, 괴한? 경찰 부를까?”
유현은 고개를 저으며 출입문을 잠갔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강찬성의 인영이 비췄다.
“와, 소름돋네. 나 쫓아온 건가? 오늘 좀 예쁘긴 한데.”
“욕 나오게 하지 마라.”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 물어봐라. 다 그렇다고 하지. 근데 곧 영업 시작해야 하는데 어쩌지?”
“오빠가 알아서 할게. 넌 치킨이나 튀겨.”
“때리면 안 돼. 알겠지?”
유희연은 유현에게 경고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에휴.”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블랙리스트 등록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헛짓거리였다.
“직접 찾아오면 되는구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가게 위치야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오니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 완전한 패착이었다.
“갈 생각이 없나 본데.”
문밖으로 보이는 강찬성의 인영은 바닥에 못 박힌 것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그냥 치워버려야겠다.”
유현은 문 위아래로 걸었던 잠금을 풀고 문을 열었다. 대충 들어서 어딘가에 버리고 올 생각이었다.
“미안하다!!! 저번에 욕한 것도!!!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다 미안하다!!!”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강찬성이 앞으로 철퍽 엎어졌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강찬성도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릎부터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영업 방해로 경찰 부르기 전에 가라.”
차갑게 식은 목소리에 강찬성은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이렇게 부탁한다. 어떻게 한 번만 안 되겠냐? 어차피 계약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 한서희랑 계약상으로도 문제없잖아.”
“뭣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데?”
“길드가 위태로운데 이렇게라도 해야지. 이게 너한테 정말 미안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만큼 간절하다.”
강찬성의 눈빛에서 유현은 진심을 느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유지도 못 할 길드는 왜 만들었냐?”
“그건 다 사정이….”
“사정이고 나발이고, 유지 못 할 거면 알아서 길드 폐쇄하든가 해야지. 이렇게 남의 사업장 와서 피해를 주는 게 맞아?”
“......미안하다.”
“미안하면 빨리 가라. 다음에 또 오면 때릴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몸을 돌렸을 때, 가게 안에서 유희연이 빼곰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셔?”
“손님 아니야. 들어가 있어.”
유희연이 유현을 지나쳐 쪼르르 달려 나왔다.
“왜 그러고 계세요? 오빠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하셨어요?”
“동생분?”
“네. 그런데요?”
“저는 길드 아망의 길드마스터 강찬성이라고 합니다. 저분과 일을 좀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유희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기, 길드 마스터요?”
“예, 그렇습니다.”
“와, 저 길드 마스터 실제로 처음봐요!”
유희연이 강찬성의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었다. 강찬성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번졌다.
“하하! 이렇게 좋아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저도 나중에 길드 마스터 되는 게 꿈이거든요. 아저씨 혹시 뭣 좀 물어봐도 돼요?”
“......예, 물어보시죠.”
아저씨라는 말에 강찬성의 기분이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유현은 피식 웃으며 동생의 어깨를 당겼다.
“야, 주문 들어올 시간이다. 들어가자.”
“아, 왜! 좀만 물어보자!”
“어차피 학교에서 다 알려주잖아.”
“아니거든? 그리고 오빠는 현직자랑 이야기할 기회가 많은 줄 알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얘기하냐고!”
“얘 1인 길드야. 길드원 자기 혼자 밖에 없어.”
“그래도 길드 마스터잖아!”
동생의 완고함에 유현은 두 손을 들고 가게로 들어왔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센지 원.’
하연이는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집안에 두 사람이 저러면 상당히 피곤할 것 같았다.
-배달의만족! 주문!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현은 동생의 자유로운 직업 활동을 위해 혼자 주문을 처리했다.
일을 시작 한지 고작 하루였지만, 그의 움직임은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주문받고, 튀기고, 비비고.
깔끔한 프로세스 속에서 순식간의 음식들이 완성되었다.
“언제까지 떠드는 거야?”
유현이 문을 열었다.
“야, 이제 그만 떠들고….”
“오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유희연은 유현이 나오자마자 소리쳤다.
“이 아저씨 얘기 들어보니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더만 좀 도와줘라!”
“얘가 무슨 고생을 했든 나랑 뭔 상관이야…….”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들어와서 치킨이나 튀겨.”
그때, 강찬성이 유희연을 쿡 찔렀다.
신호를 받은 유희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빠가 도와주면 나 길드에서 인턴하게 해주겠대.”
“......널 위해서 날 희생할 만큼 내 아량이 넓지 않단다.”
“좀만 도와주면 안 돼? 응? 귀엽고 예쁜 동생이 미래를 위해서 경험을 얻을 기회잖아.”
유현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돌았냐?”
“그, 그렇게 정색할 건 없잖아.”
적대적인 반응과는 별개로 유현은 진지하게 강찬성의 제안을 고민했다.
사실 자신에게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가 포션을 구할 수단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서희나 한주석에게 부탁하는 것처럼 꺼림칙하지도 않았다.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닌데.’
문제는 어떤 도움을 요청할지 모른다는 것. 그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도와줄게. 대신 조건이 세 가지 있어.”
강찬성이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첫째,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가게 영업 쉬는 날만. 둘째, 네가 말한 대로 계약은 안 한다. 그리고 게이트도 안 들어가. 마지막으로 포션 좀 구해줘라. 시중에 나온 거 전부 다. 아, 그리고 얘 인턴은 취소해.”
“뭐? 왜!”
“인턴은 내가 나중에 좋은 자리 알아 봐줄게. 얘 지금 자기 한 몸 간수도 못 하는데 되겠냐?”
“아아~! 그래도 하고 싶단 말이야!”
유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되는 건 안 돼.”
“아, 진짜! 나 오늘 치킨 안 튀겨!”
“용돈.”
“......”
“100만원.”
유희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오빠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죄송해요~”
“예? 아, 하하. 괘, 괜찮습니다.”
“오빠~ 그럼 이야기 잘하고 들어와. 나는 치킨 튀기고 있을게~”
유희연이 살랑거리며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유현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강찬성을 돌아보았다.
“어때?”
“동생 꼬드기는 게 하루 이틀 솜씨가 아니네.”
“아니, 그거 말고. 조건 말이야. 어떠냐고.”
깊이 고민하는지 강찬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게이트는 진짜 안 들어가?”
“응. 어차피 불법이잖아.”
“그게 문제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데...”
“그래도 안 들어가.”
강찬성이 침음성을 냈다.
그에게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현이 내건 조건은 그만큼 헌터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제외한 조건이었다.
“싫음 하지 말고.”
“콜!”
강찬성의 수락은 예상외였다.
사실 안 된다고 하면 조건을 조금 수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단번에 콜을 외치다니.
“진짜?”
“그, 그래!”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강찬성은 스스로 왜 수락 한 건지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다.
“......”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강찬성의 멍한 눈빛 속에서 유현은 그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너 그냥 막 질렀구나?”
“......”
“바꾸기 없기.”
“다, 당연하지! 포션? 내가 구해서 올게!”
강찬성은 자신있게 소리쳤다.
유현은 그에게 큰 믿음은 없었지만, 사실 그렇게 믿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 안 되면 다른 사람 찾아보지 뭐.’
이대로 강찬성이 도망가도 손해보는 건 없다.
“그럼 쉬는 날에 포션 싹 챙겨서 다시 와. 수요일이 정기 휴일이다.”
“알겠어!”
유현이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강찬성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유현의 말처럼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질러버렸다.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아냐. 오히려 이건 기회야.’
포션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걸 구해주고 아카데미 유망주와 인연을 얻으면 엄청난 이득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마음먹는 강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