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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64화 (6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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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대지가 울리며, 굉음이 들렸다.

이윽고 불어온 강풍에 강찬성이 버티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윽!”

넘어진 강찬성이 바둥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전방에서 날선 기세가 느껴졌다.

“누, 누구...”

“크어어어!”

몬스터의 포효에 목소리가 묻혔다.

강찬성이 뚱뚱해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간신히 발을 딛고 섰다.

“뒤뚱거리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라.”

강찬성은 앞에 있던 게 누구인지 깨달았다.

“아이 씨, 난 누군가 했네. 너 집에 안 갔냐?”

“돈을 줘야 가지.”

“내가 나중에 가져다준댔잖아! 등신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여기서 뒤졌을 놈이 퍽이나 그러겠다?”

유현의 말에 강찬성은 말문이 막혔다. 그 말대로 여기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극히 낮았으니까.

“크어어!”

몬스터들이 위협적으로 울부짖었다.

강찬성이 가까스로 일어나 유현에게 다가갔다.

“너 헌터냐?”

“아니.”

“그럼 오지랖 부리지 말고 그냥 튀어. 내가 최대한 시간 끌어볼 테니까.”

유현이 고개를 돌려 강찬성을 확인했다. 물범처럼 몸을 비롯해 얼굴 곳곳에 점이 생긴 외형. 싸울 수 있는 몸뚱이가 아니었다.

“그 몸으로?”

“......”

“꼴값 떨지 말고 있어라.”

유현이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강찬성이 급히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짧은 손은 허공을 갈랐다.

“진짜 또라이 새낀가?”

죽고 싶어서 안달 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도 아닌 주제에 전장 한복판에 뛰어들다니.

‘...뛰어들어?’

강찬성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유현은 강한 충격과 함께 등장했다.

그건 곧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강찬성이 전방을 살피기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철퍽.

발치에 무언가 밟혔다.

몸이 바뀌며 바지와 신발이 찢어져 강찬성은 맨발의 감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질퍽하고, 축축한 무언가.

그사이에 섞인 비린내가 뒤늦게 풍겨왔다.

‘이거 설마.’

그가 힘겹게 다리를 굽혀 바닥을 더듬었다. 손에 닿은 건 생선의 몸에서 나올법한 장기였다.

“......”

강찬성은 고개를 들었다.

미약하지만, 전방에서 무언가 터지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이나 울음소리 따위는 없었다.

고요한 학살. 주변을 가득 메웠던 몬스터들의 안광이 빠르게 사라졌다.

“마법을 좀 쓸까.”

강찬성은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거운 몸을 빠르게 움직여 뒤쪽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으로 때우는 것도 귀찮네.”

이번에는 다시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던 강찬성이 시체에 걸려 넘어졌다.

“으악!”

넘어진 강찬성의 시야로 불쑥 유현의 얼굴이 들어왔다.

“괜찮냐?”

“으아아악!”

기겁하기를 잠시. 상대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강찬성이 아등바등 몸을 일으켰다.

유현이 손을 뻗어 그런 강찬성을 도와주었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아니,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강찬성.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배달부가 자신보다 강한 헌터일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

그것도 고작 한두 단계 차이가 아닌, 압도적인 강자일 확률은.

“저기요.”

강찬성의 어투는 아까보다 부드럽게 바뀌었다.

몬스터의 시체를 구경하던 유현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좀 괜찮냐?”

“당신 헌터죠?”

“웬 존댓말?”

“아까는 내가 당신이 누군지 몰랐으니까…. 아니, 근데 지금도 누군지 모르잖아. 아오, 씨.”

강찬성이 머리를 벅벅 긁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몇 살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뭐?”

강찬성이 반문했다. 미성년자가 헌터일 수가 없는데.

“자,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요.”

“진짠데.”

유현이 학생증을 꺼내서 보여주자 강찬성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럼 헌터가 아니라고?”

“아니지.”

“아니, 시발! 그럼 저것들은 다 어떻게 잡은 건데?”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있게.”

강찬성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헌터인 줄 알았던 놈이 헌터가 아니다. 게다가 아직 미성년자라니.

“아니, 아무리 아카데미 학생이라지만….”

강찬성의 머릿속에 불현듯 학생증에 적혀 있던 두 자의 이름이 스쳤다.

유현.

조금 전에는 그냥 읽고 넘겼지만,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다.

‘어디였지?’

강찬성은 기억을 뒤적였고, 몇 시간 전 읽었던 인터넷 기사를 생각해냈다.

“너, 너 혹시 S등급 유현이냐?”

“하하, 이것 참. 이제 지구에서도 유명인인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유현을 보며 강찬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짜 등급 테스트를 1등으로 통과한 유현이라고?”

“그래~”

“황금 세대라고 평가받는 다른 놈들을 싸그리 제치고 혜성처럼 등장한 그놈이라고?”

“허허허! 그렇게 띄워줘도 치킨값은 안 깎아준다~”

강찬성의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등급 테스트가 발표된 이후로 줄곧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명인이 코앞에 있다니.

그것도 그런 사람이 치킨 배달을 하다가 자신을 구해줬다니.

“고맙다.”

고마운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만약 유현을 길드에 데려올 수 있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따 말이나 해볼까.’

이미 계약한 곳이 당연히 있겠지만, 한 번쯤은 시도해볼 만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나중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질테니까.

“집어 치우고 치킨 값이나 내놔.”

강찬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열심히 출구를 향해 걷지만, 제대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가야 해?”

“한 시간은 기다려야 풀 수 있어.”

“쓰레기 같은 능력이네.”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강찬성은 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대로 이 능력은 쓰레기였다.

“내 얘기 좀 들어봐.”

강찬성은 억울함을 토로하듯 유현에게 능력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척삭동물문의 강인 포유강에는 수많은 하위분류가 존재해. 내 능력은 그중 한 개체의 특징을 신체에 가져올 수 있어.”

“고를 수 있어?”

“아니, 랜덤이야.”

영장목 같은 가장 일상적인 동물들부터 박쥐목, 식육목, 유대류, 그리고 단공목 등.

수많은 포유류 중 과연 전투에 도움이 될 몬스터로 변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있지만, 그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높이는데?”

“먹어야 해.”

원하는 동물을 섭취하면 해당 동물로 변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수많은 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였다.

만약 오늘 치킨을 먹었다면, 닭의 능력이 발현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쓰레기인 건 마찬가지지만.”

전투에 도움이 되는 능력은 대개 식육목에 속한다.

호랑이, 곰, 표범, 사자 등. 자연계 서열 상위에 존재하는 개체들이 속하는 분류였다.

문제는 식육목에 속하는 녀석들을 섭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개랑 고양이는 먹기 싫고. 그렇다고 다른 놈들을 먹자니 먹을 방법이 없고.”

지금 변한 물범 역시 식육목에 속하지만, 이놈은 식육목에서도 서열 최하위를 달리는 놈이다. 하다못해 물속이라면 몰라도 육지에서는 제대로 걷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와, 진짜 개쓰레기네.”

“그치?”

강찬성의 걸음이 워낙 느린 탓에 두 사람은 아직도 공사장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야, 또….”

그때, 사이렌이 들려왔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고음.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제야 오는 것 같았다.

“......야, 너 혹시 나 안고 뛸 수 있냐?”

“왜?”

강찬성은 대답 대신 무너진 골조를 가리켰다.

“저렇게 부쉈으면 정당방위라도 물어줘야 해.”

“저건 내가 안 했는데?”

“나 저거 물어내면 치킨값 못 줘.”

“돈 많잖아. 집 좋던데.”

“월세야.”

“......”

유현이 강찬성의 뒷덜미를 붙잡고 도약했다.

***

“자.”

유현은 강찬성에게 돈을 받고 치킨을 건네주었다.

과격한 비행 덕에 치킨은 서로 뒤섞이고 식었지만, 강찬성은 불만 없이 치킨을 받았다.

“저기, 잠깐만.”

강찬성이 떠나려던 유현을 붙잡았다.

“뭔데?”

“콜라는 없어?”

“콜라는 리뷰 이벤트로만 나가. 넌 만나서 결제라 리뷰 못 쓰잖아.”

다시 가려던 유현을 강찬성이 한 번 더 붙잡았다.

“뭔데 또.”

“너 혹시 계약한 길드 있어?”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한서희와 계약을 맺긴 했지만, 그게 길드 계약은 아니었다.

“없다고?”

강찬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냐?”

“너 우리 길드 올래?”

“아니.”

강찬성은 황급히 유현의 팔을 붙들었다.

“며, 몇 달만 와주면 안 돼요?”

“존댓말이 탈부착이네.”

“계, 계속 존댓말 써줄게.”

“그래도 안 돼, 인마. 거기 뭐더라.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한서희라고 걔가 있는 길드 있지? 길드 가입하려면 거기로 간다는 계약을 맺었어.”

강찬성이 경악했다.

한서희. 아카데미의 A등급 아니, S등급이자 송진 그룹 회장의 외손녀.

또한 길드 소나무의 차기 부마스터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유명세를 가진 인물로 적어도 국내에서 그녀의 이름과 배경을 모르는 헌터는 없다.

‘이미 진 싸움이잖아.’

애초에 싸움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없는 몸집 차이였다.

“잠깐만. 그럼 그 길드에 가입한 건 아니라는 거야?”

“그치. 딱히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없거든.”

“허, 미친놈이네. 거기 소나무잖아. 심지어 한서희가 직접 요청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길드 가입할 생각은 없어.”

강찬성이 유현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 다가왔다.

“그럼 우리 길드 도우미는 어때?”

“안 한다니까.”

“가입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좀 도와 달라는 거지. 계약만 안 맺으면 상관없잖아? 그리고 어차피 아카데미 3학년 되면 길드 실습도 하거든? 그냥 우리 길드 와서 미리 한 번 해봐. 돈은 내가 잘 챙겨줄게. 어? 한 달 정도만. 어차피 학교 방학이잖아.”

강찬성은 열심히 유현을 구슬렸지만, 유현은 심드렁했다.

“안 해.”

“한 번만 해봐! 이거 진짜 도움 될 거야!”

강찬성이 유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유현은 이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그러냐 대체?”

“우리 길드 지금 망하기 직전이거든. 좀 살려줘. 어?”

“너 같은 놈 혼자서 길드를 운영하니까 그러지. 빡대가리야?”

유현이 다리를 강하게 흔들어 강찬성을 떨쳐냈다. 간절한 외침이 들려왔으나 들은 체도 않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유현은 집 대신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포스기의 기능을 사용해 강찬성을 블랙리스트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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