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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테스트 다음 날.
국력을 기르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 헌터 아카데미인 만큼, 등급 테스트의 결과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S등급의 대거 등장.
뉴페이스 유망주의 등장 등.
발표 전부터 내부에서 유출된 정보들로 대중의 관심은 한층 더 깊어진 상황. 온갖 커뮤니티에서도 아카데미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이번에 S등급 많다는 데 실화임?」
-친구가 말해줬는데 많대. 대한민국 헌터 황금기 드디어 왔냐?
댓글
-와도 미중일한테 발림 ㅅㄱ
ㄴㄹㅇㅋㅋ
-기준 낮춘 거 아님?
-어케 그게 올해 한 번에 나오누ㅋㅋ
-S등급 두 명 이상 나오면 공중제비 도는 거 인증한다
인터넷의 반응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그동안 헌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대한민국.
오랜 과거 한 인물을 기점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이나 세계 수준으로 범위를 넓히면 아직 미약했다.
「손지성 뒤를 잇는 헌터 나오냐?」
-우리손 나오고 이만큼 발전했는데 슬슬 차세대 나올 타이밍이지?
댓글
-ㅋㅋS등급 나올 때마다 이 소리 계속 나오네.
-손지성이 개좆으로 보이냐?
-우리손 절반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
-나올 때 되긴 했음.
커뮤니티에는 최초로 세계 무대에 진출한 한국 국적의 헌터 손지성의 이야기도 오갔다.
손지성. 한국 헌터계의 전설적인 인물.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전성기 시절 그는 세계를 호령했다.
그가 등장하고 한국의 헌터 업계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었다.
‘손지성? 이건 또 누구야.’
커뮤니티를 살펴보던 유현은 남우위키에 접속해 손지성을 검색했다.
지금은 지긋한 나이가 된 현대의 1세대 헌터.
그의 개인정보를 시작으로 그가 걸어온 길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오호.”
과거 한국은 헌터 불모지였다.
게이트의 대부분은 외국 인력에 의존하였으며, 마석이나 사체 등의 자원들도 외부로 유출되기 일수였다.
그러던 시기에 손지성이 등장하여 활약했고, 세계적인 유명 길드에 영입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두 가지로 귀결됐다.
첫 번째.
아직 헌터라는 분야가 이질적이던 시기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자연스레 정부의 관심도 커지고 관련 부서 예산도 증가했으며, 주기적인 각성 검사가 활성화되었다.
두 번째는 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변방의 작은 국가를 알린 것이다.
“만약 손지성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시대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제법 멋들어진 말로 문서의 마지막이 장식되었다.
“대단한 사람이었구만.”
문서를 읽는 사이 시간이 꽤 지나 어느덧 등급 테스트 결과 발표까지 5분이 채 남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책이나 읽을까.”
유현은 책장에 꽂힌 만화책 한 권을 빼 들고 분홍색 소파에 누웠다.
곧 핑크빛 공간에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번졌다.
우당탕!
그때, 문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만화책을 내리고 문을 바라보았다.
벌컥!
문이 열리고 뛰어 들어온 건 서혜빈이었다. 바쁘게 뛰어왔는지 하얀 얼굴에 열이 가득했다.
“야!”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성큼성큼 다가온 서혜빈이 유현의 손에 들린 만화책을 빼앗았다.
“아, 읽고 있었는데.”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네가 나 두고 나갔잖아.”
한 시간 전.
유현은 서혜빈의 집에 찾아왔다.
방학식이 있는 날에는 등교가 늦어 만화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
서혜빈은 그런 유현을 들여보냈고, 잠시 뒤 급히 외출했다. 그 상태로 유현은 줄곧 이 방에 있었다.
“집주인이 없으면 나가야지!”
“집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
“......”
유현에게 외출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라 서혜빈은 할 말이 없었다.
“됐고 책이나 줘봐. 초반부 재밌던데.”
“...자.”
유현은 다시 책을 돌려받고는 독서를 시작했다.
그러던 사이 정각이 되며 서혜빈의 휴대전화에서 알람이 울렸다.
“나왔다!”
서혜빈이 황급히 헌터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기나긴 로딩.
아카데미 측은 테스트의 여파가 몰고 올 트래픽을 예상하고 서버를 증설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 씨. 왜 이리 안 나와.”
“키키킥.”
서혜빈이 째릿 유현을 노려보았다.
누구는 내기 때문에 이렇게 심란한데 누구는 누워서 낄낄거리고 있다니.
‘내가 이런 것도 사실상 저놈 때문인데.’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다.
“야, 이거 재밌네.”
“작가의 개그 센스가 돋보이는 만화지. 판타지 같으면서도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일상은….”
바쁘게 말하던 서혜빈이 멈칫했다.
지금 만화 이야기나 떠들 때가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휴대전화로 되돌아갔다. 로딩된 페이지가 화면 위에 나타났다.
“나왔다!”
휴대전화에 빨려 들어갈 듯 화면을 바라보는 서혜빈. 곧 그녀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빠져나왔다.
“하.”
“나도 봐봐.”
유현이 휴대전화를 받아들었다.
가장 처음 보인 건 S등급이었다.
총 9명의 인원.
이미 알던 인원과 며칠 전에 알게 된 인원 사이에 모르는 이름이 몇 개 섞여 있었다.
‘내가 1등이네.’
점수가 표시되진 않았지만, 합격자 이름 옆에는 순위가 적혀 있었다.
찬찬히 훑어가던 유현은 곧 서혜빈과 한서희의 이름이 같은 칸에 표시된 걸 발견했다.
“공동순위네.”
“......”
“결과는 무승부군.”
“아아악! 그년 머리채만 잡았어도 내가 이겼는데!”
서혜빈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현은 계속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세 명은 모르는 사람이네.”
유현은 휴대전화를 서혜빈에게 넘겼다. 같은 반이 되었으니 언젠가는 만나겠지.
***
「아까 공중제비 돈다던 놈 어디감?」
-캡쳐 떠놨는데 빨리 와서 인증해라.
댓글
-ㄱㄷ찍는중
-이게 되네ㅋㅋ
-아홉명이니까 4.5바퀴 돌아라.
등급 테스트의 결과가 발표된 이후 온갖 커뮤니티는 물론 언론까지 떠들썩했다.
국제 공인된 등급 테스트 시설 ‘시험의 탑’.
그곳에서 무려 아홉 명이 S층에 도달했다.
이는 해외 유명 아카데미에서나 나올법한 수치로 한국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속보 – 헌터 아카데미 S등급 9명 등장]
[손지성이 닦아놓은 길을 걸을 차세대 헌터들]
[한국도 이제 헌터 강국?]
비공개 테스트인 탓에 공개된 정보가 얼마 없음에도 엄청난 양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는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호들갑 떨지 마라. 기껏 아카데미고만.」
-이러다가 정작 본 테스트에서 통과 못 하고 등급 떨어지면 개쪽인 거 알지?
댓글
-역사적으로 그런 경우는 없다 띨빡새끼야.
ㄴ 우리 친구는 최초가 왜 최초인지 모르냐?
-네 다음 아카데미도 못 들어간 망생이.
ㄴ 쌉쳐
-ㅋㅋ맞는말이긴 함. 쳐맞는 말.
-축구로 치면 골든볼 수상자가 조기 축구 뛴다는 소리네.
ㄴ ㅇㅇ비슷함. 솔직히 가능성 있지 않음?
ㄴ 가능성은 등신아. 골든볼 수상이면 발가락 하나 없어도 세미프로 가서 날라다니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부정적인 의견은 여론에 묻혔다.
회의적인 관점에서 적힌 기사들도 신고를 받고 삭제됐다.
그야말로 온 국민의 축제.
광기에 가까운 상황에서, 이제 사람들은 당사자들의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공표된 유명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 한 사람 만은 모두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유현이 누구임?」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1등이네?
댓글
-그러게; 누구지?
-아카데미 소식통 나와라.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하이패스 테스트 존나 빨리 통과했다더라.
ㄴ ㄷㄷ 근데 왜 이름도 몰랐지?
ㄴ 원래 F등급이었대. 아마 힘숨찐 놀이 좀 한 듯.
ㄴ 그걸 진짜로 하네ㅋㅋ
유현에 관한 이야기가 바쁘게 인터넷 곳곳을 오가는 사이.
아카데미에서는 방학식이 한창이었다.
“쓰읍, 뭐야.”
난데없이 밀려온 간지럼에 유현이 귀를 쑤셨다.
‘누가 내 얘기하면 귀가 간지럽다던데.’
손가락에 커다란 귀지가 묻어 나왔다. 귀지를 바닥에 툭 버린 유현은 다시 화면을 응시했다.
아카데미의 원장. 손지현.
아까 전 손지성에 관해 찾아보다가 함께 알게 된 인물이었다.
‘오빠처럼 헌터 활동을 시작했다가 교육 쪽으로 빠진 케이스.’
유현은 그녀를 보며 동생인 유희연을 떠올렸다. 길드 마스터가 되고 싶다던 동생. 돈 벌어서 학교까지 보내줬는데 잘 다니고 있으려나.
-이상으로 여름 방학식을 마칩니다.
길고 긴 방학식이 끝났다.
선생들의 전달사항까지 마무리되고, 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이는 남아 있어라.”
“예? 저는 왜요?”
“왜기는 인마. 너 지금 나가면 깔려 죽어.”
아카데미의 입구에는 새롭게 S등급이 된 이들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1등인 동시에 가장 정보가 적은 유현은 일반인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으며 기자들에게는 훌륭한 기삿거리였다.
“이거 옛날 생각나는구만.”
유현은 판대륙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따라와.”
“어디 가는데요?”
“오늘부터 S등급이잖냐. 시하, 너도 올 거면 오고.”
옆에 앉아있던 주시하가 반색했다.
“그래도 돼요?”
“밖에 서 있는 건 상관없어.”
두 사람은 안칠성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도착한 셔틀. 상위 클래스로 가는 노선이었기에 탑승한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현아,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너 덕분에 거기까지 갈 수 있었어.”
주시하는 유현 다음으로 많은 단계의 등급을 올랐다.
최하위인 F등급에서 시작하여 중위권인 C등급까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장세였지만, 유현이 모든 관심을 가져간 탓에 큰 화제는 되지 못했다.
“노력은 네가 했지.”
“너 없었으면 할 생각도 못 했을 거야. 진짜 고마워.”
안칠성은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하, 너도 현이처럼 올라와야지?”
“네? 제, 제가요? 아무리 그래도 현이처럼은 못해요….”
“더 노력하면 된다. 내가 보기에는 네 특성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주시하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열심히 해볼게요!”
셔틀은 계속 움직였다.
세 사람이 내린 곳은 상위 클래스 건물의 정류장에서 몇 정거장 더 이동한 곳이었다.
처음 보는 세련된 외형의 건물.
작은 빌딩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긴 뭐예요?”
“S등급이 사용하는 전용 건물이다.”
안칠성은 건물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유현과 주시하도 그 뒤를 따랐다.
외부처럼 내부 역시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바닥은 대리석이었으며, 입구에는 안내데스크 비슷한 것까지 있었다.
“무슨 회사 건물 같네요.”
“나도 처음 볼 때 그렇게 생각했다.”
안칠성은 교직원 카드를 출입 장치에 인식한 뒤 내부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멈춘 곳은 건물의 2층에 위치한 교실 앞이었다.
교실의 내부에는 이미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시하는 여기서 기다릴래?”
주시하가 교실의 안쪽을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먼저 기숙사로 갈게요.”
“왜. 기다려도 된다.”
“어... 뭔가 마주치기 무서워서요. 다들 등급이 높잖아요.”
사실 가장 큰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S등급. 언제나 동경하던 대상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흐음. 그럼 먼저 돌아가라. 이거 괜히 여기까지 데려와서 미안하다.”
“아뇨!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감사합니다!”
주시하가 잰걸음으로 떠나가고, 유현은 안칠성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유현은 모여드는 시선을 느꼈다. 적대감, 호기심, 동정과 친밀감 등등.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유현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안칠성이다.”
교탁에 선 안칠성이 화이트보드에 이름을 적었다.
“이제부터 너희의 담임이지.”
“예? 선생님이요? 왜요?”
“나도 몰라. 임명 당했다.”
안칠성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다. 별 건 없고, S등급이 된 학생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걸 알려주는 시간이지.”
안칠성이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머리가 뾰족한 불량아, 콧대 높은 아가씨, 유명 대기업의 후계자 등등.
하나 같이 비범한 배경이나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2학기는 쉽지 않겠군.”
쉽지 않다.
학생들의 첫인상은 그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등급은 평생 가지 않는다. S등급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야.”
아카데미의 등급과 헌터 등급은 다르다.
아카데미의 등급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교실을 구분하기 위한 것.
S등급이라는 명예는 졸업과 함께 사라진다.
“명예를 더 드높이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라.”
헌터의 등급은 졸업 전에 이루어지는 헌터 시험으로 판가름 된다.
단순한 특성의 수준이 아닌 여러 가지 능력을 측정하는 테스트로 길드와 아카데미가 연계하여 행해지는 시험이었다.
“그러니 이번 방학이 학교생활 중 마지막 장기 휴식이라고 생각해라. 너희 방학 끝나고부터 스케줄이 빵빵하거든.”
의미심장한 경고였다.
그러나 그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안칠성은 코를 후비는 유현을 보며 깊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는데 내가 F등급 교사였다고 무시하지 마라. 이건 조언 같은 게 아니라 경고다.”
일순간, 교실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푸근한 외형과는 다른 호랑이 같은 인상. 날카로운 눈빛이 교실의 인원들 한 명 한 명과 마주했다.
누군가는 눈을 피하고, 누군가는 눈을 깔았다.
안칠성의 경고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새겨졌다.
“OT는 여기서 끝이다. 다들 알아서 집에 가라. 현이, 너도 괜히 걸어 나갔다가 붙잡히지 말고 적당히 아무나 붙잡아서 차 얻어 타. 여기 돈 많은 놈투성이네.”
“옙.”
안칠성은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