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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52화 (52/219)

52

등급 테스트.

1년에 두 번씩 이루어지는 아카데미의 정기 행사.

등급 테스트를 몇 주 앞에 남겨둔 지금. 아카데미의 훈련장에서는 오늘도 많은 학생이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헉, 헉.”

주시하가 거친 숨을 뱉었다.

반복된 체력 훈련으로 주시하는 기진맥진했다.

“현아. 다, 다 했어.”

“계속해.”

“또? 벌써 30세트나 했는데.”

“원래 50세트 루틴이잖아. 다 하면 쉐도잉 훈련해.”

주시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헉, 헉.”

거친 숨소리, 쇠붙이가 맞붙는 소리, 훈련용 인형이 파쇄되는 소리 등.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한 데 뒤섞이는 가운데, 유현은 홀로 유유자적했다.

“나이스~”

바닥에 등을 붙인 유현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막 캐릭터의 레벨이 하나 더 상승했다.

“이 맛에 현질하지.”

부모님에제 드렸던 돈을 제외하고 남는 모든 돈을 게임에 쏟아부었다.

몇 개 아이템을 종결급 아이템으로 맞추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나마 고렙 사냥터에서 자동사냥으로 원킬이 나기 시작한 게 호재였다.

“야!!!”

그때였다.

느닷없는 고성이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훈련장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입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서혜빈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서 있었다.

“혀, 현아.”

“기다려봐. 얘만 잡고.”

“아니, 저 사람 너한테 달려오는데.”

달려온다고? 누가?

유현이 고개를 돌린 것과 동시에 그의 면전에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유현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발을 쳐냈다.

“야! 너 나한테 대체 뭘 준거야!”

서혜빈이 유현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어제 먹은 의문의 액체. 음식물 쓰레기나 하수구 구정물 같은 맛은 둘째치고, 먹은 이후로 몸이 성치 않았다.

실제로 그녀의 볼은 아픈 사람처럼 홀쭉해졌다. 눈 밑의 다크 서클은 덤이었다.

“왜 그렇게 생겼냐?”

“이런 씨!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네가 준 거 먹고 아파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잖아!”

“그러니까 평소에 몸 관리 좀 하지 그랬어.”

“주둥이 안 닥쳐!? 지금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유현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 태연자약한 태도에 이미 한계에 달한 서혜빈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으아아아악! 진짜 죽여버릴 거야!”

주변의 마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유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얘기해. 내가 설명해줄게.”

“닥쳐!”

“빨리.”

억지로 끌려 나온 서혜빈은 유현에게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명현현상?”

“자연스러운 거야.”

“잠도 못잘 정도로 아픈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 져.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한데, 나도 겪었었어.”

그 말에 서혜빈은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넌 이런 걸 어디서 얻었어? 효과만 들어보면 심상치 않은 물건인데.”

“업계 비밀이야. 잘 마시기나 해. 나중에 효과 없다고 내 탓 하지 말고.”

서혜빈이 눈을 피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효과 없으면 네 탓이지.”

“난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분명히 말했다?”

유현은 다시 한번 분명히 이야기했다. 코어의 마나를 모두 사용한 뒤에 마셔야만 효과가 있다고.

“혹시 오늘처럼 아플 때도 훈련해야 해?”

“당연하지. 원래 아플 때 더열심히 해야 해.”

“하아.”

서혜빈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데 코어를 바닥내야 한다니.

“아무튼 알겠어.”

“열심히 해라.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거야.”

“알겠다고.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

“그래야 나중에 딴소리 못하지.”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하니? 그런 짓 안 하거든?”

뭐라고 생각하긴.

제멋대로에 고집 센 애새끼지.

유현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등급 테스트는 어디서 보냐? 듣기로는 학교가 아니라 다른 데로 간다던데.”

“스카이 아일랜드잖아. 그것도 몰라?”

“거긴 또 어디야?”

“그걸 왜 몰….”

입을 열던 서혜빈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뒤이어 배를 부여잡으며 허리를 숙였다.

“왜 그래?”

목소리 대신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유현은 입꼬리가 꿈틀거리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괜찮냐?”

“......”

“먹은 것도 없다면서 위장은 왜 그래?”

서혜빈이 유현의 팔뚝을 때렸다.

유현은 팔을 문지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혹시 변비야?”

“좀…닥쳐…….”

서혜빈이 떠나갔다.

어기적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여름 방학의 기대감과 등급 테스트의 긴장감이 동시에 흐르며, 7월의 말일이 다가왔다.

“방학까지 나흘 남았다.”

교탁에 선 안칠성이 아이들을 쭉 훑었다.

방학.

복지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기숙사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학생이라면 학기 중 어느 때보다도 들뜬 기간이었다.

하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마냥 밝지 않았다.

“그리고 등급 테스트까지는 하루 남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등급 테스트가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루 뒤면 모두 스카이 아일랜드에 있겠지.”

몇몇 학생은 긴장이 역력했지만, 대부분은 흥미가 없어 보였다.

최하위 반 F. 위로는 올라갈 곳은 많으나 아래로는 떨어질 곳이 없다.

그 탓에 이미 많은 학생이 작년부터 시험을 치렀다. 한 차례 경험한 시험인 만큼, 학생들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테스트에 관해 대강 설명해주겠다. 까먹은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은 귓구멍 열고 잘 듣도록.”

몇 학생이 지루한 듯 눈을 좁혔지만,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위치는 스카이 아일랜드. 이건 다들 알고 있겠지.”

스카이 아일랜드.

전 세계의 기술과 재화가 총동원된 부유섬. 위치는 태평양 한가운데로 각 동맹국에 설치된 포탈을 통해 섬으로 이동할 수 있다.

“테스트 장소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시험의 탑이다.”

스카이 아일랜드는 일종의 중립국이다. 때문에 헌터 육성 기관이 없으며, 그 대신 동맹국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훈련시설이 존재한다.

시험의 탑 역시 현대 기술로 만들어진 최첨단 시설 중 하나였다.

“시험의 탑은 총 7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는 몬스터들이 가득하지.”

층마다 등급을 부여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등급에 맞는 층에 배정된다.

F등급은 최하위층. 위로 올라갈수록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하는 시스템이었다.

“각 층에서 몬스터를 죽여 점수를 얻으면 된다.”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점수를 얻으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몬스터마다 주는 점수가 다르며,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점수 역시 층마다 달랐다.

“그 외에도 작년과 같다.”

안칠성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점수 측정은 개인별로 주어지는 휴대용 기기를 사용한다는 점.

위험할 시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구조팀이 투입된다는 점 등.

테스트와 관련된 규정들이 끊임없이 나왔고, 유현 역시 이 순간만큼은 휴대전화에서 손을 떼고 설명에 집중했다.

“탑은 일종의 거대한 던전이다. 구조팀이 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아라.

그리고 이번에는 작년보다 많이들 위로 올라가길 바란다.”

F반 학생은 보통 E반이 한계다.

D반까지 간다면 아주 많이 잘한 거고, 그 이상은 지금까지 전례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다.”

오랜 설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교실을 떠났다.

안칠성은 교탁에 선 채 교실을 떠나는 아이들을 훑었다.

누가 위로 올라가고, 누가 이곳에 머물까. 대부분은 현상 유지에 그치겠지만, 두 사람만은 확실히 예외였다.

‘유현, 그리고 주시하.’

그 한계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힘의 소유자. 그리고 최근 능력의 새로운 활용을 개화한 2차 각성자.

등급 테스트가 종료되었을 때, 두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기대하마.’

하나 확실한 건, 적어도 F반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었다.

***

바다를 가린 거대한 그림자.

태양을 등진 채 부유하는 스카이 아일랜드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웅장한 천공섬을 연상케 했다.

드넓은 대지 위로 들어선 높고 낮은 건물들. 외형은 투박한 섬의 모양이었지만, 그 위는 선진국의 대도심이었다.

“우와.”

스카이 아일랜드 중앙 포탈 관제소.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하나둘 포탈을 통해 스카이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도착한 유현은 주위를 돌아보는 데 정신이 팔렸다.

빌딩은 수도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이런 마천루의 숲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다들 모였으니 이동하겠다.”

안칠성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험의 탑으로 직행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얼마 뒤 신호와 함께 주차장에 모여있던 버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현은 버스에 앉은 채 창밖을 구경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오갔다.

스카이 아일랜드는 헌터를 위한 시설로 쓰이기도 했지만, 온갖 기술 개발의 선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더불어 관광 요소가 많아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고 보니 현이는 여기 처음 와보지?”

연신 밖을 내다보며 감탄을 뱉는 유현에게 주시하가 물었다.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대충 설명해줄게.”

주시하는 스카이 아일랜드에 관해 짧게 설명했다.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었는지 등. 아주 간략한 정보들이었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에야 동맹국에 들어갔어.”

“얼마 안 됐네.”

“그전까지는 헌터 업계에서 그리 위상이 높지 않았으니까. 기술적인 저력은 있었지만, 정작 유명한 헌터가 몇 없어서 인식은 별로였거든.”

헌터 업계에는 스포츠 시장처럼 일종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존재했다.

단순히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연예인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헌터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국가에게 여러 이득을 가져왔다. 국가 인식의 변화 같은 대중적인 관점을 넘어 국제 정세에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아마 몇 년 뒤면 우리나라도 엄청 유명해지지 않을까?”

“글세. 그것보다 말이야.”

유현은 그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게임 이야기를 꺼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버스는 테스트 장에 도착했다.

밖에서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시험의 탑.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려 모두 시험의 탑 내부 로비에 마련된 대강당으로 이동했다.

“여.”

대강당에 들어선 유현은 곧장 한서희와 마주쳤다.

“훈련은 많이 했냐?”

“당연하죠.”

유현은 훈련장을 오가며 이따금 한서희의 훈련을 목격하고는 했다. 그녀는 언제나 열심이었다.

“서혜빈은?”

“그 여자를 왜 저한테서 찾아요?”

“여기 근처에 있을 줄 알았지.”

유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씩 거리를 둔 채 모여있는 A반의 아이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 가득했지만, 저마다 개성 하나는 뚜렷했다.

외국인도 있고,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무리가 있었지만, 혼자 서 있는 사람도 몇 있었다.

“서혜빈 저기 있네. 너도 친구 없으면 가서 붙어보는 거 어때?”

“싫은데요.”

“싫으면 말고.”

유현은 미련 없이 한서희를 떠나 서혜빈의 무리로 다가갔다.

한주석이 먼저 그를 발견하고는 웃음꽃을 피웠다.

“마! 현이!”

“꺼져. 붙지마.”

다른 아이와 대화를 하던 서혜빈도 유현을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F반이라 제일 늦게 올 줄 알았는데.”

“제일 늦게 온 건데?”

“그래? 그럼 다른 반 참가 인원이 적었나 보네.”

등급 테스트의 특성상 등급 하락의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자신의 등급에 만족하는 학생은 참가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등급이 높을수록 참가율은 떨어졌다.

“잠깐 저기서 얘기하자.”

유현은 서혜빈을 무리에서 데리고 나왔다. 한 몸이라도 된다는 듯이 하성진도 같이 따라왔다.

“뭐야. 넌 왜 따라와.”

“아가씨 옆에는 항상 제가 있습니다.”

“너 얘 집 가봤어?”

“......예?”

“나 얘 집도 가봤어. 그러니까 따라오지 마.”

하성진이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굳었다.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오해하잖아!”

“뭐 어때. 틀린 말도 아닌데.”

굳은 하성진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그거 효과는 있었냐?”

“있긴 있더라. 고마워.”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약물을 복용한 이후로 마나를 다루는 게 더 부드러워졌다.

거기에 마나의 한계치도 늘어났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잘됐네.”

“응. 그리고 지금까지 말을 못했는데 그때 고마웠어. 덕분에 아빠한테 전화했거든.”

그 말에 유현이 씩 웃었다.

“어때? 내 말대로지?”

“그래. 고맙다~”

두 사람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때. 누군가가 유현의 앞을 막아섰다.

“이게 누구야?”

굵은 눈썹. 날카로운 눈매.

어딘가 얍삽한 인상의 남자였다.

“무려 내 제안을 거절한 유현님 아니야~?”

유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을 안다는 듯 행동하는 상대방이었지만, 유현의 기억에는 없는 면상이었다.

“둘이 아주 친한가봐~?”

남자가 서혜빈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뒤쪽에 있는 남자의 일행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너는 왜 또 와서 시비야?”

서혜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남자가 놀란 액션을 취하며 눈썹을 씰룩였다.

“뭐야~ 둘이 진짜 뭐라도 있어? 왜 그렇게 과민 반응하지?”

“있긴 뭐가 있어? 네가 헛소리하니까 말하는 거잖아.”

“당연히 농담이지~!”

서혜빈은 씩씩거렸고, 남자는 실실 웃었다.

두 사람이 대척하는 사이.

열심히 기억을 뒤적이던 유현은 뒤늦게 남자가 누구인지를 떠올려냈다.

하이패스 테스트가 끝난 이후 길드 영입을 위해 자신을 찾아왔던 상위 클래스 놈 중 하나였다.

“너 이름이 뭐였지?”

“뭐, 뭐?”

“내가 사람 이름은 잘 기억 못 해서.”

남자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직접 가서 말까지 걸었건만, 상대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다니. 자존심이 짓뭉개지는 순간이었다.

“풉.”

옆에 선 서혜빈이 작게 실소했다.

남자의 표정도 상황도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이런 시발.”

자존심이 구겨진 남자가 욕을 내뱉었다.

“너, 너 유현. 내가 절대 가만 안 둔다.”

“하, 웃기고 있네. 가만 안 둘 거면 네가 뭐 어쩔 건데?”

“넌 빠져있어!”

서혜빈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시비는 네가 걸어 놓고 왜 나보고 빠지래!”

“네가 쟤 대변인이라도 되냐? 왜 자꾸 끼어드냐고!”

“친구다, 왜!”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

“......아니야?”

서혜빈은 창피함에 입술을 깨물었고, 남자는 폭소했다.

“혼자 친구라고 생각하면 그게 친구냐! 하하하!”

“......”

유현이 손을 뻗어 남자의 입을 막았다.

“뭐, 그건 상관없고. 넌 나한테 한 방 날려주고 싶다는 거지?”

남자가 거칠게 머리를 흔들어 손을 떼어냈다.

“F등급 자식이 어디다 손을 올려?”

“내기라도 할래? 너 같은 놈은 빠르게 쳐내야 편하거든.”

내기는 귀찮은 상대를 가장 빠르게 끊어낼 방법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말이 통하는 상대로 한정된다.

“하! 내기 좋지!”

“말이 좀 통하네.”

“뭘로 할까. 특별히 너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유현은 큰 고민 없이 곧장 대답했다.

“내가 S등급에 가면 내가 이기는 거고, 못 가면 네가 이기는 거야.”

아무렇지 않게 뱉은 내용이었지만, 그 오만한 말은 주변 학생들의 예리한 청각에 포착되었다.

근처에 있던 A반 학생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저 새끼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F등급이 S를 입에 담다니.”

“남들 다 통과하는 하이패스 테스트 하나 통과했다고 아주 기고만장이네.”

그들 대부분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유현에게 영입 제의를 했다가 시원하게 까인 이들이었다.

“S등급을 가겠다고? 네가?”

“쫄리면 뒈지시던가.”

남자가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

“해! 이왕 하는 김에 사람도 더 모아 보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A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창피함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서혜빈도 주변에 모인 인파에 정신을 되찾았다.

“너, 너 제정신이야?”

“저런 애는 확실하게 떼어내야 해. 안 그러면 계속 귀찮게 한다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종목이 문제잖아! S등급이야! F등급에서 S등급으로 가려면 그 구간의 포인트를 전부 모아야 한다고!”

“모으면 되잖아.”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 이러지!!!”

서혜빈이 이마를 짚었다.

뭐든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는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거늘. 아무리 유현이라도 S반에 갈만한 포인트를 차곡차곡 밑에서부터 쌓는 건 무리였다.

“빨리 취소해.”

“무슨 취소야?”

남자가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주변에 모인 이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치졸하게 취소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맞아! 시원하게 질러버려!”

서혜빈은 아차 싶었다.

유현의 오만함은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이 내기는 더 이상 두 사람만의 내기가 아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난 돈을 걸지. 넌 뭘 걸거냐?”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유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지면 자퇴하겠다.”

“뭐, 뭐?”

“이 미친놈아!”

남자는 물론이고 서혜빈까지 당황하여 소리쳤다. 재입학이 불가능한 아카데미의 특성상 자퇴는 아주 큰 가치를 지녔다.

“좋아! 아주 터프하네!”

“대신 돈 많이 걸어라. 거기 뒤에 있는 사람들도 걸 거지?”

“우리가 뭐하러? 걸어봤자 이득이 없는데.”

그 말에 유현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뜩 분개한 서혜빈이 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돈 건 만큼 얘가 두 배로 줄 거야.”

“오, 그럼 해야지.”

“나도!”

“돈 대신 다른 것도 되나?”

“돈이 될만한 거라면 뭐든 환영이야.”

서혜빈이 입을 떡 벌렸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머리가 뒤늦게야 반응했다.

“야, 야. 지, 지금 뭐라고?”

그런 서혜빈에게 유현은 기다렸다는 듯 달변을 내놓았다.

“네가 나를 방어해 준 시점에서 우린 이미 같은 배를 탔어.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고. 뭣보다 우린 친구잖아? 같이 가야지.”

서혜빈은 할 말을 잃었고, 내기는 그렇게 성립됐다.

유현이 S등급에 간다면 판돈 모두를 먹고, 가지 못한다면 서혜빈이 판돈을 두 배로 돌려줘야 한다.

그 과정에 서혜빈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으며, 그 덕에 서혜빈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뭐든 제멋대로인 놈이 얼마나 사람을 짜증 나고 화나게 하는지를.

비로소 역지사지가 성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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