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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56화 (5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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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

누군가 커피를 마시며 고요한 복도를 걸었다.

복도의 창문으로는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역시 커피는 모닝커피야.”

남자는 카드키로 문을 열어 모니터링실로 들어갔다.

밤새 이어진 시험의 진행 상황이 모니터 위에 표시되고 있었다.

“다들 새벽에는 가셨나 보네.”

남자는 스카우트 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어제의 결과와 밤새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학생들의 평가를 작성했다. 다음에 누굴 영입할지 길드에서 미리 파악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음. 상위 클래스는 접어두고.”

이들은 이미 대부분 길드와 계약이 된 상태다. 추가적으로 계약을 제의하는 건 상도덕도 아니거니와, 다른 길드와 마찰을 초래할 정도로 탐나는 유망주도 없었다.

“밑에서부터 살펴봐야겠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F반의 유현.

자신을 비롯한 중형 길드에서 꾸준히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 인재.

F등급으로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했으니, 어느 정도의 강함은 보장되었다. 거기에 등급이 낮아 대형 길드의 관심도 적으니 딱 적절한 매물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현이 보여준 건 없었다.

‘퇴근하기 전까지 0포인트였었지.’

지금은 몇 점인지 확인해볼까?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에 부착된 리모컨을 챙겼다.

등급을 넘기기 전에 모니터에 출력된 학생들의 현재 상태를 살폈다.

‘A등급 애들은 몇 명 빼고 비슷비슷하네.’

가장 높은 건 메이블 유. 저 상태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S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비슷하고, 몇몇은 시험을 포기한 건지 어제와 점수에 별 차이가 없었다.

‘이케가미, 이 아이도 포기한 건가?’

모종의 사건 이후 일본 헌터 아카데미에서 한국으로 전학 온 혼혈인.

그게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지만, 범죄라는 설이 유력하다.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전형적인 불량아 스타일이다. 어떻게 아카데미에 다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듣기로는 부원장이 뒤를 봐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머지는 그 자식의 패거리고.’

그들의 점수도 이케가미와 엇비슷했다.

“유현, 유현.”

남자는 리모컨을 조작해 대형 모니터에 표시되는 층계를 하나씩 내렸다.

그렇게 맨 아래까지 내렸으나 왜인지 유현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갔지?”

기권이라도 했나?

아니지. 오기 전에 확인한 바로는 기권자나 구출자의 이름 중 유현은 없었다.

‘그럼 밤사이에 올라갔다는 뜻인데.’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0점이었는데 대체 몇 점이나 올린 걸까.

남자는 기껏해야 E나 D일 거라고 생각하며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나 E등급에도 D등급에도 유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D에도 없어?”

다음은 C. 이번에도 없었다.

남자는 긴장감을 삼키뎌 다시 버튼을 눌렀다.

B. 이곳에도 유현은 없었다.

“뭐, 뭐야?”

버근가?

남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A로 넘어갔다.

“......”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까 전에는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이름이 떡하니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유현의 점수는 최상위권.

A등급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점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점수가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의 점수도 계속 올라가고 있었지만, 유현의 점수 상승폭은 그들과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안녕하세요~”

그때, 몇 사람이 모니터링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칠성을 비롯한 선생들과 노바 길드의 스카우터였다.

“아침부터 왜 그러세요?”

남자는 손을 덜덜 떨며 화면을 가리켰다.

안칠성과 스카우터의 시선이 동시에 모니터로 돌아갔고, 두 사람의 희비가 갈렸다.

***

“하악, 하악.”

한서희는 무릎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밤새 이어진 싸움.

내내 같은 몬스터와 싸운 건 아니었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정신차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다. 포기한다고 한 마디만 하면 밖으로 나가서 쉴 수 있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S반에 간다. 그 이외에 선택지는 없다.

‘절대 포기 못 해.’

그간 투자한 시간을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서혜빈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그러고 보니 그 남자는 잘 하고 있으려나?’

그 사람은 어디까지 갈까.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높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한 일도,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었다. 그 남자는 그 정도의 힘이 있다.

‘그런 사람을 절대 서혜빈에게 넘길 수는 없어.’

더더욱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크아아!”

한서희는 재차 불꽃을 피어올렸다.

노랗고 하얀빛을 발하는 불꽃이 적을 향해 날아갔다.

적중한다고 생각한 그 순간.

불꽃이 허공을 갈랐다.

“어?”

한서희는 당황스러웠다.

적에게 이런 회피 패턴은 없을 텐데.

“어, 어디갔지?”

“여.”

당황한 그녀의 앞에 한 남자가 착지했다. 밤새 달렸음에도 유현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다, 당신! 언제 여기까지 왔어요?”

“아까 왔지.”

유현이 툭하고 바닥에 무언가를 던졌다. 그건 조금 전까지 한서희와 싸우던 몬스터의 머리였다.

“내 몬스터!”

“꺼억-! 잘 먹었다.”

몬스터의 머리가 서서히 사라졌다.

유현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배를 문질렀다.

“......하아.”

그렇게 힘들여서 체력을 줄여놨더니 정작 그 공로를 빼앗기다니.

한서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유현은 다시 땅을 박찼다.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른 유현.

그 경이로운 점프력을 보며 한서희는 조금 전의 상황도 잊은 채 감탄했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높이 뛰어?”

높이만큼 낙하 충격도 큰지 착지할 타이밍에 꽤 나 큰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낯익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명으로 사람을 구분하긴 어렵지만, 비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서희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

먼 거리일 텐데도 바로 옆인 것처럼 뚜렷한 비명. 좀만 굵었다면 몬스터의 포효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는 그 비명은 분명 서혜빈의 목이 출처일 것이다.

“에휴.”

한서희는 못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내 몬스터! 내 몬스터!”

하늘에서 떨어진 유현에게 몬스터를 빼앗긴 서혜빈.

망연자실하며 주저앉은 그녀가 유현을 노려보았다.

“꺼어어억-!”

유현이 트림을 하며 또 배를 문질렀다.

“야!”

잔뜩 열 받은 서혜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잘 먹었다.”

“대체 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건데?! 왜 내가 다 잡은 거 뺏냐고!”

“고의는 아니였어. 예를 들면 이런 거지.”

유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거리를 걸어가면서 밑을 보진 않잖아? 근데 그런 와중에도 벌레가 밟혀서 죽을 거란 말이지. 거기에는 고의성이 없어.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 것도 그거랑 비슷한...”

그때, 유현이 말을 멈추며 홱 고개를 돌렸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기척. 거리가 멀지만, 분명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몬스터야.”

“몬스터? 아무것도 없는데?”

말한 직후 대지의 떨럼이 뚜렷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혜빈은 뒤늦게 느껴진 기척에 흠칫했다.

“뭐, 뭐야? 어떻게 알고 이렇게 몰려오지?”

“충격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씨, 이것도 너 때문이야?”

유현은 역정을 내는 서혜빈을 타일렀다.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이왕 죽이는 거 한 번에 몰아 잡으면 좋잖아?”

“야! 여기가 무슨 F층도 아니고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쫄리면 빠져있던가.”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서혜빈은 달아날 준비를 했다.

A층의 몬스터는 하나하나가 강력한 상대. 세 마리쯤이라면 몰라도 열 마리 넘는 적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크아아아앙!”

“우어어어!”

서혜빈의 판단은 빨랐지만, 몬스터들의 속도는 더 빨랐다. 사방에서 등장한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서혜빈의 퇴로를 차단했다.

“하, 진짜.”

서혜빈은 울며 겨자먹기로 전투를 준비했다. 일단 싸우자. 그러다 적당히 틈을 보고 줄행랑 치는 게 최선이다.

“한 마리는 너한테 줄게.”

“도망칠 생각이나 해!”

유현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도망을 왜 쳐?”

“여기서 테스트 끝나기 싫으면 튀어야지! 열 마리는 넘게 몰려왔는데-”

쾅!

서혜빈의 바로 옆으로 거대한 몽둥이가 내리꽂혔다.

간신히 반응해 피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충격에 의해 바닥을 굴렀다.

“크으으!”

바닥을 몇 바퀴 구른 서혜빈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자세를 다잡았다.

적의 공격이 날아올 것을 예상하여 곧장 머리 위로 방패를 소환했으나 날아오는 공격은 없었다.

‘조용해?’

흙먼지로 자욱한 시야. 왜인지 주변은 고요했다. 들려오는 건 작은 알갱이들이 떨어지는 소리뿐이었다.

‘뭐지?’

의문을 느낀 순간.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서혜빈은 반사적으로 머리 위에 있던 방패를 전방으로 내리꽂았다.

쾅!

방패가 지상에 박힌 직후, 방패 위로 몽둥이가 강타했다.

방패 너머까지 전해지는 진동에 서혜빈이 뒷걸음질 쳤다.

“우어어어어!”

조금 전의 침묵은 사라지고, 다시금 괴물들의 포효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강풍이 불며 시야를 가렸던 흙먼지를 몰아냈다.

“콜록!”

서혜빈이 기침하며 눈을 작게 떴다.

조금씩 먼지가 가라앉으며, 전방의 시야가 확보됐다.

이윽고 드러난 풍경에 서혜빈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어어어...”

주변을 가득 메운 거대한 시체들.

아직 몬스가는 남아있었지만, 대부분이 이미 죽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세 마리 남았어.”

서혜빈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 뭐라고?”

“제일 가까이에 있는 놈은 네가 맡아. 죽이기 쉬울 거야.”

“그게 무슨-”

유현이 적을 향해 도약했다.

물어볼 게 많았지만, 몬스터는 서혜빈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우어어!”

조금 전 유현이 말했던 몬스터가 서혜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이기 쉬울 거라는 말대로 몬스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두 팔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렸고, 한쪽 눈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건 다리뿐이었다.

“재수 없는 놈.”

넌 내가 잡아놓은 떨거지 막타나 치라는 거야 뭐야. 그래도 일단 내 몫이니까 받는다.

허공에 붉은빛의 장창이 나타났다.

기다란 창은 서혜빈의 명령에 따라 적에게 쇄도했다.

파육음과 함께 목을 관통하는 창.

몬스터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유현을 둘러쌌던 몬스터들도 함께 쓰러졌다.

“허.”

경이로운 전투력. 말 그대로 휩쓸었다. 그 광경에 서혜빈은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게 몇 마리야? 하나, 둘….”

서혜빈은 주변을 돌며 몬스터의 시체를 체크했다. 도중에 몬스터가 사라지는 바람에 전부 세지도 못했다.

“야, 너…. 뭐야, 어디 갔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유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의문은 한층 더 커졌다.

유현이라는 인간의 강함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건 그 예상을 아득히 상회했다.

‘그놈 몇 점이나 모았지?’

어쩌면 유현이 이케가미와의 내기에서+ 승리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케가미의 수준을 생각해봤을 때, 유현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막 A등급에 올라왔다고 해도 저런 실력이라면 순식간에 점수를 채울 것이다.

“괴물 같은 놈.”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고는 그녀도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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