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63화 (63/219)

63

“뭐야, 이게?”

몬스터의 도심 출현.

학교 수업 때 배우긴 했다.

가끔씩 생기는 일이라고.

‘진짜 이런 일이 생기긴 하는구나.’

처음 겪는 일이지만, 대단하리만치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유현은 다시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헌터가 알아서 잡겠지.’

이건 헌터들이 할 일.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으며, 지금은 이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이 새끼 빨리 와야 집 가는데.”

위이잉.

그때, 자동문이 열렸다. 벌써 왔나 싶어 고개를 돌린 유현은 다급하게 뛰쳐나온 강찬성을 마주했다.

“야! 너 빨리 집 들어가라.”

“돈은?”

“아니, 씨발! 방금 문자 못 봤어? 나중에 치킨집에 가져다줄 테니까 집에 가라고!”

유현을 지나쳐 뛰어가는 강찬성.

문자 이야기를 한 걸 보니 아무래도 몬스터 때문인 것 같았다.

‘잡으러 가나?’

어떤 몬스터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냅다 달려간다고?

‘귀찮게 됐네.’

유현은 강찬성의 뒤를 쫓았다.

나중에 준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게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도심에 출현한 몬스터가 궁금하기도 했다.

‘원인이 뭐랬더라.’

유현은 수업시간 때 배웠던 내용을 떠올렸다.

몬스터의 도심 출현은 던전형 게이트가 원인이었다.

사냥형과는 달리 게이트의 억제력이 약하며, 가끔 억제력이 없는 게이트가 출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아마 이번에도 둘 중 하나가 원인이 되었으리라.

억제력이 없어지기 전까지 소탕하지 못했거나, 애초에 억제력이 없는 게이트가 등장했거나.

‘미리 대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국내 던전 파악 시스템은 마나의 파동을 쫓아 던전의 등장 여부와 위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

그게 어떤 종류의 게이트인지, 억제력은 어느 수준인지 등.

협회 직원이 곧장 출동하여 게이트의 상태를 점검한다지만, 그전까지는 무방비하게 방치된다.

그사이에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뛰쳐나온다면 지금처럼 재난 문자가 오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야, 근데 너 지금 어딘지는 알고 가냐?”

유현은 여유롭게 강찬성의 옆을 뛰었다. 그가 숨을 헉헉대며 유현을 돌아보았다. 호흡 때문에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왜 여기 있냐고 물어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경 좀 하려고.”

“헤엑, 헤엑.”

“그렇게 뛰어서 언제 가냐?”

그가 옆에서 떠들든 말든 강찬성은 뛰었다.

‘대충 방향은 맞는데.’

뜀박질을 이어가며 유현은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했다.

몬스터가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판대륙의 마물 녀석들과 비슷한 덕분이었다.

‘근처다.’

재난 문자가 왔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몬스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계속 늘고 있어.’

억제력을 잃은 게이트에서는 몇 마리의 몬스터가 나오든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몇십 마리가 우르르 쏟아질 수도 있다. 지금은 후자 같았다.

“저기군.”

달리던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 출현의 반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엿가락처럼 기울어진 가로등들.

도로는 부서졌고,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전복된 채 깜빡거리고 있었다.

“피해가 적어서 다행이네.”

새벽이라 그런지 거리는 휑했다.

이곳이 도시의 외곽인 점 역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곳에 모여있어.’

유현이 코를 킁킁거리며 걸었다.

냄새는 높은 아파트의 골조가 세워진 공사 현장 안쪽까지 이어졌다.

“여기구만.”

살짝 열린 공사장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던 유현을 강찬성이 다급히 붙잡았다.

“너 뭐냐? 헌터야?”

“아닌데?”

“그럼 집에 가라고 좀! 위험하다고!”

유현이 피식 웃었다.

“숨도 헉헉거리면서 큰 소리는. 애들 밖으로 다 뛰어 나오겠다.”

“뭐?”

“안쪽에 다 모여 있어.”

강찬성이 유현을 밀치며 공사장 입구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유현의 말대로 내부에서 몬스터들의 냄새가 적나라하게 풍겼다.

‘......이 안에 있었다니.’

그 역시 몬스터의 냄새를 쫓아 이곳까지 왔지만, 녀석들이 도로를 구르며 냄새가 퍼진 탓에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처음 보는 배달부가 알아내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유현의 말이 적중한 이상, 큰 소리를 냈으니 몬스터가 몰려올 것이다.

“빨리 집에 가. 이제 진짜 위험해.”

강찬성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유현은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착한 놈이야, 나쁜 놈이야?”

치킨값을 외상 하려 할 때는 천하의 개자식이 따로 없었는데, 이렇게 나서는 걸 보면 그렇게 못난 놈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유현은 아리송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길드 마스터라고 했으니 몬스터 몇 마리 정도는 혼자서 잡을 터.

집 주소도 알고 있고, 냄새와 목소리도 기억했으니 오늘은 이만 퇴근할 생각이었다.

‘먹고 튀기만 해봐.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해결하고 싶었지만, 저렇게 공익을 위해 나서는 사람을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크어어!”

안쪽에서 몬스터들의 포효가 들렸다. 과연 몬스터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설마 죽진 않겠지.’

아무리 1인 길드라지만, 그래도 길드 마스터인데.

약간의 불안감이 들던 그때.

“끄아아악!”

강찬성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유현은 다급히 공사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2만원! 뒤지면 안 돼! 그거 부조금 아니야!”

공사장 내부는 어두웠다.

바깥의 가로등 빛은 방음벽에 막혀 들어오지 않았고, 달빛도 구름에 가려졌다. 하지만 적의가 담긴 몬스터의 안광은 뚜렷하게 보였다.

“한놈, 두식이, 석 삼, 너구리. 와, 몇 마리야?”

유현이 시야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두 눈에 푸른 빛이 깃들며 야간 시야가 활성화됐다.

물고기의 몸뚱이에 네 개의 발을 달아놓은 생김새. 주둥이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들어섰다.

큰 덩치는 아니지만, 작지도 않다.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이 될만한 몬스터였다.

“끄아아아악!”

다시금 비명이 들려왔다.

유현은 고개를 들어 아파트 골조 위를 살폈다.

몬스터 한 마리가 위태롭게 골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강찬성은 그 몬스터의 등에 매달려 머플러처럼 휘날렸다.

“......”

유현이 한심한 눈빛으로 녀석을 응시했다.

‘저딴 것도 길드 마스터라고.’

유현이 강찬성을 향해 도약하려던 그때. 맞은편에 늘어선 몬스터 무리 사이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정확히는 그들의 바로 뒤편에 있던 공사 자재였다.

“사람?”

공사 자재를 뒤덮은 방수 천 아래로 사람의 손이 보였다.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사람이 있을까. 그러고보니 애초에 공사장의 입구가 열려 있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까먹었을 리는 없고.’

더 깊게 생각할 때가 아니다.

유현은 손목을 풀고, 발을 튕겼다.

단숨에 좁혀진 거리. 뻗은 주먹이 몬스터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팔을 타고 느껴지는 축축한 촉감.

머리를 관통한 팔이 몸을 반으로 가르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쿵.

몬스터 하나가 쓰러졌다.

뒤늦게 옆에 있던 몬스터들이 반응했지만, 유현은 녀석들의 차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걷어차고, 터뜨리고.

곳곳으로 전투의 파편이 낭자했다.

유현은 개의치 않고 적들을 죽였다.

싸움이 시작되고 5분.

주변에 남은 건 시체 뿐이었다.

“어우, 비린내.”

유현이 클리닝 마법을 사용해 전신에 튄 생선 몬스터의 부속을 닦아냈다. 공사장도 청소하고 싶지만, 워낙 사방으로 튀어 불가능했다.

‘남은건...’

유현이 골조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던 강찬성은 이제 골조 위에 있는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저거 또 떨어지는 거 아닌가 몰라.”

유현은 한숨을 쉬며 방수천을 들췄다. 내부에 숨어있던 건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히, 히익!”

“나와도 돼.”

아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뒤덮은 몬스터의 시체에 몇몇은 헛구역질을 했다.

“고, 고맙습니다.”

그나마 제정신인 아이가 유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유현은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이 시간에 집에 안 가고 왜 여기 있어?”

“지, 집에 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몬스터가 나왔다고 문자가 와서….”

유현은 그제야 아이들의 옷차림을 살폈다. 교복이었다.

바닥에 가방이나 교과서 같은 것들이 널브러진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시간까지 학원에 있던 것 같았다.

“어디 하나 부러뜨려 줄까?”

“네, 네?”

“그럼 부모님도 이 시간까지 학원 안 보낼 거 아니야.”

“괘, 괘, 괜찮아요.”

쾅!

그때 위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사이에 섞인 비명은 덤이었다.

“으아아악!”

“하아.”

유현이 이마를 짚고는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서 아무도 못 본 거다? 알겠지?”

유현이 눈을 부라리자 아이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 그럼.”

유현은 아이들을 입구까지 데려다주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저 새끼는 대체 길드를 왜 만든 거야?”

골조 주변에 가득했던 몬스터들.

강찬성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살아만 있어라.’

죽으면 치킨값 못 받으니까.

***

골조 일부가 무너지며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가려진 시야 속에서 강찬성의 심장은 여느 때보다 거세게 뛰었다.

‘젠장.’

제법 강한 상대였지만, 할 만한 싸움이었다. 문제는 적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것. 공사장의 바닥은 물론 골조 위에도 가득했다.

‘죽여도 계속 몰려올 텐데.’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달아난다면 분명 자신의 뒤를 쫓아올 테니까. 이 녀석들보다 빠르게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자.’

이미 구역을 담당하는 길드에 출동 명령이 내려졌을 터.

새벽 시간대인 점을 고려하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못 버틸 것도 아니었다.

‘한 마리씩만 덤빈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그때, 주변으로 쿵 하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강찬성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서서히 먼지가 걷히기 시작하며, 강찬성은 자신을 향한 수십 개의 안광과 마주했다.

“......시발.”

한 마리, 하다못해 몇 마리 더 늘어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은 많아도 너무 많다.

적들이 몰아붙인다면 버틸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기라도 들고 오는 건데.’

급하게 나온다고 제대로 된 장비조차 챙겨오지 못했다.

방어구를 착용하고, 무기를 들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텐데.

강찬성은 자신의 성급한 판단을 자책하며 주먹을 쥐었다.

‘이판사판이다.’

도망치면 도시에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꼴이 되고, 싸우면 높은 확률로 죽는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헌터면 헌터답게.”

그의 몸이 기괴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팔이 짧아지고, 다리가 두꺼워졌다. 그리고 그 위에 짐승 같은 털이 돋아났다.

“크으으.”

그의 변화에 몬스터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최종적으로 변화한 강찬성의 모습은 물범과 인간의 혼합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생김새였다.

‘......’

특성-포유류.

포유류 동물 중 하나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단, 그 대상은 랜덤이며 완전한 변화가 아니라 이처럼 해당 포유류의 특징이 신체에 깃든다.

‘하필이면 물범?’

다리는 몸통처럼 두꺼워졌고, 팔은 짧아졌다.

육지 위에서는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무거운 몸.

하다못해 토끼나 돼지였다면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버티기라도 할 텐데.

“크어어!”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강찬성은 허탈하게 웃었다.

“진짜 운빨좆망능력.”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며, 강찬성이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고통 대신 찾아온 건 커다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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