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안칠성이 떠난 교실에는 차가운 기류가 흘렀다. 아카데미 내 최강이라 불리는 S등급. 그곳에 도달한 이들의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누구 하나 먼저 교실을 나가지 않았다. 맹수가 먹잇감을 염탐하듯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깬 건 유현의 목소리였다.
“너 혹시 누가 데리러 오냐?”
유현이 몸을 돌려 뒷자리에 앉은 메이블에게 물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입을 다물고 있던 메이블이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저, 저요? 아마 부모님이 오실 거에요.”
“그럼 차 좀 얻어 타도 되지?”
“네, 넵!”
그때, 남들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경계하던 서혜빈과 한서희가 벌떡 일어났다. 한주석도 슬그머니 일어나려다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다시 착석했다.
“유현. 계약을 잊지 말아요.”
유현은 한서희에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교실을 나섰다.
메이블도 가방을 챙겨 들고 쪼르르 그 뒤를 따랐다.
***
교실을 나온 유현은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는 메이블의 말에 -얻어 타는 주제에 그럴 수는 없다며 교문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다.
“와, 사람 많네.”
교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유현은 그곳에서 교문 앞에 모인 사람들을 훑었다.
평소에는 본 적 없던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카메라 앞에 선 기자들, 그 외에는 일반인으로 보였다.
“야, 저거 차는 들어올 수 있냐?”
유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멀찍이서 메이블이 헉헉거리며 느릿느릿 달려오고 있었다.
“헤엑.”
“왜 이리 느려?”
“죄송해요.”
유현은 조금 전 질문을 다시 했다.
메이블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오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점거한 도로 위로 차 한 대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차량의 주인이 누군지 아는 건지 교내의 경비 직원들이 밖으로 나가 길을 터주었다.
사람들이 인도 위로 올라가고, 길이 뚫렸다. 차는 생각보다 쉽게 학교 안까지 들어왔다.
“메이블!”
두 사람 앞에 멈춰선 고급 승용차.
운전석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내렸다.
“엄마~”
메이블과 그녀의 어머니가 포옹했다. 마치 타국에 있던 가족이 오랜만에 상봉한 듯한 진한 포옹이었다.
“네가 유현이지? 어서 타렴~”
“감사합니다.”
유현은 뒷자리에 올랐고, 메이블도 그의 옆에 앉았다.
다시 차가 출발했다.
유현은 창문을 통해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네.’
안칠성의 말대로 걸어 나갔다면 사건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인파를 빠져나온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빠른 속도와 달리 고요한 내부.
고급 승용차답게 안정적인 승차감이었다.
“메이블한테 이야기는 들었단다. 테스트 때 도와줬다면서?”
“그랬었나요?”
“그럼. 네 덕에 시험 통과할 수 있었다고 전화로 얼마나 떠들던지. 좋아하는 애라도 생긴 줄 알았지 뭐야~”
“어, 엄마. 내가 그 이야기는 하지 말랬잖아요….”
“어머, 그랬니? 호호호.”
유현은 자신이 메이블을 도와줬는지 기억을 되살렸다.
겸사겸사 그렇게 된 거지 사실 도와주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였으니 그런걸로 해야지.
‘건수 하나 챙겼군.’
이걸로 언젠가 부려먹을 수 있는 전력이 생겼다. 도와달라고 하며 그때 일을 이야기하면 빼도 박도 못 하겠지.
“현이는 이름이 외자네?”
음흉하게 웃던 유현에게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아, 예. 맞습니다.”
“이름 좋다. 유현. 입에 달라붙네.”
“부모님이 지어주셨어요.”
“혹시 메이블 이름은 알아?”
“어, 엄마!”
메이블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어머니는 대화를 이어갔다.
“이름이 메이블 아니에요?”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는 애가 그 이름이 좋다고 그 이름만 써. 진짜 이름도 있으면서.”
“조, 좋은 게 아니라 그래야 애들이 이상하게 안 보니까….”
“이제 다른 애들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 엄마는 이제 한국 이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유현은 메이블이 며칠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기가 토종 한국인인게 이상하지 않냐는 물음. 왜 그런 걸 물어보나 했더니 어떤 과거가 있는 것 같았다.
‘애들이 이름으로 놀렸나? 생긴 거랑 이름이랑 너무 따로 놀아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이는 어떻게 생각해? 친구한테 한 번 물어보자.”
“한국 이름이 뭔데요?”
옆에 앉은 메이블이 대신 대답했다.
“유, 유춘식.”
“아.”
메이블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빨갛게 물든 귀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어때? 귀엽지 않니?”
“귀엽네요.”
“봐! 친구도 귀엽다잖아.”
“하하.”
유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메이블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
무사히 집에 돌아온 유현은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부터 방학의 시작이다.
뭘 할지는 이미 정해두었다.
‘방구석에 처박혀 온종일 게임만….’
쾅!
스마트폰을 들고 기분 좋게 침대에 누운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오빠! 누가 누워있으래!”
다짜고짜 들어와 소리를 지르는 유희연. 유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돌았냐?”
“그래! 치킨 냄새 때문에 돌겠다!”
유현보다 며칠 일찍 방학에 들어간 유희연은 그 시간 내내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했다.
치킨 튀기고, 주문받고, 청소하고.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동네 치킨집인데 주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장사가 잘돼?”
“어, 오빠도 가서 좀 도와줘.”
“나도 치킨 튀기라고?”
“싫으면 배달할래? 안 그래도 아빠 오토바이 타는 거 불안하거든.”
“면허 없는데.”
유희연이 코웃음쳤다.
“그냥 가방 메고 뛰어다녀. 오빠는 그게 더 빠르겠다.”
유현은 할 수 없이 동생과 함께 집을 나섰다. 부모님을 돕는 일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엄마랑 아빠는 오빠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인정?”
“......미친년.”
“동생한테 미친년이라니~”
능글맞게 반응하는 동생을 보며 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다. 그리고 아빠가 돈 자꾸 주지 말고 오빠 저축하래.”
“왜?”
“빚도 없고, 가게는 잘 되고. 그럼 이제 오빠가 벌어오는 돈도 필요 없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아직 집값을 처리해야 하긴 하지만, 그건 자신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그냥 용돈 느낌으로 드리면 안 되나?”
“나 줘 그럼.”
“......아빠한테 이제 저금하겠다고 전해드려라.”
유희연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사랑스러운 동생한테 용돈 주는 게 그렇게 아까워?”
“미친 듯이 아까운데?”
“야!”
유현이 유희연의 주먹질을 피했다.
***
“현아! 갈릭이랑 매운 양념 두 마리 나왔다!”
“예!”
성황리에 운영 중인 배달 전문 치킨집 – 유씨네 치킨집.
가게에 도착한 유현은 부모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곧장 배달을 시작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치킨을 보온 가방에 넣고, 가방이 흔들리지 않도록 확실히 고정한 유현은 가게 밖으로 나와 땅을 박찼다.
단숨에 올라온 빌딩의 옥상.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건너며 목적지로 이동했다.
“왜 이리 장사가 잘되는 거야.”
목적지로 움직이며 유현은 휴대전화로 배달 어플에 접속했다. 장사가 잘 되는 이유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치킨 탭 상위 부근에 위치한 유씨네 치킨집. 별점은 5점 만점으로 리뷰 숫자가 꽤 많았다.
‘다른 치킨집하고는 다른 맛이 있어?’
유현은 리뷰를 하나하나 살폈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단순했다.
맛있으니까.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시긴 하지.’
치킨 레시피를 배운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도 많이 쓰고 고생도 하셨는데, 그 노고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전부 내 덕이지.’
이맛에 효도를 하는 걸까.
유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
.
.
치킨 배달은 조금도 쉴 틈 없이 계속됐다.
주문은 계속해서 밀려들었고, 한 번에 여러 집에 주문을 들고 나가는 일도 빈번해졌다.
일반적인 오토바이 배달로는 제 시간에 배달이 불가능한 수준의 주문량.
하지만 유현의 발 빠른 배달 덕분에 유치킨의 치킨은 조리 완료 5분 이내에 주문자에게 배달됐다.
“후.”
고작 하루 만에 베테랑이 되어 버린 유현은 마지막으로 들어온 주문을 챙겼다.
“저 이거 주고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두 분도 들어가세요.”
“조심해서 다녀오렴.”
부모님의 오케이 사인을 받은 유현은 여유롭게 가게를 빠져나왔다.
캄캄한 하늘. 재개발이 한창인 인근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치킨의 목적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 유현은 빌딩 대신 도로로 향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새벽 시간.
교통량이 적은 곳이라 그런지 신호등은 주황색 불로 깜빡였다.
유현은 그대로 도로를 달렸다.
주위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고 순식간에 목적지인 고급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오, 여기 좀 비싸던데.”
유현은 요청사항에 적힌 출입방법을 확인했다.
건물의 뒤로 가면 외부인용 로비가 있다고 적혀 있다.
‘번거롭네.’
그냥 베란다 타고 가져다주면 안 되나. 유현은 구시렁거리며 건물의 뒤로 향해 외부인용 로비로 들어갔다.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줄 알았으나, 엘리베이터는 또 도어 안쪽에 있었다.
“이게 대체...”
유현의 눈에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거기에는 배달원용 안내 사항이 적혀 있었다.
“자정 이전이면 벨을 눌러 관리인을 호출하고, 자정 이후에는 직접 전화해서 내려오게 해야된다고? 별 지랄은.”
유현이 혀를 차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고객에게 전화를 걸자 신호가 몇 번 가기도 전에 끊겼다.
“...뭐야?”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그렇게 멍하니 휴대전화를 바라보기를 잠시.
그렇게 얼타고 있기를 잠시.
도어 안쪽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는 건가?”
유현은 유리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누군가 내렸다.
“배달?”
후드를 푹 눌러쓴 남자가 도어를 열고 나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순간 유현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으나 고객이라는 생각에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예, 배달입니다.”
“하암. 줘요.”
“결제해야 하는데요.”
“아, 뭐야. 미리 결제 안 했어?”
그걸 시킨 니가 알지 내가 알겠냐?
유현은 속으로 불만을 내뱉었다.
“잠깐 있어 봐.”
주머니를 뒤적이는 남자를 보며 유현이 눈가를 좁혔다.
‘이 새끼 왜 자꾸 반말하지?’
마음 같아서는 면전에 치킨을 던져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리면 큰일 날 테니까.
“돈이 없네?”
“예?”
“치킨 먼저 주면 안 되나? 내가 계좌로 쏴줄게.”
“이런 개새끼가.”
유현이 치킨이 든 보온 가방을 벗어서 내려놓았다.
“뭐, 뭔 새끼?”
“개새끼 이 새끼야.”
남자가 헛웃음을 짓더니 후드를 벗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상당히 불량한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냐?”
“넌 나 누군지 모르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똑같아 이 새끼야.”
한 마디씩 주고받는 덕담.
두 사람의 기세가 서로를 향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손님이 왕인데 장사를 잘못 배웠네.”
“네가 왕이면 나는 신이다.”
“지랄하네. 몇 살이야. 보니까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게맛살 이 새끼야.”
“...엠병, 나랑 장난까냐?”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유현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진 거리. 살벌한 눈빛이 서로를 응시했다.
“누군지 모른다니까 알려줄게. 나 헌터 강찬성이야. 길드 아망의 길드 마스터.”
“아망이고 마망이고 나불거릴 시간 없으니까 가서 치킨값이나 가져와.”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자신을 강찬성이라고 말한 남자가 유현의 눈빛에 움찔했다.
‘평범한 놈이 아니야.’
자칫하면 큰 싸움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강찬성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래. 가져오지.”
“진즉 그랬으면 좀 좋아.”
강찬성이 다시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갔는지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아망이랬나?’
유현은 그사이에 스마트폰을 꺼내 길드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길드 이름 아망을 검색했다.
이윽고 나온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길드원 한 명?”
유현이 도어 안쪽을 노려보았다.
아직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강찬성.
“길드원이 자기밖에 없는데 그걸 아냐고 물어본 거야?”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허탈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많다지만, 저런 놈도 있을 줄이야.
“와, 이건 불쌍해서 치킨 값 받으면 안 되겠는데.”
그냥 다시 불러와야 하나.
-위이이이잉!
그때였다.
바깥에서 웬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휴대전화에서도 이상한 알림이 울렸다.
“뭐지?”
단순한 사이렌이 아닌 특유의 높낮이와 박자가 가미된 사이렌.
유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재난 문자, 인근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도망쳤으니 외출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