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S등급 포탈이 위치한 상승의 산 초입. 한서희와 서혜빈이 서로를 앞다투어 오르막을 달리고 있었다.
“헥, 헥.”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숲속에 퍼졌다.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무박 2일의 테스트 일정.
휴식을 취해도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야, 야! 우리 좀, 쉬자.”
서혜빈이 간곡히 말했으나 한서희는 계속 달려나갔다. 서혜빈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뛸 수밖에 없었다.
‘괜히 내기 같은 걸 해가지고는.’
서혜빈은 내기에 응한 걸 후회했다.
굳이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은 다른 생각을 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에이잇!”
서혜빈은 이를 악물고 스퍼트를 냈다. 천천히 한서희를 앞질러가더니 곧 추월에 성공했다.
“헉, 헉.”
앞서가는 서혜빈을 보며 한서희도 좀 더 속도를 냈다. 그런데도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같이, 같이 가요!”
경쟁에 함께는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되는대로 내뱉을 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한참동안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뜀박질이었던 것이 중간부터는 뛰는 시늉이 되었고, 정상에 다다라서는 바닥을 기었다.
어느 한쪽이 멈춰 선다면 두 사람 모두 휴식을 취했겠지만,, 둘 중 누구도 먼저 멈추지 않았다.
“다, 다...”
“어윽.”
정상에 도달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땅이 순식간에 땀으로 축축해졌다.
“하아, 하아.”
한서희와 서혜빈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엇박자로 숨을 헐떡였다.
땀으로 범벅이 된 전신.
시원한 산바람이 땀을 식혔다.
‘가야 해.’
한서희가 이를 악물고 바닥을 기었다. 옷이 얇은 탓에 팔꿈치가 까지고 무릎에 상처가 생겼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저 독한 년.’
서혜빈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반쯤 일어난 자세로 엉금엉금 움직였다.
“후욱.”
“하악.”
생사의 전선을 넘어가는 것처럼 두 사람은 앞으로 포복했다.
전진, 전진, 끝없는 전진.
느리지만, 착실히 포탈로 향했다.
“내가... 먼저...”
한서희가 먼저 포탈 기기 앞에 도착했다. 스마트 워치를 인식하고, 통과했다. 이대로라면 한서희의 승리가 확정되는 상황.
그러나 그때, 한서희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었으니.
“가지...마...”
콰당!
서혜빈에게 발목을 붙잡힌 한서희가 힘없이 고꾸라졌다.
“너 진짜...”
지칠 대로 지친 한서희에게 낙상 데미지는 크게 작용했다.
화낼 힘은커녕 다시 일어설 힘마저 사라졌다.
그 사이, 서혜빈은 꾸역꾸역 일어나 자신의 워치를 인식했다.
“됐다, 됐어….”
힘겹게 몸을 돌린 서혜빈은 한서희가 좀 더 포탈에 가까워진 것을 발견했다.
“......독한 년.”
평소의 그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웃을 힘도 없었다.
“후.”
서혜빈도 신음을 흘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종아리 근육. 그녀 역시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
“엄청난 결과가 나왔네요.”
시험의 탑 모니터링 실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모두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경악했고, 누군가는 환호했으며, 역정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어떻게 저런!”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모니터 위에 나열된 S층 진입자들.
그 최선봉에는 논란의 중심이 된 유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F등급입니다! 고작 F등급이라고요!”
노바 길드의 스카우터가 소리쳤다.
“그리고 12시간도 안 지났어요! 그런데 저게 말이나 됩니까?”
유현에게 포인트가 처음 적립된 시간은 겨우 12시간 전.
그런데 이제는 1등으로 S등급을 달성했다. 포인트 상승 추세가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뭔가 오류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오류입니까?”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안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카우터는 기다렸다는 듯 곧장 대답했다.
“저 아이가 시스템에 개입한 게 분명합니다.”
“일개 학생이 개입할 정도로 스카이 아일랜드의 시스템이 부실하단 소립니까?”
스카우터가 흠칫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중에는 스카이 아일랜드의 관계자도 있었다.
“아, 아니,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들릴 수도 있는 말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조심하셔야죠.”
“......죄송합니다.”
스카우터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의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 번 확인해주세요. 포인트 출력이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마 다들 궁금할 겁니다.”
그의 오류 확인 요청에 관계자 하나가 자리를 비웠다.
안칠성도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스카우터의 의심도 충분히 합리적이었으니까.
‘어떻게 12시간 만에 저길 가냐.’
아무리 유현이라지만, 미친듯한 속도였다. 대체 그 끝은 어디인 걸까.
잠시 상상하던 안칠성은 아득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문제 없습니다.”
잠시 뒤, 돌아온 관계자는 스카우터에게 결과를 전했다.
그 말은 곧 몇몇 사람들에게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역시!”
“내 그럴 줄 알았네! 허허허!”
유현의 하이패스 테스트 심사에 참가했던 선생들이 박수를 쳤다.
“그렇다네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카우터는 순순히 받아들였고, 안칠성에게 소란을 사과했다.
“안 선생님 말대로 됐네요!”
“그러게 말일세. 설마 했더니 정말 S등급에 갈 줄이야. 하하!”
“저는 잘해봐야 A일 줄 알았어요~”
선생들은 유현이 보여준 활약에 감탄했다.
“장래가 기대되는 학생이에요. 내부에 카메라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어쩔 수 없지. 저 넓은 공간에 다 설치할 수도 없으니.”
그렇게 테스트는 종료됐다.
S층의 진입자는 스카우터나 선생들의 예상대로였다.
단 한 명. 유현의 존재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여러 편의 시설이 구비된 시험의 탑 꼭대기. 통칭 S층.
개인실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유현은 방송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뭐야?”
그를 당황하게 한 건 포탈 앞에 쓰러진 사람들이었다. 몇 명을 빼면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야, 죽었냐?”
포탈 앞으로 향한 유현은 발끝으로 서혜빈을 툭툭 건드렸다.
“으으...”
그녀는 옅게 신음할 뿐,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유현은 그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한 번씩 건드렸다.
한서희는 움찔했고, 한주석은 꼼짝도하지 않았다.
“다들 약골이구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별로 어려운 테스트도 아닌데 저렇게 드러누울 정도로 지치다니.
유현은 복도를 지나 메이블의 룸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잤어?”
“조금 전에 방송 듣고 깼어요.”
“밖에 쟤네 좀 도와줘라. 다 드러누워서 움직이질 못하네.”
메이블이 유현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헉. 다들 왜 저래요?”
“힘든가봐.”
그녀가 시체처럼 누워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참 편리한 능력이야.’
메이블이 아이들을 하나둘씩 회복시켰다. 곧 조용했던 내부는 깨어난 아이들의 목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S등급이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한편,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왔어!”
“무슨 소리에요? 제가 먼저거든요?”
서로 자기가 먼저 들어왔다고 우기는 한서희와 서혜빈. 그걸 보며 유현은 잊고 있던 내기를 떠올렸다.
‘뭘 걸고 내기했더라.’
그것까진 기억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휴. 다 치료했어요.”
아이들을 모두 깨운 메이블이 유현의 옆으로 돌아왔다.
유현은 가만히 메이블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너 그게 능력이면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전투에 사용될 구석은 보이지 않는 단순한 회복 능력.
그런데도 그녀는 S등급 기준을 충족했다.
“제 특성은 반대로 생명력을 가져갈 수도 있어요.
“그걸로 몬스터를 죽인 거야?”
“맞아요. 아, 혹시나 말씀드리는데 사람한테는 안 써요. 흡수 속도가 워낙에 빨라서 조절을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서요.”
메이블은 그렇게 말하며, 무서워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좋은 능력이네.”
“그런가요?”
“힐도 되고 딜도 되고. 친하게 지내자.”
알아둔다면 언젠가 도움이 될만한 수준의 전력. 유현은 메이블에게 악수를 청했다.
“치, 친하게... 알았어요.”
메이블은 수줍게 손을 맞잡았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그녀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이름이 유현이었죠?”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메이블 유라고 해요.”
“너도 혼혈이야?”
“네. 아버지가 외국인이에요.”
그녀의 이국적인 외형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었다.
“국적이 어디야?”
“아버지는 미국인이고, 전 한국 사람이에요. 태어나서 계속 한국에 살았어요.”
메이블은 슬쩍 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자신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시선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토종 한국인이구나.”
유현의 반응은 그게 끝이었다.
신기함은커녕 조금의 관심도 없어 보이는 모습에 메이블은 되려 당황했다.
“신기하지 않아요?”
“뭐가 신기해?”
“이렇게 생겼는데 한국 사람이잖아요.”
“그게 신기해?”
유현이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판대륙에서 온갖 인종과 종족을 만난 그에게 메이블은 신기한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드래곤이랑 드워프의 혼혈이라면 모를까.’
땅딸막한 드래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을 것 같다.
“...고마워요.”
의외의 반응에 메이블은 진심으로 유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유현!”
멀찍이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을 다른 이들이 발견했다.
메이블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했다.
***
등급 테스트가 종료되고, 학생들에게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보낼 수 있는 하루의 자유.
하지만 숙소를 벗어나 외부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은 대부분 숙소에서의 휴식을 선택했다.
“조용하네.”
유현은 개인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F층 역시 다른 층처럼 조용했다.
제대로 시험을 진행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에서의 24시간은 똑같이 피곤했다.
“결과는 집계해서 내일 알려준다고 했고.”
유현은 복도와 복도 사이에 있는 휴식실로 향했다.
중앙에는 둥근 소파가 있고, 책이 가득한 책장이나 컴퓨터가 주변에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유현은 안칠성을 발견했다.
“요.”
“요는 인마. 내가 네 친구야?”
유현이 안칠성의 옆에 앉았다.
안칠성이 보고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넣었다.
“넌 힘들지도 않냐?”
“예.”
무박 2일의 전투를 벌이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는 유현. 참으로 괴랄한 체력이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네가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단 말이지.”
“생긴 게 사람이 아니긴 하죠.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어딨어.”
“......부정은 안 하겠다만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야. 나한테 설명 좀 해줘라. 시험 시작했을 때 왜 그리 오래 누워있었는지. 내가 진짜 속이 타들어가는 줄 알았다.”
유현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안칠성이 목덜미를 붙잡았다.
“내가 못 살겠다. 그 게임이 그렇게 중요해?”
“제 삶의 낙입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안칠성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 더 물어봐도 되냐?”
“뭔데요?”
“너 정말로 특성은 그대로야?”
안칠성은 예전부터 품어온 의문을 입에 담았다.
유현의 특성은 소화가속.
하지만 실종되고 다시 나타난 이후로,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게 마나가 아닌 신체의 힘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대체 세상의 어떤 사람이 특성의 도움도 없이 맨손으로 몬스터를 때려잡고, 싸운단 말인가.
“아까 스카우터들이랑 이야기하는데 다들 그러더라. 네가 신체 강화 능력이 있을 거라고.”
“음.”
“단순한 신체의 힘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믿지를 않아. 대체 어떻게 저게 사람의 힘이냐고 그래.”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도 똑같은 의견이다. 시험의 탑의 몬스터가 약하다고 하지만, A등급 수준의 몬스터까지 때려잡는 건 조금 의심스럽다.”
“그럼 저랑 팔씨름 한 번 하실래요?”
“갑자기?”
유현이 소파 앞 탁자에 팔을 올리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장난하냐?”
“마나 안 쓸게요. 어차피 쓰면 선생님도 다 알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럼 이 정도로 증명이 되지 않을까요?”
안칠성은 웃으며 손가락을 붙잡았다.
“선생님을 너무 얕잡아보는구나. 나도 왕년에는 잘 나가는 헌터였다.”
“저도 왕년에는 용사였습니다.”
“뭐? 뭔사?”
“시작할게요~”
팔씨름은 시작하자마자 판가름이 났다. 안칠성의 손등이 순식간에 테이블에 처박혔다.
“아악!”
“아이고, 힘 조절을 못 했네.”
손등을 부여잡은 안칠성이 고통에 신음했다.
“너 인마, 선생님 상대로….”
“그래도 그 정도면 증명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팔씨름했던 작은 원목 테이블이 쩌적하며 반으로 갈라졌다.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판자.
그걸 보며 안칠성이 헛웃었다.
“맞구나. 특성이 아니라, 진짜 힘이 맞아.”
이제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