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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제정신이야?!”
“멀쩡하다니까.”
“멀쩡하단 놈이 그런 짓을 왜 하는데!”
서혜빈이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자신이 끼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과몰입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유현의 억지로 같은 배에 타게 됐다.
“벌써 어떻게 될지 눈에 보이네?”
서혜빈이 비아냥거리는 남자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꺼져 이 새끼야!”
“미리 돈이나 준비해둬라. 하하하.”
남자가 떠나고 모여있던 사람들도 저들끼리 떠나갔다.
“어떡하지?”
서혜빈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 테스트에 편법 같은 건 없다.
같은 층이 아닌 이상 도와줄 수도 없고,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이번 테스트는 아주 중요했다.
입학하고 처음 치루는 등급 테스트.
반드시 S등급으로 가야 하는 만큼 1분 1초가 소중했다.
“미안한데 난 못 도와줘.”
서혜빈이 유현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게임을 하는 유현.
심각한 자신과 상반된 모습에 서혜빈은 허탈하다 못해 화까지 났다.
“넌 걱정도 안 되니?”
“잠깐만. 중요한 이벤트가 있어서.”
길드 간의 성전 이벤트가 시작됐다.
랭킹에 들면 좋은 보상을 주는 이벤트라 조금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에휴. 너 알아서 해라 그냥.”
서혜빈은 그냥 포기했다.
애초에 돈은 문제가 아니다.
몇 배가 되든 얼마든 지불할 수 있다. 그녀가 심각하게 생각한 건 유현의 자퇴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저 모양이니, 더 신경써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괜히 마음만 심란해지지.’
서혜빈은 심호흡을 하며 거칠어진 속을 다스렸다.
중요한 테스트인 만큼 정신적인 부분도 아주 중요하다. 괜스레 다른 일을 생각하며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후. 나는 이제 신경 끌게. 네가 알아서 해.”
“어어. 알겠어.”
유현은 그때까지도 게임에 여념이 없었고, 서혜빈은 그렇게 유현을 떠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실내가 어두워지며 강당 무대 위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테스트를 위해 모인 한국의 아카데미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무대를 바라보았다.
“저는 시험의 탑 총책임자, 정주 노스아입니다.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모여주셨네요.”
자신을 정주 노스아라고 소개한 여자는 이국의 언어로 시험과 관련된 내용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것들은 동시에 통역되어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등급 강등 조건, 각 층계의 생태계, 점수 측정 방법 등. 하나 같이 핵심적인 내용들이었다.
설명이 마무리되고, 다시 강당이 밝아졌다.
“모두 등급에 맞춰 포탈 앞에 서주세요. 지급되는 스마트 워치도 모두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대열이 맞춰지고, 진행요원들은 학생들에게 순차적으로 스마트 워치를 나눠주었다.
GPS는 물론 착용자의 신체 상태를 측정하고, 몬스터를 처치할 시의 점수를 기록하는 도구였다.
“쟤가 걔지?”
“응. 유현이네.”
모든 등급이 모인 장소.
유현은 그곳에서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아까 S등급이니 뭐니 말하던데.”
“미친놈이네.”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물론 하나 같이 긍정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이유 없는 반응은 아니다.
유현을 고깝게 보는 이들은 여러 이유로 한 번씩 그를 찾아갔다가 모욕을 당했었으니까.
‘저 사람은 참 적이 많네.’
A등급 줄에 서 있던 한서희는 슬쩍 유현을 쳐다보았다.
누가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지조차 모른 채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아두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대체?’
시험장에 와서까지 저러는 걸 보면 꽤 중요한 일 같았다.
“꺅!”
그때, 한서희의 발치로 누군가 밀려 넘어졌다.
인상을 찌푸리던 한서희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메이블?”
“아, 안녕하세요.”
은색 머리의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한서희는 급히 그녀를 일으켰다.
“괜찮아요?”
“네. 고마워요.”
“다치진 않았죠?”
“괜찮아요.”
한서희가 뒤를 노려보았다.
아까 전 유현과 내기를 하던 남자가 싱글거리고 있었다.
“미안, 미안~ 뒤에서 밀려버렸네~”
“뒤에 아무도 없는데요?”
“어라? 어디 갔지?”
그의 과장스러운 행동에 한서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행동은 의도가 다분했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한심한 짓 그만 하세요.”
“사고라니까 그러네?”
“아까는 저쪽 가서 소란피우더니 이번에는 이쪽이에요?”
“야, 누가 들으면 내가 일부러 그런 줄 알겠다.”
한서희는 홱 고개를 돌렸다.
추잡한 짓을 일삼는 사람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메이블~ 미안해~”
“저는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몸을 숙여 메이블의 다리를 살폈다.
다리를 향해 움직이는 손가락.
한서희가 급히 메이블을 뒤로 당겼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다쳤는지 보려고 했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한서희는 말없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오가는 시선 사이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 눈싸움이라도 하자고?”
“당신도 S반에 올라가려고 테스트에 참여한 거 아닌가요? 남들한테 그렇게 시비 걸고 다닐 시간이 있어요?”
그 말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자는 조금 전처럼 여유로운 척 미소지었다.
“네가 걱정 안 해도 다 방법이 있어.”
“......?”
“뭐, 나중 되면 알게 되겠지. 그때 가서 보자고.”
이상한 꿍꿍이를 꾸미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 남자가 손을 흔들고는 자신의 무리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머리를 위로 뾰족하게 세운 남자.
이케가미 신이치.
올해 학기 초 전학 온 인물로 일본의 아카데미에서 큰 사고를 일으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소문이 있다.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지만,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한일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름 높은 자국의 아카데미를 두고 이곳까지 오진 않았을 테니.
‘기분 나쁜 남자야.’
첫인상부터가 좋지 않아 구태여 접점을 만들지 않은 인물이다.
큰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지만,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저기, 괜찮아요? 괜히 저 때문에….”
메이블의 존재를 잊고 있던 한서희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한서희가 싱긋 웃으며 메이블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같은 혼혈이지만, 이리도 다른 분위기라니. 새삼스럽지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정주 노스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장 선두에 선 사람부터 포탈 안쪽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잘 해봐요.”
메이블의 말에 한서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메이블이 포탈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한서희의 차례가 왔다.
그녀는 가볍게 심호흡한 뒤 포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
시험의 탑 모니터링 실.
외부 관전을 위해 마련된 넓은 공간에는 헌터 아카데미의 선생들을 비롯하여 한국 헌터 업계의 관계자들이 모여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커다란 모니터 위에 나타난 원형지도. 지도 곳곳에 작은 점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저 점 하나하나가 모두 학생들이었다.
“올해도 가장 많은 건 F반. 등급이 높을수록 적은 건 작년이랑 똑같네요.”
“그래도 이번엔 A반이 좀 되는데요? 기대되는 아이들도 꽤 많고요.”
“향상심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는 거겠죠.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협회의 직원, 길드의 스카우터 등.
소속은 달랐지만,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유망한 헌터 지망생의 포착.
대부분의 유망주는 이미 그들의 시야 내에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 S등급으로 가는 아이가 있을까요?”
“글쎄요. 있었으면 좋겠네요.”
서로가 경쟁자이지만,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역대급 하이패스 테스트 통과자도 이곳에 있다던데요,”
“아, 저도 들었습니다. 몇 번 저희 쪽 유망주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었는데, 전부 거절당했었어요.”
“아주 프라이드가 대단한 친구인가 봅니다. 저희 쪽 아이도 대차게 까였다고 그랬거든요.”
유현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그들이 계약한 유망주들을 통해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어, 글쎄요?”
“유현입니다.”
스카우터들 사이에 안칠성이 앉았다. 그의 말에 스카우터들은 화면의 참가자 목록을 훑었다.
“A등급에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군요.”
“F등급입니다.”
“F등급이요? 하이패스 테스트 통과자가?”
그의 등급까지는 알지 못했는지 다른 스카우터들도 조금씩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역대급이라고 불렸군요.”
“F등급 아이가 잘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장담합니다. 현이는 적어도 A 등급 이상으로 올라 갈 겁니다.”
안칠성의 호언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카우터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다른 선생들도 섞여 있었다.
“안 선생. 그게 가능할까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가 안칠성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양두길. 아카데미의 부원장.
안칠성과는 과거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상당한 앙숙 관계였다.
“당연히 가능하죠.”
“F반이에요. 상위 클래스라면 다 통과하는 하이패스 테스트 좀 통과했다고 너무 오만한 것 아닙니까?”
양두길의 말에 몇몇 스카우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확실히 F급인게 놀랍긴하지만, 다들 통과하는 거긴 하니까요.”
“최근에는 테스트가 쉬워진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간간이 나오잖아요.”
안칠성은 입을 다물었다.
변호는 무의미하다. 유현이라면 결과로 증명할 것이다.
“우리 그 유현이라는 아이보다는 누가 S반에 갈 수 있을지나 예상해봅시다. 왜 매년 하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럴까요? 선생님들은 어때요?”
스카우터들은 아카데미의 선생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선생들이 하나둘 모이며 그간 학교에서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음~ 확실히 그렇군요. 마나의 총량이나, 활용 범위가 늘었다면 서혜빈도 가능성이 있겠어요.”
“한서희나 한주석도 힘들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메이블은요?”
“그 친구는 당연히 가고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화면을 지켜보았다.
지도 위를 바쁘게 오가는 작은 점들. 지도 옆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점수가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역시 A반은 점수가 빨리 올라가네요.”
“다른 반도 볼까요?”
리모컨을 통해 커다란 화면을 6분할 했다. A반을 시작으로 F반까지의 모든 상태가 화면에 나타났다.
“다들 시작은 좋은데요?”
“하위 클래스 아이들은 경험자가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빠르네요.”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은 채 2학년이 된 아이들.
그들 대부분은 적어도 한 차례 이상은 등급 테스트를 경험한 바 있다.
“F반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점수를 얻었네요.”
“한 명이요?”
F반의 지도가 확대됐다.
최근 10분간의 이동 동선 변화 없음. 점수 0. 생명 신호는 정상인 걸 보니 단순히 시험을 포기한 듯했다.
“누구죠?”
표시된 이름은 두 글자.
유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