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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59화 (59/219)

59

이케가미 신이치.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아.

일련의 사건을 겪고, 한국의 헌터 아카데미로 전학 온 지 반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는 처음으로 손 쓸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시발, 시발.”

숲속 한가운데, 이케가미가 식은땀을 흘리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어디야.’

그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주변을 살폈다. 온통 초록색 천지인 숲속. 유현의 흔적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위? 풀숲?’

은폐할 수 있는 장소가 주변에 널렸다. 당장 어디서 튀어나올지 가늠도 되지 않는 상황.

이케가미는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게이트가 있는 꼭대기를 향해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조금 전까지 함께 움직이던 패거리 중 하나의 스마트 워치가 들려 있었다.

‘점수는 채웠어.’

시험이 끝나면 배신자니 뭐니 온갖 질타를 당하겠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S등급만 가면 돼.’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S등급이다.

이곳에서 최강의 자리에 올라 자신을 매도하고 내몰던 놈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너희 같은 놈들이랑은 수준이 다르다고.

‘거의 다 왔어.’

이제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케가미는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어딜 그리 갈까.”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케가미는 침착하게 몸을 돌리며 팔을 휘둘렀다. 빠져나간 마나가 땅을 타고 솟구쳤다.

푸확!

흙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원뿔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찔렀다. 그러나 이미 유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젠장할!”

이케가미가 욕설을 지껄이며 원뿔을 무너뜨렸다.

“이런 날다람쥐 같은 새끼.”

조금 전과 비슷한 상황이 여기까지 오며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자신을 약 올리려는 것처럼 잡을 듯 말 듯 가지고 노는 유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게 분명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이런 기분일까.

이케가미가 참다 못해 분통을 터뜨렸다.

“그냥 나와! 나와서 한판 붙어!”

“응~ 싫어~”

멀리서 메아리가 울려왔다.

이케가미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새끼.’

자신의 포인트를 노리고 있으면서, 정작 잡지는 않는다.

의도는 명백하다. 실컷 놀려 먹으려는 생각이겠지.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만약 이게 등급 테스트가 아니었다면, 이케가미는 그냥 포인트를 포기했을 것이다. 놀림당하며 우습게 보이느니 차라리 그게 훨씬 나았다.

하지만 지금 테스트에는 자신의 자존심 그 이상이 걸려 있다. 때려죽여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케가미가 다리에 마나를 담아 힘껏 내달렸다.

돌부리와 나무의 뿌리들로 울퉁불퉁한 산길. 중간중간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흙을 받침대로 사용해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았다.

‘다 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S등급 포탈.

스마트 워치를 손에 꽉 쥔 채 이케가미가 포탈 옆 검사 기기 앞에 도착했다.

서둘러 스마트 워치를 가져다 대는 이케가미. 기기가 포인트를 인식하고, 포탈이 열렸다.

“됐어!”

환희와 함께 포탈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케가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이윽고 대지에서 솟구치는 단단한 토양. 마나와 결합한 흙더미가 이케가미의 주위를 감쌌다. 거북이가 껍질 안에 숨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후욱, 후욱.”

캄캄한 내부. 이케가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순간이지만, 엄청난 기세를 느꼈다.

만약 그대로 포탈을 통과하려 했다면, 분명 당했으리라.

‘그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의 실력자가 F급에 있었을까.

의문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고작 하루 만에 F층에서 A층까지 올라온 점이라든가, 마나도 없이 A등급 다섯 명을 압박하는 점이라든가.

몇 번이나 생각해봐도 그 끝은 물음표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의문에 대한 답은 현 상황의 타개책과도 맞물렸다.

하다못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지라도 알아야 다음 행동을 선택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이케가미의 눈앞에 캄캄한 미래가 드리웠다.

‘......’

결국, 여기서 끝나는 건가.

이대로 포인트를 모두 잃으면 자신은 F등급으로 추락한다. 그나마 유지되던 일말의 명예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자신의 추락이 외부로 공표되면 큰 반향이 생길 터. 대중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상상하기도 싫어.’

이케가미는 포기를 털어내고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포탈이 코앞이지만, 이 상태로 바깥에 나가는 건 위험하다. 단단한 방어막에 둘러싸인 채 이동하는 게 그나마 나았다.

‘굴러가자.’

흙을 변형시켜 타원형으로 만들고, 열심히 몸을 흔들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뒤쪽에 경사로를 만들어 굴러가는 것도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생각을 굳힌 이케가미는 곧장 실행에 들어갔다.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여 자신을 감싼 반원 형태의 방어막을 천천히 변형시켰다.

무릎 아래로 새로운 흙이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완성된 타원.

완전한 원형이라면 좀 더 수월하겠지만, 현재 상태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포탈의 방향은 머리 쪽.’

포탈의 방향과 현재 타원체가 놓인 구도를 생각하며 주변 구조물을 어떻게 놓을지 계획했다.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고 뒤에서 추진력을 주자.’

이케가미가 마나를 긁어모아 다시금 능력을 사용했다.

타원체가 서서히 돌아가고, 포탈을 향해 들어가기 좋은 구도로 놓였다.

이케가미는 쉬지 않고 뒤쪽에 경사도를 만들었다.

경사가 생길수록 조금씩 기울어지는 내부. 이내 타원체가 포탈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됐다.’

이대로 포탈을 통과하면 S급.

이케가미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것도 잠시.

장애물에 걸린 듯 타원체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긴 평지일텐데.’

조금 전 도착했을 때, 얼핏 보기에도 장애물은 없는 장소였다.

그렇다면 무엇에 막힌 걸까.

이케가미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한 가지 상황이 그려졌다.

‘......시발.’

다음 순간, 무언가가 단단한 흙을 뚫고 들어왔다. 그것에 얼굴을 붙잡혔을 때 그게 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케가미는 그대로밖에 끌려 나와 허공에 매달렸다.

“좀 놀려먹으려 했더만, 그새를 못참고 도망치네.”

유현이 이케가미의 손에 들린 스마트 워치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를 내동댕이쳤다.

“케헥!”

“착하게 살아라. 얼마나 잘 살려고 비겁하게 다른 사람 걸 뺏고 그래?”

이케가미가 유현을 응시했다.

두 눈동자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총알도 막아내는 방어막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 상대를 골라도 한참은 잘못 골랐다.

‘괴물.’

그의 힘은 특성 따위가 아니다.

마나가 필요치 않은 순수한 육체의 힘. 오직 그 힘으로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은 물론 이곳까지 도착한 것이다.

“하, 진짜 좆같네.”

진실을 깨달은 이케가미가 탈력감을 느끼며 드러누웠다.

고작 몸뚱이 하나로 이런 힘을 내다니.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아니, 정상적인 생명체의 범주에서도 한참은 벗어난 인간이었다.

“이야. 너 욕이 찰지네.”

“잡소리 말고 꺼져. 기분 좆같으니까.”

“한국 이름도 없다면서 언어 구사력 봐라? 뒤질래?”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 너도 무사하진 못 할걸.”

이케가미는 그 말을 후회했다.

그 뒤로 죽기 직전까지 처맞았다.

***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 말버릇하고는.”

이케가미를 흠씬 두들겨 팬 뒤.

유현은 메이블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혼자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 건지, 메이블은 본래 있던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모양이다.

“......”

얌전히 유현을 올려다보는 메이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오묘한 표정이었다.

“머리가 은색이야? 신기하네.”

유현은 쭈그려 앉아 메이블을 관찰했다.

머리를 들춰보기도 하고, 가발인지 아닌지 한 가닥 뽑아보기도 했다.

“와, 진짜 머리네.”

“으으읍!”

메이블이 항의하자 유현이 피식 웃었다.

“일단 가자.”

유현은 메이블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여 도착한 포탈 앞. 이케가미는 여전히 기절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흐음. 일단 풀어...”

메이블을 풀어주려던 유현은 그녀가 울먹이는 걸 발견했다.

“읍! 읍!”

메이블이 몸을 비틀며 엉덩이 쪽을 가리켰다.

“엉덩이가 쓸렸구나.”

유현은 메이블의 손과 발을 풀어주었다. 몸에 자유를 얻은 메이블은 곧장 자신의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화아악.

메이블의 손에서 밝은 빛이 일었다.

엉덩이에 생겼던 고통과 상처가 사라지고, 메이블은 그제야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힐? 그게 네 능력이야?”

메이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입을 막은 테이프를 제거했다.

“아프잖아요...!”

“그렇다고 업을 수는 없잖아.”

“그냥 풀어주면 됐잖아요.”

“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

잠시 원망스러운 눈으로 유현을 바라보던 메이블은 이내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딱히 널 구하려고 한 건 아닌데. 겸사겸사 그렇게 됐네.”

그가 싸운 건 이케가미가 앞을 막았기 때문이었고, 산적에게 당한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고마우니까 고마워할래요.”

“그러던가.”

유현은 품속에 넣어두었던 스마트 워치를 꺼냈다.

“이거 필요하지?”

“.......”

메이블은 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상대도 엄연히 시험의 참가자.

포인트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달라고 한다고 줄 리가 만무했다.

“안 필요해?”

“피, 필요해요. 근데….”

“자, 가져 그럼.”

유현이 스마트 워치 몇 개를 던졌다. 메이블은 반응하지 못했고, 스마트 워치는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그, 그냥 준다고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메이블이 되물었다.

“필요 없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당신도 필요하지 않아요?”

“난 내 거 있는데? 그리고 몇 개는 내 시계로 옮겼어.”

유현이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보여주었다. 작은 화면에 나타는 포인트는 S등급 충족 기준을 한참이나 앞서간 점수였다.

“필요 없으면 그냥 버리고.”

“아뇨! 필요해요! 감사합니다!”

메이블은 허둥지둥 스마트 워치를 주웠다. 자신의 스마트 워치에 빼앗겼던 포인트들을 다시 옮기며 조금 전 봤던 유현의 점수를 떠올렸다.

‘어떻게 포인트가 저렇게 높지?’

아무리 다른 사람의 점수를 갈취했다고는 해도, 고작 하루 만에 저만큼의 포인트를 모으는 게 가능하다니.

자신이라면 하루하고 몇 시간이 더 주어져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정체가 뭘까.

메이블의 시선이 유현의 등으로 돌아갔다.

“야, 괜찮냐?”

유현은 바닥에 쓰러진 이케가미의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메이블은 그제야 여기저기 얻어터진 이케가미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다가갔다.

“이 사람 왜이래요?”

“좀 때렸어.”

조금이라기에는 심각한 상태.

메이블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케가미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잘못은 했지만….’

그렇다고 다친 사람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메이블은 곧장 치료를 시작했다.

묶여 있던 동안 회복됐던 마나가 다시 빠져나가고, 이케가미의 상처가 조금씩 치료됐다.

도중에 마나를 모두 사용해 완전히 치료하진 못했지만, 상태는 이전보다 나아졌다.

“끄응.”

이케가미가 눈을 떴다.

곧장 시야에 들어온 건 유현과 메이블이었다. 멀쩡해진 얼굴이 단숨에 구겨졌다.

“날 치료했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서 치료했어요.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니까 거칠게 움직이면 안 돼요.”

“쓸데없는 짓 하기는.”

곧장 몸을 움직이려던 이케가미는 근육의 경련을 느끼고 다시 누웠다.

“움직이지 말라니까요.”

“......젠장.”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멀뚱히 서 있던 유현은 이케가미에게 남은 몫의 스마트 워치를 던졌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한 이케가미가 곧장 유현을 향해 쏘아붙였다.

“동정하지 마라.”

“깽값이야, 새끼야. 자존심 상하면 네 친구들한테 다시 돌려주던가.”

“......”

깽값.

그런 의미라면 받아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근데 왜 시계가 이것밖에 없지?”

“두 개는 얘 주고, 나머지는 내가 썼다.”

“결국 너도 빼앗은 건 똑같군.”

“거 말 많네. 다시 가져가?”

이케가미는 후다닥 자신의 기기에 점수를 모두 옮겼다.

“이야, 너는 진짜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한 명 구제할 수 있는데 그걸 기어이 다 처먹네.”

“닥쳐.”

“이 새끼가 덜 처맞았나. 말 예쁘게 안 해?”

유현이 때리는 시늉을 하자 이케가미가 움찔하며 손을 들었다.

본능적으로 나온 방어 태세였다.

“풋!”

그걸 보던 메이블이 웃었다.

이케가미는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다.

“새끼, 그래도 쪽팔린 건 아는구나.”

“......포인트 다 모았으면 빨리 가라.”

“안 그래도 갈 거야.”

유현이 포탈 인식 기기에 스마트 워치를 가져다 댔다.

그 사이 메이블은 이케가미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그러면 앞으로는 치료 안 해줄 거에요.”

“......그래, 고맙다.”

메이블이 씩 웃으며 이케가미의 복부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윽!”

“복수에요.”

후다닥 달려가는 메이블.

몰려오는 통증에 이케가미가 복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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