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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55화 (5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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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테스트가 시작하고 6시간이 지났다. 테스트 종료까지 18시간이 남았다.

“매번 느끼는 건데 시험 시간이 참 길어요,”

아카데미의 전투 교관인 기한경이 지루한 듯 이야기했다.

“허허. 그래도 저녁에는 퇴근하잖나. 휴일 출근 수당도 주고 말이야.”

박철수의 말에 기한경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긴 하지만요. 이렇게 앉아서 보기만 하는 건 너무 잉여롭지 않아요? 차라리 관리원들처럼 투입되면 몰라도. 봐봐, 지금도 하나 들어가네.”

“쉴 수 있을 때 쉬게나. 그냥 나처럼 유급휴가라고 생각하면 편하네.”

두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개인용 태블릿으로 시험을 주시하고 있었다.

맡은 반의 인원을 확인하거나 다른 등급의 아이들을 구경했다.

“선생님들. 슬슬 S등급 달성자의 가닥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중형 길드 노바의 스카우터가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대로 몇몇은 이대로 합격권에 들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순조롭게 포인트를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확실하게 답하진 않았다.

“아직 18시간이나 남았잖아요.”

“맞아요,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요~?”

신소영과 윤혜경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등급 테스트에는 별다른 규칙이 없다. 학생들에게 어떤 행위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뭐가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없었다.

바로 그게 선생들이 쉽게 확답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누가 점수를 뺏어갈까요?”

“아직까진 모르겠네요.”

스마트 워치는 착용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 조작만으로 기기 간의 점수 이동이 가능하다.

그 기능을 통해 다른 사람의 점수를 빼앗는 걸 점수 강탈이라고 불렀다.

이는 금지된 행동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점을 노리고 다른 사람의 점수를 빼앗으리라.

“제가 그걸 잊고 있었군요. 누군가는 타인의 점수를 빼앗겠죠.”

노바의 스카우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메이블, 저 친구는 어떻게든 올라갈 것 같습니다. 맞죠?”

신소영은 답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동감했다.

메이블의 점수 추세는 압도적이었다. 그녀가 가진 능력과 선천적으로 뛰어난 마나 활용 및 마나량이 한데 어우러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실습 때는 회피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도 많이 줄었어.’

하지만 그녀가 점수 강탈에서 안전한 건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애초에 누군가 점수 강탈을 목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갈 가능성이 적었다.

메이블의 능력은 어떻게 대비할 수도 없이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었으니까.

‘단체로 기습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메이블이 당할 일은 거의 없지.’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려는 이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등급 테스트는 개인전.

함께 뜻을 맞춰 움직이려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른 등급은 어떻습니까?”

노바의 스카우터는 곧장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안칠성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F반 말입니까?”

“뭐, 어디든요.”

어디든 상관없는 거면 왜 날 쳐다보는데, 이 비리비리한 놈아.

안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묻고 싶은 건 보나마나 아까 전 자신이 이야기했던 ‘유현’의 동향이겠지.

“메인 모니터로도 볼 수 있는데 뭘 물어보고 그러시나.”

“하하, 저도 그럴 수 있으면 그랬죠.”

스카우터는 조심스레 아카데미의 부원장 양동길을 흘끗거렸다.

“근데 그런 하위 등급의 아이들을 위해 저 커다란 모니터를 할당하는 건 1분 1초라도 아깝지 않습니까.”

“......”

“그러니 안칠성 선생님이 좀 말씀해주시죠. 예?”

안칠성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궁금한 건 유현입니까?”

“다 똑같은 F반이잖습니까. 누구든 보여주시죠?”

유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말투.

중형 길드라지만 스카우터라는 양반의 언행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안칠성은 참았다. 그를 포함한 다른 스카우터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 직접 보시죠.”

안칠성이 던진 태블릿이 매섭게 날아갔다. 하지만 스카우터는 개의치 않고 태블릿을 잡아냈다.

실내에 흐르는 묘한 기류.

윤혜경이 눈치를 보며 소곤거렸다.

“살벌하네요.”

“부원장님이랑 안선생님이랑 사이 안 좋은 건 옛날부터 유명했으니까요.”

“그래도 스카우터들 방패 세워서 저러는 거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대체 둘이 왜 저런데요?”

신소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녀도 아는 게 없었다.

“나중에 박철수 선생님한테 물어봐요. 그분은 옛날부터 여기 계셨으니까.”

신소영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태블릿을 보는 스카우터의 입이 활짝 벌어져 있었다.

“하하하!”

이내 과장된 동작으로 입을 가리며 주변을 돌아보는 스카우터.

신소영은 한심한 작태를 본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안 선생님. 이것 참 대단하네요.”

“그렇습니까?”

“예. 대부분이 10점대인 건 이해한다지만, 선생님이 예뻐하시는 이 친구는 더 심한데요?”

안칠성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S등급을 입에 담은 것도 사과해야 되겠는데요?”

“하하, 미안합니다. 미안해.”

안칠성이 장난스럽게 사과했다.

“그래도 올해는 아예 흉작은 아닌 것 같네요. 주시하라는 친구가 상당히 앞서가고 있어요.”

“이번에 능력의 새로운 사용방식을 각성한 아이입니다. 아마 그 영향이겠죠.”

“호오. 제법 노력하셨네요?”

안칠성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 친구도 현이가 만든겁니다.”

“현이요? 유현? 여기 맨 아래에 있는 이 친구?”

“예, 그 친구 말입니다.”

스카우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험 시작 이후로 줄곧 0점.

GPS가 고장난 것도 아닌데 최근 이동의 변화가 없다.

이건 분명 시험을 포기한 것과 다름 없는 상황.

그런데 이런 놈이 다른 아이의 능력 각성을 이끌었다?

“안 선생님. 혹시 개그맨 준비해요?”

“그 친구,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하이패스 테스트 통과자입니다. 막 무시하고 그럴만한 아이가 아니에요.”

“무시는 누가 무시를 했다고 그래요. 그냥 안 선생님이 S급이 될 거라는 학생이 반나절 내내 변화가 없으니까 그러지.”

스카우터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안칠성에게 다가갔다.

“이 친구가 놀라운 힘을 보여준 건 알겠습니다. 근데 말이에요.”

안칠성을 향해 태블릿을 건넨다.

“하이패스 테스트와 등급 테스트는 수준이 다릅니다. 아시겠죠?”

마치 가르치는 듯한 어투.

안칠성이 태블릿을 붙잡았지만, 기싸움을 하듯 스카우터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니 되도않는 환상은 적당히 접어두시길 바랄게요.”

스카우터가 말꼬리를 올리며 손의 힘을 풀었다.

몇몇의 시선을 받으며 물러난 스카우터는 그대로 양동길이 있는 2층으로 사라졌다.

“......”

안칠성은 난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양동길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다시 태블릿으로 눈을 돌렸다.

이내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대체 뭘 하는 거냐, 현아.’

***

F층의 하늘이 검푸르게 물들었다.

아직 완전한 밤이 찾아오진 않았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속은 밤처럼 어두웠다.

그 어두운 숲속의 한 가운데서 밝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지나가다가 한 번씩 그곳을 들렀고, 번번이 겁을 집어먹은 채 물러갔다.

“아싸!”

어둠 속에서 유달리 더 빛나는 스마트폰의 화면.

그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현은 탄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내가 누구?”

마치 자신에게 취한 듯 잔뜩 우쭐해진 말투.

“성전 498위 길드 주인.”

그가 중얼거리는 것과 함께 손에 들려있던 휴대전화가 꺼졌다. 전원이 모두 닳은 것이다.

“좋은 타이밍이군.”

유현은 스마트폰을 교복 안에 입은 의복 아공간에 넣었다.

“끙차.”

줄곧 게임을 하느라 굳어진 몸을 풀었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늘은 밤을 말하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유현은 스마트 워치로 남은 시간을 파악했다.

[11: 59]

절반이 채 안 되는 시간.

다른 사람이라면 잠도 아껴가며 초조한 마음으로 싸울 시간이지만, 유현은 여유로웠다.

“충분하네.”

유현은 숲을 돌아보았다.

그 사이에도 밤은 더 깊어져 숲속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해 시야를 밝히려던 유현은 며칠 전 만화를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물건 하나를 떠올렸다.

“아공간에 넣어놨었나.”

교복 안쪽에 겹쳐 입은 조끼에 손을 넣어 아공간을 뒤적이길 잠깐.

그의 손에 야시경이 들려 나왔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보냐.”

유현은 야시경을 착용했다.

그의 입이 벌어지며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 이런 느낌이구나.”

유현은 야시경의 시야에 의존해 숲을 나아갔다.

“키에엑!”

“키에에엑!”

얼마나 움직였을까.

뭉쳐있던 고블린 부락이 유현을 발견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들이지만, 그들 역시 몬스터의 습성대로 설계되어 있다.

하늘이 어두워진 밤은 몬스터들에게도 휴식의 시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무리 생활을 하는 녀석들이 한곳에 모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고블린인가?”

야시경의 초록색 시야에 덮여 고블린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알아볼 수 있는 건 눈빛뿐이었다.

“꽤 되겠는데.”

유현은 순식간에 고블린들과 거리를 좁혔고, 고블린들은 반항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

직후, 손목 스마트 워치의 점수가 갱신되었다.

“33점이면 한 마리당 1점?”

낮은 등급의 몬스터들은 점수도 낮다던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빠른 점수 획득을 위해서는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야 했다.

‘E로 가는 데 필요한 점수가 100점이었지.’

유현은 다시 몬스터를 찾아 움직이며 아까 들었던 시험의 방식을 떠올렸다.

‘위로 올라가는 입구는 스마트 워치의 지도로 확인하면 된다고 했고.’

숲속을 떠돌던 짐승 몬스터 한 마리가 그의 손에 사라졌다.

‘E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은 밤이 되면 더 강해진다고 했던가?’

동굴에서 쉬고 있던 몬스터들은 죽음을 깨닫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스마트 워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점수를 줄 수 있다고도 했지.’

스마트 워치의 점수가 세 자리를 달성했다.

유현은 지도를 활성화해 곧장 E층 으로 향하는 입구로 향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남의 점수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

그가 모든 정보를 다시 기억해 냈을 때, E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거대한 포탈 옆에는 스마트 워치를 인식하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유현은 교통카드를 찍듯 스마트 워치를 가져다 댔다. 곧 포탈에 걸려 있던 제한 장치가 해제되었다.

“이것도 설명대로군.”

유현은 포탈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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